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표류하는 게임자격증 제도, 게임을 기술로만 논할 수 있는가?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22개 |
25일(어제) 강남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 시행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다. 국가기술자격검정은 게임 제작에 대한 개인의 기술 및 기능의 정도를 국가가 평가하여 그 능력이 일정한 수준에 있음을 공인하는 제도다. 그럼,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은 뭐냐고? 간단하다. 여기에 '게임'이라는 항목이 단순 더해진 것.


사실,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은 2002년 4월 27일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의해 최초 시행되어 왔었다. 2010년 한국컨텐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 업무를 이관 받아 어제 설명회까지 개최하면서 개선안을 내놓게 된 것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의 존재 사실을 모를 정도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행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 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운영 실패의 원인을 찾을수 있는데, 게임 국가기술자격의 분야는 '게임기획전문가', '게임그래픽전문가', '게임프로그래밍전문가'의 세 가지로 나눠지며, 시험방법은 객관식 4지선다형 문제를 150분 동안 푸는 필기시험과 5시간 정도 작업해서 결과물을 내놓은 실기시험으로 구성된다.


학력과 기능 수준에 따라, '게임기사', '게임산업기사', '게임산업기능사'로 나누고 대졸 게임인력, 전문대 게임인력, 고졸 게임인력으로 분류하는 부분도 마찬가지. 제목에 '게임'만 추가됐을 뿐 고전적인 형태의 다른 국가기술자격검정과의 차이점이 전혀 없다. '게임'이라는 특수한 장르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고민 따위는 찾기 힘들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존 틀에 '게임'이라는 과목을 억지로 집어넣은 구성이다.





▲ 26일 열린 게임 국가기술검저 제도 시행에 대한 설명회 현장




행 중인 게임자격증이 직무 수행 능력 검증 기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업계와 학계에서 자격증 무용론이 대두되어 왔고,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함에 따라 게임 자격증의 기능 회복을 통한 인력수급 원활화를 위해 업무를 이관해 왔다는 진흥원의 설명도 좀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일부러 관계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올해는 일단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고 개선은 내년부터 하겠다는 진흥원의 답변도 답변이지만, 입장하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배포한 총 80페이지가 넘는 설명회 자료집에서 5페이지 남짓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국가기술자격검정 제도 개선 방안도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


게임 자격증 자체가 게임 업계에서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병역특례 업체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교육 프로그램시 게임검정 취득을 의무화함과 동시에 기업 기업 인력 채용시 우대조건을 부여한다고 해서 산재한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참석한 모 게임학과 교수가 "설명은 잘 들었는데, 결국 이 자격증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라는 질문을 한 것도 현재로서는 게임 자격증 자체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구라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기술자격검정제도의 당위성에 대한 논리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필요한 인재의 수는 많은데 신규 직원을 뽑아도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라 경력자 위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는 게임 업계의 처지나,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는 현 업체와 게임 교육기관과의 괴리감은 이전부터 익히 제기되어 왔던 것들이다.





▲ 참석자에게 배포한 설명회 자료집, 여타 다른 기술자격검정 제도와의 차이점이 뭘까?




지만, 과연 국가가 시행하는 게임 기술자격검정제도가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No"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게임을 '기술'의 결과물로 보고, 그런 기술을 국가가 평가하여, 그 자격증을 딴 인재는 좋은 게임을 만들 능력이 된다는 관점부터가 대한민국에 고시열풍이 불어 닥칠 때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게임에 기술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맞지만 '게임 = 기술'의 등식은 절대로 성립될 수 없다. 게임은 그 형태 자체로 존재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게임이 매개체가 되어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인 게이머에게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줄 때, 즉 게이머의 마음을 움직일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게임이 음악과 영화와 같은 하나의 문화로 당당히 인정받으며, 단순한 리뷰를 넘어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닌텐도의 슈퍼마리오를 보라. 2D 화면에 캐릭터 동작도 이동과 점프 밖에 없는 단순한 구조지만 전 세계 게이머를 감동시키며 2억장 이상을 팔아 치웠다. 슈퍼마리오에서 기술 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은 뭘까? 단언컨데, 미야모토 시게루 본인의 상상력과 창조적인 영감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일본인 출신으로 자격증 하나 없이도 전 세계 게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AIAS 명예의 전당에 수많은 서구 유명개발자를 제치고 가장 첫 번째로 헌액 되었다.


우리나라가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따낼 만큼 자체 생산한 게임으로 국내와 아시아는 물론 오랫동안 비디오게임 기술력을 축적해온 유럽, 북미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도 '기술'의 힘이라기 보다는 국내 게임 특유의 정서가 해외 게이머들에게 어필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기술'만 있으면 우리도 슈퍼마리오 만들 수 있나요?




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정 대한민국 게임업계를 생각하고, 검증된 능력을 지닌 게임 개발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게임 자격증의 존속 유지 보다는 차라리 게임 개발에 대한 노하우와 관련 지식들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게임 전문 세미나에 더 집중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인재들이 앞으로 갈 길을 몰라 헤매는 데는, 지금까지 별다른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폐쇄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 영향도 적지 않으며, 게임업체들이 채용 즉시 만족할 만한 인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답답해 하는 것도 게임 개발 지식 및 정보 공유가 단절된 채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작금의 상황과 큰 관련이 있다.


지난 번에 진흥원이 주최한 2010년 세계 게임시장 전망 세미나와 소셜 미디어 포럼에서 주최한 2010년 소셜게임 세미나가 현업에 종사하는 게임 개발자들과 개발자를 꿈꾸는 지망생, 모두에게 열띤 호응을 받았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공공기관인 진흥원이 해야할 역할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온다.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면서 글을 맺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인당 5만원 남짓한 검정료 수입을 벌어들이는 현재의 게임 자격증 제도는 게임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접근한 근본적인 개선 노력 없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본격 삽질프로젝트'의 리스트에 이름 올리기 딱 좋다. 요즘같은 난세에, 내가 몸담고 사랑하는 게임업계에서조차 힘찬 '삽질'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정말로 슬픈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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