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MBC "도 넘은 폭력게임" 생생관람기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77개 |
※ 이 기사에는 여느 기사와는 다르게 인터넷 문화 및 특정 기사에 대한 다양한 패러디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불편하신 분은 미리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온가족이 모여서 포근한 휴식을 즐기는 일요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도 넘은 폭력게임'이라는 헤드라인의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첫 시작에서 최일구 앵커는 폭력성 게임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노출되어 있다며, 이른바 '묻지마 살인'식 게임을 언급합니다.


급기야 카뮈의 소설 이방인까지 꺼내드는데,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단지 '태양이 강렬해서' 말도 안되는 '살인'을 한 대목을 언급하면서 그런 일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속에서 "What the..."라는 반응이 0.1초만에 튀어나왔지만, 설마 전 국민이 보는 정규 뉴스프로그램에서 설마 그러겠냐고 고개를 저으며 채널을 고정시켰습니다.



첫번째로 FPS 게임인 서든어택이 등장했습니다.


화면에는 서든어택의 청소년 이용불가버전이 나오면서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피가 튀는 장면이 연속해서 흘러나옵니다. 덧붙여, 현실에서 초등학생들이 이런 게임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름 모를 UCC 영상을 보여줍니다.


'아무거리낌없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깁니다.'라는 멘트가 뉴스 취재기자 특유의 목소리와 결합하면서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뿜어냅니다.








전 단지,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이...

설마 MBC 취재기자님이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서든어택은 청소년이용불가와 15세 이용가 두 가지 버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뉴스에서 나온것처럼 초등학생들이 서든어택을 플레이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초등학생들이 서든어택을 청소년이용불가 버전으로 플레이했다면 법으로 지정된 게임등급이 완전 무시되며 서비스되고 있는 PC방 내지는 포탈 운영 실태에 대한 취재가 있어야하는 건 아닌가. 대한민국 게임 등급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사후 관리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가. 저 초등학생들은 어떻게 나이에 맞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네.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자) '서울의 한 PC방, 게임을 즐기는 초등학생의 입에서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바로 그 초등학생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 화면이 클로즈업되는데 화들짝 놀랐습니다. 어? 이건 GTA: 산안드레스?


(기자) 묻지마 살인을 하면 할 수도록 돈과 점수는 올라갑니다.


MBC에서 특별히 게임의 폭력성을 취재하기 위해 연일 서울의 PC방을 전전긍긍하며 매의 눈으로 부단한 노력을 펼쳐왔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 ▲ 이 게임이 왜 이 시점에 다시 등장했을까.. ]




그 게임이 자그만치 지금으로부터 북미에서는 6년 전에, 국내는 4년 전에 출시한 오래된 PC 패키지 게임인데다가, 그 당시 이미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엄청난 경고문과 함께 ‘청소년이용불가’로 심의를 받은 게임이다.

또한, GTA: 산안드레스는 PC방 게임순위 점유율 순위 100위까지를 뒤져봐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으로 PC방에서 플레이되는 게임이 아니다.

근데 왜 뉴스에서는 초등학생들의 대표게임처럼 나왔으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청소년이용불가 패키지 게임을 PC방 컴퓨터에 설치해서 초등학생들에게 플레이시켰다는 건데 PC방 업주의 위법성에 대한 언급은 왜 없나.



....아, 감히 이런 궁금증들을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게 '억지설정'이진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뉴스에서 설마하고 넘겼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니 게임 뉴스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기본적인 부분'은 빠트릴 수도 있다. 또, 이걸 가지고 게임을 아는 사람들이 무작정 비난을 하는건 너무 지나친 것이다. 우연히 취재차 첫 번째 PC방을 방문했는데 GTA: 산안드레스를 플레이하며 욕설을 무차별적으로 내뱉는 초등학생을 만날 수도 있었던 게 아닌가.


애써,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단, 다음 장면에서 펼쳐질 '역사에 길이 남을' 대실험(?)을 보기 전까지는요.



MBC의 실험 과정과 결론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20여 명의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에 몰입해 있는 PC방.

2.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뒤,

3. 게임이 한장 진행 중인 컴퓨터의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끈다.

4.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5. 학생들이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거다.












▶ [MBC 뉴스]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실제 폭력부른다" 보러가기 ◀

※ 주의: 시청 후 정신적 충격에 빠질 가능성이 큼.





이 실험과 기자님의 멘트 콤보 때문에 순간 패닉상태에 빠져 무장해제 당한 채 소파에 널부려져 있는데,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님이 등장해 '충분히 이럴 수 있다'는 코멘트를 날리면서 대미를 장식합니다.


"...................."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이없음이 바로 이런 걸지도 모릅니다.


사실,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게으른 자세로 기사를 쓰기보다는, 이 추운 겨울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 PC방을 곳곳을 취재하며 리얼리티와 휴머니티 정신에 입각, 직접 PC방 전원 차단기에 손을 올리시는 폭력, 아니 '행동'을 보여주신 점은 정말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도가 이어진 직후 MBC 시청자의견 게시판에는 저처럼 "큰 뜻"을 미쳐 다 헤아리지 못한 시청자들의 불만 게시물이 폭주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 ▲ MBC 시정자의견 게시판은 지금 폭발 중 ]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SNS도 금번 보도 때문에 후끈 달아 올랐고, 특히 몇몇은 "뉴스인지 몰랐다. 예능 프로인줄 알았다"며 실험에 대한 각종 패러디를 마구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MBC 시청자 게시판과 트위터의 글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해 올리자면....


























최근 민주당이 2월 임시 국회에 등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작년 여당의 합의 없는 예산안 통과는 잊지 않았지만 민생 안정을 위해서 일단 참가하겠다는 설명입니다.


아무튼 이로써 2월 임시 국회는 일단 정상 가동될 것으로 보여지고, 그동안 계속해서 처리가 되지 않았던 게임법 개정안도 비로소 통과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법 개정안에는 오픈마켓 자율 심의 등, 서두르지 않으면 급변하는 전 세계 환경변화에서 국내 게임업계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혹자의 주장들처럼 최근의 방송 매체 보도의 분위기와 금번 MBC의 보도가 이 기회를 틈타 청소년 셧다운제도 등으로 시시탐탐 게임법 개정안에 태클을 걸어왔던 '여성가족부의 힘을 실어주자' 내지는 '다들 게임 때리네? 우리도 때려 볼까~"라며 편승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금번 MBC의 '도 넘은 폭력게임' 보도는 게이머를 넘어서 대부분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며 수만가지 오해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게이머들의 많은 반대가 있긴 했지만 "게임=마약"설을 주창해왔던 여성가족부 혹은 정부 관련 부처에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가 더해지지 않도록, MBC 뉴스데스크는 2월 임시 국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의사당의 전원을 내려 '국회의원의 폭력성'에 대한 보도를 내보낸다면, 이번 보도로 인해 떨어진 형평성과 객관성은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 다만, 과거 국회의 분위기를 볼 때 정상적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지는...)



여기서 참을 인(忍)자를 세번 새기며 역사에 길이 남을 MBC 뉴스데스크 '도 넘은 폭력게임' 보도에 대한 관람기를 마치겠습니다.





[ ▲ 이 상황에서 국회의사당 전원을 내린다면 전 국민이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