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가 정한대로 내놔? 게임포털 캐쉬충전의 실상

칼럼 | 이동원 기자 | 댓글: 29개 |
점심식사를 하러 새로 생긴 식당에 갔습니다. 이 식당은 입구에서 식권을 팔고 있네요. 식권의 가격은 5,000원. 식권을 사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메뉴판에 3,800원이라고 적힌 김치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5,000원짜리 식권을 제출하며, 거스름돈 1,200원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적립된다고 합니다.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적립금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얼른 머릿속으로 계산해봅니다. 이 식당에 세 번 더 오면 적립금은 3,600원. 식사 한 끼를 하기엔 부족한 금액입니다. 네 번 오면 적립금은 4,800원. 한 끼를 먹으면 1,000원의 적립금이 남습니다. 적립금을 깨끗하게 털어내려면 이 식당에 몇 번을 더 와야 하는지 셈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김치볶음밥은 맛있었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식당에 적립금을 남겨두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1,200원을 거슬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식권 발행을 담당하는 곳에 수수료를 주고 있기 때문에 전액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식권 발행에 드는 원가와 수수료 명목으로 공제되는 금액이 1,000원. 결국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0원 뿐이었습니다.


3,800원짜리 식사를 하기 위해 4,800원을 낸 셈 입니다. 이런 식당이 대체 어디있냐고요? 게임포털의 캐쉬충전 실태조사를 끝마치고 난 기분은 꼭 이런 식당을 눈앞에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게임포털 캐쉬 충전 실태조사


게임포털의 캐쉬 충전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것은 아주 작은 계기에서였습니다. 모 게임의 취재를 위해 4,800원짜리 캐쉬 아이템을 구입할 필요가 생겼는데, 결제는 5,500원을 해야 했던 것이죠. 처음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그냥 4,800원을 결제하게 해주면 안 되나?


그래서 시작된 게임포털 캐쉬충전 실태조사. 조사는 인벤 인기 게임 순위 TOP 50에 올라있는 게임포털사이트 그리고 랭키닷컴 상위 게임포털 중 온라인 게임을 하나 이상 서비스하고 있는 곳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캐쉬 충전 결제금액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사대상이 된 24개 사이트 중에서 결제금액을 100원 단위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곳은 게임트리, 넷마블, 엔터플, 올스타, 한게임의 5 곳에 불과했습니다. (프리챌 게임은 1,000원 단위) 나머지는 모두 포털사이트에서 미리 정해놓은 금액만을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 ▲ 결제금액을 직접 입력할 수 있었던 한게임 ]



사실상 캐쉬아이템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충전한 금액을 딱 떨어지게 사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즉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는 잔금을 남겨놓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자유롭게 충전금액을 정할 수 있는 곳이 분명히 있는 것을 보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게임포털들이 결제금액을 미리 정해둔 것은 그렇게 했을 때의 이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임포털들이 얻는 이익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회원들의 캐쉬결제를 계속 유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필요한 액수보다 많이 충전을 시켜놓으면 남아있는 코인이 아까워서라도 추가적으로 캐쉬 아이템을 구입하게 됩니다. 게다가 화폐 단위 ‘원’이 아니라 ‘코인’이나 ‘캐쉬’로 이름을 바꾼 가상화폐는 사용하는 데 드는 심리적 저항감도 상당히 약합니다. 지갑에서 천원 꺼내 쓰는 것과 달리 ‘천 점의 코인 사용한다’는 것은 실제로 돈이 나가지는 않는 느낌이 강합니다. 매번 딱 맞는 금액을 결제시키는 것보다, 일단 몽땅 캐쉬로 바꿔두게 만들면 유저들은 더 많이, 더 자주, 더 쉽게 사용한다는 점을 게임포털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축적된 잉여금액 자체가 수익의 원천이 된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데이터로 추가비용 없이 복제, 전송이 가능한 캐쉬아이템이 표시된 가격만큼의 실제 현물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점을 인정한다고 쳐도 캐쉬아이템을 구입하고 남아있는 잔액만 모아도 상당한 액수가 됩니다.


예를 들어 10만 명의 포털회원이 캐쉬 결제를 하고 100원씩만 잔액을 남겨도 천만 원의 잉여 자본이 생깁니다. 회원 수가 천만 명을 넘어가는 대형 게임포털의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이 항상 잉여자본으로 남아있는 셈입니다. 돈이 돈을 번다고 하죠. 이렇게 남아있는 잉여자본은 다른 곳에 투자해 또 다른 수익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모든 회원들이 동시에 탈퇴를 하면서 남아있는 캐쉬금액을 한꺼번에 환불받지 않는 한, 이런 자본 굴리기는 끝없이 지속가능 한 수익모델입니다.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죠.





[ ▲ 게임포털/사이트들의 캐쉬충전 현황. 결제금액을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는 곳은 6 곳에 불과했다 ]



충전금액도 천차만별, 보너스 주는 곳에서 부가세 받는 곳까지


충전 금액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포털은 최소 결제액이 1,000원, 그 다음이 3,000원, 그 다음이 5,000원 하는 식으로 늘어났습니다. 일부는 1,100원, 3,300원, 5,500원 하는 식으로 10%의 부가세를 나중에 계산하기 편하도록 한 곳들도 있었습니다.


최소 결제금액이 2,000원인 곳, 3,000원인 곳, 5,000원인 곳도 있었습니다. 또 1,000원이나 2,000원 단위가 아니라 5,000원이나 10,000원 단위로 결제금액이 껑충 뛰는 곳도 있었습니다. 한 번에 결제해야 하는 충전금액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에 설명했던 게임사의 이익이 더 많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 웹게임 병림성하를 서비스하는 VTC코리아는 1,000캐쉬를 충전하기 위해 1,000원과 10%의 부가세에 해당하는 100원을 포함한 1,100원을 결제해야 했습니다. 이는 조이시티의 프리스타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캐쉬는 가상의 화폐이기 때문에 현금과 1:1로 교환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조이맥스의 실크로드는 3,000원을 결제하면 30’필’의 캐쉬를 충전할 수 있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부가세를 포함해 결제한 1,100원에 대해 1,000점의 캐쉬를 주던, 500점의 캐쉬를 주던, 3,000점의 캐쉬를 주든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포털이 1:1 비율로 충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유저들이 느끼는 교환가치 또한 1:1이기 때문에 실제 결제금액보다 충전되는 캐쉬의 금액이 낮다는 점은 약간 의아했습니다.


그 외 게임포털마다 1회 충전에서 최대로 결제할 수 있는 금액도 윈디존의 22,000원에서부터 게임트리의 330,000원까지 제각각이었습니다.





[ ▲ 특이하게 결제 금액보다 코인 금액이 적었던 병림성하 ]



사실 금액을 미리 많이 충전시켜놓는 과금 모델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비디오 대여점이나 책 대여점에서는 이런 모델을 많이 사용했죠. 영화 한 편을 빌리는 데는 1,000원이지만, 미리 10,000원을 지불하면 총 11편의 영화를 빌려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식이었습니다.


즉 여유롭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많은 현금을 미리 확보하고, 추가 방문을 유도해 고객 충성도를 얻는 대가로, 서비스사가 고객들에게 보너스를 제공한 것이죠. 일종의 윈-윈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게임포털 캐쉬충전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많은 금액을 충전할 때 보너스 캐쉬를 지급하고 있는 곳은 조사 대상이 된 게임포털 중 오디션과 실크로드 사이트 단 두 곳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많이 충전해 둔다고 해서 소비자가 얻는 이익은 없었습니다.





[ ▲ 오디션은 많이 결제하면 보너스를 많이 준다 ]



결제액 강제와 맞물린 환불 수수료. 천 원은 돈도 아니야?


그럼 이렇게 충전해서 사용하고 남은 금액은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대부분의 게임포털들이 따로 캐쉬 이용약관을 마련하고 환불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아래와 비슷한 환불 정책을 약관에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게임포털의 캐쉬 이용약관 환불정책

1) 캐쉬 충전 서비스 관련하여 다음의 각 호와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면, 고객센터를 통한 환불 신청 절차에 따라 환불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① 캐쉬를 충전했으나, 캐쉬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전무하여 그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회사에 있는 경우. (단, 사전에 공지된 서비스 점검의 경우 등 제외)
② 사용하지 않은 캐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사유로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③ 기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회사에서 따로 정하는 경우.

2) 위의 제 8조 1항의 각 호에 의한 이유로 환불을 원하는 회원은 회사가 정한 절차를 통해 환불을 신청해야 하며, 회사는 환불 신청이 정당한지 여부를 심사한 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회원에게 환불합니다.

3) 회사가 회원의 환불 신청에 대하여 환불하는 것으로 결정한 경우, 해당 회원의 캐쉬 잔액 중 회원이 직접 충전한 잔여 금액을 대상으로 환불 수수료10%(최소 1,000원)를 제한 나머지 금액을 환불 받게 되며, 환불대상 금액이 1,000원 이하인 경우에는 환불 받으실 수 없습니다.



'서비스가 전무하여 책임이 전적으로 회사에 있는,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와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마치 절대로 환불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소비자가 요구할 때는 캐쉬를 환불해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환불할 때 수수료를 제하게 되는데 이는 게임포털 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10% 정도의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고, 최소 수수료로 1,000원을 매겨두고 있습니다. 그 외 무조건 10% 인 곳도 있었고 10,000원이 넘어가면 추가로 1,000원을 더 받는 곳, 고정으로 1,500원인 곳, 20%의 수수료를 받는 곳도 있어 약관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환불불가 최소금액이 설정되어 있지 않는 곳도 있었고, 수수료로 얼마를 떼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곳들도 있었습니다.





[ ▲ 게임포털/사이트들의 캐쉬 환불 정책 현황. 아직 환불수수료에 대한 표준약관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



물론 환불을 위해 드는 비용이 수수료로 공제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영화표나 기차표를 예매했다가 취소하면 환불수수료를 제하고 돌려받게 되죠. 게임포털의 경우는 환불 절차에도 비용이 들어가지만, 대부분 PG라고 불리는 결제대행업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환불을 할 때 결제대행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도 있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캐쉬를 충전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예를 들었던 4,800원짜리 캐쉬 아이템의 경우, 이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서 5,500원을 충전하고 남은 700원은 수수료 값도 되지 않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꼼짝 없이 포털에 묶여있는 것이죠.


물론 이 금액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캐쉬 아이템을 구입할 때 700 캐쉬를 지불하는데 보탤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요?



고도의 상술? 게이머는 약자가 아니라 고객이다


소주 한 병을 따르면 몇 잔이 되느냐 하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보통 7잔이 된다고 합니다. 두 명이 나눠 마시면 1잔이 남고, 세 명이 나눠 마셔도 1잔이 남습니다. 네 명이 나눠 마시자면 1잔이 모자라죠. 그래서 한 병 더 시키게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기가 막힌 아이디어일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상술입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여러 게임들의 캐쉬아이템 가격에도 적용되어 있습니다. 딱 떨어지게 캐쉬를 사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오히려 별로 원하지도 않는 캐쉬를 구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쓰다보면 남은 캐쉬가 아까워 좀 더 충전하게 되죠.


다시 식당 이야기를 해볼까요?


3,800원짜리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을 때는 3,800원짜리 식권을 사고 싶습니다. 식권 10장을 한 번에 사면 3,000원 정도 깎아주세요. 그럼 35,000원 미리 내고 두고두고 들르는 단골이 되겠습니다. 이 정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술의 상식선'이 아닐까요?


식당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게이머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게임을 좋아하는 게 죄라면 죄. 게임 때문에라도 게임포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게이머는 그래서 약자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객이기도 합니다. 상술의 노예가 아니라 정당한 소비활동을 할 권리가 있는 '고.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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