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짜 나쁜 게임, '헤이트리드'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53개 |




'헤이트리드(Hatred)'가 6월 1일 스팀에 출시됐다. 외국에서는 예전부터 꽤 화제가 됐던 모양이다. 'GTA'가 전체이용가처럼 보인다는 등, '카마게돈'이나 '포스탈'은 사람 웃기려고 만든 게임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아니, 무슨 게임인데? 뭔 약을 해 먹고 만드셨길래 '포스탈'을 미화시킬 정도야?

출시 전에 본 트레일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주인공은 쾌락 살인마 사이코패스라는 설정. 평화로운 시골 마을 주민을 말 그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노인, 여성 가릴 것 없이 그냥 보이는 대로 다 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어차피 죽을 여성의 머리를 밟는 묘사도 있었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기로 이 바닥의 정점에 선 '포스탈' 급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색 톤으로 표현된 마을은 제법 현실감을 풍기고 있었고, 세세한 묘사에서 우러나는 잔혹성은 그 이상이라 부를 만 했다. 솔직히 오싹했다.



▲ 트레일러는 충격 그 자체.


'헤이트리드'의 폭력성은 여러 방면으로 이슈를 불렀다.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는데, 트레일러가 처음 공개되자마자 에픽 게임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창작에 관여하지 않고, 검열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헤이트리드' 트레일러는 우리의 동의 없이 언리얼 엔진4 로고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자사와 관련한 로고를 삭제하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유통사에서도 이 폭력의 아궁이를 어떻게든 떨쳐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PC 게임 유통 플랫폼 중에서도 특히 관대하다고 알려진 GOG는 출시를 거부했고, 스팀은 아예 그린라이트에서 내려버렸다. 결국, '우리는 모든 개발사의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게이브 뉴웰의 공지 아래 다시 그린라이트에 들어갔지만, 유통사 내부에서도 이 게임을 두고 말이 많았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헤이트리드'는 스팀 그린라이트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합 7위까지 올라섰고, 그대로 출시가 결정되었다. 과정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모습과 비슷했다. 게이머에게는 최고의 유혹 중 하나인 폭력적 '일탈'을,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보여준 덕분에 여타 후보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폭력성은 초반 판매량을 견인하는 일등공신이었다. 6월 1일 출시된 '헤이트리드'는 곧바로 스팀 최고 인기 제품 2위까지 올라섰다. 실제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나타내는 통계가 아니기에 인기를 증명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좋든 나쁘든 출시 직후 스팀 유저들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출시되고 일주일이 지난 현재, '헤이트리드'는 어떤 순위표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인기 순위는 45위, 스팀 유저 수 통계에서는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비교적 수명이 짧은 중소형 게임이란 걸 고려하더라도 너무나 가파른 추락. 이유가 무엇일까.

개발사 디스트럭티브 크리에이션은 '헤이트리드' 제작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왜 이런 게임을 만드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겁니다. 최근 등장하는 게임들은 도덕성과 화려함, 그리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려 합니다. 저희는 이런 것들을 떠나 게임이 가진 순수한 재미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게임 내 무차별 학살에 대해서 플레이어는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할겁니다. 물론, 그 해답은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야 하고요."

바로 이것이 이유다. 개발팀은 '헤이트리드'를 두고 예술성 및 도덕적 굴레를 모두 벗은, 순수하게 게임의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한데 애석하게도 '헤이트리드'는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가 너무도 부실했다. 또, 그들의 말처럼 게임플레이 도중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었지만, '헤이트리드'는 그 물음표를 지워 줄 의지도 없어 보였다.



▲ 폭력의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 폭력이 재미도 없다면?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배경을 게임 안에서 찾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이게 있었다면 사전 공개된 트레일러에서 최소한의 힌트라도 주었을 것이다. 트레일러는 폭력에 중독되어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 상태로 '이 정도로 잔인한 게임 본 적 없죠? 아, 글쎄 일단 사보시라니까!'라고만 떠들어댔다. 싸구려 제품을 뭔가 있어 보이게 포장한 후 지갑을 유혹하는 전형적인 상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민에 대한 폭력을 허락하는 게임이 '헤이트리드'가 처음은 아니다. 'GTA'나 '세인츠 로우', '슬리핑 독스'나 '어쌔신 크리드'도 그런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 게임들은 이러한 행위를 메인 메뉴로 내세우지 않았다. 실제 이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수많은 드라마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그 후 세계관에 완전히 동화된다. 단순한 폭력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는 의미다.



▲ GTA 역시 폭력을 담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반면, '헤이트리드'는 폭력과 살인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웠다. 이것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폭력 자체를 미학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정밀한 시스템과 아이디어가 받쳐줘야 한다. 폭력에 관한 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다면, 게임의 도덕성을 떠나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헤이트리드'는 전형적인 쿼터뷰 슈터 게임이었고, 장르의 클래식이 될 만한 어떤 기질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렵다면 조금 더 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폭력을 유저들이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 최소한의 세계관에 몇 가지 부가 콘텐츠만 곁들인다면, 플레이어가 게임 후반부까지 집중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헤이트리드'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결국, 유저는 게임이 뿜어내는 당혹스러운 폭력 앞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처음 게임을 켠 후 5분간은 묵직한 분위기에 압도되지만, 이내 플레이어는 지나가는 시민에게 총을 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플레이와 분위기, 충격적인 처형 장면 등은 하나같이 말초신경을 자극하지만, 지나친 반복으로 인해 참신함을 잃었다. 그 결과 '헤이트리드'를 구성하는 모든 콘텐츠가 30분 내로 바닥을 드러낸다.



▲ 개발팀의 잘못된 방향은 결과로 드러났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줄거리 역시 기자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폭력의, 폭력에 의한, 폭력을 위한 게임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 한다.

폭력성으로 심심찮게 도마 위에 오른 'GTA', 그보다 더 가벼운 폭력을 추구하는 '세인츠 로우'라 할지라도 플레이어의 감정 이입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당신의 폭력이 사회적 일탈에 가깝더라도 우리 게임에선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헤이트리드'에서는 그 부분이 쏙 빠져 있고, 결국 남은 것은 어느 시골 마을에 나타난 미친 놈 하나, 그리고 그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는 플레이어의 허탈감뿐이다.



▲ 적어도 세인츠 로우는 '왜?'라는 질문에 답변은 했다.


무엇보다도, '헤이트리드'를 개발한 디스트럭티브 크리에이션이 보여준 행동은 빈말로라도 칭찬하기 어렵다. 자극적인 트레일러를 앞세워 공허 그 자체인 게임을 판매하려고 한 그들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폭력성을 전면에 내세운 게임이라면 더더욱 신중해야만 했다.

'헤이트리드'에도 일종의 철학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철학이 개발진만 공감하는 수준이라면?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마음이 파도 한 점 없이 평온하다면? 그것은 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보면 디스트럭티브 크리에이션은 참 솔직한 개발사다. '우리는 진짜 폭력적인 게임을 만들 생각이야'라고 말했고, 실제로 '헤이트리드'는 투박한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하겠다. 게임의 제목처럼 '헤이트리드'를 증오해도, 그리고 알량한 테크닉으로 유저를 기만하는 개발사가 비웃음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 일단 재미가 무엇인지부터 공부하고 오길. 유저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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