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이플과 방정식, 과감한 게임중독 해결법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24개 |
2010년 상반기 게임계는 참 마이 아팠다.


올해 초부터 몇몇 사건으로 인해 게임 중독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번지게 되면서, 그 모든 책임의 화살은 게임계로 향했다. 오픈마켓 심의, 청소년 보호 등을 담고 있는 게임법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 된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표류 중이며, 그 틈을 타 여성 가족부에서 청소년 보호법을 꺼내 들며 '심야 강제 셧다운'을 추진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논평] 게임법 위에 청보법? 고래 사이에 낀 게임산업



물론, 여성가족부의 이 법이 이중 규제, 위헌 소지 등의 이유로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게임계 전체를 '파렴치한 오타쿠'로 매도하는 인신공격 수준의 보도까지 발생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전개되었었다. 그 논리의 부당함과 허접함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게임계가 그 동안 게임 중독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인색했던 것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공감대가 온,오프라인에서 형성되면서 게임계는 다시 한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 WoW에서 드레이나이 종족만큼이나 뜬금없었던, 게임계에 이 분들의 등장




본 기자 또한 게임계에 몸담고 있는 한 명으로서 배에 힘을 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급 분노했더랬다. 무협소설로 치면 게임계전체가 음흉한 '사파'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형국이 아니던가. 하지만, 감정적인 대응은 부질없는 또 다른 오해의 벽을 쌓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애써 화를 삭히며, 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지, 마치 로드 브리티쉬가 저 멀리 안드로메다 우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났던 것처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넓디 넓은 인벤 사무실을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깊은 고민에 늪에 빠졌다. (오해하지 마시라. 절대 일 안하고 놀았다는 게 아니다.)


그러던 중, 아예 소주병을 자리에 갖다 놓고 벌컥벌컥 마시면서 일을 해도 자신이 겉으로 발산하는 이미지의 반에 반도 채 표현하지 못할 것 같은 우리의 N모 기자가 매우 수상한 '짓' 하는 것을 발견한다. 분명, 모니터에는 게임 화면이 나오는데, 심오한 퀴즈 문제를 풀고 있다? 어.. ?!





▲ 직접 확인해 보시라, 과연 '불교 전파와 삼국사회'와 매칭이 되는 페이스인가...
소주 전파라면 또 모르겠다.




혹시라도 인기척을 하면, 본연의 자아와 지금 까발려진 자신과의 괴리감에 순간 정신분열을 할 것 같아, 애써 은신 모드를 취하며 뒤에서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게임은 KTH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MMORPG 적벽. 중국 완미시공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삼국지를 배경으로 했다. 근데, 왠 시사 퀴즈?


퀴즈는 게임 내 조그만 창 모양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스피드 퀴즈 형태로 출제되었다. 좀처럼 풀기 힘든 시사문제부터 스포츠, 심지어는 연예계 관련 퀴즈들도 보였다.





▲ 보통 TV를 멀리하는 게이머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문제.




문제 수준도 수준이지만, 더 놀라게 한 것은 N모 기자가 퀴즈를 대하는 자세였다.


한 문제라도 틀리면,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낙담했다. 개인적으로 한 4년간 같이 지냈지만 술 먹다 술 떨어진 경우 빼고는 한번도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연속으로 정답을 맞추는 경우에는 입가에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짧은 팔을 크게 지켜 들며 자축했다.


분명, 뭔가 초특급 대박스러운 보상이 아니고서야 저 사람에게 흡시 원숭이를 보는 듯한 저런 극단적인 반응이 절대 나올 리가 없겠다 싶었다. 20여 분 동안 진행된 퀴즈 이벤트가 끝난 것을 확인 후, 비로소 은신을 풀고 접근해 퀴즈의 정체가 무엇인지 직접 물어 보았다.


돌아온 답변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해당 이벤트는 MMORPG 적벽에서 매일 저녁 7시 30분 마다 진행되는 스피드 퀴즈로 총 40문제를 20분간 풀게 된다. 게임은 중국산이지만 퀴즈는 서비스사인 KTH가 직접 선별하여 우리나라에 특화된 시사, 경제, 연예, 스포츠 다양한 분야에서 출제된다.


2.
스피드 퀴즈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점수, 연속, 누적 정답 수를 바로 바로 알 수 있으며, 그 아래에는 현재 퀴즈를 풀고 있는 다른 유저들의 점수까지 비교해서 실시간 퀴즈 순위가 표시된다.


3.
역시나 보상이 대박이다. 단순 퀴즈만 풀고 땡했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컨텐츠가 되었겠지만 퀴즈를 풀고 나면 상당한 게임내 경험치와 다양한 포인트를 보상으로 준다. 이 자리에서 보상에 대해 심도 깊게 설명하긴 그렇지만, 바빠서 게임에 잘 접속하지 못하는 유저들도 7시 30분 이 퀴즈만큼은 반드시 접속해서 풀 정도라니 말 다했다.





▲ 행운별이라는 '두 배 점수' 찬스 시스템도 있다.



4.
그래서, 적벽을 플레이 하는 유저들은 이 퀴즈 이벤트를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는다. 매일 7시 30분이 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모든 유저가 퀴즈를 풀기 위해 제자리에 멈춰 서서 파티창 혹은 길드창에서 함께 토론하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알트탭 신공으로 인터넷 검색도 활용하는 등 안간힘을 쓴다.


5. 적벽 퀴즈 이벤트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는 [여기]를 참고하시라.




N모기자가 퀴즈를 푸는’ 진귀한(?)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모여든 다른 기자들과 함께 "특이하면서도 꽤 괜찮은 시스템"이라며 이야기를 나누는 찰나, 갑자기 뒤통수를 둔탁한 망치로 맞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퀴즈 시스템에 문제를 바꿔 메이플 스토리에 넣는다면?"


오바마도 칭찬한 대한민국의 뜨거운 교육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게임쪽에서도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이라면 폭발적인 관심이 쏠린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초반 닌텐도DS가 '저렴한 전사사전'으로 포장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단 사실은 부모님을 대상으로 그 일을 치밀하게 계획했던 학생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법천자문 DS도 마찬가지. 소프트웨어 복사천국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인기가 폭발해 인벤에서 전격 인터뷰까지 했었다. 한자마루는 어떤가? 유료화 전환 이후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성공한 온라인 교육게임으로 인정받고 있다.





▲ 한자마루에는 특이하게 "엄마아빠게시판"이 있는데,
운영자에 대한 불만도 한자로 표현할 정도로 교육열이 울트라급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명 '초딩'이라고 불리우는 저연령 학생들이 많이 플레이 하는 게임들에서 적벽의 퀴즈시스템을 도입하여, 학생의 연령에 따라 교과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퀴즈을 내어 꽤 괜찮은 게임 내 보상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얼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사실, 게임 속 퀴즈도 공부는 공부니 기존 유저들 입장에서야 짜증도 날 것이다. 만약 신규게임이라면 유저들이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캐릭터 애착을 가지고 수년간 플레이 해왔던 게임에서, 허구한날 게임만 하냐며 엄마에게 몽둥이로 수십 차례 구타 당할지라도, 눈물을 훔치며 꿋꿋이 손에 천원짜리를 꼭 쥐고 PC방을 달려가게 만들었던 게임에서,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꼭 집어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 이게 들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 이런 상황에서 정답을 맞출 때마다 넥슨캐시를 마구마구 지급한다면?
우리나라는 금새 전세계 수학 1위 국가로 부상할 지 모른다.




본래의 목적이 공부가 아니라, 게임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의 어뷰징이 개발되어 정답 맞추기에만 급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란 게 원래 못하는 아이들도 어떤 계기로 좋은 성적을 받게되면 그때부터 재미를 붙이게 되고, 일단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법이다. 게다가, 놀이식 공부방법이 기억 속에 더 오래 남기도 하고.


기자도 초등학교때 하도 컨닝해 달라고 조르는 친구가 있어 한번 해줬더니 성적이 좋게 나와,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나중에는 기자의 성적을 완전히 발라버리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걸 보면서 갱스터 영화에서의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비단, 저연령 게임뿐 아니라 성인용 MMORPG에서도 충분히 도입해 볼만 하다. 예를 들어, 리니지에서 매일 7시 30분 자신이 선택한 분야, 예를 들어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정답을 100% 맞출 때마다 경험치와 아덴을 제공한다면, 사회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30,40대 백수'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 이 게임이라면 초보자를 위해 '농업 개론'를 퀴즈로 내면 적당할 듯 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만화, 이말년씨리즈




게임 중독? 게임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인 인식?

진짜로, 이런 학습 시스템이 우리 온라인 게임에 성공적으로 안착된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오히려 혼나고,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면 자녀가 게임에 중독될 수 있을까 네이버, 다음 등에 까페를 열어 협력하여 연구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며,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은 국가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휩쓸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청소년 강제 셧다운'을 주장했다가 좌절된 그들이 '청소년 강제 접속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고 강호에 출사표를 던질지.


글은 가벼웠지만, 본 기자 마지막은 사뭇 진지하게 제안해 본다. 온라인 게임에 교육 컨텐츠를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꼭 한번 MMORPG 적벽의 사례를 참고해 보시라. 리스크는 적고, 기대 효과는 큰, 그러면서도 게임 내에 매우 간편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이 방법이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새로운 전기를 열 수 있는 황금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용기내어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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