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중독법을 바라보는 기자의 단상 - 우리는 어디로 소용돌이 치는가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62개 |
‘묻지마 살인’이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얼핏 보면 아무런 동기 없이 일어난 사건 같지만, 그 이면에는 대부분 비슷한 이유가 발견된다. 사업실패, 연애 좌절, 사회부적응 등 어떤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오직 타인 혹은 사회, 국가에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유발하는 정신착란.

그 속에서 어떤 근거나 논리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사이비 종교와도 유사한 맹목적인 신념은 가득하다. 그래서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는 주로 그 살인범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주변의 선량한 일반 시민이 된다.

최근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이슈 속에서 '묻지마 살인'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설까.



▲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신의진 의원이 지난 6월에 발의한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은 알코올, 도박 ,마약에 게임을 포함해서 국가가 관리하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의진 의원이 그 법률안에서 말하는 '인터넷 게임'의 정체가 상당히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이라는 문화콘텐츠는 급변하는 IT 기술과 함께 성장한 만큼 커다란 카테고리 속에 수없이 다른 형태의 게임이 존재한다. 그 게임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의 종류도 PC, 모바일, 콘솔, 태블릿 등 천차만별이다.

그 방대한 영역에서 중독물질로 포함하자는 ‘인터넷 게임’ 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무엇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거의 모든 게임이 신의진 의원이 말하는 '인터넷 게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으로 내려 받은 스마트폰 바둑 게임이 국가가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중독 물질'로 충분히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 신의진법 제2조 4대 중독의 정의 중에서



심지어 법률안 제2조, 정의를 내린 부분에서는 ‘인터넷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라고 되어 있는데 이 조항은 게임뿐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독서, 음악, 영화 감상 등 상당히 포괄적인 문화콘텐츠를 중독물질로 규정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결여되어 있는 법률안이 온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는데도 법률안을 발의한 본인은 정작 게임에 대한 경험이 “예전에 해봤던 테트리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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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것은 법률안의 근거로 사용되는 보건복지위원회의 조사결과가 ‘‘게임’도 ‘인터넷 게임’도 아닌 ‘인터넷 중독’에 대한 자료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도표를 보면 2004년에는 14.6%에서 2011년에는 7.7%로 해가 갈수록 그들이 주장하는 인터넷 중독률도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고위험군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증가율은 작년 대비 고작 0.3%에 불과하다.




▲ 보건복지위원회가 제출한 검토보고서 중에서 / 항목이름은 '인터넷게임 중독'이지만 자료는 인터넷 중독이다.



설령 게임이 아닌 인터넷 중독이 문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인터넷 중독을 공식 질환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는 더 연구와 근거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보류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의사니까, 전문가니까 무조건 믿어라. 게임을 4대 중독에 포함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며 반대파에서 합당한 반론을 제시해도 ‘말꼬투리 잡기’ 내지는 ‘게임업계의 피해의식’으로 깎아내리는 걸 보면 묻지마 살인에서 나타난 왜곡된 정신상태와의 차이점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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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중독을 유발하니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맹목적 신념의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게임산업 종사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묻지마 살인의 원인이 게임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게임중독에서 '중독'은 질환이 아니라 ‘정말 재밌다’의 은유적 표현이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조만간에 마약떡볶이를 소탕하겠다며 홍대 일대에 긴급 출동한 마약 기동타격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게임중독법, 우리는 어디로 소용돌이 치는가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의 굴레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소용돌이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이 최소한의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라는 굳센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건강과 청소년 보호'라는 듣기 좋은 허울 속에 명확한 논리와 근거 없는 법률이 논의되는 지금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순간의 그릇된 판단이 성실히 생계를 이어가는 수백, 수천만의 가정은 물론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임 산업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여기에서 4대 중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극도로 위험한 대상은 ‘게임’인가 아니면 ‘무지’(無知)인가. 내 상식은 주저 없이 후자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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