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 그들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칼럼 | 이명규, 김규만 기자 | 댓글: 94개 |



"협회(協會) :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하여 유지해 나아가는 모임"

최근, 게임 문화와 매우 밀접한 협회 한 곳이 새로이 출범했다. 바로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다. 코스튬플레이, 일본식으로 줄인 조어 '코스프레'로 더 널리 알려진 이 문화는,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현실에서 재현하는 놀이 전반을 일컫는 용어다.

게임과 함께 각종 문화 콘텐츠가 활성화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코스튬플레이 문화 역시 성장해 왔고, 이제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소재로 하는 행사에서 코스튬플레이는 빠져서는 안되는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코스튬플레이 전문 팀과 업체가 생겨나고,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각종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직업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업계'가 된 분야의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기 위해 협회를 결성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협회'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데 일조한 몇몇 스포츠 협회들 뿐만 아니라, 현재도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활동하는 각 분야의 협회는 셀 수 없이 많다.



▲ 코스튬플레이는 전세계적인 문화다(미국 PAX 현장)

그러나, 현재 출범한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에도 축하의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지만, 몇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협회에 참여한 코스튬플레이 업체 및 구성원, 또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들, 또는 근본적인 목표 등, 많은 이들이 축하와 함께 의구심을 표했다. 이에 인벤에서는 몇가지 의문점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의 의문점들

협회를 창설한 주체들은 누구이며, 기반 재원은 어떻게 확보하는가?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의 창설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현 협회장이자 코리아MCN의 대표인 정헌호 회장과 현재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의 고문직을 맡은 한국 모바일게임 협회의 황성익 협회장이다. 또한, 정헌호 협회장은 한국 모바일게임협회의 캐릭터분과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는 이 한국 모바일게임 협회 내 캐릭터분과위원회가 확대, 별도의 협회로 창설된 것이다.

기반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 또한 의문이 남는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협회의 기반 재원에 대해 최종적으로는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하면서도, 현재는 한국 모바일게임 협회 소속 회원사들의 지원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체 재원 조달보다는 타 협회 및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는 한국 모바일게임 협회에 기반하고 있는 셈이다.



▲ 코스튬플레이협회의 주요 구성원부터 초기 재원까지 제공한 '한국 모바일게임협회'

이처럼 이제까지 코스튬플레이와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타 협회의 기반을 빌려 만들어진 협회의 안정성과 목적성에 대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어느정도 안정된 체계를 갖추게 되더라도, 이들이 한국 코스튬플레이계 전체의 필요와 방향을 올바르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다만, 정헌호 협회장은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개월 정도 협회장 직을 수행하며 앞으로 활동할 토대를 마련해주고, 이후 코스튬플레이 시장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이해도가 높은 분을 협회장으로 선임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협회 측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인 만큼, 추후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는 부분이다.


협회가 과연 전체 코스튬플레이계를 대변할 수 있는가?

협회라는 단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회가 대변하는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해야 하는 만큼, 그 업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최대한 많은 수를 확보하고 동참하는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재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에는 단 두곳의 코스프레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본래 2AO, RZ COS, COSIS 의 세 팀으로 발족한 협회는 하루 만에 COSIS가 탈퇴하며 2개의 팀만이 남았다. COSIS는 이에 대해 "우리가 바라고 있는 협회로써 중요한 공익적인 활동에 대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2개 팀 중 하나인 RZ COS도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COSIS의 협회 탈퇴 관련 공지(출처 : COSIS 공식 페이스북)

스파이럴캣츠나 팀 CSL, 팀 코튼캔디 등을 비롯한 다른 전문 코스프레 팀들 역시 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10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코스프레 관련 커뮤니티인 '코사모(코스프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아마추어 플레이어들 역시 배제되어 있다. 물론 모든 아마추어들을 협회에 소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현재는 그 저변이 너무나 좁다.



▲ 국내 코스프레 최대 커뮤니티인 '코사모'. 약 11만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해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가 이 분야 최초의 협회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한국 코스튬플레이계 전반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따른다. 과반은 커녕 단 두개의 팀, 더 좁게 보자면 열명 내외의 전문 코스튬플레이어만이 속해있는 협회로서는 최소 십수만의 프로,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 관계자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 결국 대외적인 활동 이전에 코스튬플레이계 전반의 지지를 얻기 위한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코스튬플레이는 이제 단순히 재미로만 즐기는 취미의 영역을 넘어서서 금전적인 목적을 포함한 비지니스의 영역도 담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전문적으로 상업적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이들이나 취미로서 코스튬플레이를 즐기는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는 정확히 어느 영역의 코스튬플레이를 지향하는지도 모호하기에, 더더욱 전체 코스튬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모호한 단체가 된다.

지금의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는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의 참여도도 낮고,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계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 현재 협회의 지지 기반이 빈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협회의 진행 사업들과 신규 육성 사업 '판타지걸스'는 무엇인가?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가 밝힌 앞으로의 활동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어들을 위한 의상 제작 교습 및 전문 사진가 지원 등의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어 지원방안이며, 다른 하나는 코스튬플레이와 아이돌을 접목한 아이돌 육성 사업 '판타지걸스'다.



▲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에 참여한 프로 팀 중 하나인 2AO

많은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과 코스튬플레이어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 '판타지걸스'다. 이에 대해서 협회는 '스타 플레이어'를 통한 대외 홍보에 목적을 두고 그 방안으로서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추후 협회의 활동 계획들은 대부분 기존의 '코스튬플레이어' 들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해 짜여져 있다. 올해 초 추진할 예정인 지자체와의 협력 공연도 결국 일반 대중에게 '코스튬플레이'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코스튬플레이'가 그렇게 대외적인 인지도가 낮은지, 또 대중들에게 편견 깊게 남아있는 부정적 인식들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문제인지 하는 부분이다. 코스튬플레이는 현시대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분야이고, 또 그만큼이나 선정성, 왜색 논란 등 부정적 인식이 많은 분야다. 이것이 단순히 몇 번의 대외 노출과 스타 플레이어로 해결될 문제인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코스튬플레이는 결과적으로 완벽히 독립적인 창작이 아니라 기존 창작물의 재해석 혹은 2차 창작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재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들의 작업들처럼 캐릭터 저작권자의 위탁이 아닌, 협회의 독자적인 영리 활동의 경우 법리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 RZ COS 레브의 입장(출처 : 레브 블로그)

이런 신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현재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가 대표성을 띄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코스튬플레이협회에 직접 소속된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은 2곳이며, 그마저도 한 곳은 현재 추진중인 신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한 곳의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과 스튜디오가 현재 동원 가능한 자원인 셈인데, 그 추진력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만약 이런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려는 이유가 '코스튬플레이의 저변확대'라면, '코스튬플레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중들' 보다는 '코스튬플레이가 무엇인지 알지만 직접 참여할 엄두는 못내는 이들'이 주 타겟이 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언급했듯 의상 제작 강의 및 사진 촬영 지원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어들, 혹은 관심있는 예비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 협회의 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인벤은 위와 같은 의문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보도자료를 받은 시기부터 약 2주간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 및 약 10곳이 넘는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업체에 관련 질의응답을 요청했다. 하지만 협회는 여러차례 답변을 요청했으나 응답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팀/업체들은 다양한 의견을 밝혔으나 공식적인 답변은 거부했다.



▲ 기존 코스튬플레이어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출처 : 트위터 SNS)

결론적으로 협회라는 존재는 집단 이익을 대변하기에 특정 집단 전체에 대해 공영성을 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협회의 우선 과제는 전체 코스튬플레이어의 권익 보다는 일부 관계자들의 의도에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코스튬플레이 협회 출범에 대한 프로/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어들의 초기 반응은 부정적인 것이 대다수다.

물론, 시작부터 모든 목표를 동시에 지향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모든 성과를 달성할 수도 없다. 중요한 순서에 따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만 하고, 현재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는 생각보다 많은 계획을 가지고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핵심적인 문제는 우선순위에 있는 셈이다.

슬프게도, 사회의 귀감이 되는 사단법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안좋은 소식들을 많이 듣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지켜 좋은 평판을 가진 '대한양궁협회', 또 초기, 중기의 활동들로 인해 많은 지탄을 받았던 '한국e스포츠협회'도 전임 전병헌 협회장의 임기 이후 환골탈태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좋은 협회'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 현재 국내에서 귀감이 되어가고 있는 몇 협회들

특정 분야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협회의 출범은 크게 환영하는 바이지만, 그 방식이 정말로 큰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협회' 들은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이 진심으로 코스튬플레이어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지를 받으며 대외 활동을 펼친다면, 진짜 '대변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지금 코스튬플레이어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은 대외적인 이미지 재고나 스타 플레이어를 통한 홍보 등이 아니다. 아마추어 코스튬플레이어들은 롤챔스, 코믹월드 등 자신들이 직접 활동하는 현장에서 더 많은 지원과 보호에 목말라있다. 기본적인 탈의실의 시설과 분장실 등 시설 문제는 물론이고 이런 일을 시스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주체도 필요하다.

전문 코스튬플레이 팀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식 행사에 참여하고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 또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접촉할 수 있는 매개체, 그리고 코스튬플레이라는 문화를 두고 막연히 쌓여있는 부정적 편견들을 걷어내는 노력 등 실질적인 지원 방안은 많이 있다. 과연 협회는 이렇게 코스튬플레이어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최근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이제는 수십만에 이르는 국내 코스튬플레이어들이 그들의 대변자를 필요로 함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감대를 쌓기 이전, 소수의 비전문가를 중심으로 다른 협회의 힘을 빌어 출범을 해야했는지 의문이다. 서두르기 보다는 진정 '협회' 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먼저 깨닫고 보다 탄탄한 기반과 진실된 지지를 얻고자 노력한 것이 먼저 아니었을까.

'한국 코스튬플레이 협회'가 현직 종사자들의 공감대를 얻는데에도 실패하고, 현장의 반영도 없다면 협회는 허울 뿐인 존재가 되고, 제 2, 제 3의 협회가 생겨나 분쟁의 씨앗만 남길 수도 있다. 현재 협회에게 필요한 것은 제 3자와 정부에게 비춰지는 대외적 이미지가 아니라 내실 있는 정책과 코스튬플레이계 전반의 지지다. 부디 이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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