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효성 없는 대책은 그만, 게임이 아닌 사람을 보라

칼럼 | 이동원 기자 | 댓글: 31개 |
나는 기성 언론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데, 게임이라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업계 물을 먹고 있는 입장에서 속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공성전을 조직폭력배들이 펼치는 심야의 난투극으로 묘사하거나, FPS 게임을 '사람의 머리에 총을 쏴서 죽이는 게임'으로 '정의'내리는 모양을 보면 입안이 깔깔해서 미칠 지경이 되곤 했다.


'불편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도 많이 답답했다. 총기사고만 나면 피의자가 무슨 게임을 즐겨했는지 파헤치기 좋아하는 해외 언론들의 작태, 그리고 그를 대서특필해 받아 적고 있는 우리 언론들의 양반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들과 같은 '기자' 직업을 갖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총기사건에 있어서,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이익집단이 된 총기협회와 같이 사건의 근원적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주목 받기 전에 늘 1차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게임. 만만한 게 게임인가. 그럴 때마다 전 세계 수많은 건전한 게이머들은 그런 논리의 반대증거가 되었고, 우리는 한 목소리로 '게임 까지마'를 외쳐왔다. 눈물 나게도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 일어난 '게임 까기 딱 좋은' 사건들도 그렇다.


지난 2월, 평소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한 20대 청년이 게임 그만하라고 꾸중한 친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시작이었다. 그는 친어머니를 살해하고도 태연히 게임을 즐긴 것으로 밝혀져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32살 남자가 돌연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는 한 자리에서 닷새 동안 게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자신의 자식을 굶어 죽게 한 부부가 구속되었다. 그 부부가 했다는 프리우스는 포털 실시간 검색을 광속으로 치고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주류 언론들은 '게임 까'기에 바빴다. 게임이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 피를 토해가며 써 내려갔고,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과 비슷하다며 손가락질했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은 연일 공중파를 탔고, MMORPG 프리우스는 어느새 육성 시뮬레이션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임 속 아기 키우느라 친 자식을 버린 부모. 얼마나 섹시한 제목인가.





▲ 해외 총기사고의 단골 출연작



문화부, 게임 과몰입 대응책 발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화부는 3월 8일 ‘게임 과몰입 대응 추진방향’을 발표했는데 내용은 크게 ▲ 피로도 시스템 확대 ▲ 게임이용자를 위한 상담치료사업 강화 ▲ 2010 그린캠페인 적극 지원 ▲ 게임과몰입대응TF 활성화 ▲ 게임과몰입 대응사업 예산 10배 증액의 5가지. 그 외에도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 제도나 PC방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조치 등이 추가적으로 논의중이다.


하지만 유래 없이 정부가 신속한 움직임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용은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발표된 대책들이 이미 개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거니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방안들이기 때문.


현재도 많은 게임에서 적용하고 있는 피로도 시스템은, 게임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경험치가 더이상 오르지 않아도 결투를 하거나 제작을 하는 등 다른 즐길거리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피로도는 캐릭터 단위로 셈이 되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를 키우는 식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오히려 게임사들은 피로도 시스템을 과몰입 방지보다는 컨텐츠 소모 속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이용자를 위한 상담치료사업 역시 이미 여러 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 하지만 정신과 상담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거부감 때문에 실제로 상담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건국대 병원과 게임 과몰입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한 YD온라인은 실제로 '상담해 온 게임 이용자가 없'고, UPP라는 과몰입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한게임은 '실제 치료를 받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 과몰입과 관련해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 습관 자가 진단 정도에 그치고 있는 그린캠페인이나, 만들어지고 나서 아직도 활성화가 되지 않은 게임 과몰입 대응TF를 언급한 것 또한 대책 마련에 '고민'이 결여된 결과로 보인다. 기본권 침해 요소가 있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셧다운 제도나 청소년 PC방 이용제한 조치가 수면위로 또 떠오른 것 또한, 실효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빠져있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추가적인 대책을 발표한 대표 게임사들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는 실패하는 모습이다. 엔씨소프트가 최근 논의중이라고 발표한 과몰입 방지 대책인 '릴렉스 시스템'이나 '쿨타임 존' 역시 게임 시간 제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한게임의 이용자 보호프로그램도 게임 과몰입 상태를 스스로 확인하거나, 게임 시간을 하루에 10시간으로 제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 그린게임캠페인 홈페이지의 게임습관 자가진단 페이지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여론 무마용 제스처로는 쓸만하겠지만, 앞에서 봐도 그렇고 뒤에서 봐도 그렇고 '이러면 정말 게임 과몰입이 해결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만 키우게 되는 정부 대책은 애초에 '게임이 문제라는 시각' 자체에 문제점이 있다.


게임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접근이 게임을 못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많이 못 하도록 피로도 시스템을 넣고, 게임을 오래 못하게 셧다운 시키고, 밤 늦게까지 게임을 못하게 PC방 이용시간을 제한하고, 스스로 게임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자가진단을 하게 만들고,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도록 하는 생각밖에 못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게임이 문제? 사람의 문제


많은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이 문제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게임과 관련된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임을 접하는 모든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거니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불행한 사건에 항상 게임이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율로 따지자면 게임과 무관한 사건들이 훨씬 많다.


이번에 화제가 된 프리우스 부부의 경우에도 사건을 둘러싼 자세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게임에 너무 빠져들어서가 아니라 그들 부부가 처한 삶과 환경이 그리 녹녹치 않았던 가정의 문제가 근본적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개개의 사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게임 때문이 아니라 사람 개인 또는 그들이 처한 환경이 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이 게임을 한 것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학교나 직장, 가정의 문제가 심한 경우에 일부 사람들은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다른 무언가에 의지에 해소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데, 괴롭고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주로 선택되는 것들이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약물이다. 술이나 마약에 취해 현실을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도 가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 이유가 뭘까.


우선 게임은 즐겁다. '유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게임은 하는 것만으로 기쁨을 준다. 적어도 게임을 하는 시간만큼은 괴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아바타를 중심으로 온라인 게임은 현실의 공간과는 또다른 가상의 세계를 제공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현실에서는 사회적 약자일지라도, 게임이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에서는 강자로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만족스러운 새로운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어 어딘가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는 '사회적 위험군'에게 게임은 현실을 잊기 위한 좋은 도피처가 된다.


게임을 못하도록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에 중독되어서 현실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위험군'에게 게임은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게임이 없다면 다른 의지할 무언가를 찾으면 그만이다. 게임에 과몰입되었다, 중독되었다는 관점은 전후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생기는 착오다.


게임에 문제가 있으니 게임을 못하게 하자는 발상이 오랫동안 게임과몰입 대책으로 거론되었음에도, 아직도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이처럼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게임을 어떻게 해서 될 일이 아닌 이유. 사회적 위험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의존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위험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 치료 또는 정신과 상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과 상담이 일상화되어 있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정신과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 치료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실제로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의 '정신 질환 역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율은 약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심리 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받기 꺼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 및 행동장애가 전체 의료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증가 비율 자료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국내 21대 질병군 중 가장 크게 증가한 분야가 바로 정신 및 행동장애로 나타난 것.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현실을 잊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의존적 '사회적 위험군'의 사례 또한 더욱 증가하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 건강 문제도 신체적 건강 문제와 동일한 수준으로,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아닐까. 누구나 쉽게 상담을 통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심리 상담 서비스 제도의 확충과 보급은 어떻게 할지, 과몰입 혹은 중독 증세에 빠지기 쉬운 사회적 위험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어떻게 치료로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이들 계층이 사회적 최약자의 위치로 떨어져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어떻게 사회적 안전망을 갖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게임이 중독시켜서, 인터넷이 중독시켜서' 라는 분석은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100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또 '게임 탓'이 나올 것이고, 게임 과몰입을 방지하느니, 게임을 규제하느니 하는 발표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발표된 대책들은 실효성을 잃고 표류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반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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