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MMORPG 종말론에 대하여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61개 |
최근 게임계의 화두는 MMORPG다. 송재경 사단의 아키에이지를 비롯해 엠게임의 사운을 건 열혈강호2가 대망의 오픈베타를 돌입해 성적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기자가 직접 플레이도 해봤고 주변 평가에도 귀 기울여 봤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만큼 꽤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그럼에도 과거 대작 MMORPG들의 사례를 볼 때 첫 주말 동접 수와 PC방 점유율 등 각종 지표는 다소 아쉽다. 각종 규제와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의 분위기를 반전시켜줬으면 하는 업계의 기대, 즉 일부에서 언급한 ‘지각변동’의 징후도 아직은 없다.

물론, MMORPG의 확고한 수요층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잘 만든 게임은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명제는 유효할 것이다. 잠재력이 큰 게임들이기에 지금 당장 성공에 대해 가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며 앞으로 긴 호흡을 하면서 유저몰이를 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대 자본과 최신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MMORPG의 성공에 대한 기준치가 타 장르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격차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길드워2가 출시 이후 300만 장을 판매했고 타임(TIME)지가 2012년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했음에도 ‘성공인가?’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 ▲ 아레나넷의 MMORPG '길드워2' ]



사실 이제는 전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이후 국내 온라인 업계는 MMORPG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대박을 터트리기만 하면 장시간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마치 금광처럼 여겨졌다. 이미 성공한 대작 MMORPG를 소유한 대기업들은 차기작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고, 아직 MMORPG를 라인업에 두지 못한 대기업은 그 ‘하나’를 위해 자체 개발부터 퍼블리싱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빚을 내서라도 고가 게임엔진을 구입하고 고 연봉의 MMORPG 경력개발자들을 채용하며 큰 한 방을 노렸다. MMORPG에 대한 게이머들의 기대치는 항상 높았으며 지금은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실패의 고배를 들이킨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었음에도 중, 대박 게임들이 꾸준히 터져주면서 시장 전체를 볼 때 총합의 결과가 MMORPG를 만드는 게 이득이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MMORPG 전성시대였다.

지난 10년 동안 MMORPG에 대한 이런 열광적 인기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MMORPG라는 장르적 특성이 완벽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여건 속에서 게이머가 온라인 환경 속에서 분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다른 장르 가운데서도 MMORPG가 가장 잘 풀어줄 수 있었다는데 근거를 두고 싶다. 타인과 온라인에서 만나 소통하며 협력 또는 경쟁하는, 현실과는 완벽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는 MMORPG의 퀘스트, 던전 공략, PVP, 공성전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해소돼왔다.

근 몇 년간의 MMORPG의 쇠락을 두고 전체 게임시장의 위기를 예상하는 주장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도 앞서 말한 온라인 환경에서의 게이머의 욕구는 오히려 더욱 발전되고 증폭됐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반복되어온 MMORPG라는 욕구 해소 방법에서 지루함과 피로함을 느낀 게이머들이 다른 형태의 새로운 ‘무엇’을 찾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스토리와 황홀한 그래픽이라도 퀘스트 플레이라는 유사한 형태로 수백, 수천 번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국내 출시 이후 계속해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예로 들어보자. 장르로 따지면 MMORPG와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게이머들의 욕구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긴 레벨업 과정 없이도 누구나 캐릭터를 선택해서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이 선택한 아이템과 특성, 스킬 조합으로 MMORPG에서와 유사한 PvP, 협동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장시간을 투자해 꼭 만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100여 종이 넘는 캐릭터 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짧은 시간 내에 강렬한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취향과도 잘 맞는다. MMORPG에서의 거대한 커뮤니티 시스템은 없지만, 그 역할을 커뮤니티 사이트가 해결해 준다. 알트탭 키를 누를 필요도 없이 스마트 폰에서 바로 모바일 페이지로 게시판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게임 ‘안’과 ‘밖’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지고 오히려 MMORPG 보다 더 광활한 커뮤니티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바일 게임계의 핫이슈인 ‘확산성 밀리언 아서’도 마찬가지다. 형태는 카드배틀 게임이지만 그 안에 성장과 수집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특히 요정이라는 보스 형태의 몬스터가 등장하면 게임 내 친구들과 협동해야만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협동한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보상이 돌아가는 MMORPG에서의 레이드와 별다를 바 없는 소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모바일 게임 특성상 장소와 시간의 제약도 없기에 MMORPG보다 체감하는 온라인 경험은 더 끈끈하며 커뮤니티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 앱을 통해 간단히 해결된다. ‘각성 요정’이 뜨면 친구들 스마트폰에 알람이 뜨고 메신저 앱으로도 이를 알려 ‘협동’을 요청한다. 공략 노하우 공유와 득템 자랑 같은 형태의 커뮤니티도 스마트폰 안에서 이뤄진다. 그 형태와 방법만 다를 뿐 MMORPG에서의 주요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 ▲ 최근 모바일계의 핫이슈 '확산성 밀리언 아서' ]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지금 당장 MMORPG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게이머들은 점점 더 새로운 형태의 욕구 해소 수단을 요구할 것이고 '지금 형태'의 MMORPG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버텨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국내에서만 동접 수십만을 호령하던 주류 장르로서의 확고한 지위는 보장받기가 힘들다는 의미기도 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걸출한 MMORPG로 자신의 전성시대를 맞았던 블리자드가 ‘타이탄’이라는 후속작에서 누구보다 노하우를 많이 확보한 MMORPG가 아닌 생소한 MMOFPS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공식발표 후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비밀주의 정책도 있겠지만, ‘타이탄’을 어떤 형태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앞으로 승패의 관건은 이전 세대의 패러다임이었던 MMORPG의 핵심 유전자를 선별해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플랫폼 구분 없이 지금 환경과 게이머들의 니즈에 적합한 그릇으로 얼마나 잘 담아 놓느냐가 될 것이다. 해서, ‘MMO가 지고 AOS가 뜬다’는 단순한 접근법으로는 실패의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나는 성급한 MMORPG 종말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MMORPG의 종말이 아니라 MMORPG를 토대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접점을 이루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함께’ 열고 있다는 게 합당한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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