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율심의 가로막는 벽, 심의 그 이상을 향해서

칼럼 | 이동원 기자 | 댓글: 24개 |
2011년 벽두를 장식한 '심의계'의 사건. 그 유명한 '주차장 지붕 때문에 심의 못받았어요'의 영향은 컸습니다. 평소에 게임심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던 공중파와 메이저 언론사까지 부당한 규제, 과도한 행정에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에서 앵그리버드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는 원인으로, 앱스토어의 14세의 천재 소년이 나오지 못하는 원인으로 게임 심의 제도가 지목받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화제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 정덕영씨는 국회에서 열린 '심의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의 패널로 초청되었습니다. 국회의원 주최의 토론회를 많이 다녀보았지만 메이저 게임업계 관계자가 아닌 개인 개발자가 패널로 초청된 것은 처음 보는 일입니다. 심의제도의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몸소 체험했던 그는, 해외 앱스토어에 게임을 등록할 때 몇 번의 클릭만으로 처리되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국가가 게임 제작을 방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술회했습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한 심의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는 게임개발커뮤니티 '니오티'의 운영자 천영진씨도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쯔꾸르로 만든 RPG를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심의를 받으라'며 공문을 보냈던 바로 그곳입니다. 천영진씨는 이 날 토론회에서, 개인이 배포하는 수준의 비영리 게임은 자율로 등급표기를 하도록 하고 사후에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공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게임이 유통되는 앱스토어 형태의 오픈마켓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인식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개인 개발자들의 게임 창작 의지를 꺾는 과도한 행정절차나 심의 강제는 풀어내야 한다는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픈마켓 자율심의'에 대한 법률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되어 있고, 비영리 인디 게임은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추가적인 예외조항에 대한 법안도 제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도 게임심의를 민간자율로 하는 방안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민간자율심의제도가 도입되면 애플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도 열릴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비영리 인디 게임의 '강제' 심의 부분도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마련된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게임 심의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서 게임심의를 민간자율로 한 전례가 없다보니 고려할 사항은 많습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김민규 아주대 교수는, 무엇(what)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어떻게(how)해서 고비용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 시행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when)인지, 개별 개발자가 자체 심의를 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who) 심의 권한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 이전에도 자율심의가 넘어야 할 벽은 많습니다. 문화부는 급작스럽게 심의 제도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 오픈마켓 자율심의부터 처리하고, 온라인 게임, PC게임, 아케이드 게임 순으로 단계적으로 심의제도를 바꾼다는 계획이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나라 게임심의제도의 독특한 태생적 환경입니다. 원래 게임 자율심의는 2006년에 논의가 충분히 되었던 건입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사건의 여파로 사행성 문제가 크게 부각되면서 자율심의 논의는 쏙 들어가버렸습니다. 다른 나라의 게임심의기관과 달리 게임위가 게임에 등급을 부여해주는 일 전에, 사행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임무 또한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정상적인 문화콘텐츠로 건전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대다수의 유저들의 체감과는 달리, 게임위는 여전히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들이 법망을 피해가며 영업을 하고 있다 전합니다. 게임을 가장한 사행성 게임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입니다. 카지노나 빠찡코가 자연스러운 해외의 상황과 국내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자율심의를 하더라도 결국 사행성 여부를 체크하는 처리과정은 자율심의 이후에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심의 받을 때는 정상적인 게임으로 위장했다가, 게임기를 개조해 사행성을 추가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셧다운제도 문제입니다. 자율심의의 첫 걸음인 오픈마켓 자율심의는 결국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열리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트워크 기능을 가진 온라인 게임은 PC든 모바일이든 스마트폰이든 가리지 않고 '셧다운'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여성가족부의 논리가 적용된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셧다운제가 앱스토어에도 적용되면 애플 앱스토어에 올라온 많은 게임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받아 연령 확인을 하고 12시가 지나면 자동으로 게임이 꺼지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아마 애플은 한국의 이런 규제법을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기보다는 지금처럼 게임 카테고리를 열지 않는 것을 선택할 공산이 큽니다. 기껏 오픈마켓 자율심의 법을 통과시켰는데 막상 게임 카테고리는 열리지 않고 그대로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율심의를 해도 강제적인 사전 검토는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게임을 문제 삼고 있는 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청소년위원회가 게임 중에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있는지 확인을 하겠다고 나서면, 결국 지금 게임심의를 받는 것과 비슷하게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니라는 것을 사전에 심사받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게임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입니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폭력성을 보여주겠다며 PC방 전원을 끈 방송이야기에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게임이용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무보정보감시단 이경화 단장은 본인도 자녀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다른 학부모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게임에 빠져있는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에 대한 우려를 듣게 된다고 합니다.


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몰이를 하는 세력의 존재가 의심될 정도라며 모순된 상황에 답답해 했습니다. 영화 수출 100배 규모에 달하는 문화콘텐츠 산업 1등인 게임산업. 육성하고 진흥하자고 하면서도 게임에 대한 규제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오래 했더니 뇌가 어떻게 되었다고 그러는데, 그런 대단한 발견이 왜 의학지에는 실리지 않느냐고 김성곤 사무국장은 반문합니다.





▲ 역사에 길이 남을 패러디의 소재가 된 MBC의 PC방 실험.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출처 : 이말년씨리즈)



다행히 신임 문화부 장관은 셧다운제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게임산업의 발전에 과도한 규제가 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생각도 있어보입니다. 문화부도 자율심의를 향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관련부처인 여성가족부와의 협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 날 토론회에서 문화부 담당자로부터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은 여전히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심의 사건이 생길 때마다 심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위가 질타를 받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게임위는 법에 정해진 것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게임위가 아니라 정말 '심의 제도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요.


심의 수수료를 어떻게 해달라, 심의 과정이 복잡하다는 정도의 논의를 넘어서, 게임위가 아닌 민간자율심의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들이 필요한지. 정부가 아닌 민간이 심의를 담당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어떻게 쌓아나갈 것인지. 당장 자율심의를 도입해도 생겨날 여러가지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에 사업자들이 어떻게 힘을 합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토론회는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2월에만 청소년 게임이용 셧다운제에 대한 토론회와 오픈마켓 등급분류에 대한 토론회가 더 열릴 계획입니다. 2011년이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로 게임산업에 큰 변화가 일어난 해로 기록될 수 있을까요.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올 해야 말로 '지혜를 모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