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방적인, 너무도 일방적인 헬게이트: 런던

칼럼 | 이동원 기자 | 댓글: 17개 |
영화나 노래처럼 게임도 이름을 따라가나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헬게이트 공식홈페이지 게시판은 지옥의 문이 열린 듯하다. 수많은 유저들의 분노로 게시판은 ‘글 디딜’ 틈도 없다. 이제까지 정액요금제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야 할 수 있었던 게임을 무료화 한다는데 왜 이런 걸까.


단순히 무료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빛소프트는 헬게이트: 런던의 무료화와 함께 부활이라는 의미의 ‘레저렉션’ 버전을 예고했다. 애초에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던 헬게이트를 온라인 서비스에 문제가 없도록 프로그램 단계에서 새롭게 뜯어고쳤다.






[ ▲ 12일 열린 헬게이트: 레저렉션 제작보고 행사 ]



콘텐츠도 업데이트 된다. 계속 미뤄졌던 ‘어비스 연대기’ 패치를 시작으로 내년 3월에는 ‘헬게이트: 도쿄’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확장팩까지 업데이트 된다. 이제 게이머들은 지옥의 불길이 도쿄와 오사카, 요코하마를 뒤덮고 그 속에서 악마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게 된다.


문제는 새로운 버전의 헬게이트는 기존 서버에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것. 단순한 업데이트가 아니라 게임의 시스템과 프로그램 레벨의 구조를 뜯어고쳤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서비스할 수 없다는 것이 한빛소프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기존 헬게이트 서버는 어떻게 되나. 한빛소프트는 여기서 단골과 신용을 모두 잃는 패착을 둔 듯하다. 기존 헬게이트의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것. 매달 정액비를 내어가며 캐릭터에 애정을 쏟아 부은 기존 헬게이트 유저들은 졸지에 과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 ▲ 지옥보다 뜨거운 헬게이트: 런던 공식홈페이지 자유게시판 ]




사실 헬게이트는 언제 서비스를 그만두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게임 중 하나였다.


지옥의 화염처럼 뜨거웠던 헬게이트에 대한 열광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차갑게 식어버렸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서버 불안정과 버그에 시달렸던 헬게이트는 게임성마저 ‘패키지’라는 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게이머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헬게이트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던 한빛소프트는 이 여파로 티쓰리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고, 헬게이트를 개발한 플래그쉽 스튜디오도 폐쇄 수순을 밟았다.






[ ▲ 전 한빛소프트 김영만 대표, 빌 로퍼는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챔피언스 온라인을 개발했다 ]



개발사와 서비스사가 모두 쓰러진 상황. 말 그대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같은 헬게이트를 거둬들인 것은 한빛을 인수한 티쓰리엔터테인먼트였다. 그리고 티쓰리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개발자들을 투입해 헬게이트의 유지보수 및 서비스를 진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2년. 티쓰리의 개발진들은 헬게이트가 애초에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로 디자인되었으며, 그래서 아예 뜯어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 서비스를 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단순히 게임성이 패키지스럽다는 의미를 넘어, 수시로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프로그램을 수정해나가야 하는 온라인 게임에서 이런 과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끔 디자인되어있다는 뜻.


어떻게 보면 애정을 가지고 노력한 것이 지금의 개발사. 그러나 인고의 시간을 함께 버텨낸 것은 티쓰리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다. 헬게이트가 게이머들의 뇌리에 망작으로 기억되는 동안 계속해서 헬게이트를 지켜왔던 유저들 또한 헬게이트를 자식처럼 여겨왔던 것이다.


정액비를 내면서 계속 헬게이트를 플레이해왔던 유저만이 아니다. 잠시 떠나있었지만 헬게이트를 안정적으로 서비스하겠다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개발사의 약속을 믿고 키우던 캐릭터를 잠시 세워놓은 채, 때를 기다리던 유저들에게도 이번 발표는 마찬가지로 비보였다.






[ ▲ 헬게이트: 런던의 여파로 한빛소프트는 티쓰리에 인수된다 ]



물론 온라인 게임 서비스는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게가 문을 닫는 것은 틀린 일도 유별난 일도 아니다.


고고씽, 프리즈온에어, 파르페스테이션, 듀얼게이트 등 6개의 온라인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 작년에 이어 올해는 누리엔, 에이트릭스, 길드워, 타뷸라라사, 타임앤테일즈, 공박, 슬랩샷, 킥오스, 4Leaf 등 더 많은 게임의 서비스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어느 게임도 당장 문을 닫지는 않는다. 온라인 게임은 캐릭터의 정보뿐 아니라 게임을 통해 맺어온 관계도 중요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온라인 게임에 투자해 왔던 게이머의 일상도 변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부분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몇몇 게임은 서비스의 종료에 맞춰 대규모의 이벤트를 벌이며 게임과 호흡해온 유저들과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 ▲ 외계인의 대규모 침공 이벤트와 함께 스토리를 매듭지은 타뷸라라사의 서비스 종료 ]



하지만 개발팀은 헬게이트 유저들에게 장밋빛 공약만을 내세웠다. 앞으로 무료화가 될 것이며 새로운 업데이트가 계속될 것이라고. 그러나 거기에 ‘기존에 키우던 캐릭터 정보는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진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결정은 개발사의 입장에서도 뼈아픈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헬게이트의 게임 구조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던 시도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바로 그 때, 그에 대한 정보를 함께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레저렉션의 발표 후 새로운 서버가 5일 후에 열리게 된다는 비보를 접해들었을 때,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레저렉션 버전을 위주로 서비스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유저들의 마음 또한 뼈아픈 것이었다.






[ ▲ 게임 종료 안하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



꼭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기존 게임을 업데이트 해 '리뉴얼' 개념으로 새롭게 서비스하는 사례를 요즘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런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존 서버의 캐릭터 데이터를 이전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기존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유저들에게 기존 서버에서 계속해서 플레이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리뉴얼 된 게임을 다시 시작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다.






[ ▲ 피파 온라인1은 2가 나온 후에도 6개월 간 더 서비스 되었다.
유저들이 하나 둘 2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 종료의 길을 걸은 것 ]



하지만 현재의 헬게이트 유저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레저렉션 서버에서 1레벨부터 새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신규서버로 기존 캐릭터 이전이 어렵다는 해명도 명쾌하지 않다. 팔라듐 문제로 게임 내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신규 서버에 그대로 적용하면 새롭게 시작하는 유저들과 형평성이 문제된다는 것이 개발사의 설명.


하지만 이런 문제는 서버를 2개로 두면 너무도 쉽게 해결되는 부분이다. 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클로즈베타와 오픈베타에 생성된 캐릭터 정보를 정식 서비스 이후에도 유지하곤 하는데, 이럴 때 신규유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신 서버를 열어 새롭게 유입되는 유저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다.






[ ▲ 어떤 보상책으로 유저들의 마음을 치유할 것인가. 아직 어떤 '혜택'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정말 기존 헬게이트의 서비스가 더 이상 불가능했다면, 양해를 구하며 서비스를 종료해버려도 좋았다. 그렇게 기존 유저들에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게임에 대한 추억을 정리할 시간을 주면 좋았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나서 새로운 버전의 헬게이트 서비스를 발표해도 좋았다. 헬게이트를 무료화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무장한 당찬 모습을 선보였어도 좋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는 단골들이 헬게이트를 아예 잊어버릴까봐 걱정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들 또한 개발사와 마찬가지로 헬게이트와 아픔의 시간을 겪어왔음을 안다면 좀 더 솔직했어도 좋았다. 장밋빛 공약에 가시가 돋혀있음을 알려줬어도 좋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유저들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오직 ‘개발사가 정한대로 따라오기만 하라’는 정책. '2년 동안 곪았던 상처를 아프지만 도려내자'는 부탁은, 그 상처의 아픔을 참아내면서 헬게이트에 머물러 있었던 유저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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