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의 반란? 하스스톤을 좀먹는 오토, 블리자드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칼럼 | 김경범 기자 | 댓글: 191개 |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1985년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그가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자들이 그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자 중에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도 있었다. 1989년에 IBM에서 제작한 딥 소트(Depp Thought)가 그 첫 번째 도전이었는데 4번의 경기 중에서 단 한판도 얻어내지 못해 세계 챔피언의 강력함을 돋보이는 한편, AI로는 아직 인간의 지성을 능가하기 어렵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IBM은 딥 블루(Deep Blue)라는 새로운 모델로 챔피언에게 다시 도전한다. 6번의 경기 중에서 딥 블루는 첫 경기를 따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다섯 경기 중에서 세 경기를 카스파로프가 따내면서 여전히 인간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디퍼 블루(Deeper Blue)라는 별칭으로 출전한 딥 블루의 개선판은 다섯 경기를 펼쳐 1승 3무 1패를 기록했고, 마지막 여섯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면서 인류 최강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컴퓨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인간은 적어도 체스 부분에 있어서 컴퓨터를 상대로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인류는 기계에 패배한 것이다.




▲ 1997년 러시아의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디퍼 블루에게 패배했다.(이미지출처)





■ 새벽을 점거한 주술사들, 그들은 누구인가?

최근 새벽 시간에 등급전을 플레이하다보면 유독 주술사를 들고 나오는 유저들이 많다. 이들은 카드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헛된 움직임이나 행동을 취소하는 일 없이, 어느 정도 생각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일정한 속도로 카드를 사용하고 공격을 진행하면서 정확한 수읽기를 통해 실수 없이 킬각을 잡는 등 상당한 실력을 보인다.

갑자기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주술사 고수들이 늘어나서 그런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들은 자동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불법 봇(BOT) 프로그램 ― 다시 말해 "오토"라고 불리는 유저들인 것이다.

사실 오토 관련 이슈는 하스스톤이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던 시절부터 꾸준하게 언급되던 부분이다. 유니티 엔진으로 만들어져 구조가 단순한 하스스톤은 상대적으로 클라이언트를 분석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보니 덱을 카운하거나 패킷을 받아 대전 로그를 기록하는 외부 프로그램 개발도 활발했고, 그 중에는 자동으로 플레이를 하는 오토도 있었다.





▲ 최근 유포되고 있는 오토 프로그램 중 하나.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초기의 오토는 도발 하수인들로 덱을 구성하거나 돌진 계열로 구성해 무작정 달려드는 단순한 구조였기에 승률은 낮을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없어 플레이 하지 못하는 유저들이 "이기면 좋지만 지면 말고"라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안정적인 승률을 보장하는 덱 유형이 고착화됨에 따라 주술사, 드루이드, 흑마법사 등의 직업을 중심으로 AI가 향상된 오토 프로그램이 물밑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오토 프로그램의 특징이라면 유저들의 습관적인 움직임(카드 위에 커서를 올린다거나 주문 카드를 사용하려고 대상을 지정하는 화살표를 지정한 상태에서 머뭇거리는 등)이 없고, 카드를 내고 하수인으로 공격하는 주기가 일정한 형태라 쉽게 식별이 가능한 편이지만, 몇몇 프로그램은 이러한 식별이 어렵거나 개선한 형태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 하스스톤 오토는 주술사가 대다수이지만 최근 드루이드, 흑마법사, 사냥꾼 등도 늘고 있다.





■ 오토프로그램의 확산, 유저 이탈을 부추겨...

이러한 오토에 대해 "어차피 AI로 돌아가는 건데 조금만 신경 쓰면 쉽게 이길 수 있지 않나? 어차피 MMORPG도 아니라서 골드를 벌어도 거래가 안될 텐데?"라고 반문을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토로 인한 피해는 유저들이 직접 겪고 있는 부분이다.

알던 현재 유포되고 있는 오토들의 인공지능 수준은 하스스톤 자체의 AI보다 우수하고, 대회에 나오는 전설 등급 실력자들에 못지않은 판단력을 보여준다. 아니, 서두에 언급했던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시합의 예를 보더라도 이후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능력은 컴퓨터 쪽이 월등하다. 97년 당시에만 하더라도 세계 챔피언은 10수 앞을 내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컴퓨터는 12수 앞을 읽을 수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 라이브 스트림을 통해 방송을 하는 BJ나 상위 랭커들도 오토로 추정되는 상대에게 내리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유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러한 오토 유저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MMORPG의 자동 사냥 프로그램 같은 경우라면 다른 사냥터에서 사냥 하는 것으로 피해갈 수 있지만 ― 물론 좋은 사냥터를 오토가 점거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피해겠지만 ― 해당 서버의 모든 유저와 매칭이 되는 하스스톤의 대전 시스템으로는 오토만을 골라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 과금 여부나 등급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일단 매칭 자체는 무작위다.



무엇보다도 오토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유저를 상대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심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스스톤의 근본적인 취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유저 간에 대결을 즐기는 것인데, 오토 프로그램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망쳐놓을 뿐만 아니라 상대가 오토라는 것을 알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한다. AI와의 대전을 목적으로 하는 연습 모드나 모험 모드와 달리, 유저와 상대하기 위해서 대전을 돌렸는데 사람이나 다를 것 없는 ― 오히려 사람보다 수읽기가 능한 오토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다면 이기더라도 찝찝한 기분이고, 지기라도 하면 한 없는 불쾌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유저들 중 일부는 등급전을 아예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일부는 하스스톤 자체에 흥미를 잃는 등 유저 풀 자체가 감소하는 악영향이 퍼지고 있다. 이러한 대전류 게임은 유저 수가 중요한 만큼 장기적으로도 오토로 인해 이탈하는 유저들의 수가 늘어나면 게임 수명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 이미 커뮤니티에서는 오토에 대한 성토를 하는 유저들이 많은 상태





■ 불법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 가시적인 움직임이라도 보여줄 때

해외 포럼 등에서도 이미 오토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북미의 레딧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작년 하반기에서 올해 초까지 오토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언급되었고, 최근 해외 웹진인 PCGAMER의 개발자 인터뷰에서는 "오토 프로그램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확인해 차후 버전을 통해 조치할 것이다. 하지만 오토 제작자들은 막아내는 것 이상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연구할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해서 조만간 어떠한 움직임을 보여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링크 : 오토 프로그램 관련 대응이 언급된 PCGAMER의 인터뷰



▲ 레딧을 비롯해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오토 관련 언급은 오래 전부터 언급되었다.
지금부터 대응을 하더라도 어쩌면 너무 늦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당장의 문제이다. 오토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을 꼽자면 북미나 유럽보다 유독 아시아가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한국의 각종 하스스톤 커뮤니티 분위기를 살펴보자면 오토를 막더라도 기존 사용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비할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 설 전후에 진행된 골드 이벤트에서도 버그로 다량의 골드를 획득한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회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광기의 화염술사와 고통의 수행사제, 그리고 추적 주문을 이용해 고의로 게임을 프리징 시키는 통칭 "광고추 버그"가 성행하던 때에도 이를 남용한 유저들에 대한 조치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블리자드의 다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의 중국인 오토 작업장이나 디아블로에서 "쥐몰이"라고 불리던 무한 파밍, 특정 보스를 반복 사냥하는 봇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유저들로 하여금 "안 쓰는 쪽이 바보"가 되는 분위기로 흘러갈 위험이 크다.





▲ 디아블로3에서 성행한 통칭 "쥐몰이 런"이라는 무한 리젠 버그 사냥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로 볼 수 없지만 공공연하게 파밍에 활용되었다.



물론 "한 도둑을 열 경찰이 막을 수 없다"라는 속담처럼 보안 관련은 뚫는 쪽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며, 모든 오토 유저를 잡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적인 조치가 있기 전이더라도 "오토 등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 시 제재 조치한다"와 같은 공식 홈페이지 포스트 등이 있다면 적어도 유저들의 경각심을 환기할 수 있다는 점은 공공연하게 게임에 악영향을 주는 것들이 퍼지는 현 상황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블리자드가 이러한 오토 문제를 어떤 형태로 풀어나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특정 직업만 만나면 오토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 현재의 분위기는 하스스톤의 롱런에 있어서 분명히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한 만큼, 단순히 "하스스톤을 개발하는 팀5는 소규모"라는 이유로 대응이 늦는 것은 면죄부가 되지 못할 것이다.





▲ 리니지2에서 벌어진 오토 근절 시위
AI에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온라인 게임 유저의 근본적인 심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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