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톰 클랜시의 디비전2'는 왜 '40점'을 받았나?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59개 |



얼마 전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2`가 출시된 후, 리뷰 작성차 자료를 수집하다가 메타크리틱 홈페이지에 닿게 되었다. 점수는 예상한 대로 80점 내외. 기자들이 흔히 `유비스코어`라고 말하면서 낄낄대던 그 점수대다. 그러던 중 예상 못 한 점수가 눈에 들어온다. `40점?` 아무리 그래도 디비전2가 40점을 받을 게임은 아닌 것 같은데 이유가 궁금하다. 호기심에 해당 리뷰를 클릭했다. 맙소사. 상상도 못 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공화당`, `민족주의자`, `대화의 방법은 총뿐`, `무모한 폭력`.

해당 리뷰에 적힌 수많은 구절 중 몇 가지다. 단언컨대, 게임 리뷰에서 이런 말들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리뷰는 디비전2라는 게임이 정치적 음모와 부조리를 담고 있으며, `디비전`이라는 기관은 민족주의자 그룹이고, 미국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게임이라고 서술해두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의견들이다. 사람의 목숨값은 평등하고,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도 정의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매체는 `디비전2`라는 게임이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40점이라는 점수를 주었다. `디비전2`라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건슈팅 게임이지만 총을 쏘기 때문에 점수가 깎였고,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을 상정했음에도 정치적인 중립성이 훼손되었다고 점수가 깎였으며, 상대가 먼저 총을 쏘는 상황에서도 총으로 사태를 해결한다고 점수가 깎였다. 우스운 일이다. 미국은 누가 집 마당에 무단으로 들어오기만 해도 총을 쏘고, 대다수 주에서 그게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나라 아니던가?



▲ 해당 리뷰는 '디비전2'가 정치적 함의를 담았음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유비소프트로서는 한 대 맞은 기분일 것이다. 유비소프트는 벌써 수 년간 정치적 올바름을 굉장히 강조해왔고 게임 내에 `특정 종교나 문화, 이념 등과 무관하다`라는 문구를 삽입해왔을 정도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왔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들이 설정한 선에 맞춰 게임을 개발해왔을 텐데, 이 리뷰는 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격이기 때문이다.

서구권 게임 시장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화두가 떠오른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서구권 게임 시장에서는 기존의 차별적 표현과 무분별한 정치색을 띤 게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게임 내에서 이런 표현들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실제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현 서구권 개발사들은 이 `정치적 올바름`에 굉장히 민감하다. 몇몇 개발사의 경우 신봉하다시피 한다. 아니라 해도 게임을 다루는 미디어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의식하는 때도 있다.

앞서 말한 디비전2의 사례는 현 서구권 게임 시장이 정치적 올바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그런 성향의 게임 매체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사 차원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수많은 게임에 이를 강박적으로 반영하려 한다는 것이다.



▲ '다양성'에 집중하다 역사적 사실성과 개연성을 해친 사례

어제까지 보던 캐릭터가 갑자기 동성애자가 된다거나, 원작에서는 백인이던 인물이 게임판에서는 흑인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 멋지고 예쁘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를 일부러 못생기게 만든다거나, 뜬금없이 결손 장애인이 등장한다든가 하는 상황도 보인다. 거기까지도 괜찮다. 위에서 말한 문제가 터지는 경우는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게임 내적인 시스템의 점검이나, 디버깅은 뒷전일 때다.

게이머들의 니즈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게이머들 또한 다양한 인종과 소득계층, 연령대로 이뤄졌기에 이들의 정치적 견해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게이머가 공통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좋은 게임`이다. 게임이 훌륭하다면 게이머들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이 엉망진창이거나 정작 중요한 업데이트가 밀리는 상황이라면, 게이머들의 분노는 그 상황에서 힘을 준 `정치적 올바름`을 향하게 된다.



▲ 게이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뒷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난다. 게이머들은 "게임이 엉망진창인데도 정치적 올바름에 힘을 준 것"이 괘씸하기에 정치적 올바름을 욕하고, 개발자들은 "게임에 담긴 핵심 가치를 깎아내리는 게이머 층"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이들을 조롱하는 멘트를 SNS에 게시한다. 다시 말하지만,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명확하다. 그저 잘 만든 게임이다.

`오버워치`의 `솔져 76`이 동성애자건 아니건 게이머들에겐 그저 촌극에 불과하다. 다만 그걸 공개한 시기에 다른 중요한 설정들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는 없었다. `배틀필드V`는 노골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 강조했던 싱글 플레이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반면, 대놓고 인종의 다양성과 성 평등을 드러낸 `에이펙스 레전드`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 게이머들은 딱히 불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완성도가 높으면 게이머는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의 취지는 매우 좋다. 위키백과는 `정치적 올바름`을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 민족, 종족, 종교, 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정치적 올바름은 대다수 상황에서 옳은 가치이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다른 일반적인 가치들 위에 있는 절대적 가치라던가, 더욱 더 큰 선(Greater Good)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적 올바름 또한 이 세계에 수없이 많은 좋은 의도의 가치 중 하나이지,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당장 서구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만 해도 정치적 올바름과 어느 정도 대척점에 있는 가치 아니던가. 그런데도 정치적 올바름이 존중받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 덕분에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것 또한 `의견`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거다.



▲ 지금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미션. '모던워페어2'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94점이다.

결론은 이거다. `정치적 올바름`은 게임에 포함될 수 있는 수많은 가치 중 하나일 뿐, 게임이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려서는 곤란하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게임을 통해 다양한 사상과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개발사들이 뭘 나타내는지는 온전히 그들의 자유이니까. 하지만 그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만큼이나, 게이머들의 생각 또한 자유로움을 인지해야 한다. 게임 잘 만들고 게이머 층을 조롱하지 않으면 게이머들은 알아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개발사의 의도를 살펴볼 것이다.

사상의 주입과 강요보다는 `게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서구권 개발사들이 생각해야 할 과제이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쓴다 해도 서구권 개발사들에 직접 닿지는 않겠지만, 게이머들의 마음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같으며, 서구 시장의 풍토 또한 언젠가는 이곳에 닿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이 글도 국내 시장에서 쓸모가 있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그저 `푸념`에 그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게이머들이 게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게임의 컨셉도, 아트도, 그 안에 담긴 사상도 아닌, `게임의 전체적인 완성도`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가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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