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망겜이 다 그렇죠 뭐" - 우리는 왜 '토끼공듀'가 되었나?

칼럼 | 정필권 기자 | 댓글: 99개 |



- "아. 게임은 재밌는데 할 게 진짜 없네"
- "망겜이 다 그렇지. 뭐"

1월 26일 출시된 '몬스터헌터 월드(이하 몬헌)'로 밤잠을 줄인지도 벌써 3주차. 플레이타임은 이미 100시간을 아득히 넘어갔으니, 퇴근하고 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계속 몬헌만. 그것도 하루에 5~7시간 정도를 한 셈이 됐다. 간만에 코옵으로 놀만 한 게임이 생겨서일까, 당구장과 술집을 전전하던 친구들과의 만남은 몬헌의 신대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말로 폐관 수련하듯이 게임을 했다.

하지만 엔딩도 보고, 장비를 대충 몇 세트씩 갖추는 시점에서 살짝 지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임 콘텐츠라곤 그저 장신주 파밍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강한 역전개체를 돌고, 다시 또 돌고, 심심하니까 무기도 바꿔보고, 팬티만 입고 싸우고, 다시 또 돌고, 연습하느라 돌고, 실전에서 써보려고 다시 또 돌았다.

"아. 이번 몬헌 잘 만들기는 했는데, 막상 할 게 없네. 볼륨이 부족하다. 전작보다 몬스터 수도 적고." 소리가 무심코 나올 만했다. 플레이타임이 100시간을 넘어간 시점에서 일반적인 게임의 엔딩에 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게임 두어개 쯤은 엔딩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어휴, 망겜이 다 그렇지 뭐."

아뿔싸. 그렇게 나는 '토끼공듀'가 됐다.

문제는 분명히 질릴 정도로 게임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퇴근하고 나서 네르기간테의 뿔을 파괴하고, 사냥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1초만 줄어들어도 벅찬 달성감을 느끼고 있다. 이미 최종보스도 잡았고, 메인 콘텐츠는 대부분 완료한 시점이다. 남은 것은 소위 말하는 반복플레이, '노가다' 뿐임에도 게임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의문이 든다. 대체 왜?




누군가 "대체 왜 할 것도 없는 게임을 계속해요?"라고 묻는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미있으니까"라고 답변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유저가 타임어택에 도전하는 이유도. 장신구 파밍에 지치면서도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결국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가다는 맞지만,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유저들이 아직 게임을 플레이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끊임없이 반복함에도 게임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게임 플레이의 동기가 내부에서 시작해서다. 게임이 목표를 제공해주지 않음에도, 스스로 목표를 만들어나가고 재미에 집중한 게임 플레이를 즐기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그저 재미있다.' 젤다가 그랬고, 마리오 오디세이가 그랬듯이, 몬헌 또한 게임 플레이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게임들이 보여주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영화의 뺨을 때리는 극적인 연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 연예인을 기용한 CF, 뛰어난 그래픽이 게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AAA급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게임 플레이 본연이 주는 재미이지 않을까. 너무 당연해서 가끔은 잊게되는. 그리고 한편으로는 찾기 어려운 것이니까.

게임의 난이도와 시스템을 고려하자면, 취향을 크게 타는 게임은 맞다. 하지만 몬헌에는 몇 시간이고 의자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것이 100시간짜리 반복임에도, 같은 몹을 또 잡는 극한의 노가다여도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보옥 하나를 얻기 위해서 또 몬스터를 잡는다. 그리고 '토끼공듀'가 되어 다시금 같은 대사를 외칠 것이다.

"아. 게임은 재밌는데 할 게 진짜 없네" 라고 말이다.




▲ 그렇게 만들어진 '토끼공듀'는 오늘도 또 사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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