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는 순간 '다른 게임'을 기다리면서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45개 |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유행'에 민감합니다. 무언가가 혜성같이 등장해 흥행가도를 달리면, 이를 참고한 작품들이 줄지어 등장하곤 했지요. 음악이나 영화 산업이 그랬어요. 중독성있는 후크송 하나가 메가톤급 히트를 치면, 이후 음원 순위도 후크송 위주로 도배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국내 게임산업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행에 더 민감한 편이었죠. '디아블로1'이 뜨고 난 뒤 이런저런 국내산 핵앤슬래쉬 RPG가 등장했고, '스타크래프트1'이 국민적인 인기를 끌자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참고한 후발주자들이 속속 출시되었습니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장르 자체가 상당히 마이너하다는 걸 고려하면, 꽤나 이례적인 현상이었어요.

PC 패키지 시절을 지나 온라인, 모바일 세대로 넘어왔지만, 이러한 흐름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개발 기간이 짧고 출시와 동시에 흥행여부가 갈리는 모바일 게임이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모습입니다.




▲ 이제 스크린샷 만으로는 게임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 이 사진을 한 번 볼까요. 국내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6종을 모은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품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계신가요? 자신이 즐기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은 외형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이나요?

국내 스마트폰 게임 시장이 활성화된 건 '갤럭시1'이 출시된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앵그리버드'나 '후르츠 닌자'같은 캐주얼 게임이 대세였어요. 이후에는 잘 아시다시피 3블록 매치 시스템을 채용한 '애니팡'이 카카오로 출시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에도 애니팡과 비슷한, 이른바 '팡'류 게임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중에서 재미를 본 게임을 꼽으라면 '캔디팡'과 '포코팡'이 대표적인데요. 해당 작품들은 3블록 매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진 않았고 조금 변형한 구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워낙 직관적인 장르였기에 블록 디자인의 변화만으로도 시각적인 차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죠.





스마트폰의 사양이 올라가면서 모바일 게임의 주류 시장도 조금씩 옮겨졌습니다. '미들코어'라 불리는 장르가 시장을 점거하기 시작했지요. 국내 기준으로 한다면, '미들코어' 중에서도 핵앤슬래쉬 액션 RPG가 선두에 있습니다. 작년에 출시된 '블레이드'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시대가 개막한겁니다.

이전까지는 중국산 웹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동전투가 기본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다 편한 RPG를 지향했고, 여기에 화끈한 이펙트와 액션성이 더해지면서 결국 '블레이드'는 모바일 게임 최초로 201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거머쥐었죠.



▲ '블레이드'는 모바일 핵앤슬래쉬 RPG가 주류로 올라서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건 그 다음입니다. 이후 모바일 게임사들은 보다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자하며 '포스트 모바일 액션RPG'를 외쳤지만, 실제로 출시되는 게임은 '블레이드'와 크게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스마트폰의 터치 시스템을 활용한 UI는 '블레이드'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왼쪽에 이동 키를 배치하고, 오른쪽에 기본 공격, 스킬 버튼을 두었죠. 이후 등장한 블록버스터 모바일 RPG는 버튼 테두리 디자인만 좀 다를 뿐, 십중팔구 이러한 UI를 채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블 퓨처파이트'와 같이 외국 유명 IP를 들여온 작품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세 판타지' 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미 UI가 비슷한데, 눈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세계관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위 스크린샷과 같이 한 장만으로는 구별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겁니다.

물론, 게임 내부를 보면 분명 각각의 특성이 있습니다. 박용현 사단이 개발 중인 'HIT'는 기존 모바일 액션 RPG에서 보기 어려웠던 연출과 보스전을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을 찾는 유저들에게 스크린샷 한 장만으로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란 인식을 심어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편, 외형적으로 다른 게임도 있었습니다. '크리티카'나 '용사x용사'는 세계관 부분에서 중세 판타지와는 꽤 차이가 나는 작품이었죠.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모바일 RPG 하나 개발하는데도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시대인 만큼, 이미 성공한 작품의 사례를 따르는 개발사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인력과 자금이 투입되었다면, 그만큼 실패 시 리스크도 큰 법이죠. 중세 판타지는 온라인 게임 시절부터 국내 유저들에게 매우 친숙한 세계관입니다. 이런 부분을 모두 배제한 게임이 유저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지, 혹은 생소하게 보여질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베끼기로만 일관했던 중국 게임사들의 개발력이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고, 자금력 또한 국내 개발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게임을 '진화'시키는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지요. 또한, 모바일 게임을 찾는 국내 유저들의 눈높이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잰걸음만으론 따라잡히는 때입니다. 조금은 다른 방향일지라도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굵직한 발자국을 찍을 시기가 아닐까요. 고민과 인내가 결합된 기획, 그 안에서 탄생한 창의적인 작품이 국내 게임사에서 등장하기를 바라 봅니다.

아, 맨 위 사진의 게임명 알려드려야죠. 1. '이데아' 2. '러스티블러드' 3. 'HIT' 4. '레이븐' 5. '블레이드' 6. '다크어벤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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