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블록체인, '접근법'이 바뀌어야 한다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4개 |



2022년 봄을 맞은 지금, 이미 관련된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졌습니다. 'NFT가 과연 진짜인가?'부터 시작해 블록체인 기술과 게임의 결합이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와 같은 현상이 미래 게임 시장, 나아가 IT 산업 자체를 어떻게 바꿀 건가에 대한 논의는 여러 채널을 통해 수도 없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측된 미래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닌, 실현 가능성이 높은 미래라는 것에 산업의 주축들은 이미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암호화폐,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개념인 NFT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가상 세계 '메타버스'는 다음 시대의 열쇠로 여겨집니다. 웬만한 대형 차고지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줄기차게 등장하는 'XX버스'가 어느 한 산업의 일각을 넘어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언급되는 것만 봐도 흐름이 보입니다.

한편, 어찌 생각하면 이와 같은 지성적 공감이 가장 강하게 이뤄졌어야 할 게임 산업에서는 막상 뜨뜻미지근한 느낌입니다. 국내 게임 산업의 생산자들은 이미 공감을 이뤄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구성하는 기업 중 방귀 좀 뀐다 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새로운 코인을 발표하고, 플랫폼과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등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넓은 보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산업을 구성하는 데는 생산자만큼이나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막상 이들이 만든 제품을 소비하게 될 게이머들의 입장은 반반입니다. 일부는 발빠르게 흐름에 발맞춰 적응하고자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 기술과 개념이 게임에 도입되는 자체에 심하게 반발합니다. '기업'이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생산자가 되는 게임사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집니다. 회사의 방침이니 따르긴 해도,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게임사 임직원들이 숱하게 존재합니다.

기술과 개념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진 않을 겁니다. 기술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며, 이는 원자력이 인류사에 남긴 상처와 수혜만 생각해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제가 이 글을 빌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게이머의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유의 배경에 어떤 오해가 있는지에 대한 겁니다.


1. 수익

블록체인 게임들이 스스로를 어필할 때 가장 많이 썼던 표현입니다. 가상화폐 시장이 일확천금의 기회인 동시에 수많은 기회와 눈물을 요구하는 잔혹함을 지녔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지금과 달리 한창 우상향을 타던 수년 전만 해도, 가상화폐 시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안단물로 받아들여졌고, 탈중앙화 경제 시스템을 게임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꽤 여러 차례 이뤄졌습니다.

이 당시 게임으로서는 처참한 모습을 보였지만, 수익이 창출된다는 것 하나로 게이머 층에게 어필하려는 게임들도 더러 등장했고, 이중 일부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수익'을 키워드로 한 매력 어필은 여전히 유지되는 기조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함이 아닌, 게임을 하는 김에 돈이 벌리는 것이라 설명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소모적 활동이었던 게임 플레이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바꿀 수 있다면, 게임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겠는가?"

오늘날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들의 주장이죠.

일부 옳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어느 재미도 돈 버는 재미를 못 따라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그리 벌어본 적은 없으니 크게 공감되는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돈 버는 행위라는게 매력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번다? 얼핏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매력 어필이 통하려면,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해야 한다는 거죠.


2. 재미

이쯤에서, '게임 플레이'라는 행위에 대해 고찰해봅시다. 말마따나 게임 플레이는 무척 소모적인 행위입니다.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야 성립되는 행위죠. 하지만 게이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이 이렇게 선뜻 시간과 돈을 쏟을 수 있는 이유는, 게임 플레이라는 행위에서 '재미'라는 반대급부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게임 뿐만 아니라 모든 유흥은 소모적입니다. 덕질과 굿즈 수집에 돈을 아끼지 않는 매니아들, 한 번 본 공연을 수도 없이 다시 찾는 뮤지컬 팬들, 그리고 과금에 수없이 돈을 쏟는 게이머들 모두 그에 준하는 재미를 얻기 위한 소비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생각하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대다수는 취미와 여가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정당히 지불한 댓가에 따르는 재미만 온다면 그 자체로 만족하기 마련이죠.

이러한 이해의 차이가 곧 게이머들의 의견을 가르는 이유입니다. 블록체인 기술과 메타버스, 그리고 NFT의 개념이 인류의 삶과 가치 기준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바입니다. 문제는, 수익이 아닌 재미있는 게임을 원하는 그룹인 게이머를 대상으로 수익 창출의 재미를 어필한다는게 그리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죠.


3. 연결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도 있습니다.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들이 주장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현실 경제와 가상 세계 경제와의 연결입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번 재화를 현금화할 수 있다는 건,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GDC 2022에서 제가 들었던 관련 강연들에서는, 그들이 지닌 솔루션이 얼마나 쉽게 가상화폐를 현금화할 수 있고, 반대로 현금을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는지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강연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죠.

하지만, 이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제 연결이 게이머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미지수입니다.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가상의 세계고, 현실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하며 사전적 의미로 이 메타버스 내에서는 경제, 정치, 문화 활동을 비롯한 모든 현실의 활동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현실과의 경제 연동을 빼면 이미 비슷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바로 '온라인 게임'이죠.

이미 게이머들은 온라인 게임 내에서 문화, 사회, 정치, 경제(고립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중요한 건, 현실에서는 보잘것 없는 내가 게임 내에서는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 그리고 현실에서 재벌집 아들인 A가 게임 내에서는 그저 초보 전사인 이유가 모두 게임과 현실의 경제적 연결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죠.

게임을 넘어 '세계'의 모습을 띈, 보다 발전된 메타버스가 등장한 시점이라면, 이 연결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온라인 게임에 경제 시스템을 얹은 정도인 현 시점에서, 경제적 연결이 이뤄진 메타버스는 현실의 팍팍함을 잠시 잊고자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4. 접근법

미래야 늘 그렇듯 확신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가 되었든 메타버스가 결국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며 현실과 가상 세계 간의 경제 융합 또한 이뤄질 것이란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2018년 개봉한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이 미래의 현실 속 한 컷이 될 수 있다는 건 현재 기술의 발전상을 고려하면 꽤 설득력 있는 미래이니 말이죠.

수많은 게임사와 IT 기업들이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이 패러다임 전환기의 헤게모니를 가져오기 위해서일 겁니다. 메타버스든 토큰 경제든 결국 이용자가 확보가 되어야 어떻게든 굴러가기 마련이니 최대한 많은 이용자를 모집하는게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들에게 가장 쉬우면서 매력적인 이용자층은 이미 '온라인 게임'으로 비슷한 개념에 익숙해진 게이머 층이니 말이죠.

하지만, 게이머층을 끌어오고자 한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워딩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접근법'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죠. 블록체인 기반 게임에 반발하는 게이머들은 기술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게임의 순수성만 부르짖는 디지털 원시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재미없는 게임을 하기 싫을 뿐이죠.

그리고 조금 쓴 소리지만, 지금껏 등장한 블록체인 게임 중 대부분은 실제로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재미를 위해 돈을 쓰는 이들에게, 재미가 아닌 돈을 내세워 어필하는 건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을까요?

지금 필요한 건, 경제 시스템이 얼마나 잘 짜였고, 어떤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기대 수익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닌, 이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게임 내에서 어떤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겁니다. 나아가 게임을 넘어선 '세계'의 모습을 제시해야 겠죠.

현실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을 투영하고, 법칙이란 제약에 묶여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고, 꿈꾸는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세계.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기술의 잠재력이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경제가 연결되고, 돈을 벌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정도로 어필하고자 하는 건 비단 게이머층에 대한 잘못된 접근일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의 잠재력을 너무 낮춰보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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