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완성 게임으로 돈을 번다? "책임질 자신 있죠?"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20개 |
▲'GoatZ' 공식 트레일러 영상


어제 어린이날이었죠. 저는 머리 다 큰 '어른이'니까,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놀았습니다. 그간 미뤄왔던 게임 실컷 했어요. 차도 훔치고 은행도 좀 털고, 지나가는 사람과 주먹다짐도 하고... G모 게임, 그것참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어깨가 슬슬 뻐근해지면 의자 뒤로 쭉 빼고 게임 영상을 뒤적거리곤 합니다. 쓸만하다 싶으면 유저 여러분께 소개도 하고요. 헌데 어제 참 독특한 영상을 하나 찾았습니다.

'염소 시뮬레이터(Goat Simulator)'라고 아시나요? 지난해 4월 스웨덴의 커피스테인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게임으로, 골때리는 시뮬레이터 열풍을 부른 주역 중 하나입니다.



▲ 위 영상의 염소는 원래 이렇게 순수했어요.


저기 어딘가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어요. 플레이어는 염소를 조작해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라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바베큐 파티 중인 사람들 뒤통수에 접시를 던져 깨박살을 내고, 자동차 유리에 야구공을 꽂아 운전자에게 요단강스러운 신기루를 보여줄 수도 있어요. 뭐 그런 거 다 귀찮다 싶으면 그냥 혀에 사람 붙여서 날려버리면 돼요. 냅다 들이받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건 너무나 무난한 방식일 정도로 게임 자체가 재기 발랄합니다.

애초 '염소 시뮬레이터'는 개발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게임이지만, 알파 버전 영상이 높은 호응을 받자 아예 정식 클라이언트로 개발되었습니다.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간단해요. 일단 소재가 참신했고, 필터링 없는 물리 엔진과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그래픽이 극강의 시너지를 냈으니까. 출시 후 서양 매체들의 반응도 좋았고, 판매량도 괜찮았는지 모바일, 콘솔로 출시한 데 이어 '염소 MMO 시뮬레이터'라는 DLC까지 선보였습니다. (작년 지스타 현장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스팀에서만 100만 장 이상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염소 시뮬레이터'의 새로운 DLC를 2015년 5월 5일(현지시각)에 발표했습니다. 게임 명을 아예 'GoatZ'라고 써 놨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스팀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끈 '데이즈'를 패러디한 겁니다. 끝 글자에 'Z'를 쓴 것, 그리고 폰트 디자인 등 유사점이 많아요.

안 그래도 엽기적인 게임을 한 번 더 꼬아 놓은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했어요. B급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좀비를 섞은 거야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 막상 영상을 보니 개발자가 평소 복용하는 약의 유통기한이 다 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까지 들더라고요.



▲ 약이 상한 거 같아요.


'오 이거 재밌네, 단신으로 엮어도 되겠어' 하고 기사 작성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게임 소개를 보기 위해 유튜브 상세 설명을 읽고 있었는데... 이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할 것 같더라고요.

영상 내 텍스트, 그리고 상세 설명을 간단히 풀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 작품 프로그래밍 완전 구려', '다른 서바이벌 게임처럼 버그도 엄청 많아... 아니, 더 많을 수도?', '제작 시스템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형식적인 수준이야.'

말 그대로 저격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얼리 억세스 따위 없는 호러 게임' 멘트는 특정 게임들을 대놓고 풍자한 것이 느껴집니다.

스팀 얼리 억세스에 한 번쯤 데어 본 유저라면 마냥 웃으면서 넘길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문구에 얼리 억세스, 특히 얼리 억세스된 생존형 게임의 현황이 그대로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얼마전 발생했던 모드 유료화 논란, 기억 나시죠? 개인적으로 그 못지않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무분별한 얼리 억세스였습니다. 그럴듯한 게임플레이 영상으로 유저들의 지갑을 미리 열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한데, 미리 돈을 낸다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게임이 완성이 안 되는 거예요. 얼리 억세스 떴고, 게임이 재밌어 보여 돈 냈는데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완성조차 되지 않은 게임을 돈 받고 판다는 것부터 이미 논란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유저와 '선약속'을 한 만큼, 개발자로서 책임을 지고 끝까지 만드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뒷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끝내 완성을 하지 않고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속속 나오면서 유저들의 불만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얼리 억세스 게임들은 개발 중인 만큼, 정식 출시작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버그를 갖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테스트 버전이기에 유저들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버그 및 밸런스 수정 위주로 업데이트가 꾸려지면서 정식 출시는 차일피일 미뤄집니다. 이게 반복되면서 얼리 억세스라는 '방패'를 1년 이상 갖고 가는 게임도 많아요. 커피스테인 스튜디오가 지적한 생존형 게임들, 특히 '데이즈(Dayz)'와 '러스트(RUST)'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꾸준히 개발 중인 업체도 있을 겁니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고 제게 따질 수도 있겠죠. 한데, 게임을 사전에 판매하는 시점으로 이미 그 게임은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상품'이잖아요. 미완성 버전을 판매하는 순간부터 개발자는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이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버그 수정과 시스템 추가는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전제이며, 게임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버그가 거의 없고, 거의 완성된 상태인 것이 제일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사례는 근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오히려 출시를 빠르게 한 후 버그 개선과 콘텐츠 주입에 힘쓰는 게임도 있습니다. 스팀에서는 '테라리아(terraria)'와 '돈 스타브(don't starve)'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유저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남부럽지 않은 판매량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식 발매된 게임치고는 마감새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이들 개발사는 출시 이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고, 그 책임감대로 행동하여 이미지를 개선했습니다. 얼리 억세스 게임 개발사들이 꼭 가져야 할 '책임감'이, 오히려 얼리 억세스를 최소화한 개발사에서 많이 보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저는 게임 개발자도 일종의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깎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 판매 순간부터는 자존심 못지않게 책임감도 지녀야 합니다. 국내 게임시장에 대입한다면 '테스트'라는 간판을 걸고 과금 결제가 들어간 게임들이 대상입니다. 순간의 매출을 노리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한 티, 책임감이 엿보이는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일단 게임이 좋아야 하겠지만,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에 자긍심을 갖고 개선 의지를 꾸준히 보여 준다면... 그 게임은 유저들이 먼저 알아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 참. 그리고 커피스테인 스튜디오의 풍자, 멋졌습니다. 원래 이 말 하려고 썼는데 왜 중간에 이야기가 샜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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