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4) - 냉장고가 게임기로? '사물 인터넷 시대'와 게임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7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사물 인터넷 시대'의 게임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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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다.

사람들이 단맛에 끌리는 것이 본능인 것처럼, 게임에 끌리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사실 본능이라면 너무 당연하여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지만, 사람이외의 존재들과 비교해보면 사람의 본능이 얼마나 독특한 현상인지 알수 있다.

단맛은 모든 동물이 좋아하는 맛 같지만, 고양이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단맛을 느끼는 수용기가 없다고 한다. 즉 사탕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없다. 그럼 사람은 왜 단맛을 좋아하는 것일까? 단맛은 포도당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포도당은 인간이 독특하게 발달시킨 뇌가 주로 사용하는 에너지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것을 찾게 되고, 이때 오피오이드(opioid)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어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여 주기도 한다. 맛이 달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로운 성분이 들어 있다는 표시가 단맛이기에 좋아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렁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지렁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은 단연코 흙 맛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 단맛은 '목적'이 아닌, 섭취를 지시하는 '표시'에 가깝다.

사람이 게임을 좋아하는 메커니즘은 단맛을 좋아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사람의 뇌는 익숙한 것을 못 견디도록 프로그램된 채로 세상에 태어난다. 주말에 아무도 할 일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보통 편안함 대신 지겨움을 느끼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을 체험할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겨움이 극대화되면 우리 뇌는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이와 관련된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1954년 벡스톤(Bexton)과 그의 동료는 14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감각박탈실험을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촉각을 제한하기 위해 장갑과 마분지로 된 소맷부리를 착용했고, 빛과 어둠만 지각할 수 있는 반투명 안경을 쓴 채 방음 처리된 작은 방에 있었다. 식사하거나 화장실에 갈 때만 잠깐씩 나올 수 있었다. 처음에 실험참가자들은 계속 잠을 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 있는 동안 몹시 지루해했고 자극을 갈망했다. 그래서 두뇌 게임, 숫자 세기, 공상을 하다가 드디어 시각적 환각이 나타났다.

이런 환각도 단순 환각에서 시작하여 복합 환각으로 진행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의 자극이 없어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탈핍성 스트레스(deprivational stress)라고 부른다. 참고로 환각은 정신분열증(요새는 ‘조현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심심하면 정말로 미칠 수도 있다.



▲ BBC, [완전한 격리] 방송장면 캡쳐


미국의 철학자 버너드 슈츠(Bernard Suits)는 그의 저서 ‘베짱이(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에서 게임을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깔끔하게 정의한 바 있다. 이런 정의에 의하면, 게임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유가 자신이 선택한 목표물을 방해하는 당면한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적응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이런 환경의 숙달(mastery)에 대한 보상으로 ‘재미’라는 기분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현실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장애물을 극복할 때 느끼는 성취의 경험은 게임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본능은 늘 적응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돈이든, 음식이든, 약이든 필요 이상의 것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의 본능도 무한정이 아니라 적절한 용량을 가지도록 진화됐다. 단맛은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느끼지만, 필요 이상의 단맛에는 물리게 되어 있다. 아주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는 쌀, 밀, 감자, 옥수수와 같은 곡식은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곡식들이다. 고구마나 과일과 같이 단맛이 강한 작물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으로 가끔 섭취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게임도 비슷하다. 충분한 양의 게임을 즐기면 단맛과 같이 물리게 된다. 물론 이런 정도에 도달하려면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단맛과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게임에 끌리는 것은 결과적 현상이고, 이것의 본질적 원인은 ‘지겨움’을 못 견뎌 하는 진화적 성향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 인간은 '지겨움'을 견디지 못하는 진화적 성향을 띈다.

사람들은 게임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기에 이것을 활용한 비즈니스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망하지 않을 업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관건은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질리는 현상을 피해 가며 즐길 수 있을 것인가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된다. 이런 노력 중 하나가 온라인 게임의 대규모 업데이트나 패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 노력은 본능적으로 물리는 현상을 막기는 역부족인듯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 오후, 내 맞은편에 앉아서 게임을 너덧 시간째 하는 중딩 내 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롤을 몇 판 하다가 지겹다고, 피파를 잠시 하더니, 초딩 때 하던 메이플스토리에 접속해서 버섯 잡기 놀이에 열중이다. 그러면서도 할 게임이 없다고 계속 구시렁거리다 한마디 말을 건다. ‘아빠 나랑 스타 한판 뜰래?’

이런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다보면 물리는 것처럼, 온라인 게임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이제 정점을 지나 내려가고 있음을 말이다. 사실 온라인 게임의 인기는 게임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온라인’이라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특성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판단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사실 온라인 게임 이전의 게임은 주로 콘솔이나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게임은 게이머 혹은 소수의 게이머가 게임기를 통해 즐기는 유희활동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환경으로 바뀌면서 게임의 양상도 게임기와 노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놀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그런 환경의 변화가 게임뿐이었으랴? 연락도 우편이 아니라 이메일로, 학교도 사이버 학교로, 사고파는 일도 모두 온라인화가 일어나는 일대 혁신이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혁신은 IMF라는 사건으로 대표되는 사회 구조적 변동을 가져왔다. 사실 IMF를 문화사적으로 단순화하자면, 몸을 써서 먹고살던 시대가 아니라 정보화기기(컴퓨터)를 써서 먹고사는 시대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 온라인 게임의 인기는 '온라인'이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은 속절없이 20년 가까이 흘렀다. 일찍이 유비쿼터스 개념을 펼친 마크와이저(mark weiser)는 ‘가장 심오한 기술은 사라지는 기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치 공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술을 인식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마크 와이저 식으로 말하자면 이제 온라인 혹은 인터넷이라는 것은 사라지는 단계가 된 것이다. 이제 온라인 자체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생활 일부가 되어버렸으며, 아이들은 낯선 곳에 가면 화장실보다 먼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각 심리학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가운데 열십자를 응시하고 있다 보면 주변의 현란하게 깜빡거리던 분홍색 점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감각순응(sensory adaptation)이라고 한다. 감각순응은 익숙한 것들을 무시하게 하여 새로운 자극을 빠르게 발견하고 반응하여 적응을 돕는 심리적 기제다.




그리고 이런 적응은 인간의 감각이나 지각과정 전반에 걸쳐 같게 나타난다. 더운 탕에 처음 들어갈 때 뜨겁지만, 30초 정도만 버티면 편안해지는 것이나, 정면을 응시할 때 자신의 코가 보이지만 코를 본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 게임도 마찬가지 적응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현란하게 비추어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요즘 컴퓨터나 스마트폰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온라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변화가 연일 뉴스거리다. 대체로 이런 생활 온라인화는 ‘사물인터넷’, ‘3D 프린터’, ‘무인자동차’, ‘드론’이라는 갖가지 이름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20여 년 전의 변화를 능가하는 급격한 문화사적 변동이 임박했음은 거의 사실인 듯하다. 온라인 게임도 이런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기술이 아니라 잊힌 기술이 될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아케이드 게임과 콘솔 게임이 온라인 게임에 밀렸던 역사가 온라인 게임이라고 비켜갈 까닭이 있는가?



▲ 이미 인간 생활의 근본에 깔려 있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라는 것은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는 위험과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는 도전(과제)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새것을 익히는 방법으로 인류는 놀이(혹은 게임)이라는 방식을 줄 곳 사용해왔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활용해 새로운 표준, 즉 뉴 노멀(new normal)의 문화를 끊임없이 생성해낸 것이 인류의 문화사라고 호이징가는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이런 맥락으로, 게임은 생활 온라인화 시대의 첨단 여부를 판단하는 뉴 노멀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넷 정보화, 그다음의 뉴 노멀 시대 기술은 사용자의 편리를 넘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고 부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욕구 중 가장 첨단이라는 증거의 현상적 경험은 사람들이 느끼는 ‘재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전기를 덜 먹는 냉장고, 음식을 오랫동안 잘 보관하는 냉장고는 누구나 만든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차, 에너지를 적게 먹는 차는 이제 대세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사용자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기술들, 즉 효율성이라는 물리적 혹은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매력이라는 심리적 가치를 보유해야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시대가 확실히 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마트폰의 부상은 이런 예를 잘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통화가 잘되는 전화가 아니다. 혹은 요금이 싼 전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전화기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한 것에는 앱스토어에 올라온 수많은 게임을 비롯한 애플리케이션의 자유로운 활용이 가져온 사용자들의 새로운 경험, 매력적인 경험에서 원동력을 찾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또한, 이런 뉴 노멀은 이제까지 게임과 무관한 하드웨어 및 통신서비스 제공자들이 공룡 퍼블리셔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런 변화는 기존의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사들을 졸지에 통신사의 ‘소작농’으로 만들어 버린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사물 인터넷 시대의 냉장고는 음식을 보관하는 기능을 넘어서 정보처리와 통신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쉽게 이해하자면 스마트 폰과 냉장고의 근본적인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대신할 때의 놀라운 경험처럼 냉장고도 새로운 경험 즉 재미있는 냉장고가 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퉁 쳐서 ‘냉장고 게임’이라고 하자. 냉장고 게임을 만든다면 아마도 주요 콘텐츠는 음식이리라.

그리고 이런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주부들일 테고, 그들의 주요 관심사인 ‘오늘 뭐 해먹지?’라는 게임을 만든다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냉장고 경험이 되리라. 요리 레시피 만들기 혹은 공유도 좋고, 추천도 괜찮은 방법이리라. 어쨌든 수많은 냉장고와 수많은 사람이 얽혀서 이제까지 가정이나 동네 단위로 유통되던 음식과 요리정보를 전 세계로 확장시킬 방법이 있다면 단연코 인터넷 냉장고가 최적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 이미 '사물 인터넷 시대'는 도래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인터넷 냉장고 콘텐츠는 음식이고 음식유통업자들 예를 들면 이마트나 하나로마트 같은 곳이 이런 게임의 퍼블리셔 역할을 한다면 딱 맞을 듯하다. 5식구가 사용하는 우리 집 냉장고가 한 달 동안 보관하는 재룟값을 물어봤더니 대략 3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정도의 음식재료(콘텐츠) 소비면 스마트폰 요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다. 게다가 우리 집 냉장고는 15년째 멀쩡하게 돌아가는데, 2년마다 바꾸는 스마트폰에 비하면 그 가성비는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쨌든 이런 콘텐츠(음식재료)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정도라면, 공짜폰을 주듯이 공짜 냉장고도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냉장고 게임을 통해 음식을 추천하고, 팁을 하나씩 줄 때마다 SNG에서 하트 날리듯이 계란을 하나씩 선물로 주고, 이런 계란이 10개가 모이면 실제 매장에서 계란 한판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대수랴. 그러고 보니, O2O가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인터넷 시대에 게임사는 이제 사라져서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콘텐츠 제공업자가 될 때 새로운 경쟁력이 생길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이런 혁신적인 기술에 매력을 더하는 재미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기술이어야만 한다. 쓴 약을 먹기 좋게 하는 사탕 맛 시럽처럼 낯선 기술들을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게임은 이제 모든 것의 소스가 되어 사라질 때가 온 것이다. NC소프트 기술이 들어간 인터넷 냉장고, 넥슨의 콘텐츠가 내장된 무인조정 자동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아닌 ‘게임, 사물인터넷과 함께 사라지다!!’ 만약 이런 시대가 오면 게임 중독이 아니라 ‘냉장고 셧다운제’가 같은 법, ‘자동차 중독진단검사’ 같은 것도 반복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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