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이 4대 중독? 뿌리부터 잘못된 인식

칼럼 | 이종훈 기자 | 댓글: 62개 |




부작용만 보인다? 불편함에 뒤척이는 나날들


게임(Game)이란 본래 재미를 목적에 두고 탄생한 미디어다. 음악은 듣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책은 읽음으로써 빠져들게 되며, 스포츠를 관람하며 열광하는 것처럼, 게임은 플레이하는 자체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다. 공부에, 구직활동에, 사회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한가득. 그들은 저마다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한 이른바 '여가생활'을 찾곤 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재충전하기 위한 수단 말이다.

하지만 학생이든, 젊은이든, 어른이든, 연령대와 상관없이 일상과 별개로 즐길 만한 것이 그리 마땅치는 않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그리고 비용이 문제다. 이런 상황들과 맞물려 떠오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다. 일단 저렴한 비용으로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치고 게임은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에 빠져드는 것은 인간 본능의 영역,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게임의 과몰입이나 중독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더러, 현실에서 하는 일이 재미없고 지겹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그로부터 잠시나마 피하고자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됐고, 한 번 맛을 보니 적당히 제동을 걸지 못하고 빠져들고 마는 것.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게임의 부작용이다.

하지만, 게임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게임 전체를 원천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그리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사전적 의미로 부작용(Side Effect)이란, 어떤 일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단면을 말한다. 즉, 주된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과도하게 파고들 때의 문제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부작용을 문제 삼아 현상 자체를 도려내고 족쇄를 채우려했다면 사람들이 빈번하게 즐기고 있는 놀이나 여가 문화들이 지금처럼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요 얼마간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이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묶였다는데,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불편한 상황을 삐딱하게만 바라보지 않기 위해,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안에서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과몰입과 중독. 그래, 게임이라는 영역에 과도한 몰입과 중독이라는 요소가 있음은 앞서도 말했듯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 전체를 술, 도박, 마약과 같은 선상에서 논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정말이지, 답답한 마음에 누운 자리가 영 불편한 나날일 수밖에.






술, 도박, 마약, 그리고... 게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술, 도박, 마약... 모두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이다. 주도(酒度) 문화라든가 카지노 사업장, 의약목적의 사용 등 제각기 다른 일면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우리 사회에는 이들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강하다.

무엇보다도 술, 도박, 마약에 대한 보편적 시선을 만드는데는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됐다. 음주 사고 기록, 도박과 관련된 사건 사고, 마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자료들이 그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봤을 때, 게임을 4대 중독에 포함시키는 것은 아직 타당하지 않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공감각적 미디어'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과몰입이나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단면도 가지고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게임을 주제로 한 객관적 연구 사례는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하다.

몇몇 범죄를 다룬 뉴스들만 살펴봐도 "한편, 용의자는 상습적으로 게임을 즐겨왔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식의 문장이 뉴스 막바지에 떡하니 자리한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 실제 게임으로 인한 분쟁도 분명 있지만, 문맥과 관계 없이 일부러 끼워넣은 듯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치, 게임이 모든 사건의 근본적 원인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게임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의학이나 심리학과 같이 보편적으로 신뢰할만한 학문적 근거가 없다고 항변해봐도, 이미 게임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등에 업은 일부 정계 인사들이 “이때다”하고 규제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식이다.

물론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능성, 적어도 게임에서 다뤄지고 있는 폭력적 콘텐츠가 인간의 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에 합당한 근거가 없다는 것. 게임이 사회 문제와 연관이 있다면, 관련된 모든 요소와 변수를 놓고 연구한 과학적 또는 논리적 결과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총기로 인한 인명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원인으로 비디오 게임이 지목된 바 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게임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폭력성 범죄와 게임의 연관성을 연구할 것을 지시하고 1천만 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105억 원)의 예산지원을 의회에 요청했다.

최소한 이 정도의 노력은 선행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이 "게임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게임에 대한 그의 시각이 우호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그의 중립적 자세다.

그에 비하면 이번 법안을 발의한 정계 인사들은 어떤가. 게임이 본래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작용만 보고 이미 '게임은 사회악'이라고 낙인 찍어버린 모습이다. 그들에 대해 '성급하고 감정적인 태도'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업계 편 들기'이고 '근거없는 억지'일까?



업계 규모부터 현황까지, 객관적인 데이터부터 파악해야



외부 인식에 대한 무관심, 위기를 부르다


이쯤에서 다시 원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자는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감싸안기에는 그간 게임업계의 대처가 너무도 안일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게임은 모든 분야에서 의미있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업계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기존 사회의 한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음이 분명하다.

문화콘텐츠의 영역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갖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면 기존 사회의 저항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게임이라는 것을 낯설어하는 세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게임은 잘 모르는 것이며, 그러다 보니 경계심을 갖거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많다.

그간 게임업계는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것에만 힘을 쏟아왔다. 경계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을 다독이는 일, 그리고 긍정적 인식을 쌓아가고 확산시키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음이 사실이다.

최근 여러 기업들이 국내 및 국외에서 의미있는 사회공헌을 진행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기업 이미지에 대한 긍정적 반응도 적지 않게 얻은 바 있다. 그렇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본래부터 취약했던 사회적 인식 위에 과몰입과 중독이라는 단면들이 더해지면서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들만 접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게임 규제의 목소리를 내는 정계 인사들에게는 그들 모두가 기반 세력이 되는 셈. 상대방이 '다수'를 등 뒤에 두고 있는 상황을 가벼이 보거나 외면한다면, 게임업계가 그에 맞설 수 있는 논리를 갖출 수 있을리 없다. 충분한 힘과 논리적 근거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부당하다고 울분을 토해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저 공허한 울림이 될 뿐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다. 최근 정계에서도 게임을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e스포츠협회장 취임해 업계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데다 최근 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역시 게임산업협회장을 맡아 업계관련 이슈를 여럿 만들고 있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게임에 대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내놓았다.

게임 자체의 인상을 바꿔나가는 일은 결국 업계가 발벗고 나서야할 일이다. 기업으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다. 게임과 사회 간의 소통.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숙제가 떠오른 지금, 정계의 긍정적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이때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닌가.



정계에 필요한 것은 '중립성', 업계에 필요한 것은 '적극성'



'뿌리'부터 잘못된 인식,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현존하는 게임 중독 사례를 수습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뿐이라는 것. 그들은 눈앞의 불만 바라보며 꺼야한다고 외치고 있을 뿐, 애초에 무엇 때문에 불이 붙었는지는 찾으려하지 않는다. 기름으로 붙은 불에 물만 잔뜩 끼얹을 기세다.

규제에만 열을 올리는 정계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는 게임이 정말 '원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있는가?

한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어떤 웹툰에서는 게임 규제의 대표적 사례인 셧다운제와 관련된 사건을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해당 회차에서는 '청소년 게임 중독은 사회적 영향의 반영이다. 왕따, 학교폭력, 가정불화에 노출된 학생들은 게임이라는 가상현실로 도피한다.'는 근거 자료를 인용한 바 있다. 이는 게임 중독이라는 현상과 사회 안에 만연한 문제의 인과관계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게임으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고 관리하고자 한다면 먼저 게임의 어떤 요소가 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알아야 하며, 좀 더 나아가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하도록 하는지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고려해봐야 한다.

또한, 게임이 콘텐츠 분야 산업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 규모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제대로 파악해야한다. 그것을 어느 정도 규제하면 어느 정도의 여파가 발생할지까지 신중하게 가늠해보고 함께 제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도,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아는 상태에서 이야기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개인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채워진 비방 또는 뒷담화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물며 게임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있으며 범국가적,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하나의 '산업'이다. 하나의 산업 체계에 부작용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일거에 고치려 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으로, 크게 내다보고 접근해야함이 옳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라. 뿌리부터 잘못된 인식으로 무장한 몇몇 정계 인사들이 성급하게 공격적인 법안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님 코끼리 말하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법안을 내놓은, 그리고 거기에 동의한 정계 인사들에게 딱 적합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코만 만져보고,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논함은 합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일부 단면에 집중하는 그들에게 수많은 업계 종사자들의 정당한 '직업'을 불법 행위와 사회악으로 엮을 권한이 있는가?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은,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가 일부 계층만을 대변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5천만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렇기에 보다 넓게 보고 신중하게 접근함이 옳을 것이다. 눈을 가린 채 만져본 것으로 코끼리의 모습을 판단하려는 일부 인사들은 그 안대를 벗길 바란다. 전체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금 행하는 것의 순서가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국내 정치계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관련된 정보를 축적하려는 노력이다. 게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충분한 안목과 근거를 갖출 때까지 정당한 예산을 들일 자세부터 갖춰야한다. 중립적인 시각으로 객관적인 주제를 정하고, 적절한 표본과 공정한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 결과를 축적해나가야 한다.

여기에 업계의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에 이미 정착해 있는 다른 문화콘텐츠들이 어떤 부작용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소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은 업계의 역할이다. 시장 내부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 대신,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넓은 눈으로 보고 그 안에서의 포지션을 스스로 쌓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적절한 '관리'에 우선 조준점을 맞춰야하며, 진흥과 규제 등의 법률은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결정할 일이다. 중독 현상을 더 앞에 놓고 보는 시각으로 '이것이 게임을 위한 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춘 뒤에 이야기를 꺼내야만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법. 부정적인 단면만을 노려보고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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