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라임과 열정, 승부조작, 두 번째 흉터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131개 |




어두컴컴한 사무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이어진 친분과 이제 겨우 20대 초, 중반인 선수들에게는 아직 낯선 고액의 양주들, 그리고 선수들을 현혹하기 위한 달변가. 무대는 마련됐다. 이제는 실전이다. 대부분의 브로커들의 첫 접선은 SNS를 통해 이뤄진다.

보통 SNS를 통한 접근의 경우 대다수의 프로게이머들은 모르는 사람의 메시지에 경계심을 갖고 거절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청춘을 오직 게임에만 쏟아온 프로게이머들에게 고급 양주들과 소위 잘나가는 느낌을 팍팍 풍기는 사람들, 그리고 평소 친한 지인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경계'라는 벽을 자연스레 허물게 된다.

그리고 진짜 작업은 술기운이 어느 정도 달아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시작된다. 그리고 브로커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 즉, 부를 과시한다. 한 달에 얼마를 벌었다는 둥, 고급 외제차 키를 보여주는 등, 20대 남자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다.

선수들이 브로커가 건넨 떡밥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절반은 넘어온 셈이다. 이제부터는 직접적인 단어를 언급하며 선수들을 현혹한다. 한두 게임에 자신들의 연봉 이상의 금액을 얻을 수 있게 해주고, 만약 추후에 발각이 되더라도 자신들과 사업을 함께 이어나가며 계속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는 거짓일 뿐, 유혹에 넘어간 선수들은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기자는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프라임팀에서 생활했다. 스타1 시절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던 프로게이머의 꿈을 군대를 다녀온 뒤 늦은 나이였지만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도전했다. 비록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한 삶은 아니었고, 물질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열정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29년 인생에 있어 가장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적발된 박외식 감독과 최종혁 역시 기자가 프라임에서 지냈던 2년 동안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왔던 이들이기에 승부조작 사건의 충격은 배로 다가왔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스폰서도 없었고,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열정 하나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다.

굉장히 식상한 이야기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얘기했다. "열정이 밥먹여주느냐?" 그래도 후회는 없었고, 오히려 행복했다. 배부르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랬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을 옹호하려는 건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처음 두 사람을 만났을 때 모습은 e스포츠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 시작한 팀의 감독이나 선수들의 경우 초기에는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e스포츠 업계에 발을 내디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처럼 힘들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나중에는 과거 고생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 하나만 믿고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점점 지치고 도태되면서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고 돈의 유혹에 흔들린다. 피부로 와 닿진 않지만, 막상 그런 금액을 단숨에 얻을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졌고, 득과 실을 따진다.

소위 말하는 S, A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넉넉지 못하다.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더라도 수명이 짧은 프로게이머들에게 미래는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승부조작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업계의 미래보다 개인의 이득을 더 높은 가치관으로 두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승부조작, 즉 범죄라는 수단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죄를 용서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도 맞다. 하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이들의 동기가 과연 한순간 유혹이나 실수에 불과할까. e스포츠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해온 모든 관계자, 선수, 팬들의 신뢰는 내팽개쳐두고 승부조작으로 치러야 하는 '벌금, 집행유예, 100시간의 사회봉사'라는 법적책임을 오직 계산기만 두드리며 일확천금과 맞바꾼 자들이다.

2010년 승부조작 당시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뒤 조금만 이상한 경기나 역전이 나오기만 해도 '조작이네', '얼마 받았냐'등 입에 담기 힘든 악플들을 너무나도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됐고, 9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문화,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e스포츠를 키워온 모든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사실 승부조작이라는 범죄 행동을 한순간에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최소한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 연봉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아울러,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고 난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나름 괜찮은 방향성이 잡혀 있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럭저럭 괜찮은 각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될 가능성은 줄어드는 법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LOL 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떨어지고 상황이 좋지 못한 스타2판에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대기업들이 단순히 판을 키우기 위한 명목만으로 많은 투자를 하기란 어렵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당분간 개선되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공허의 유산이 나오고 또 흥행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무너진 시스템을 재건하는 건 그만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만약 스타2가 부활의 날개를 펼쳐서 예전과 같은 영화를 되찾는다고 해도 승부조작은 또 발생할 수는 있다. 이는 잘 나가는 야구나 축구, 농구 같은 종목에서도 승부조작이나 약물복용 같은 케이스가 드물긴 하지만 꾸준히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잘 나가도 유혹에 빠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최대한의 사전 예방과 적발 시 단호한 처벌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현실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다.

e스포츠는 비록 종목의 특성이 다르긴 하지만, 사례로 삼을 수 있는 케이스가 여럿 있다. 미국의 MLB 등에서 승부조작과 약물중독에 대해서 어떻게 예방하고 사후 조치했는지, 가까이는 한국 프로야구라든가 한국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에서 승부조작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는 다른 스포츠 분야의 전례가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 대한 KeSPA 의 대응을 보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간의 일에 100%라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나. 아무리 노력해도 구멍은 있게 마련이고, 그 틈을 뚫고 범죄는 저질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범죄를 막도록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고,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를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MLB나 한국 프로야구도 승부조작의 상처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흥행의 최고봉을 달리고 있다.

또한 스타2를 사랑하는 팬들의 사랑도 필요하다. 스타2의 행보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일이 생겨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업계에서도 현재 승부조작에 가담한 관계자 및 선수들을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나아가 선수들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스타2를 사랑하는 팬들의 노력이 가장 큰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선수들의 마인드도 보다 확실한 교육이 필요하다. '프로'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것인지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과거 스타1 시절에는 커리지 매치를 통한 준프로 자격 획득, 프로 드래프트 등 체계가 잡혀있었다. 반면, 현재는 스타2와 LoL 모두 이러한 과정 없이 팀 내부적으로 선수를 선발하여 입단한 선수들에게 '프로'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기에 한국e스포츠협회나 구단측에서 선수들에게 왜 승부조작을 하면 안 되는 지, 프로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심어줘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단호한 결의’는 더욱더 필요한 법이다. MLB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선수라 할 수 있는 재키 로빈슨을 발탁한 다저스의 구단주는 재키 로빈슨에게 ‘인종적인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을 수 있는가’를 물어봤다. 피부색을 이유로 인종적인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첫 발걸음이니만큼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야만 비로소 MLB 에 다른 피부색의 선수들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걸 이겨낸 지금 재키 로빈슨은 영웅이 되었고, 그의 등번호인 42번은 MLB 전 구단의 공통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의 뒤를 따라 다양한 피부색의 선수들이 MLB 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고 흥행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승부조작까지 터진 지금이야말로, 모든 관계자들의 그런 ‘단호한 결의’가 필요한 때이다.

지난 2010년 e스포츠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상처를 입었고, 그 흉터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그런데, 그 흉터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흉터를 만들고 말았다. 어찌 보면 지난 5년 전보다 더 큰 상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흉터가 있다는 것은 고통을 견뎌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깨끗하고 공정한 스타2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번 일을 절대 잊지 말자. 그리고 다 함께 노력하고 기억하자. 그대들이 보내주는 스타2에 대한 팬심과 사랑이 다시 한 번 발전할 수 있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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