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넥슨의 '별'이 지다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58개 |



넥슨 김정주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향년 54세. 친구이자 평생의 경쟁 파트너였던 김택진은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며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며 고인의 길을 위로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다양하지만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일치한다.

스물한 살, 젊은 나이 벤처 회사를 창업해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고 이런 공격적인 자세가 업계의 긴장감을 조성했다. 과감한 투자, 예상을 깨는 M&A,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 업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회사의 복지 시스템과 자유로운 개발 환경은 지금의 넥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은둔형 경영자의 길을 고수했다. 시총 25조 원이 넘는 넥슨 그룹의 창업자이지만 지주회사를 제외한 그룹 내 어디에도 안락한 자신의 사무실이 따로 없으며, 으레 있을 법한 의전비서나 운전기사도 두지 않았다. 필요할 땐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지금은 글로벌 게임 기업 순위에 오를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지만 넥슨의 시작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국내 인터넷 산업 태동기인 1990년대, 역삼동 성지하이츠 오피스텔 2009호에서 넥슨은 시작했다. 김정주는 당시 송재경, 박정협, 박원용과 함께 회사의 첫 타이틀인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그래픽 온라인 MMORPG의 대중화를 이끈 타이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한 MMORPG의 탄생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후 넥슨은 '퀴즈퀴즈',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엔비', '카트라이더', '마비노기'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벤처 성공 신화를 만들어갔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람의 나라' 개발 시절 핵심 개발자와 이별하면서 한차례 큰 위기를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 4월 PC통신으로 상용화를 시작했지만 기술적인 문제는 여전했다. 이후 정상원이 합류하며 게임의 기반을 다졌지만 당시 모뎀 기반의 인프라 환경에서는 수익이 날리 만무한 상황이었다. 1996년 여름까지만 해도 '바람의 나라' 한 달 매출은 300만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주의 의지는 확고했다. 곧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1997년 초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초고속 인터넷 망이 빠르게 보급되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와 함께 실업자들이 자영업자로 변하면서 PC방 열풍도 불었다. 온라인 게임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급격한 시장 변화는 넥슨에게 기회이자 위기였다. 시장은 열렸지만 엔씨소프트, 웹젠, 네오위즈 등 인터넷 게임 시장은 곧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게임사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 시절 김정주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M&A를 통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구성원의 반대도 있었고 핵심 개발자가 줄퇴사하는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 결과 2004년 메이플스토리 개발사 '위젯' 인수, 2008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수하면서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1년에는 일본 도쿄 증권 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나란히 어깨를 올렸다. 부작용도 있었다. DNA가 다른 회사와의 물리적 결합은 어마어마한 성장통이 뒤따랐다. 그 시기 많은 사람들이 넥슨에 들어왔고 떠났다. 김정주를 직접 겪었거나 거쳐 갔던 사람들이 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이유다. 그는 순수한 재미를 찾는 게이머이면서 지인들에게는 다정한 선후배였지만 때론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를 가진 기업가였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기도 했다.

김정주는 2016년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한 주식 특혜 의혹으로 NXC 대표직에 사임하면서 게임업계와 멀어졌다. 1,0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가족 경영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대법원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그는 회사에 복귀하지 않았다. 그의 소식은 허망하게도 지난 1일 머나먼 땅에서 안타까운 비보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정주는 생전에 자서전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덩치를 키우고, 경쟁자가 다시 파트너가 되고. 게임 산업 안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며 "넥슨이 흘러온 이야기는 결코 김정주 혼자만의 이야기일 순 없다. 함께한 모두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김정주의 못다한 꿈은 새로 시작될 넥슨과 수많은 대한민국 예비 창업가의 손에서 이루어질 수 있길 기원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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