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8) - 게임 편용(偏用), 게임을 새롭게 이해하는 법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5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게임 편용(偏用)'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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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추장은 그해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예상해서 땔감을 얼마나 준비할지 결정한단다. 문명 세계에서 공부하느라 조상들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한 신임 추장은 안전한 결정을 내린다. “올겨울은 아주 추울수도 있으니 땔감을 충분히 장만하라”

명령대로 땔감을 마련하던 부하들이 “얼마나 더 많이 해야 하나요?”하고 묻자 확신이 서지 않은 추장은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올해 겨울이 얼마나 추울까요?”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큰 추위가 올 겁니다” 그러더란다. 그 근거가 뭐냐고 추장이 다시 물었더니 기상청 직원이 답했다. “인디언들이 다른 해보다 땔감을 더 많이 장만하는 것을 보니 큰 추위가 틀림없이 올 겁니다”




2013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5차 개정판(DSM-5)에서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인터넷 게임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를 추가 연구가 더 필요한 추가 예정 진단명으로 소개했다.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분명한 문제가 무언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문제가 있다는 근거는 무엇이냐 밝힌 것을 보니 우리나라를 필두로 하는 아시아권 남자 청년들 대상 연구를 보니 마약중독과 유사한 뇌 패턴을 보였다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게임 때문에 일어났는지 확증할 수 없으니 더 연구해봐야 한다는 단서가 달린 거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이상한 일은 그 후에 발생한다. 이런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설명은 국내의 수많은 게임규제정책의 튼튼한 근거가 되었다. 인디언 일기예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버린 거다.

이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또 다른 권위 있는 기상청 격인 세계보건기구(WHO)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만 5년째 출간이 미루어지고 있는 국제질병분류법 11판(ICD-11)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란 진단명을 등재하기 위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거는 한국의 연구결과들이란다. 여기서 근거로 인디언 땔감이 또 등장한다.




어쨌든 이런 시도는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너무 근거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의 연구를 진행하는 퍼거슨(Ferguson) 교수는 올봄에 WHO에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요지는 '20년 동안 게임중독에 대해서 난리를 쳤는데, 개념정의, 측정방법이나 게임 고유의 증상 등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또 게임보다 더 심각한 섹스, 운동, 음식, 쇼핑 중독도 있는데 이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유독 게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뭐냐?’는 거다.

사실 이건 WHO에 물어볼 것이 아니라, 국내 게임중독 임상연구를 충분히 했다던 연구자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내용들이다. 도대체 20년 가까이 게임중독연구에서 진전된 내용이 뭔지 말이다.

게임중독은 적절하지 않은 이름이라고 일전에 이 칼럼을 통해 쓴 적이 있으니 패스하기로 한다. 정부도 이런 앞뒤에 맞지 않는 용어가 불편하긴 했나 보다. 2016년부터 정부에서는 ‘중독’, ‘과몰입’과 같은 용어를 ‘과의존’으로 통일해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개념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중독이나 과의존은 모두 병리적 모델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어반복이다.



▲ 게임에는 '심취'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럼 병리모델이 무엇이 문제냐? 병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누가 하느냐 하면 ‘의사’가 해야 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할 수 없는 전문직업영역으로 들어가버린다. 부모나 교사의 권리와 의무를 깔끔하게 ‘아웃소싱’하는거다. 몇천 원에 진단서 받아 감기약 먹듯, 아니면 암 치료 하듯이 큰 병원에 다니며 거대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에 알록달록 뇌 사진을 찍기를 반복할 거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그 사진이 어디가 원인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감기면 목감기, 코감기, 기침 감기라는 분류라도 하고 거기에 맞게 처방이라도 하는데, 게임은 도대체 이게 없다. 과학적 근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가슴 속 깊숙한 곳의 확고한 믿음으로 질병목록에 넣겠다고? 그렇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종교인 거다.

게임중독은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은유(metaphor)였다. 새로운 기술로 만든 놀이에 홀딱 빠진 아이들의 낯선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중독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해가 충분히 된다. 하지만 현상이 일상화되고, 중요해지면서 이런 은유도 바뀌어야 한다.그게 성장이고 그게 혁신이다.

빠르게 질주하는 기차를 처음 본 조상들은 당신들이 이해하는 가장 빠르게 달음질치는 말(馬)의 은유를 통해 이해하셨다. 그래서 기차가 철마(鐵馬)가 된 거다. 만약 이런 은유가 현재도 지속되어 철도를 마사회가 관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일이 게임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별 반응이 없는 것이 더 무섭다.




백번 양보해 정신병리현상이라 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세상이 바뀌면 정신장애도 바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정체감 장애’라는 병리현상은 DSM-5에서 ‘성불편증(Gender dysphoria)’이라는 이름으로 변화했다. 성전환자와 같은 성소수자도 다수자와 약간 다르지만 정상의 범주로 보자는 의지가 이름의 개명으로 나타났다.

성전환은 정신병리현상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문제이며, 개인의 가치선택 문제로 바뀐 거다. 여기서 시사점은 무언가 새로운 관점은 이름의 변화, 즉 은유의 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거다.그리고 많은 주변 성공사례들도 있다. ‘중성(中性)’이 아니라 ‘양성(兩性)’으로 ‘잡종’이 아니라 ‘통섭(統攝)’으로가 대표적인 예다.

병리현상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문제라면 해법도 달라진다. 병리현상의 근원을 제거하는 치료가 아니라 생활의 다른 영역과 균형을 맞추는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독’, ‘과의존’, ‘과몰입’같은 병리현상이 개입된 개념은 버려야 한다.

나는 게임 관련 부작용을 지칭하는 용어로 ‘편용(偏用)’을 주장한다. 편용이란 ‘편식(偏食)’, ‘편견(偏見)’, ‘편애(偏愛)’와 같은 불균형을 지칭하는 ‘편(偏)’자와 일상적인 활용을 뜻하는 ‘용(用)’의 결합한 신조어다. 이 용어의 장점은 첫째, 피해야 할 행동뿐 아니라 긍정적인 목표가 용어 내에 포함되어 있다.

기울어진 시소를 잡으려면 반대쪽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기울어진 게임행동을 보정하기 위한 일상 행동을 발견하고 강화할 수 있다. 그게 공부가 되었든, 운동이 되었든, 수면이 되었든 그도 아니면 가족활동이 되었든 말이다.

두 번째는 일생 생활맥락에서 조정해야 하는 생활의 기술로 접근할 수 있다. 편식을 병원처방을 받지 않는 것처럼, 편견이나 편애가 정신과 치료가 요구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된다.




세 번째는 게임뿐 아니라 새롭고 매력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도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다. VR이나 AI도 중독이 아니라 편용으로 접근하고, 또 신기술이 어떤 생활의 불균형을 가져오는지 주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아주 좋은 개념인 듯하다. 한 발 더 나가서 이런 인식전환이 될 수 있다면 국제표준용어도 우리말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편용(Pyeonyong: Imbalanced Use)’이라고 말이다. 태권도가 그냥 ‘태권도(Taekwondo)’이듯 말이다.

게임중독이란 개념의 부상은 어떤 길로 가든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온라인게임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현상으로 20년 가까이 세계가 논쟁하고 있는 거다. 이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이제까지와 다른 개념과 발상의 전환이다.

인류가 불을 두려워하여 멀리만 하였다면 현재의 문화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게임을 비롯한 첨단기술문화도 새로운 방식으로 소화해내야만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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