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가까워진 도쿄게임쇼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1개 |



팬데믹 이전, 불과 몇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도쿄게임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최초로 타이틀이 공개되는 E3, 그리고 뒤이어 유저 친화적인 행사로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게임스컴. 그 사이에 마지막 3대 게임쇼로 꼽혔던 도쿄게임쇼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지만 생각보다 새로운 소식들은 적기에 리마인드의 느낌이 강했다.

그렇지만 팬데믹 이후로 가장 먼저 쓰러진 건 도쿄게임쇼가 아닌 E3였다. 다른 게임쇼들 역시 팬데믹으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들의 제약이 걸리고 온라인으로 저지하는 기간을 버티지 못했고, TGS와 게임스컴은 그 기간을 버텨내고 다시 오프라인 행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게임쇼에 대해서 많은 유저들이 목말라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곳이 바로 올해 TGS였다.



▲ 3일차에 거의 10만 명이 모였다.

2023년 TGS에는 오픈 전부터 출전 기업 770개, 총 2,684개 부스 규모의 전시가 확정됐다. 마쿠하리 멧세의 전시장 공간을 전체로 활용한다는 말 자체는 처음으로 와닿지는 않았는데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존 게임사들이 주로 배치된 1~8홀 사이의 공간 중 1홀과 8홀은 반쯤 비워두거나 다른 부대 시설이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그런 것 하나 없이 모든 공간이 부스로 채워졌다.

인디게임사와 무대, e스포츠 및 굿즈가 주로 자리잡았던 9~11홀 역시 모든 공간에 게임사들과 굿즈 판매 부스들이 자리잡았다. 도쿄게임쇼의 방송 메인 무대는 이벤트홀에 마련됐고, 내부에 들어차있던 푸드 코너는 마쿠하리 멧세 후측 공간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행사장 내부에 소소하게 앉아서 쉴만한 공간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화끈한 기업들의 참가가 있었다. 몇 개의 기업들이 참가를 하지 않았음에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정도로 큰 규모로 열리는 만큼 첫 날부터 심상치 않은 인파가 몰렸다. 지난해 1일차에는 약 2만 3천여명의 관람객이 행사를 찾았지만, 올해는 3만 3천명이 넘는 인파가 집계됐다. 이는 팬데믹 이전, 2019년보다도 근소하게 앞서며 2일차 역시 마찬가지로 3만 6천여명이 넘는 인원이 방문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임에도 일반 관람객 참가가 제한되는 비즈니스 데이만 해도 7만에 가까운 인원이 행사장을 찾았다. 2019년, 팬데믹 이전의 기세를 앞지른 느낌이다.



▲ 4일차, 1관~8관까지 유저줄이 다 서있는데도 뒤에 두어바퀴 더 돌았다...

퍼블릭 데이인 3일차, 행사장을 방문한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비가 오는 날씨 속에도 행사장 내부에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으로 몰린 인파. 주요 게임 부스에서 이벤트만 일어났다 하면 부스 사이 넓직한 통로는 통행 불가 수준이 됐다.

9만 6천여 명이 넘는, 거의 10만 명의 인원이 행사장에 방문하고, 게임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인 4일차는 다소 줄어들어 7만 7천여명의 방문객이 있었기에 2019년과 비슷한 규모의 방문객들이 찾은 셈이다. 4일간의 총 관람객 수는 약 24만 명을 넘었고 오랜만에 2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이한 TGS는 대성황으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사실 돌아보면 왜이리 몰렸나 하는 이유를 마땅히 찾기가 애매했다. 게임쇼에 인원이 크게 몰린다는 건, 그만큼 기대값이 높은 타이틀이 많았거나 게임 행사 자체를 기대하는 수요가 높다는 건 당연하다. 이번 TGS는 아무래도 후자쪽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게임쇼를 못 보고 행사가 없었다는 한을 풀려는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게임사, 그리고 유저들이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보고 싶어했다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들이 별볼일 없거나 라인업이 아쉽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다크호스로 등장한 대작부터 예고되었던 기대작까지 라인업도 나쁘지 않았다. 파이널판타지7 리버스, 드래곤즈도그마2, 철권, 용과같이 시리즈, 페르소나 시리즈, FATE/사무라이 램넌트, 다이의 대모험 등 '직접 해봐야지'하고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게임들이 많았다. 참가사들도 단순히 영상 공개 등으로 참가하기 보다는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게임들을 내놓은 느낌이었다.



▲ 3일차 이후부터 겨우 부스 철거가 이뤄진 공간 한정으로 휴게 공간들이 좀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 푸드 코너는 외부로, 오히려 더 넓게 마련됐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TGS 행사장 내의 한국 IP, 한국 게임의 존재감이다. 단독으로 부스를 차린 게임사도 있었고, 정부 혹은 지자체 주도로 TGS에 마련된 한국관 부스에도 많은 업체들이 참가했다. 기존처럼 일본 유통사를 통해서 부스를 마련하고 방문객들을 맞이 하기도 했으며, TGS의 독특한 코너중 하나인 패밀리 게임 에어리어에서 까지 한국 게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이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한 보람이 느껴졌다. PC온라인과 모바일 게임 위주로 성장한 가운데 마침내 한국 게임들이 좀 더 가지를 뻗어나가 이제는 콘솔에서도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연과 취재의 영역은 더 놀라웠다. 아무래도 이런 해외 게임쇼들은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 빌드가 자체가 없다시피하다. 취재 목적의 시연이기에 신경을 써서 지원을 해주곤 했으나 어디까지나 '자리'만 간신히 마련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어 빌드나 안내같은 건 당연하게도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현장에서 시연하는 순간부터 달랐다고 할 정도로 한국어 빌드를 꽤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심지어 미디어 제공용이 아닌, 방문자용으로 만들어진 한국어 안내 조작판을 포함한 게임 빌드도 준비된 것을 봤다. 더 나아가 한국어(혹은 한국인 직원의) 안내까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시장과 유저들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해외 게임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다.

취재 목적이기에 어느 정도 배려가 더 있었다고 해도 과거에는 그런 '배려'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기본이었던 시절과 달랐다. 단순히 한국 관계자들과 취재를 위해 한국어 안내문을 만들리도 없으니 방문 유저들까지 신경을 쓴다고 볼 수 있다. BTB로도, BTC로도 한국을 신경쓰고 있다는 뜻이다.



▲ 다는 아니지만 몇몇 타이틀은 조작 안내도 있었고, 한국어 빌드로 시연도 가능했다.

현장에서 느낀 도쿄게임쇼의 결기는 사실상 과거의 위상이 부활한 느낌이었다. 흔히 규모만 크고 '볼 게 없다'라고 할만한 게임쇼가 아니었다. 볼거리도 풍부했고, 사람도 많았고, 할 것도 많았다. 오히려 너무 게임들이 많아서 부대 편의 시설이 다 외부가 되면서 현장에서 앉아서 쉴 공간조차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주최측의 의지도, 게임사들의 의지도 충만했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쇼를 즐기고 싶었던 유저들의 열망도 반영되어 성공적인 TGS가 됐다.

한국 게임들의 약진을 볼 수 있던 것도 좋은 성과였다. 외지에서 K-콘텐츠를 보니 반가워서 심취했다고 하기에는 정말 달랐다. 해외 게임쇼에서, 전시장 내의 모든 관에서 서로 다른 한국 게임을 만나볼 수 있던 적은 없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결실을 맺었다. 거기에 시연 빌드, 안내, 영상도 한국어를 지원하는 경우가 눈에 띌 정도로 변했다.

정말로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한국 유저들이 방문해서 한국어 빌드로 시연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만큼 TGS가 한국과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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