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제는 소통과 실천이다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6개 |

지난 18일, 블루 아카이브는 버튜버 관련 이벤트 '파놉티콘 기관의 기밀'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진행하려고 했던 파놉티콘 기관의 기밀은 공식 버튜버 '이루아'를 데뷔시키기 위한 깜짝 이벤트로, 당일에 인게임 웹페이지와 유튜브, 트위터를 통해 갑작스레 발표됐다.

버튜버라는 개념은 일반 유저들에게는 다소 낯설겠지만, 서브컬쳐 유저들에게는 크게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특히 블루 아카이브는 글로벌 서버 홍보를 위해서 홀로라이브 소속 버튜버에 광고 방송을 맡기기도 했다. 심지어 가우르 구라가 메인 OST 'Target for Love'를 커버하기도 했으니, 오히려 기존 버튜버를 모르던 사람들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공식 버튜버 '이루아'는 그렇지 못했다. 공개된 순간부터 커뮤니티를 막론하고 유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인게임에서는 PVP, 총력전 랭커들이 닉네임을 일괄적으로 바꾸면서 항의했으며, 커뮤니티에서는 온갖 루머가 퍼져나가는 동시에 평점을 내리자는 글들이 번번이 보일 정도로 유저들의 분노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트위터에 퍼진 루머 일부를 김용하 PD가 직접 리트윗으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공식 버튜버 프로젝트인 '파놉티콘의 기관의 기밀'은 18일 오후 8시를 기해서 전격 취소됐으며, 이벤트 참여하면 지급하기로 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 결국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버튜버 이벤트는 취소 결정되었으며, 19일에 조기종료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이렇게까지나 크게 번질 사태는 아니었다. 버튜버를 활용한 마케팅은 이미 다른 회사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한 것이고, 블루 아카이브는 더군다나 서비스 초부터 글로벌을 대상으로 하긴 했지만 버튜버 마케팅을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험도 있다. 물론 기존에 인기 있던 버튜버를 활용하는 것과 공식 버튜버를 새로 만드는 건 급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국내에서도 에픽세븐이나 카운터사이드 등 버튜버를 활용해서 마케팅하려던 사례가 있고 어찌저찌 정착하기도 했으니 블루 아카이브라고 불가능하리란 법은 없지 않았나.

결론적으로 그런 생각은 오판이었다. 우선 버튜버라는 소재 자체는 꽤나 취향을 탄다. 그리고 서브컬쳐 유저들은 꽤나 편식이 심하다. 미소녀라고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 번 훑어보고 나서 무언가 마음에 안 들면 꼬치꼬치 캐서 더 싫어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서 벽을 쌓는 경우도 흔하다. 왜 똑같은 눈 한 근 반도 넘을 것 같은 미소녀처럼 보이는데 그걸 일일이 계열로 나누고 투닥거리겠나. 그런 서브컬쳐 유저들이니 버튜버에 대한 온도 차이도 제각각이다.

블루 아카이브가 흥할 수 있던 이유는, 그렇게 제각각 나뉜 서브컬쳐 취향을 꿰뚫고 저격하거나 혹은 한 번 반전을 줘서 신선한 캐릭터성을 만들 수 있는 덕겜에 대한 '이해도'가 컸다. 단순히 미소녀 캐릭터만 만들어둔 것이 아니라, 설정도 탄탄하고 캐릭터성도 탄탄하기 때문에 밈이 돌고 2차 창작이 돌면서 엔진이 풀로 가동하는 서브컬쳐 특유의 맥락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본산지인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호응을 얻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게임과 연관성이 잘 안 느껴지는 공식 버튜버를 갑작스레 내놓은 건 마치 서브컬쳐 유저는 미소녀 캐릭터면 다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섣부른 일반론을 보는 것 같은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그 결과물은 유저들이 디자인부터 갑작스럽게 '귀찮다'라고 말하는 뜬금없는 캐릭터성에 목소리 등등 세세한 디테일까지 지적할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 게으름뱅이나 귀차니즘도 분명 모에 속성이긴 하지만...뜬금없이 이렇게 나올 줄은



▲ 게임 관련 사항보다는 한 명의 버튜버 데뷔에 치우친 구성도 질타를 받는 요인이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간 유저들이 계속 수정해달라고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게임과 크게 연관 없어보이는 프로젝트를 들고 온 것이었다. 이전 리뷰를 비롯해 '동일한 경험이라는 이름의 함정' 칼럼에서도 썼지만, 블루 아카이브는 인게임 식자나 번역 상태가 상당히 좋지 못하다.

'쵸메'라는 일본식 행정구역을 마땅히 번역하기 어려워서 그냥 내버려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이를 '~가' 등으로 번역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게 꼭 들어맞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만화나 라이트노벨에서도 '쵸메'라는 주소를 그냥 내버려둔 사례가 많다. 그런데 그걸 뜬금없이 한자를 우리식으로 읽은 '정목'으로 표기해서 유저들이 초창기부터 어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군다나 기타구와 북구 등 표기가 제멋대로인 것도 그렇고, 검수를 제대로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인게임 CG에 나온 문구는 번역이 하나도 안 되어있다. 이 때문에 유저들이 PV는 식자가 되어있는데 왜 게임에는 반영하지 않았나 질타했는데 돌아온 발언은 '동일한 경험'이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은 픽업 순서가 달라지거나 업데이트 순서를 앞당긴 것 때문에 우려스럽다는 질문에 답할 때 훨씬 더 많이 나온 말이었는데도 이제는 번역 및 현지화 관련한 부분에 대한 답변으로 더 뇌리에 남았다.

그나마 치세, 아카네 장비 변경 업데이트 때 이슈가 발발한 이후 배너 퀄리티는 신경을 써주는 모습이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언급이 없었다. 그 뒤에 김용하 PD가 설날에 개발자 편지를 올리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편지에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게임 이용 제한이나 불충분한 로컬라이즈 대응 등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어 죄송하다는 말과, 차별화 포인트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는 말 그리고 차별화 포인트를 적극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겠다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게임 내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 개발자 편지는 올라왔지만, 게임 내부 문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방안은 없었다

그럼에도 블루 아카이브가 그 사건 이후 크게 이슈가 안 터진 것은, 이미 일본 서버에서 검증을 거친 콘텐츠들이 휴식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빠르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게임의 스토리와 PV 퀄리티는 일본에서도 호응을 얻을 정도로 정평이 나있고, 그걸 빨리 즐기고 싶은 유저의 니즈를 충족시켜줬던 터라 잠시나마 그 문제들을 덮어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 자체가 해결이 되지 않았으니, 언제고 그 덮개가 벗겨지면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튜버 마케팅이라는, 맥락이 없고 꽤나 공을 들여야 하는 게임 외적인 프로젝트를 들고 와버렸으니 더더욱 불 붙은 분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지금 흥행하고 있는 버튜버 회사들만 봐도 버튜버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나름 반응을 얻다가 버튜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식자 오랜 시간 슬럼프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유닛을 재정비하고 유망한 인력을 새로 영입한 뒤 이를 활용하기 위한 여러 프로모션까지 같이 곁들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게임 버튜버 마케팅은 보통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를 버튜버처럼 사용하는 양상이었다. 블루 아카이브 일본 서버만 해도 아로나 채널은 게임 NPC 아로나가 등장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은 버튜버들은 여러 차례 난항을 겪다가 컨셉을 바꾸거나 혹은 시행착오를 두세 번 거쳐서 자리를 잡아갔다. 원래 세아스토리가 에픽세븐 홍보 버튜버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 한계에 봉착한 세아스토리는 컨셉을 바꿔서 희망스튜디오와 연계해 수익금을 전부 기부하는 버추얼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거듭났다. 카운터사이드 라니는 두 번이나 실패를 겪고 3대째에 신규 유저들을 위한 카운터사이드 초보 라니와 함께 플레이하기 컨셉이 점점 잡혀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유저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카운터사이드의 상황이 순탄치 않았으니, 유저들의 질타를 수도 없이 받았던 건 물론이다.

이렇듯 버튜버 프로젝트는 단순히 미소녀 캐릭터에 목소리와 모션만 입혀서 방송하는 것을 넘어 여러 노고가 있는 프로젝트다. 그런 걸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꺼냈을 뿐만 아니라, 인게임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그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니 당연히 인게임 문제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유저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 번 언급한 뒤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는 상황이면 더더욱 그렇다.




▲ 버튜버 마케팅으로 호응을 얻은 적이 있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결국 블루 아카이브의 버튜버 사태는 8시간만에 취소되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버튜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나 이를 어떻게 하겠다는 소통도 없고 맥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게임 외적인 프로젝트를 들고 오는, 불통의 자세가 문제다. 블루 아카이브 유저들이 그간 말했던 일본 서버의 아로나 채널을 그냥 자막만 달고 왔다고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런 식으로만 넘기기엔 위험하다. 유저들이 그간 분출하지 않은 불만이 상당히 쌓여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업계인 입장에서 블루 아카이브는 상당히 특수한 케이스고, 그러기에 쉽게 운신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는 한다. 일본 서버의 업데이트를 다른 서버가 뒤따라가는 구조인데 퍼블리셔는 다르고, 심지어 일본 서버 빼고 나머지 서버 퍼블리셔가 모회사인 다소 꼬인 구조다. 일본이 서브컬쳐의 본산지인 만큼 일본 서버에서 그만큼 힘줘서 만든 것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를 고스란히 받아오는 것도 퍼블리셔가 다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해왔던 것을 공식 유튜브나 만화 등으로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지금 게임 내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건 플러스 알파를 더하기 위한 노력이고, 유저들이 말하는 건 부족한 내실을 다듬고 소통하자는 말이니까. 무언가를 더한다는 말이 꼭 내실을 다진다는 말과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2021년부터, 아니 그 전부터 유저들은 게임사의 여러 행태에 분개하고 행동을 보여왔다. 마라톤 간담회의 시초가 됐던 에픽세븐의 10시간 간담회부터 트럭시위의 시초가 된 페그오 간담회에, 지난 19일에도 다른 게임에서는 간담회가 열리지 않았던가. 그런 불만이 간담회 하나만으로 누그러지거나 하진 않았다. 페그오의 사례처럼 그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소통과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하는 실천이 뒷받침될 때에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됐다. 이번 버튜버 사태의 실패 원인을 분석할 때, 버튜버란 키워드가 아니라 이 점을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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