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즘' 순위 점령한 '옛날' 게임들

칼럼 | 김수진 기자 | 댓글: 52개 |



지난 주말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내려갔다 왔다. 본가에는 9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는데, 대학에 들어갈 때 초등학생이 되었던 동생은 요즘 막 군대를 제대해 한창 열심히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귀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평범한 20대가 그렇듯 동생 역시 LoL을 필두로 얇고 넓게 다양한 게임들을 즐긴다. 해마다 두세 번 정도 내려가는데, 볼 때마다 하고 있는 핸드폰 게임이 바뀐다. 학생이다 보니 크게 과금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부담 없이 두세 개의 핸드폰 게임을 돌리는 편. 그런 동생이 이번에는 '바람의나라:연'을 하고 있더라.

신기했다. 현재 다운로드 순위도 상위권이고, 광고도 자주 나오는 편이니 하고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30대 이상의 '추억'을 타겟으로 한 게임이 아닌가 생각했었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남동생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예상치 못했다고나 할까. 정말 의외였다.

혼자 하느냐고 물어보니 주위 친구들이나 친한 형들도 많이 한단다. 30대인가 싶어 물어보니 나이는 모두 20대. PC 바람의나라 출시보다 늦게 태어난 동생 또래들이 바람의나라:연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궁금했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대 히트했던 PC 게임들이 꾸준히 '모바일' 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올드 게이머들은 당연히 이런 게임은 '그 시절', PC 게임의 황금기를 겪었던 이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금 살려보자!"가 이런 리메이크 게임 대다수의 메인 문구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20대가 이식작이나 리메이크작을 플레이한다. 작년 초 모바일 인덱스에서 발표한 리니지M 연령비를 보면 20대가 19.1%로 30대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리니지2M의 경우 엔씨소프트가 직접 20대 중후반 유저가 메인 층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바람의나라:연의 경우에는 올 7월 기준 20대 유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의 20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섞여 있다. 한국 나이로 2001년생이 20살, 1992년생이 29살이다. 그리고 바람의나라는 1996년, 리니지는 1998년, 카트라이더는 2004년에 출시됐다. 즉, 현재 20대들이 아주 어릴 때 해당 게임들의 최전성기가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람의나라:연을하고, 리니지2M을 하며,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를 플레이한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바람의나라:연 같은 경우, 꾸준히 '그리웠던 그 순간, 다시 느껴보기 바람!' 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그래픽 역시 리마스터 했지만 원작의 감성을 살리는 것이 목표였으며, 콘텐츠나 UI 역시 원작을 떠올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용되었다. 분명 마케팅의 목표는 그 시절,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바람의나라를 하던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넥슨이 던진 도토리를 주워든 건 20대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동생은 '향수' 때문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직접 플레이하고 직접 겪어본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닌, 이전 세대 혹은 그 이전 게임들에 대한 향수라고 했다. 옛날 게임의 황금기를 동시대를 살며 직접 겪은 것은 아니나, 방송과 SNS,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그 시절을 보고 들으며 생겨난 '낯선 그리움' 말이다.

현재의 20대에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히트했던 리니지나 바람의나라, 스타크래프트, 크레이지 아케이드, 포트리스, 창세기전 등의 게임들은 '과거'다. 그리고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닌, 지금도 원작이든 리메이크작이든 후속작이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플레이할 수 있는 연결된 과거이자 현재기도 하다.

물론 가장 흥행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지만 유튜브를 통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영상 콘텐츠의 힘은 강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쉽게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20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절에 대해 간접적인 향수를 가지게 된다. 그런 이들에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리메이크작들이 가장 익숙한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으로 등장한다.




뉴트로. 'New+Retro', '새로운 복고'. 과거의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개념이다.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층 더 나아가 현대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내는 거다. 뉴트로는 현재 패션이나 디자인,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뿐 아니라 기술, 산업적인 부분까지 뻗어 나가 있다. 그만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최신 유행 트렌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해서 소비하는 건 1020 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다.

과거의 좋은 시절을 떠올리며 아 그때가 좋았는데라며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과거를 그대로 가져와서 재연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뉴트로는 과거의 콘텐츠를 가지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새롭게 대중 앞에 선보이는 걸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출시된 모바일 리메이크나 이식작들을 한번 보자. 과거의 콘텐츠 - 히트한 PC 게임 IP - 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서 - 그래픽이나 사운드 리메이크와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 추가 - 새롭게 - 모바일 플랫폼 - 내놓는다. 그리고 여기에 반응하는 건 추억을 좇아온 3040 세대, 그리고 다른 의미로 향수를 느끼는 1020 세대이다. 어느정도 뉴트로의 개념에 맞아 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1020 세대는 '옛' 게임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그냥 예전과 같아서는 이들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옛 영광을 살리면서도 촌스럽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그 레트로함을 완전히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그들이 간접적으로 느낀 향수를 채워주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

카트라이더라는 유명 IP를 모바일로 이식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그 중 가장 성공한 '뉴트로'로 볼수 있을 듯 하다. 지난 5월 넥슨이 밝힌 바에 의하면 1020 세대가 이용자의 62.5%를 차지하고 있으며 30대의 비중 역시 19.9%나 된다. 카트라이더의 황금기를 함께 한 2030 세대도 잡고, 신규 유저 층인 10대도 잡았다.




과거에 크게 유행했던 타이틀이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되면, 그 게임을 즐겼던 사람은 반가움에 혹은 추억에 끌려 아이콘을 누르고, 당시에 해보지 못했던 사람은 궁금함에 아이콘을 누른다. '어 이거 나 알아' 혹은 '와 이게 모바일로 나왔네' 혹은 '그래도 ㅇㅇ인데, 한번 다운이나 받아볼까' 라는 생각으로.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나라에서 만들어낸 셀 수도 없이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는 이런 시대에, 게임의 뚜껑을 열기도 전 그 이름만으로 일정 유저 층을 확보한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게임은 이제 일부 세대만 하는 문화콘텐츠가 아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그야말로 전 세대가 게임을 즐긴다. 일명 '흥겜'과 '망겜'을 나누는 건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느냐다. 아무리 추억을 팔아도, 그 대상이 소수여선 의미가 없다. 다양한 세대를 사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끌어모은 유저를 지켜내야 한다.

단순히 옛 영광에 취해서 '레트로'함만을 내세우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최근 몇 년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유행 IP를 리메이크한 게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수 출시되고 있다. 그 중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익숙하지만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

유행했던 IP를 끌어오고, 사라지고, 또 끌어오고, 사라지는 걸 반복하는 경우를 이미 게이머들은 질리도록 많이 봐왔다. 덩달아 이런 최근 트렌드로 인해 대형 게임사들의 시선도 과거 IP 발굴에 집중되다보니, 굵직한 신작을 목말라하는 게이머도 많다.

이젠 단 하나의 리메이크작을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뉴트로' 타이틀이 필요한 시기다. 추억을 팔기만 하는 게임이 아닌, 아날로그 추억을 디지털로 다시 만들어주는 그런 게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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