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롤드컵과 팬들의 분노, 라이엇이 잃어버린 것들..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603개 |





무엇을 받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느냐 입니다. 결과적으로 손에 남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제일 기분 나쁜 것은 아무래도 '줬다가 빼앗아가는 것'이겠죠.

비슷한 예로 삼촌에게 용돈을 받은 조카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싹싹했던 조카에게 삼촌은 평소에 가끔가다 천원, 이천원 소소한 용돈만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큰 맘을 먹었는지 평소 이뻐보이던 조카에게 이번 명절에 용돈을 한번 크게 쏘겠다고 약속을 했고, 무려 5만원짜리 빳빳한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주었습니다.

많은 용돈을 받은 조카의 업된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삼촌이 카톡으로 원래 2만원을 줄려고 했는데, 잔돈이 없어서 5만원을 준 것이니, 3만원을 삼촌 계좌로 입금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요.

아무리 자기 손에 2만원이 남아있다 한들, 미리 말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들, 3만원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조카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요? 결과적으로 2만원을 받은 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3만원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것이 더 크죠. 줬다가 빼앗아가는, 받았다가 빼앗기는 그 기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한국 최고의 인기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의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 분산 개최에 대한 논란이, 기자가 보기에는 바로 이런 케이스입니다.






라이엇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메인매치인 8강과 4강, 결승전이 한국에서 열리지 않느냐, 미리 말못한 건 미안하지만 ... 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로 3~6시간이 걸리는 동남아와 대만에서 16강전을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사전에 한마디도 들은 바 없는 한국 롤게이머들에게 라이엇의 분산개최는 줬다가 빼앗아가는 삼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롤드컵의 한국 개최 발표 이후 지금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8개월의 시간동안, 고민하는 과정과 내용들에 대해 여러번 소통했더라면, 아니 최초 발표때 메인 매치는 한국이지만 일부 게임을 다른 국가에서 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사전에 발표했더라면, 그리고 그에 대해 한국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들과 의견을 조율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없었겠지요.

아마 라이엇도 예상과 다른, 혹은 예상보다 훨씬 쎈 반응에 당황스럽긴 할 것입니다. 거센 반발에 직면한 라이엇이 사과공지를 올렸지만, 사태의 진정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보기에도 반발을 하는 이유를 게임사가 제대로 파악을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줬다가 빼앗아가는 일을 당한 저 기분, 저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몇년전 여름, FC바르셀로나가 K리그 올스타와의 친선전을 위해 한국에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발표를 하면서 분노한 축구팬들의 원성과 티켓 환불이 이어졌고, 상암경기장의 FC바르셀로나-K리그 올스타 친선전은 관중이 절반 정도밖에 차지 않은 휑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거센 반발에 직면한 주최측과 FC바르셀로나 측이 메시를 15분 정도 투입하는 형태로 중재되었지만 축구팬들의 분노를 달랠 순 없었죠. 물론 메시는 대단해서 그 15분동안 두골을 넣긴 했습니다.

축구와 이번 롤드컵의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시간입니다. 롤드컵이 며칠 뒤, 일주일 뒤라면 분명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100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그 사이 여러가지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고, 분노한 감정 역시 지금보다는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울러 롤은 탄탄한 기반을 가진 압도적인 흥행게임입니다. 아무리 안좋은 일이 있다 해도 한번 자리잡은 게임이 쉽게 무너지는 일은 상당히 드물 뿐더러, 롤 게이머들이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는 큰 폭의 변화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라이엇과 롤에게 별다른 대미지가 없어보이겠지만, 진정으로 라이엇이 크게 상실해버린 것이 있습니다. 바로 라이엇과 롤에 대한 배리어, 그리고 까임방지권입니다. 그 중요한 방어무기를, 어이없는 이번의 의사결정으로 날려버린 셈이죠.

서버, 트롤링, 핵 등으로 인해 게임사에 대한 비판의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긴 했지만, 이번 사태 이전까지 라이엇과 롤에 대한 이미지는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특히 롤이 자리잡던 초창기, 유료화 모델에서 호평을 받았고 돈을 적게 쓴다는 면에서도 호응이 좋았습니다.

여타의 흥행게임들은,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게임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많은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라이엇과 롤은 약간 예외적인 상황이었고, 초창기에 쌓았던 저런 이미지들이 바로 여타의 대미지를 차단해주는 배리어, 그리고 까임을 방지해주는 권한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배리어는 해제되었고, 까임방지권은 소멸했습니다.

라이엇과 롤에 대한 우호적인 버프도 사라질 것이고, 여타의 게임사들 못지 않게 비판적인 시선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실수들을 배리어에 의존하여 별 탈 없이 넘어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작은 실수조차도 하나하나 파헤쳐지며 게임사에 대한 비판의 의견들이 나올 것입니다.

배리어와 까임방지권은 당장 흥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종의 무형 자산입니다. 회사가, 게임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정말 신중하게 써야 하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자 전략 무기입니다.

일종의 믿음이자 신뢰였습니다. 이런 것은 쌓기도 어렵고,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게임사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번 분산개최는 바로 이 절대무기, 즉 배리어와 까임방지권을 날려버렸고, 앞으로 라이엇은 맨 몸으로 한국의 롤 게이머들과 대면해야만 합니다.






절대무기의 소멸과 함께, 게이머들은 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역시 내려놓았습니다. 게임에 대해 애정이 식고 다른 게임으로의 이동을 고민할 때, 한번 더 발길을 붙잡는 것은 그간 해왔던 게임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롤 게이머들은 이걸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미련과 아쉬움을 이번에 내려놓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중에 이런 상황이 다가왔을 때 아무런 고민없이 판단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라이엇의 '줬다가 빼앗아가는 방식'의 분산 개최 발표는, 자신들이 보유한 절대 무기를 소멸시키고, 게이머들이 가진 미련과 아쉬움마저 제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들만 소멸되었고 단기간에 별다른 영향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국 롤의 이런 현실을 과연 라이엇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됩니다. 그간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던 경쟁게임들에 대해 이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쟁게임들보다는 한국의 롤 팬들을 신경쓰는 일임을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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