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9.99 달러 인디 게임 '언더테일', 왜 주목할 만한가?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114개 |




'인디'는 끝도 없이 쏟아진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시장도 커졌고, 이에 따라 도전도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인디 게임'의 범람은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고,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꿈을 향한 도전'은 아름다울지언정, 그 이면의 어둠도 만만치 않게 짙었다. '얼리억세스'를 걸어놓고 말없이 사라지는 개발자며, 최소한의 퀄리티조차 갖추지 못한 게임까지. '인디'는 여느 업계가 그렇듯 꿈과 욕망이 비빔밥처럼 비벼지며 커지고 있다.

때문에 '언더테일'에 대한 첫인상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인디 게임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시대다. 당연히 '게임메이커'나 '쯔꾸르'를 이용해 만든 게임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게임메이커로 만든 많은 인디 게임 중 하나'. '언더테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조잡한 그래픽. 4방향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고전적인 디자인. 다시 봐도 '언더테일'은 스팀에 등재된 수없이 많은 '인디 게임'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 그 이상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언더테일'을 추천했고, 메타크리틱 점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있었다.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듯, 직접 해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 언더테일

'토비 폭스'가 만든 인디 게임으로, '게임메이커' 툴을 이용해 약간의 아트 외에는 모든 과정을 혼자 제작했다. 출시일은 2015년 9월 15일로, 출시 이후 파격적인 접근과 깊이 있는 줄거리, 기존의 틀을 깨는 이야기 전개 등을 보여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약 3만여 개의 스팀 사용자 평가 중 97%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으며, 총 판매량은 50만 장 이상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게임이다. 메타크리틱 점수는 현재(1월 21일 기준) 93점을 기록 중이다.

'언더테일'은 '인간과 괴물이 공존했던 과거'를 가진 세계에서, 전쟁 끝에 인간에게 패한 괴물들이 살아가는 지하 세계로 가게 된 어떤 한 인간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 솔직히 이게 뭐라고 재미있을까 싶었다.

장시간의 플레이 끝에 키보드에서 손을 뗐을 때, 멍하니 모니터를 보면서 생각에 젖었다.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은 게임이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으며, 이렇게 단순한 그래픽에 눈이 즐거울 수 있단 말인가. '아 이런 게임인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재밌네?'라는 생각을 끝으로 접어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언더테일'은 '인디' 게임이었지만, 언더테일의 '재미'는 인디의 '재미'가 아니었다. 한 편의 긴 영화를 보고 난 후와 같은 여운과 함께, 그간 내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던 '재미'의 개념도 점점 지워졌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게임의 재미'는 "할 수 없는 것을 한다는 것"이었다. '게임'은 다른 문화 콘텐츠와 다르게 한두 가지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공감각적 콘텐츠이자, 플레이어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콘텐츠다. 하늘을 자력으로 날고, 모험을 떠나는 행위를 현실에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엄청난 돈이 들 거다. 하지만 게임이라면 너무나 쉽게 가능하다. 문제는 이 '상상력'마저도 개발 시장에서 '정형화'되어 버렸다는 거다.

어느새부터인가 '게임'은 더 이상 무한한 상상력을 발현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성공한 롤 모델과 검증된 재미요소들이 질펀하게 깔린 개발세계에서, '새로운 시도'는 말 그대로 모험이다. 어느 순간부턴가, 눈앞에 등장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기존에 있던 시스템을 적절히 차용해 등장했고, 조금씩 나아질지언정 '개혁'에 가까운 시도는 드물었다. 간혹 있었다고 해도 미처 다듬어지지 못한 모습을 보이거나, 디테일이 기획을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기존의 '재미요소'에 살을 붙이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유행'을 쫓는 것은 '인디' 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 작품이 성공하면, 닮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그 때문에 '언더테일'의 재미를 내 멋대로 속단했다. 가벼운 상업용 개발 툴로 만든 엇비슷한 게임들이 수도 없이 많다. '투더문'을 비롯한 몇몇 작품이 성공한 이후, '뛰어난 스토리'를 무기로 내세운 인디 게임들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단순히 '스토리'를 무기로 내세운 게임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성의 없어 보이는 아트는 뛰어난 bgm과 미묘하게 맞물렸고, 정말 '작은' 부분이라 여겼던 부분마저 이 놀라운 게임을 이루는 조각들이었다.

'RPG'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언더테일은 전통적인 RPG가 요구하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의 끝으로 나아가면서, 본인이 옳다고 여기는 행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마무리에 도달해 있고, 지금까지 해왔던 내 플레이들이 그 결말을 꾸며낸다. 분명히 재미있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게임을 하면서 겪었던 '재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재미였다.



▲ '언더테일'의 접근법은 기존의 게임들과 전혀 달랐다.

물론 '언더테일'의 재미가 기존의 게임들보다 '더' 재미있다는 뜻은 아니다. 표현하자면 '신선했다.'라고 할 수 있다. 게임 개발자들이 재미요소로 흔히 집어넣는 '다른 이들과의 경쟁'도 없었고, '화려한 전투'도 없었다. '훌륭한 장비'도 없었고, '감정을 뒤섞는 신파'도 없었으며, '눈이 확 뜨일 연출'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게 소소하다. 도트로 표현할 수 있는 소소한 연출과 썰렁하기 그지없는 최불암식 개그 코드, 그리고 간단한 탄막 슈팅을 연상케 하는 전투 과정 등등, '눈에 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이 게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언더테일'의 재미는 그간 너무나도 바닥에 깔아두어 보이지도 않았던 '룰'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게임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그 무엇도 '언더테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의 기술에 전투 UI가 부서져 나갔으며,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든 적은 내 칭찬 한마디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 쌍칼을 들고 날 위협하던 '개'는 조금 쓰다듬어주자 방방 뛰며 좋아했고, 심지어 '세이브' 시스템을 이용해 공격을 가하는 적도 있었다. 보통은 완전히 구분되던 '게임 내적 요소'와 '게임 외적 요소'는 깨져버린 제4의 벽을 통해 섞이며 '재미'를 만들었고, 게임 진행에 따라서는 게임 프로그램을 스스로 셧아웃해버리는 과감한 시도까지 이뤄진다.



▲ 몬스터가 꼭 적일 수는 없다는 것.

'클리셰 비틀기'가 클리셰가 되어버릴 정도로 기존의 상식을 깨는 시도들이 많아진 지금이다. 어지간한 '참신함'으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게임업계에서 '언더테일'은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마저 산산이 부수며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 와중에도 균형을 잃지 않으며 '재미'를 만들어냈다. 게임을 끝냈을 때, 내가 받은 느낌도 확실히 다른 게임을 끝냈을 때와 달랐다. 평소엔 "꽤 괜찮은 게임이었다."였다면 '언더테일'은 "이걸 무슨 게임이라 해야 하나…."라고 해야 할까?

'재미 이론'의 저자인 '라프 코스터'는 재미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재미는 학습으로부터 오며 더는 배울 것이 없을 때, 그 게임의 재미는 끝난다." '언더테일'은 이 이론의 훌륭한 산증인이자, '틀을 깨는 참신함'이 무엇인지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개발사가 다른 게임과는 차별화된 참신한 무언가를 집어넣기 위해 노력하지만, 게임의 바탕을 이루는 틀 자체를 깨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게임 대부분의 구성 요소를 '처음 접하는 요소'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게이머에게 재미를 안겨준다.



▲ '재미 이론'과 '라프 코스터'

사실 엄연히 말해 '재미'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정량이 정해져 있는 상품의 가격마저도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겐 비싸고, 또 누군가에겐 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산술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정형 개념인 '재미'를 절대적 기준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게임을 만들 때 들어가기 마련인 '재미요소' 또한 딱히 정의할 수가 없다. 게임에 들어 있는 재미요소는 너무나도 많으며, 개발자와 대화할 때도 개발자들은 각기 다른 요소를 '우리 게임의 재미요소다.'라고 말한다.

'언더테일'이 시사하는 바는 이 '재미요소'의 개념을 기존 이상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비판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언더테일'은 그저 기존의 '클리셰 비틀기'를 넘어서는 파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체험과 재미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나타날 수많은 시도를 예상해보면 게임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운 방법은 엄연히 편법에 불과했지만, 달걀을 깨버린다는 파격적 행동은 '달걀을 깰 수 없다.'라는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상징으로 남았다.




▲ '고정관념'의 타파를 시사하는 콜럼버스의 달걀


'새로운 개념의 재미'

게임업계를 선도한다는 '트리플 A급' 게임들이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언더테일'의 접근 방식은 앞으로 게임 개발 시장에 시도될 수많은 이색적 도전의 시작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게이머들이 누리는 '재미'의 레벨은 지금보다 더욱 깊을 것이며, 동시에 다채로울 것이다.

결국, 게임의 근본적 목적은 '재미'다. 어떤 게임을 해도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새로운 게임도 금세 익숙해지고 마는 지금. '언더테일'이 '새로운 재미'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의문과 기대가 바로 내가 출시된 지 4개월이나 지난 작품을 지금에 와서 논하는 이유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