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회장과 대표, 장고를 기다리며...

칼럼 | 서형준 기자 | 댓글: 78개 |
“실낱 같았던 신뢰의 끈은 결국 끊어져 버렸다”

10년 전,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오픈베타를 시작할 때, 시네마틱 동영상에 나온 문구였습니다. 저 문구의 앞에는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라는 단어가 배치되어 있었지요.

이제는 그 문구를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실낱 같았던 협업의 끈은 결국 끊어져버렸다’고 말입니다. 오늘은 ‘넥슨 Vs 엔씨소프트’의 협업, 아니 제 2차 지분 전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1. 넥슨은 왜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취득했을까 ?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취득한 날짜는 2012년 6월 8일이며, 취득 규모는 3,218,091주, 주당 가격은 25만 원, 총 투자금액은 8045억 원이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해외 게임사의 인수입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공동으로 해외 유명 게임사의 경영권을 확보하여 글로벌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기본 밑그림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의 사전 단계로서 넥슨이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지분을 일부 취득하여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발생합니다. 김택진 대표가 지분을 넥슨에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로 약 1600 억원의 세금이 발생합니다. 즉 양사가 동원할 수 있는 자본력에 1600 억원(약 1.5억달러)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깁니다. 그냥 양사가 공동으로 해외 게임사의 지분을 인수하면 될 것을, ‘왜 1600 억원이라는 금액 차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넥슨은 김택진 대표의 지분을 취득해야만 했을까?’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해외 게임사의 경영권을 김택진 대표 혹은 엔씨소프트가 우선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면 가능합니다. 자금만 투자하고 실권이나 실속을 차리지 못할 수 있는 넥슨 입장에서는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라는 보험을 들어놓고 싶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블레이드앤소울'의 런칭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엔씨표 MMORPG의 흥행 위력을 잘 알고 있는 넥슨이라면 구미가 당길 만한 상품이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해외 게임사 인수가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양사간 무언가 추가적인 협의, 즉 전략적 제휴가 있었고 그 전략적 제휴의 1단계가 해외 게임사 인수일 뿐이었다면 가능한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해외 게임사 인수는 실패했습니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가 된 것만 남은 상황이 되었죠.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이 더 발생합니다. 해외 게임사 인수라는 큰 목표가 실패했다면, 이대로 "Go" 할 것인가, 아니면 원위치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과연 양사가 어떻게 논의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중간에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지분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지점부터 양사의 입장은 미묘하게 갈리기 시작합니다. 엔씨소프트측은 해외 게임사 인수에 지분 취득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넥슨 측은 해외 게임사 인수를 포함한 양사간의 전략적 제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시작은 같았을지 몰라도, 2년 반이 지난 지금 미묘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무엇이 초점이 되느냐에 따라, 지금 벌어지는 지분 전쟁의 명분에서 우위가 갈립니다. 해외 게임사 인수가 주요 목적이었다면 넥슨이 김택진 대표에게 지분을 되팔아야 하는 것이 합당한 상도덕이 되고, 반대로 해외 게임사 인수를 포함한 전략적 제휴가 주요 목적이었다면 양사간의 전략적 제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투자자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넥슨이 우위에 서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양사의 해석 차이가 (적어도 당분간은)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의문에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 단 두 사람뿐일 것입니다.






2. 협업의 실패, 소통의 부재: 마비노기2



초기에 기세는 좋았습니다. 해외 게임사 인수건이 무산되었지만, 넥슨이 개발하던 ‘마비노기2: 아레나’의 개발을 엔씨소프트가 관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비노기2 개발팀이 한때 엔씨소프트 건물로 입주하기도 했었습니다. 넥슨의 2012 지스타 프리뷰 행사에 김택진 대표가 동영상으로 나오면서 콜라보레이션, 협업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마비노기라는 넥슨의 유명 IP에, 엔씨표 RPG가 더해질 것이기에 기대는 상당했습니다. 특히나 서로 유저층이 별로 겹치지 않던, 게임의 장르적 특성이 확연히 달랐던 넥슨과 엔씨소프트이기에 기대는 더 컸을 것입니다.

만일 마비노기2가 대박을 터트리고, 글로벌 진출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해외 게임사 인수는 무산되었더라도 글로벌 진출이라는 결과물을 낳았으니 목적은 달성된 셈이 될 테고, 엔씨소프트 주식을 산 넥슨은 주가 평가 차익 및 마비노기2 수익으로, 엔씨소프트 역시 마비노기2 수익과 함께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2014년 1월 2일, 그 마비노기2가 무산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드랍이죠. 그리고 끝이었습니다. 아울러 본격적으로 갈등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보자면, 마비노기2의 무산 이후 엔씨소프트는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근본적인 차이, 즉 회사 DNA의 차이를 인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사간 협업이나 제휴 자체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고, 이후 협업과 제휴에 소극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넥슨 입장에서는 8045억 원의 투자가 성과 없는 투자, 즉 잘못된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해외 게임사 인수도, 마비노기2 공동개발도 무산되었기에 이제 새로운 세 번째 협업과 제휴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기였죠. 또 그래야만 8045억 원이라는 자금을 지출한 넥슨의 주주들에게 적절한 명분이 되기도 하니까요. 엔씨소프트의 1대주주인 넥슨이라고는 하나, 오너십이 강력한 한국, 그것도 엔씨소프트의 경영에 대해 쉽사리 관여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김택진 대표 자체의 브랜드에 더해 창업주의 아우라가 넘실대는 엔씨소프트였을 뿐더러, 최초 취득 명분은 양사간의 전략적 제휴이지 경영에 대한 관여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때부터 제휴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양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 하나는, 그 전은 몰라도 적어도 이 시기 이후 양사간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DNA 차이가 있어 협업과 제휴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관점을 가진 엔씨소프트, 대규모 자금 투자에 대해 적절한 명분과 성과를 내야만 하는 넥슨의 상황이 서로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지속되면서 결국 공개적인 시그널이 발생했습니다.




3. 마지노선 15%를 넘긴 넥슨의 시그널



2014년 10월 14일,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주식 88,806주(0.4%)를 추가로 취득합니다. 취득가는 약 116억 원 가량으로, 최초 지분 취득 규모에 비하면 더할 바 없이 소액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15%를 넘겼다는 점입니다. 지분 비율마다 일정한 기준이 있는데, 15%를 넘기게 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를 하게 되는, 일종의 상징적인 수치입니다. 이 수치를 넘은 것이기에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공정거래위가 기업결합을 승인하게 되면, 향후 넥슨은 2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서 엔씨소프트를 계열사로 편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당시 넥슨의 발표는 단지 투자 목적이었습니다. 주가가 낮지만 기업의 본질 가치가 높기에 가치 제고를 위해 추가로 취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사전 논의가 없었던 지분 매입이며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공시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 주시할 것’이라는, 강경한 경고 멘트가 발표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양사간의 불협화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였던 것 같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반응은 M&A를 우려하는 기업의 반응과 대동소이했으며, ‘엔씨소프트를 M&A 할 생각은 버려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입니다.

반면 넥슨의 의도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M&A를 염두에 둔 포석인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게 알수 없습니다. 혹은 둘 다 가능한 꽃놀이패라고 생각해서 지분을 추가 취득했을 수도 있습니다.

몇몇 정보를 추려보았을 때, M&A 에 대한 생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더라도, 넥슨은 엔씨소프트측에 제 3의 새로운 협업 모델을 바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분 취득 뿐만 아니라 물밑으로도 이에 대해 무언가 대화와 시그널이 오갔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넥슨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2015년 1월 27일의 사건이 발발했을 것입니다.






4. 제 2차 지분 전쟁, 결말의 방향은?



지분 5% 이상을 가진 대주주는 지분 취득 목적을 발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분 취득 목적은 대주주 임의대로 변경하여 공시할 수 있습니다. 2015년 1월 27일,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취득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습니다.

이에 대한 넥슨의 공식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보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를 여러 차례 배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넥슨의 보도자료에는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였으나, 기존의 협업 구조로는 급변하는 IT 업계의 변화 속도에 민첩히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보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협업과 민첩한 대응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넥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엔씨소프트와 대화해 나갈 것’ 등등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존의 협업, 제휴 체계에 대한 불만을 내포했으며, 두 번째로 최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았으며, 세 번째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측면에서 극적인 형태의 합의도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남겨두었습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세 번째, 모든 가능성입니다.

저는 모든 가능성이라는 말에서 양자가 지분을 놓고 서로 딜을 할 수도 있다는, 즉 넥슨이 가진 지분을 김택진 대표가 되살 수도 있고 반대로 김택진 대표의 지분을 넥슨이 마저 살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대응은 더욱 강경했습니다. 넥슨의 경영참여 공시 변경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넥슨의 경영참여는 엔씨소프트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되고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것’이고, 나아가 ‘현재의 경영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라는 멘트가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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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의 이 말은 곧, 양사의 관계가 어그러진 사태의 첫 번째 원인과 책임은 넥슨에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 서로 DNA가 달라 협업해봤자 좋을 게 없고 엔씨소프트의 주가만 떨어져서 넥슨이 가진 엔씨소프트의 지분 가치만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세 번째로,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가 경영하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넥슨의 경영참여 혹은 간섭을 배제하겠다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말은 곧 앞으로 협업은 하지 않을 것이며 넥슨의 경영참여나 M&A 시도를 적극 방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주식회사는 주식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의결권을 더 많이 행사하는 구조입니다. 그런 면에서 NXC-넥슨-넥슨코리아로 이어지는 넥슨은 김정주 회장의 참으로 안정적인 의사결정구조와 경영권을 지닌 구조이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엔씨소프트의 지분 구조, 즉 김택진 대표가 보유한 지분과 넥슨이 보유한 지분의 향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둘 중 한쪽으로 기울어져야만 이 분쟁이 끝날 것입니다.

지분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다름 아닙니다. 만에 하나, 협업이 잘 되어서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둘 다 큰 성장을 이루더라도 결국 대주주 2명의 공존 구조는 장기간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정리되게 마련입니다.

구씨와 허씨의 몇십 년에 걸친 신뢰 높고 친밀한 관계가 기반이 된 LG 그룹도 ‘LG’ 와 ‘GS’ 로 분할되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아주 평화롭고 화기애애하게 나누어 가졌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언젠가는 한번 대주주 2명의 지분에 대해 교통 정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5. 두 사람에게 달린 시작과 끝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협업이 어그러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관계, 최대주주(이자 경쟁사)인 넥슨의 M&A를 잔뜩 경계하는 엔씨소프트, 최대주주임에도 아직은 별다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해서 잽을 날리는 수준으로 액션을 취하는 넥슨이 얽혀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된 분쟁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극적인 합의의 가능성을 양자 다 남겨놓고 있습니다. 두 회사간에 더 이상 분쟁이 없으려면 위에서 말한 대로 지분 구조가 정리되어야만 가능합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부터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면 되는 것이죠.

넥슨의 '모든 가능성', 엔씨소프트의 '현재 경영체제 유지'라는 단어에서 기본 입장을 볼 수 있겠지만, 향후 어떤 결론이 날지는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 단 두 사람의 의사 결정만으로 이 모든 사태가 한순간에 정리될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보유한 지분에 대한 결정권은 오롯이 이 두 사람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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