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철수가 아닌 탈주, '플래닛사이드2'

칼럼 | 이명규 기자 | 댓글: 98개 |



최근 국내에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 하나가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이하 SOE)에서 개발하고 다음 게임이 한국에 서비스하는 MMOFPS '플래닛사이드2' 입니다. 지난해 6월 오픈베타를 시작하면서 한국 게이머들에게 첫 선을 보였던 '플래닛사이드2'는 이제 만 1년을 채우자마자 한국을 떠나게 되어버렸죠.

사실 국내에 서비스를 시도했다가 얼마가지 못하고 철수한 해외 게임의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먼 옛날 '에버퀘스트'로부터 시작해서,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외산 게임들이 한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지요. 해외에서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외산 게임들이 한국을 떠났고, 유저들은 해외 서버로 이주하거나 다른 게임으로 옮겨갔습니다. 몇 번이고 그런 장면을 지켜본 유저들은 이제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고 추억으로 남길 뿐입니다.

하지만 '플래닛사이드2'의 철수는 뭔가 다릅니다. 현재 '플래닛사이드2'의 유저들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 한국 시장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 이상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죠. 사실 이들의 반응은 정확하게는 분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의 추억에 돌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 '플래닛사이드2' 환불 공지 전문

'플래닛사이드2'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다른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용자 감소에 따른 수익악화'라는 소비재로서 당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까요. 하지만 초점을 맞추어야할 부분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입니다.

'플래닛사이드2'의 서비스 종료 안내문 그 어디에서도 한국 유저들의 캐릭터 정보 이전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후 몇몇 유저들이 문의를 통해 확인했지만, '캐릭터 이전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관련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는 답변을 받았죠.

환불 문제에서도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게임에서 밝힌 환불 대상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은 부스터 아이템'으로, 캐쉬로 구입한 사용기간 영구 아이템들은 환불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입니다. 물론 이들 아이템은 구입후 사용할 때 청약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종료라는, 이 아이템들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예외사항에도 똑같이 적용해도 되는건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을 버리는' 철수가 전례 없는 사례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플래닛사이드2'의 문제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을 이해하려면 '플래닛사이드2'의 서비스 초반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다음 게임이 '플래닛사이드2'의 한국 서비스를 결정하면서, SOE는 한국 IP의 '플래닛사이드2' 글로벌 서버 접속을 차단했습니다. 한국 서버의 활성화 및 서로 다른 네트워크 환경에서 생기는 문제 등을 고려한 것이었죠. 물론 이는 다음 게임의 독단적 결정은 아니며, SOE와 다음 게임이 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그리고 초기의 이 조치와 서비스 종료 시의 '캐릭터 이전 불가, 환불 불가' 정책은 막강한 시너지를 내어버렸습니다. 바로 국내 '플래닛사이드2' 유저들은 해외의 '플래닛사이드2' 유저와 비교하여 1년이란 시간을 아예 잃어버린 꼴이 되어버린 겁니다. 강제적으로 한국 서버에서 플레이 해야만 했으며, 그나마도 그 한국 서버에서 이뤄낸 모든 것이 이제 허공으로 날아가버리게 생겼으니까요.

이미 해외에서 성황리에 서비스 중이던 게임을 국내에 도입한 선례를 둘러볼 때, 다음 게임의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어쩌면 유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이머에게 자신이 그동안 플레이 해온 전적과 각종 업적, 가지고 있는 아이템 등은 매우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리고 '자산'은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하여 남에게 보여주거나 작용할 수 있어야 진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법은 아직 이러한 경험이나 컴퓨터 데이터 뭉치를 법적 재산으로 명확하게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나 '리그 오브 레전드'가 국내에 도입될 때, 워게이밍넷과 라이엇 게임즈는 제각각 본래 해외 서버에서 플레이하고 있던 유저들에게 데이터 이전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또 해외 서버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차단하지도 않았죠. 그들은 유저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현재까지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저의 경우를 이야기 해보면, 저는 '월드 오브 탱크'와 '리그 오브 레전드' 모두 베타 테스트 시기부터 해왔었습니다. 비록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추억과 기록도 가지고 있죠. 또한 수없이 많은 전차, 그리고 스킨과 캐릭터들도 물론 보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 서비스를 시작할 무렵, 북미 서버로부터 데이터 이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고,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 가치에 맞는 댓가를 지불했죠. 이는 당시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 서버에 정착하면서, 만에 하나 한국 서버가 사라지게 된다 해도 역으로 데이터 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신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플래닛사이드2'의 이번 사례는 법적인 부분으로도 확대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윤리, 서비스 마인드와 결부된 문제입니다. 매우 복합적이며, 단순히 돈에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유저들이 시간을 들여 얻어낸 각종 성과를 없었던 것으로 돌리는 것이니까요.

유저들은 결국 이렇게 다음 게임과 SOE의 의도대로 통제된 환경에서 그들이 서비스를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최소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경험과 자산의 가치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고, 아이템을 구입했지만, 이 두 회사는 그 기대를 져버렸습니다.

'애초에 한국 서버가 만들어질 때부터 독립적인 생태계로 시작했으니, 이전 없이 그대로 끝나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식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가격을 책정하고 판매했던 캐쉬 아이템들이 과연 적정했는지, 유저들이 손해보는 부분은 없는지 고려했어야만 합니다. 게임 상 아이템이 가지는 재산의 지위가 법적으로 불분명하다는 것을 이용해 유저들의 돈을 부당취득한다는 식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의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마무리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쓸쓸한 갈채 박수를 받는 퇴장이 될 수도, 혹은 손가락질을 받으며 힐난 당하는 퇴장이 될 수도 있지요. 과연 다음 게임이 자신들의 이익 외에 유저들의 추억과 금전적 만족, 두가지를 신경을 쓰고는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물론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 일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위해 상식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걸까요? 어찌되었든 지난 1년간 한국 유저들이 '플래닛사이드2'에서 쌓아올린 모든 노력들은 이제 완전히 소멸될 예정입니다. 유저들의 결정이 아닌, SOE와 다음 게임 두 회사의 결정으로 말입니다.

다음 게임은 지난해 8월 모기업 다음카카오에서 분사 독립해, 한창 게임 유통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 신흥 주자입니다. 그리고 '플래닛사이드2'는 그들의 야심찬 첫 대형 프로젝트였으며, 이제는 처음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온라인 게임이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유저의 입장에서 유통사의 신뢰는 '서비스'에 좌지우지됩니다. 만약 '플래닛사이드2'가 사후관리가 전무한 상태로 서비스 종료를 맞이한다면, 앞으로 다음 게임이 또다시 해외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하게 될 때, 유저들이 그들을 한 번 더 믿어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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