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쳐] 메이플 오케스트라 공연, 어렵지 않아요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9개 |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들에게 있어 '게임 음악 공연'은 일종의 축제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속에서 흘러나오는 너무나도 익숙한 음악을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접해볼 수 있다니, 게임 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겠죠.

하지만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이런 시간이라도, 적어도 저와는 인연이 없는 자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국내에서 이미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인기 게임 속 음악을 활용한 오프라인 공연이 개최됐었지만, 사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거, 나같은 '알못'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배경음악(BGM)은 게임 플레이 화면에 비춰지는 순간의 상황과 스토리에 어우러져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역할인 거지, 그 자체만 따로 두고 보면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혼자 듣는 게임 음악은 신날 땐 신나고, 감동적일 땐 감동을 느끼는 것으로 그만이지만, 왠지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더 고도의 감상 스킬이나 관현악기들의 밸런스 등, 각종 음악적 지식을 갖춰야 할 것 같은 이미지도 있었고요.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은 고상한 문화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죠.

그러던 중, 넥슨이 개최하는 게임 음악 공연인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음악으로 만난다(Past and Present)’라는 거창한 주제로, 전문 지휘자와 60명의 대규모 편성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번에도 물론 막연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게임 프리뷰라면 또 몰라도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니. 공연을 관람한 뒤 뭔가 알았다는 듯 '1부와 2부 프로그램 속 음악 편성이 어땠고, 그야말로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라며 마치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평가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오케스트라 역시 '게임'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있는 만큼,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라면 분명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게임 음악 공연이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했던 지난 2015년부터 사내 밴드의 게임 음악 연주회나 마비노기 영웅전, 마비노기의 BGM을 활용한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여러 노하우를 쌓아온 넥슨이기에 더욱, 게이머 친화적인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공연을 앞두고 조사해보니, 넥슨은 이미 지난 2018년에도 메이플스토리의 15주년을 기념하여 준비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더라고요. 당시 공연을 관람한 이들이 남긴 '최고의 공연이었다'는 관람평을 보고 나니 기대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러니저러니 잡생각이 많았지만, 결국 편한 마음으로 음악 자체를 즐기고 오자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공연이 개최되는 '롯데콘서트홀'로 향했습니다.



▲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가 개최된 롯데콘서트홀

예정된 공연이 한시간 이상 남아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콘서트홀 라운지는 이미 수많은 메이플스토리 유저들로 가득했습니다. 예매한 티켓으로 공연 관객들을 위해 준비된 특전인 아이템 쿠폰을 수령하거나, 프로그램 북을 구매하여 미리 공연을 예습하기도 하고, 현장에 준비된 특별 포토존에 서서 친구들과 인증샷을 남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라고 하면 왠지 정장을 갖춰 입고 참여해야 할 것 같은, 다소 어렵고 딱딱한 인상이 있었습니다만, 이날의 공연은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축제에 가까웠습니다. 넥슨 역시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유저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교류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며 추억할 수 있도록 하고자 이날 공연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현장에서 웃고 떠들며 곧 시작될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유저들의 표정에서는, 오케스트라라고 괜히 긴장하거나 경직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인증샷을 남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사를 즐기는 유저들



▲ 선입견에 사로잡혀 안 입던 재킷까지 차려 입고 한층 경직되어 있는 제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총 40곡 이상의 메이플스토리 OST가 연주되었습니다. 유저들의 추억이 담긴 과거 OST부터 가장 최근에 발표된 OST까지, 공연 시간인 2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꽉 찬 라인업이었죠.

1부 프로그램에서는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초반만 잠깐 즐긴 유저라도 들어봤을 초보자들의 고향 '리스항구'의 테마곡, 그리고 궁수 마을 '헤네시스'의 주제곡 등 가볍고 잔잔한 음색의 곡들로 채워졌습니다. 관현악 관련 지식이 없더라도, 앞으로 이어질 전체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워밍업' 단계에 해당하는 곡 선정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게 바로 오케스트라다!'라고 외치는 듯한, 여러 악기가 일제히 소리를 더하는 대규모 합주가 이어졌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역시 윌 3페이즈의 테마곡인 '바스러지는 빛 (The Bloody Cage)'이 연주되는 순간이었죠. 이땐 아직 1부 순서가 여럿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보통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오케스트라 매너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날 공연은 이러한 딱딱한 규정이나 관습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저 역시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동을 담아, 이때만큼은 다른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었을 때 몇 배로 더 좋았던 'The Bloody Cage'




20분의 휴식 시간 후 바로 이어진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공연의 2부는 '오케스트라에서 이런 소리도 연주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다양한 음색이 담긴, 듣는 맛이 있는 곡들로 채워졌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일렉트로닉 기타, 클래식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밴드 구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서인지, 더욱 풍성한 게임 OST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전체 프로그램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로 곡명이 기재된 '청운'이 연주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지휘자의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린 솔로의 경쾌한 음색이 마치 우리나라 전통 국악기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관련 지식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게임 속에서 익숙하게 듣던 음악을 이처럼 다양한 음색으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 하나로도 정말 만족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스크린을 통해 각 곡의 배경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인게임 영상이 함께 상영되었기에 오케스트라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각각의 연주에 담긴 서사를 더 쉽게 이해하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는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문화를 '게임'이라는 연결고리가 더 쉽고, 편안하게 이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인연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았던 오케스트라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될 정도이니, 게임이 앞으로도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가치 있는 문화 교류를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생겼죠.

'게임 음악 공연'은 이제 게이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길 거리로서 완전히 정착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공연을 관람하기 전의 제가 그랬듯, '과연 그게 어울리기나 할까?'라고 지레짐작으로 걱정했던 분들이 계신다면, 걱정을 잠시 내려두고 꼭 한번 쯤은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게이머들이 먼저 나서서 게임의 다양한 도전에 관심을 두고 응원하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분야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더욱 다양한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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