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켓몬 GO 열풍, "업계를 홀린 VR, 유저를 홀린 AR"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38개 |




이쯤 되면 가히 '신드롬'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포켓몬 GO 이야기입니다.

지금 속초는 포켓몬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속초마을' 행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는 상황. 아직 정식 출시조차 되지 않은 게임이 공중파 3사의 9시 뉴스를 모두 장식하는 사례라... 저는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인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이현수, 정필권, 전상후 기자가 속초로 달려가 샅샅이 취재했습니다. 이 진성 포덕들은 지난 13일, 남들 다 자는 새벽에 택시 잡아타고 갈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이렇게 적극적인 취재는 제 기억을 더듬어봐도 처음입니다.

우리나라 게임업계도 저 못지않게 놀랐을 겁니다.
"헉! VR이 대세 되는 거 아니었어? 우리 AR은 준비 안 했는데..."







■ 포켓몬 GO 신드롬, 'AR + IP'의 모범 사례

저는 포켓몬 GO가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이하 AR)' 기술을 활용한 부분에 관심이 갔습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GPS 기능을 활용하여 현실 세계에 나타난 포켓몬을 포획한다는 콘셉트. AR 게임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 중 하나로 보입니다.

사실, 포켓몬 GO가 출시되기 전까지 AR은 게임업계에서 그리 주목받는 소스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 주류 게임사들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죠.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형 게임사들은 물론, 정부까지도 VR 기술 개발에 400억 원 규모의 전문 펀드를 구축하면서 곧 다가올 트렌드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첫째가 VR이면 다음은 AR이겠죠?"라고 물으신다면... 음, 그것도 아니었어요. VR 다음으로 게임업계의 이목을 끈 차세대 기술은 '인공지능(AI)이었습니다. 지난 2016년 3월 9일부터 10일까지,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AI가 국민적인 관심을 끌면서 이 기술의 활용 여지가 많은 게임 산업도 함께 주목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AR이 주류의 가능성을... 아니, 이미 자신이 대세라는 것을 입증하고 나온 거죠.



"아앗... 저 눈에 빨려들어가버렷!"


사실, 이전에도 AR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휴대폰 카메라를 활용한 간단한 탁구 게임도 있었고,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끈 '러브 플러스'는 GPS 기반 위치정보 기술을 도입해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포켓몬 GO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게임은 없었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 인지도 면에서 검증이 끝난 '포켓몬' IP를 활용한 점, ▲ 널리 보급된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라는 점과 ▲ 개발사 나이안틱랩스가 전작 '인그레스(Ingress)'를 통해 GPS 기반 AR 기술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아온 점이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포켓몬 GO의 흥행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회사는 어디일까요?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보면 25% 이상의 주가 폭등을 이뤄낸 닌텐도(포켓몬 컴퍼니 지분 32% 및 공동 출자사인 게임 프리크를 자회사로 보유)이지만, 전문가들은 구글과 애플도 높은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맥쿼리 리서치의 조사로는, 앱스토어에서 100의 매출이 발생할 시, 규정에 따라 애플은 30의 수익을 배분받게 됩니다.

구글은 애플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포켓몬 GO의 이용자 대다수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쓰기에 플레이스토어를 통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인데요. 구글은 나이안틱랩스의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나이안틱랩스는 구글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 업계를 홀린 VR, 그 사이 게이머를 홀린 AR

이렇게 수많은 게임사가 VR에 관심을 쏟고 있는 시점에 혜성처럼 등장한 포켓몬 GO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우선 두 기술의 차이와 장단점을 비교하는 외신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했고요.

VR은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가상으로 구현해,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유저를 컴퓨터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한 거죠. 반면에 AR은 플레이어가 있는 현실 세계에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즉, 컴퓨터로 구현된 무언가를 현실의 유저 눈앞에 구현하는 것으로, VR과 반대되는 콘셉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먼저 주목받은 것은 VR이었습니다. 애초에 '더 나은 게임 환경'을 전제로 개발된 기술이기도 했고, 많은 발전 가능성을 품고 있었죠. VR의 특성상,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연적인데, 이는 곧 개발사의 아이디어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VR의 가장 큰 장점은 평소 하던 게임과 비교해 한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건데요.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하드웨어 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1995년에 닌텐도가 내놓은 '버추얼 보이'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높은 현실감을 제공할 수 있게 됐어요. 곧 다가올 미래 게임 환경에 게이머들 역시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게임 속에서 직접 전쟁 영웅이 되거나, 혹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직접 탐험할 수 있다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오오 이 손맛!... VR, 반드시 뜹니다"


VR 시장이 수면 위로 떠오른 데는, 오큘러스의 공이 컸습니다. 지난 2012년, 기존 VR 헤드셋의 품질을 넘어서는 게이밍 VR 헤드셋을 누구나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다고 발표하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 3월 25일, 초거대 SNS 기업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2조 5천억 원에 전격 인수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대기업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헉, 뭐야? VR이 뭐길래 페이스북이 2조 원이나 내놓은 거야? 이거 큰 시장 되겠는데 일단 우리도 들어가 보자!' 곧바로 구글과 삼성도 뛰어들었어요. 이들은 스마트폰을 VR 헤드셋에 끼워 사용하는 방식의 카드보드와 기어 VR을 내놓았고, 존 카멕을 비롯한 여러 외국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비교적 저렴한 제품군으로 모바일 VR 헤드셋이 자리 잡았고, 고사양 PC를 기반으로 하이엔드 VR 헤드셋이 속속 공개되면서 이제는 '트렌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장이 된 셈입니다.

국내 게임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체 시장분석이 끝난 업체들은 모바일 VR 게임은 물론, 플레이스테이션 VR을 대상으로 한 콘솔 게임 개발에도 동참하는 모습이었죠. 이쯤 되니 다가올 대세는 VR이 확실해 보였고, 반면 AR은 게임보다는 특정 서비스 관련 기술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요.

AR은 개발자가 모든 걸 만들지 않습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개발 가능한 콘텐츠에 제한이 있고, 유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호소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디바이스 기반의 AR 게임은 이를 상쇄하는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성'을 지녔죠. 실제 포켓몬 GO를 하면서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특정 장소에 모여있는 이들을 보고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는 유저들의 제보도 많았습니다. 이는 VR을 비롯하여 다른 플랫폼에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큰 장점입니다. 나이안틱랩스는 전작인 '인그레스'부터 지금의 '포켓몬 GO'까지 모두 이 특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IP의 힘에서 탄력을 받으면서, 결국 통했습니다.



"헉 AR?... 아, 자 잠깐만"


■ AR 게임 산업, 단순 투자만으로는 안 된다

포켓몬 GO 덕분에 전 세계 게임업계의 흐름에 길 하나가 더 열린 셈이지만, 아쉽게도 국내 게임사들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장기적인 캐시카우로 검증이 끝난 PC 온라인, 타 플랫폼보다 투자를 받기 쉬운데다 곧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바일 게임에 개발 역량을 집중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차세대 기술 개발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메인 프로젝트 수준으로 도전을 한 업체는 없었습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AR 게임은 미개척 영역인 셈이죠.

물론, 이를 개발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창의성을 갖춘 중소 게임 개발사가 AR 산업에 뛰어들려고 해도 우리나라의 토양은 아직 척박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09년에 AR 기술 콘텐츠 진흥을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했고 그 외 정부의 투자는 의미를 갖기 어려운 수준이었죠.

어느 정도 AR 게임 개발을 위한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해도, 국내에서 포켓몬 GO 수준의 흥행성을 가진 게임을 개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나이안틱랩스의 전작 '인그레스'는 GPS를 활용한 땅따먹기 콘셉트의 게임으로, 포켓몬 GO와 일부 기술적 유사성을 갖고 있으나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포켓몬 GO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지요.



나이언틱랩스는 전작 '인그레스'를 통해 AR의 특성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다.


국내 게임사가 전부 AR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4일, 드래곤플라이는 스페셜포스 IP를 활용한 AR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고, 한빛소프트는 VR/AR 게임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빛소프트는 꽤 예전부터 AR 전문 팀을 운영해왔기에, 이번 이슈에 가장 의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실제로 한빛소프트는 자사의 신작 '프로젝트 A'를 AR 플랫폼으로 개발 중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한빛소프트의 주가는 지난 12일부터 4일 연속으로 상승세를 보였고, 드래곤플라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앞서 수차례 언급했듯, 포켓몬 GO의 성공은 유명 IP의 영향력이 더해졌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었더라도 이 게임에 피카츄와 파이리 꼬부기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장담할 순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AR 게임에 대한 국내 게임사의 접근법도 달라야 합니다. 단순히 따라가기만 해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충실한 IP 확보 및 AR의 특성 연구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야 하겠지요. 이미 앞서간 회사들만 보고 잰걸음으로 따라갔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한국형 AR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앞서간 개발사들이 AR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분석을 먼저 끝내야 합니다. 그 후 AR을 바라보는 '철학'을 갖춰야 하죠. 그러한 노력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따라가서는, 전설의 단어 '명텐도'라는 꼬리표가 달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거, 돈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거 아닙니다"


■ AR, 게임의 대중화에 '긍정'만을 더해주길 바란다

AR의 득세로 VR 열기가 한풀 꺾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기술이 바라보는 사용자층이 워낙 다르기에, 별개의 산업으로서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포켓몬 GO가 인기를 끌면서 VR 관련 주도 급등세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일부 전문가들은 'AR 산업과의 혼동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신기술의 폭발적인 가능성을 확인한 투자자들의 선택'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VR과 AR 모두 게이머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기술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앞서 정재훈 기자가 포켓몬 GO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하여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문화로서 인식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AR, VR을 포함한 신기술들이 그 미래를 반드시 열어주리라 믿고 싶습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