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트에 1980만원? 아케이드가 죽어가는 이유

칼럼 | 김성호 기자 | 댓글: 50개 |
▷ 1. 아케이드 게임계의 희망이었던 철권 태그토너먼트2


2011년 9월 3일 일본반다이남코게임즈가 개발한 아케이드 기대작 '철권 태그토너먼트2'의 국내 유통 가격과 조건 발표가 있었습니다.


'철권태그토너먼트2'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케이드 전성기를 이끌었던 '철권 태그토너먼트'의 정식 후속작입니다.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매니아 시장으로 전락한 지금까지도 철권만은 그 인기를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철권 태그토너먼트2' 출시가 발표된 순간부터 국내 아케이드 시장 관계자들과 유저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 타이틀이 다시금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활력소가 되며 유저들을 게임장으로 불러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철권 태그토너먼트2가 게임장에서 가동을 시작하기로 한 10월 12일 이후 현재 상황은 불과 두달 전 예측하던 그런 장밋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재미 때문이 아니라 불공정한 유통 과정 때문이어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기의 가격과 조건이 발표된 직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몇몇 업주들은 유통 조건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와중에 이미 1차 예약분이 판매되었고 이에 반대하던 업주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개발사부터 게임장 업주, 유저까지 아케이드 업계 모두의 희망이었던 '철권 태그토너먼트2'의 흥행이 채 선보이기도 전에 엇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 2. 철권 태그토너먼트2 유통 조건


유통사 연세 어뮤즈먼트가 발표한 '철권 태그토너먼트2'에 유통 조건과 가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위험부담을 게임장이 떠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장 업주들은 '철권 태그토너먼트2'의 가격과 조건이 국내 아케이드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책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철권 태그토너먼트2' 유통 가격과 조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입니다.


■ 한 세트에 1980만원, 업그레이드 킷은 수입 불가, A/S는 모두 업주 부담

'철권 태그토너먼트2'는 1세트(2인)에 198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번화가에 어느정도의 규모를 갖춘 게임장들이 현재 '철권6 BR'을 2~3조 갖추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규모로 기기를 구매했을 때 4천만원에서 6천만원 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게임장에 따라 철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임장들의 경우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금액적인 부분만 봐도 업주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마저도 처음 판매 조건에서 완화된 것입니다. 유통사인 연세 어뮤즈먼트 측에서 처음에 제시한 조건은 기기 2세트와 유저들의 경기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모니터를 포함된 세트로 가격은 5400만원이었습니다. 이 세트 외 다른 조건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해지자 업주들은 이에 반발했고 유통사에서는 기기 1세트씩 구매할 수 있게 변경하며 가격을 1980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가격이 비싸다는 것만으로 이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판매되는 물품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비싸더라도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해외에서 판매되고있는 가격과 조건을 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조건이 합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개발사인 반다이남코게임즈가 있는 일본에서는 현재 환율로 기기 한조의 가격이 약 1200만원선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기기 외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내장된 메인보드만 교체하는 업그레이드 킷도 약 900만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입니다. 게다가 업주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업그레이드 킷은 아예 국내에는 수입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원가가 확실하게 공개되어 있는 메인보드 킷은 수입을 해도 중간 이익을 크게 붙일 수 없기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기기 완제품의 경우 케이스 재료비와 조립비 등 여러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에 원가를 가늠하기 힘들고 이에 더 높은 중간 이익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 국내 수입되는 완제품 세트가 메인보드 킷과 플라스틱 프레임만 수입되고 나머지는 국내 재료로 국내에서 조립된다는 사실로 볼 때 수입사와 유통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업그레이드 킷도 유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런 조건을 모두 받아들여 기기를 들여놓는다 해도 작동 중 고장이 나면 그 부담도 모두 업주가 책임집니다.


현재 철권 기기의 A/S는 모두 일본의 반다이남코와 소니가 맡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기가 고장나면 일본에 수리를 맡겨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한달반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메인보드 수리 시에는 수리비만 120만원 정도가 들며 그동안 기기를 가동시키지 못한 피해는 업주가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업주들은 A/S 기간동안 임대하여 가동시킬 기기의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유통사는 아직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 1플레이 당 40원의 요금이 개발사로?


'철권 태그토너먼트2' 판매 조건에서 또 하나의 화두가 되는 것이 바로 과금제입니다. 판매 조건에 보면 '철권 태그토너먼트2'를 유저가 1플레이할 때마다 40원의 과금이 물리게 됩니다. 유통사인 연세 어뮤즈먼트는 이 금액이 모두 일본 반다이남코 게임즈가 가져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 과금이 정확히 어떤 콘텐츠를 이용하기에 지불하는 것인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입사인 윈디소프트와 유통사인 연세 어뮤즈먼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일본 반다이남코에 문의한 후 답변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철권 플레이에 대해 업주들에게 과금을 적용시키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철권6 BR'의 경우 카드를 구입하여 사용하면 자신의 승/패 기록과 커스터마이징, 칭호와 전투 데이터 기록이 웹에 저장됩니다. 이 시스템을 적용시킬 당시에도 반다이남코 측에서 게임장에 과금을 적용시켰지만 업주들의 반발로 인해 얼마 가지못해 무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런 과금제가 이번 '철권 태그토너먼트2' 판매 조건에도 포함이 된 것입니다. 1플레이 당 40원의 과금은 업주들 입장에서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며 이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노카드 플레이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업주들은 기기 오류를 수정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서도 과금이 계속 빠져나간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반다이남코 게임즈는 올해를 끝으로 철권6 BR의 웹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철권 태그토너먼트2'가 출시 된 이상 과거 시리즈에 대한 운영 서비스를 그만두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항들은 올해 5월 철권6 BR 기기를 구입한 업주들에게도 전혀 공지되지 않았습니다.




▲ 철권6BR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곧바로 철권 태그토너먼트2 홈페이지의 광고가 먼저 나온다.





■ 기기를 구입해도 요금은 수입/유통사가 정해준 데로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철권 기기들은 모두 코인락이 걸려있어 플레이 비용이 500원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업주가 기기를 구입해도 플레이 비용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코인락은 전세계에 판매되는 철권 기기들 중에 오직 한국에만 적용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 판매된 어떤 아케이드 게임기를 살펴봐도 업주가 가격을 조정할 수 없도록 락을 걸어둔 기기는 없었습니다. 업주 입장에서는 자신이 돈을 주고 산 기기임에도 개발사와 유통사에서 정한 가격으로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한 게임장 업주는 "이것은 거액을 주고 기기를 렌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플레이비용은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데 가장 민감한 사항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300원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철권6 BR'의 경우에도 그 가격이 안착되기까지 많은 유저들의 반발을 버텨왔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코인락을 건 가장 큰 이유는 과금제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플레이 당 40원의 과금제 적용을 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비용을 높여야 업주들과 유저들을 좀 더 쉽게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결성된 '게임사랑협의회'에 가입한 업주들이 코인락이 걸려있지 않으면 요금을 300원으로 하겠다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코인락이 걸리지 않았을 경우 40원의 과금제를 적용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사랑협의회'에 속한 업주들은 현재 500원의 가격이 유지될 경우 유저층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오르게 되면 유저들의 플레이 횟수는 더욱 줄어들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화끈한 공격형 플레이보다는 지지않기 위한 플레이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보는 입장에서도 게임은 루즈해지고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뜩이나 신규유저들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아진 현재의 철권에서 이런 플레이요금 인상은 전체적인 유저층의 급감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코인락으로 인해 플레이요금이 500원으로 인상되면 현재 철권 유저들의 '데스매치'나 '기기대여' 문화도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3. 아케이드 시장은 상관없이 기기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수입사와 유통사



이런 불공정한 판매조건을 이유로 일부 아케이드 업주들은 현재까지 '철권 태그토너먼트2'의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 10월 6일에는 '게임사랑협의회'라는 아케이드 업주들의 모임도 창설되었습니다.


'게임사랑협의회'는 9월 3일 판매가격과 조건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유통사인 '연세 어뮤즈먼트'와 접촉하여 협의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12일 연세 어뮤즈먼트가 1차적으로 판매한 기기들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신작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일부 유저들은 업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기기를 구입한 게임장에서 플레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에 '기기를 렌탈한 것이다'나 '조건이 변경되어 업주가 가격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루머가 돌았지만 기자가 직접 연세 어뮤즈먼트에 문의해본 결과 '현재 설치된 모든 기기는 판매된 것이며 렌탈 유통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코인락 역시 변경사항 없이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기가 가동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불매 운동에 참여한 업주들입니다. 일단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게임장에서 가동이 시작되면 유저들의 관심은 거기에 쏠리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구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게 이 상황이 마무리 되면 나중에 또 제2, 제3의 '철권 태그토너먼트2'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 4. 게임장은 고객이 아니다. 공생의 미덕이 필요한 아케이드 업계



아케이드 게임 기기의 가격을 두고 유통사와 업체간 마찰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철권 6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도 가격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이정도로 반발이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사랑협의회'에 가입한 한 업주는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철권6 BR'이 1100만원 선에서 판매되었는데 3년만에 다음 타이틀 가격이 2000만원으로 상승한 것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면 계속해서 가격이 치솟는 아케이드 게임 기기가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게임장들이 줄어들게 되면 아케이드 게임 시장 전체가 축소된다는 것입니다.


아케이드 게임장은 기기를 구매하는 소비자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소매상으로 기기를 들여와 다시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하여 수익을 올려야 하는 판매자의 입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판매자는 소비자들의 동향을 살피고 어떻게하면 자신이 이 물건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연구를 통해 조절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철권 태그토너먼트2' 기기에는 이러한 조절의 여지가 없습니다. 업주들은 기기를 구매하여 자신의 게임장에 들여만 놓을 뿐 가격도 이미 정해진데로 서비스해야 합니다. 그나마 플레이한 부분에 대해서도 개발사 측에서 플레이 당 40원의 금액을 가져갑니다. 가격 인상으로 줄어드는 유저층에 대한 위험은 게임장이 짊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은 어떤 게임장이 불매운동에 참여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부당한 유통 조건과 가격 앞에서는 기기를 구매했든 하지 않았든 결국에는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화살을 날려야 할 곳은 국내 아케이드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건을 내세운 수입사와 유통사입니다.


더 이상은 아케이드 게임장을 고객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이들을 같은 업계에서 협력해나가야 할 동반자로 보고 함께 아케이드 시장의 발전을 꾀할 때입니다. '철권 태그토너먼트2'라는 기대작의 출시와 함께 이러한 협력이 동반되어야만 다시금 아케이드 시장의 부활을 꾀할 수 있습니다. 공생의 미덕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입니다.


10월 6일 있었던 '게임사랑협의회' 발족식에서는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협의회의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회원들이 임시회장직을 맡고 있던 그린게임랜드의 사장 윤경식 회장의 연임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윤경식 대표의 대답은 '회원 분들의 이러한 뜻은 정말 감사하지만 죄송스럽게도 연임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철권 태그토너먼트2' 사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경우 자신은 더 이상 게임장을 운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수 년간 게임장을 운영해오며 국내 철권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있던 그린게임랜드조차 이번 사태 앞에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회원들의 지속적인 설득과 요청에 결국 회장직을 연임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지금 현재 국내 아케이드 게임장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준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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