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팀 덱에 '독점작'이 나온다면?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3개 |



'독점작'은 게이머들이 거치형 콘솔, 혹은 휴대용 콘솔을 구매할 때 매번 민감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게임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해당 콘솔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강력한 독점작'의 존재는 콘솔의 전체 판매량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때 국내에서도 장기적인 닌텐도 스위치 품귀 현상을 일으켰었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사태를 떠올려보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쉽다.

이런 와중에 밸브가 휴대용 게이밍 기기인 '스팀 덱(Steam Deck)'을 공개했다. 스팀 덱은 저렴한 가격 대비 준수한 성능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해외 유수의 비평가들 역시 하드웨어적으로 매우 우수하며, 조작감이 훌륭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정식 발매 여부조차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루빨리 스팀 덱을 손에 쥐어보고 싶은 국내 유저들의 초조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던 와중, 스팀 덱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밸브가 스팀 덱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전용 게임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는 소식이었다. 아직도 국내 유저들에게 있어 '그림의 떡'과 같은 스팀 덱이지만, 적어도 스팀 덱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점작을 플레이하지 못해 서글퍼질 일은 없으리라는 낭보였다.

해외 미디어와의 인터뷰에 참여한 밸브의 피에르 룹 그리페(Pierre-Loup Griffais) 엔지니어는 "스팀 덱 전용 게임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스팀 덱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스팀 라이브러리 속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 있으며, 스팀 덱이 독자적인 콘솔 플랫폼이 아닌, PC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이밍 기기의 매출 극대화에 있어서 '독점작'은 더없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해당 인터뷰를 보고 처음 든 생각도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오직 스팀 덱만을 위한 전용 콘텐츠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라는 말이 쉽사리 통용되지 않는 살벌한 곳이 바로 게임 업계이지 않은가.



▲ '절대' 라는 것이 없음을 몸소 일깨워준 前 오버워치 디렉터 '제프 카플란'

이러한 의심에 불을 지피게 된 계기는 지난 2일에 출시된 밸브의 신작, '애퍼처 데스크 잡(Aperture Desk Job)'에 있다. 밸브의 신제품인 스팀 덱 사용법을 소개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해당 게임은 PC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됐는데, '스팀 덱에 최적화된 작품'이라는 명목 아래 패드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여태껏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스팀을 사용해온 이들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게임인 셈이다.

집에 하나쯤 굴러다니는 낡은 게임 패드를 연결하여 어찌어찌 게임을 실행했다고 하더라도, 자이로 센서를 활용한 사격 파트나 음성 인식 등 몇몇 요소는 스팀 덱 없이는 온전히 즐길 수 없게 설계되었다. "아~ 만약 스팀 덱으로 진행했다면 이렇게 됐겠구나"라고 추측하며 넘어갈 뿐이다.

애퍼처 데스크 잡은 게임 자체도 무료였고, 30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볼륨에 단순한 조작밖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이 큰 걸림돌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밸브가 이번과 같은 방식을 채택하여 그 이름을 언급하기조차 조심스러운 시리즈의 '3편'을 제작한다면, 그때는 결코 지금처럼 조용히 넘어갈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 포탈 의 차기작을 기다린 유저들에게 무료로 공개된 '선물' 같은 게임인 만큼, 유저 반응은 긍정적이다

밸브의 CEO인 게이브 뉴웰은 이미 여러 차례 독점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 왔다. 기업의 수장 자리에 그가 앉아있는 한 스팀 덱을 통해 독점작이 출시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언제까지나 현역에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티브 잡스의 서거 이후 여러 변화를 맞이한 애플처럼, 밸브 역시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기존의 방침을 뒤엎을 수 있다.

이 모든 가정은 일어날 리 없는 일을 사서 걱정하는, 단순한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스팀 덱의 국내 정식 발매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모든 가정은 밸브의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꽤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점이다.

스팀 덱의 글로벌 출시 소식과 함께 개설된 공식 페이지에는 이미 스팀 덱의 국내 출시가 결정되기라도 한 듯, 멋들어진 한국어 소개 문구들이 적용되어 있다. 망상 수준으로 번져나가려는 의심이 더욱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스팀 덱의 국내 출시가 확정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밸브가 앞으로 공개할 차기작이 그 어떤 형태로 공개되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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