[기자수첩]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대유쾌 마운틴'으로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24개 |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발표했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개념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 개념이 됐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의 인간이 실제 사람을 어설프게 닮으면 큰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는 현상으로, 이젠 로봇 공학 외에도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죠.

얼마전까지만 해도 영화나 3D 영상물, VR 콘텐츠 등에 쓰이는 인간형 모델링을 보며 불쾌한 골짜기를 떠올리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물의 묘사가 점점 인간과 가까워졌지만,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계속해서 더 두드러지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고 극장의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불쾌한 골짜기의 유명한 사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불쾌한 골짜기보다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표현이 이곳저곳에서 더 자주 들려오게 됐습니다. 여기서 '대유쾌 마운틴'이란 인간을 닮은 정도와 불쾌함의 그래프를 그렸을 때 나타나는 불쾌한 골짜기 구간을 지나, 닮음 정도가 건강한 사람 수준에 당도했을 때 맞이하게 되는 두 번째 봉우리를 뜻하는 커뮤니티 신조어입니다.




최근 스마일게이트에서 공개한 버츄얼 셀럽 한유아의 'I Like That' 티저 영상에서 또 한 번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버츄얼 휴먼인 한유아가 등장해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이 전부인, 11초 길이의 정말 짧은 영상에 불과하지만 이를 접한 유저들의 반응은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입니다. 보통 비슷한 사례의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아직은 인물의 모델링에서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져 아쉽다는 반응이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는데, 이제는 영상을 본 이들 대다수가 기술의 발전에 놀라고, 가상의 셀럽에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찬사와 함께 말이죠.

실사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진 버츄얼 휴먼 기술은 곧 VR·AR 기술의 발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원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추구하는 가치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입니다. 한동안 VR 전문 기자로서 시장의 상황을 계속 지켜봤기에,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한 유저들의 반응에서 왠지 모를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 이외에도 현재 정말 많은 버츄얼 셀럽이 저마다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탄생시킨 또 다른 버츄얼 셀럽인 '로지'는 2022년 2월 기준 인스타그램 팔로워 12만 2천 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광고 수익이 1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죠. 버추얼 휴먼 기술은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강점을 앞세우며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계속해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까운 미래에 언젠가는 찾아오리라고 기대했던 '대유쾌 마운틴'이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던 VR의 대중화, 그리고 메타버스의 시대가 점차 가깝게 다가왔다고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 골짜기 없이 '대유쾌 마운틴'에 진입한 한유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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