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한 걸음 더 전진한 '지스타 2023'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14개 |



좋은 말도, 때로는 비판도 교차하는 '지스타(GSTAR)'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스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게임쇼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오늘날에도 그 위상 하나만큼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스타는 게임사, 게이머, 게임 관련 정책에 관여된 공기관을 포함한 '게임 산업' 그 자체의 단면이다. 흔히 과거를 가늠할 때 고목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듯, 지스타는 1년 단위로 게임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게임사가, 게이머가, 그리고 게임을 대하는 대한민국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지스타 또한 예년과는 달랐다. 2021년의 지스타는 들불처럼 번지던 가상화폐 이슈 속에 있었다. 2022년의 지스타는 범세계적 위기의 종막에서, 기지개를 켠 게임사들의 성과를 대변했다. 그리고 2023년, 지스타는 대한민국의 게임 산업이 하나의 고개를 넘어 다음 목적지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바일 강점기의 황혼, 세계로 발돋움하는 출품작들

10년쯤 전, 2010년대 중반 즈음부터 게임 산업은 기존의 시대를 지나 다음 세대로 접어들었다. 스티브 잡스의 쇼케이스로 시작된 '스마트폰'은 사회적 요구에 걸맞는 속도로 발전한 집적 회로, 무선 네트워크 기술과 맞물려 기존의 게임 시장에 새로운 '플랫폼'으로 등장했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하나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초월적인 접근성은 많은 게임사들에게 새 시대를 알리는 지평과 같았고, 이 때부터 흔히 말하는 '모바일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모바일 게임이 국내 게임 대상을 차지하고, 업계인들끼리 말할 때 '신작'이라 하면 모바일을 디폴트로 생각하는 시기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 '로스트아크 모바일'의 시연 모습, 요 몇 년 간 일반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 흐름도 영원하진 않았다. 하드웨어의 발전은 모바일 게임과 기존 게임의 카테고리를 하나로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플랫폼을 나누지 않는, 어느 플랫폼에서나 비슷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게임들이 '표준'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스타 2023'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의 'LLL', 크래프톤의 '인조이', 빅게임스튜디오의 '브레이커즈'등이 모바일 독점의 황혼을 알리는 좋은 신호탄이었다. 전체적인 부스 시연대 구성 또한 스탠딩 테이블에 충전기가 연결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거치되어있던 이전에 비해 의자와 PC가 구비되어 있는 모습이 더 흔해졌다. 작년이었던 지스타 2022의 경우 게임 시연이 꽤 적극적으로 이뤄졌던 해였는데, 그 때와 비교해도 상당히 다르다.



▲ 인상적인 모습으로 꾸며진 '인조이' 시연 공간

'서브 트렌드'로서 수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서브컬쳐'의 강세는 여전하다. 기자들끼리는 이제 '서브'라고 부르기엔 너무 주류 문화가 된 거 아니냐고 웃으며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도 더 이상 이를 비주류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전체 출전작의 40% 가량은 애니메이션 기반의 비주얼을 보여주었으며, 대놓고 노린 컨셉으로 개발된 웹젠의 '테르비스' 출전이나 일본의 IP괴물 '슈에이샤 게임즈'의 출전 등은 애니메이션 기반 게임들의 인기가 앞으로도 한 동안은 이어지리란 걸 예상케 했다.



▲ 애니메이션 스타일 게임들의 인기는 여전히 높은 편



사전 예약 'ONLY', 비교적 여유로웠던 풍경

금년의 지스타 참관객은 이전에 비해 꽤 줄어든 편이다. 총 19만여 명. 고점에 이르렀을 때 24만여 명의 관객이 지스타를 찾아왔던걸 생각하면, 최고점 대비 80% 정도의 관객이 방문했다는 뜻이다. 말인즉, 현장 분위기는 발디딜 틈 없이 붐비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여유로웠다.

여전히 게임 시연 대기에 3시간을 써야 할 때도 있고, 점심시간 지하 식당가는 자리잡기조차 힘들었지만, 올해 지스타는 확실히 이전보다 통제되고 정돈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마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모든 참관객이 100% 사전 등록을 통해 방문했기 때문일 것이다.



▲ 여전히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때문에, 사전 등록 없이 현장을 방문했던 일부 참관객이 발을 돌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사무국이 이와 같은 결정을 한 이유를 유추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난 해 가을 이후 많은 인원이 운집하는 행사에 대한 안전 기준이 대폭 높아졌고, 아직 그 긴장이 풀리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기 때문에 사무국 입장에서는 모든 인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하고, 비교적 통제가 용이한 환경에서 행사를 진행하는게 최선의 수였을 것이다.



▲ 이전처럼 표 사겠다고 몇 시간 줄 서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만큼, 행사장 내 동선 유지 및 관리 스태프의 수도 이전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에스컬레이터에도 지정된 인원 수 이상이 탑승하면 잠시 대기를 시키고, 인원이 몰릴 만한 여지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노란 티셔츠를 입은 진행 요원들이 자리했다.

이전에 비하면 꽤 성숙해진 모습이다. 그럴 만한 일을 겪고서야 안전 대책이 강화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외연으로 드러나는 흥행에 집착하고 최대 관객 수를 자랑하면서도 휠체어 한 대 돌아다니기 어려웠던 이전에 비하면 훨씬 더 내세울 만한 행사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좋아진 모습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려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규모 대비 동선 통제도 이전과 비교하면 깔끔해졌다



1관에 집중된 무게감,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균형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균형'이다. 애초에 '벡스코'라는 공간은 뚜렷한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작년과 같이 올해도 지스타의 BTC 전시관은 두 곳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작년 지스타의 2전시관이 호요버스의 출전에 힘입어 터져나갈 정도로 붐볐다면, 올해의 2전시관은 누가 봐도 1전시관의 존재감을 감당할 무게추가 부족했다.

때문에, 행사 내내 2전시관은 1전시관에 비해 한산했다. 현장에 부스를 차린 관계자도, 행사장 전반을 뻔질나게 돌아다닌 기자들도 1전시관에 비하면 2전시관에 모인 관심이 비교적 부족했다고 첨언했다. 행사 전체의 분위기가 마치 '메인이 되는 1전시관과 미처 1전시관에 입점하지 못한 업체들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간 2전시관'으로 느껴졌다는 뜻이다.



▲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무게감을 보여준 1전시관

지스타의 경우 오랜 기간 BTC 단일 전시관을 사용해왔기에 2전시관 활용이 다소 어색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다관제 전시는 글로벌 게임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행사장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넓지 않은 이상 여러 관을 활용하는건 참가사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며, 주최측은 각 전시관의 무게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비교적 한산했던 2전시관

물론, 1전시관이 2전시관에 비해 명백히 크기 때문에 선호도가 갈리는 점이야 이해되지만, 지스타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이 균형의 문제는 언제고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다. 서구권 게임사들이 드물게나마 출전했던 먼 과거와 달리, 최근 몇 년의 지스타는 국내 업체들의 무대였으며, 여기에 일본과 중국 게임사들이 함께해 꾸며낸 동아시아 테마의 게임쇼에 가까웠다. 제한된 권역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표준을 지향하고 있다면, 1전시관에 집중되는 무게를 덜고 보다 넓은 공간을 평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서 수용 가능한 업체의 절대 수 자체를 늘리는게 보다 미래지향적인 방향이 아닐까 싶다.

'벡스코'라는 공간 자체의 한계도 분명하다. 해외 유수의 게임쇼와 지스타를 비교할 때 단편적으로 보이는 부분 중 하나가 '휴게 공간'의 부족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건물 자체가 좁다. 전시관 앞 광장이나 주차장을 활용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부대행사로 꾸며지는 컨벤션 홀의 몇개 층 정도는 전시관으로 꾸미면서 수용업체를 확장하는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그리고 많은 이들이 존재조차 몰랐던 서브컬쳐 페스티벌



'표준'을 향해 한 걸음씩, 이번 걸음도 잘 디뎠다

전체적인 감상을 정리하자면, '지스타 2023'은 확실히 예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했다. 한국의 지역색이 남아 있으면서도 세계 표준에 발맞춘 게임들이 다수 출전했으며, 이 작품들이 '특별한 무언가'로 취급되지 않고 이번 행사의 주인공으로서 자리잡았다. 어떠한 개인이나 집단이 의도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행사였다는 뜻이다.

다만, '이 정도면 됐다'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지스타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수식어 중 하나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게임쇼'다. 하지만 이 말이 오로지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보여주는 쇼'라는 뜻으로 통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게임 시장의 잠재력과 열정 넘치는 게이머들을 비추고,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충분히 세계에 발맞추어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 보여주고 마는 일방통행의 관광지가 아닌, 교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창구. 그것이 대한민국 게임 산업이 무시못한 세계의 일각이 되기 위해 지스타가 바라보아야 할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이번 지스타는 보여주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유수의 게임쇼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꾸준한 외연 확장과 내실 다지기를 병행한다면 '대한민국 대표 게임쇼'라는 자위적 타이틀을 넘어 '세계 X대 게임쇼'의 하나가 되는 날도 언젠가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올해의 발걸음은 나쁘지 않았다. 흙이 조금 묻긴 했지만 진창에 발이 빠지지도 않았고,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음 걸음도 조심히 디뎌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무사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을 타게 될 거다. 세계 게임 산업이 하나로 모이는 대도(大道) 말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