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타리그, 명경기는 벼랑 끝에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칼럼 | 신동근 기자 | 댓글: 8개 |



국내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프리미엄급 대회가 리그 진행 도중에 경기 방식을 변경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바로 2016 스포티비 스타리그 시즌1이 그 주인공이다.

스타리그는 이미 지난 1월 7일에 16강 1주 차 경기를 진행했다. 신희범이 이신형을 2:0으로 꺾는 이변이 일어났고, 변현우가 824일 만의 오프라인 무대에서 어윤수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스토리만 보자면 충분히 드라마틱했지만 대부분의 스타2 커뮤니티의 눈길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바로 16강이 3판 2선승제 싱글 토너먼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2015 스타리그 시즌3까지만 하더라도 32강 챌린지를 열어 5판 3선승제 경기를 치르고, 거기서 살아남은 16명의 선수들을 데리고 조지명식을 펼치는 등 스타리그의 위상과 규모는 팬들을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2016 시즌에 들어서면서 스타리그는 돌연 리그 포맷을 전면 변경하기 시작했다. 32강 챌린지를 없애고 대회를 16강 싱글 토너먼트 시작으로 바꿨고, 그에 따라 선수들의 입담을 즐길 수 있는 조지명식도 사라졌다. 한 술 더 떠서 16강 싱글 토너먼트를 5판 3선승제도 아닌 3판 2선승제로 진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타리그는 출범하기도 전부터 팬들의 우려를 샀다.

김하늘 PD에 이어 새로 스타리그를 맡은 안성국 CP는 "현재 양산형 경기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 경기 수를 줄이더라도 경기의 질을 높이고 싶었기에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몰면서 최대한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의도는 좋았으나 현 공허의 유산 상황과는 맞물리지 않았다.




우선 양산형 경기가 많이 나오던 것은 3년 차에 접어든 군단의 심장 얘기다. 2016 시즌은 공허의 유산으로 진행되기에 그간 나타났던 군단의 심장 경기 양상을 따질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공허의 유산으로 치러지는 사상 첫 프리미엄급 대회다.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에서도 그랬듯이 게임 발매 초창기에는 밸런스가 불안정하고 '날빌'이 판을 친다. 자유의 날개 5병영 사신과 군단의 심장 화염기갑병 드랍처럼 말이다. 공허의 유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성 종족의 전략을 막아내는 방법이 아직까지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다. 즉, 경기가 빨리 끝날 수밖에 없는 상태란 뜻이다.

게다가 공허의 유산에서 시작 일꾼 수가 12기로 늘어났기 때문에 평균 경기 시간도 군단의 심장에 비해 줄어들었다. 보통 한 경기에 10-15분, 아무리 길어도 20분을 넘기는 일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날빌'까지 가미된다면 경기 시간이 얼마나 짧아질지는 공허의 유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리그는 모든 스타2 팬들의 피드백을 '경기의 질 향상'이란 명목하에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16강 1주 차 경기는 팬들이 예상한 흐름 그대로 흘러갔다. 기본적으로 짧아진 게임 시간에 3판 2선승제가 더해지고, 선수들은 더 효과적인 기습성 전략을 준비했다. 팬들은 공허의 유산 발매 후 프리미엄급 대회가 열리기까지 2개월을 기다렸으나,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1시간짜리 경기였다.

결국 스포티비 게임즈는 진행 중인 스타리그의 포맷을 변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리그를 싱글 토너먼트가 아니라 풀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변경 가능한 가짓수 가운데 가장 최선의 수를 고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미 물은 크게 엎질러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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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든 팬이 한목소리로 우려했던 것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더니 소를 잃은 후에야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우 1주일 만에 입장을 철회할 것이었다면 왜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출시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공식전도 거의 열리지 않은 게임에서 '양산형 경기를 막겠다'는 명목하에 눈과 귀를 닫고 일을 진행한 결과가 이것인가.

또, 경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몰겠다는 생각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일축하자면, 이는 주제넘은 간섭이다. 이미 선수들은 승부의 세계라는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 스스로 발전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벼랑 끝으로 몰아서 얻을 게 무엇이며,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아서 원하는 바를 이뤘는가.




안정적인 리그가 생기고, 마음껏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지면 선수들은 알아서 질 높은 경기력으로 보답한다. 질 높은 경기를 선보일 능력이 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그럴 능력이 있는 선수의 먹잇감이 되어 대회에서 사라진다. 경기력의 질을 높이는 것은 오롯이 선수에게 달린 몫이지 대회 주최 측에서 참견할 영역이 아니란 소리다. 그 논리대로라면 이병렬은 신변에 무슨 큰 위협이 있어서 본진 부화장 러시에 군단 숙주까지 꺼내들었단 말인가?

대회를 여는 입장에서 경기력에 대한 고민,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직접 경기력을 향상시키겠답시고 간섭을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겪어 봤으니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명경기는 벼랑 끝에서만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몰아세운다고 해서 탄생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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