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WECG 그랜드파이널 무산사태,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칼럼 | 김지영 기자 | 댓글: 17개 |
야심차게 추진되던 범국가대항전 WECG의 그랜드파이널이 무산되면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큰 상심에 빠진 사람들은 어렵사리 국가대표 자격을 획득한 선수들과 이들의 활약을 기대했던 팬들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과 기량을 증명할 일만이 남았다고 보였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주최측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해 볼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추진 중인 WECG는 '스폰서 및 일정 문제'의 불가피함을 읍소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대회를 추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종목사가 주도하지 않는 범국가대회는 시장성이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대항전의 의미까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까.


■ 13년간 e스포츠 국가대항전을 맡았던 WCG, 그리고 이를 계승한 WECG



▲ WCG 2013의 주인공 장재호, 이후 WCG는 종료를 선언한다


WECG의 전신인 'World Cyber Games'(이하 WCG)는 가장 오랫동안 열렸던 e스포츠 국가대항전이다. 2000년 챌린저 대회로 한국에서 시작된 WCG는 2002년부터 호스트 시티의 개념을 도입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이탈리아 몬자, 미국 시애틀, 독일 쾰른, 중국 청두, 미국 LA, 중국 쿤산까지 세계 각지를 돌며 대회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주력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와 워크래프트3를 비롯해 다양한 종목이 정식 종목과 시범 종목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진행됐고, 특히 스타크래프트에서 초강세를 자랑하던 한국이 13번의 대회에서 8번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e스포츠의 종주국 위치를 견고히 했다.

하지만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성기를 누렸던 WCG이지만, 막판에는 경영난에 시달리며 위기론이 거론됐다. 마지막 두 번의 대회는 중국 쿤산시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희망을 이어나가는 듯 했지만 결국 2014년 2월, 이수은 대표가 WCG 종료를 선언하면서 WCG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곧바로 WECG가 출범을 선언했다. WCG의 운영총괄책임자로 근무했던 전명수 대표와 이하 WCG의 전 직원들이 다시 모여 AGN을 설립하였고, 중국 모바일 게임사들의 연합체인 GMGC(Global Mobile Game Confederation)의 지원을 토대로 WECG를 설립했다. WCG의 주요 구성원을 모두 승계한 만큼 WECG는 WCG와 가장 정통성에 가까운 후계자였으며, WCG 유치를 희망했던 중국 관련 인사들의 돈독한 후원과 지지가 잇따랐던 만큼 그랜드파이널 역시 중국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후 본래 계획대로라면 12월 중순에 중국에서 제 1회 WECG 그랜드파이널이 개최되었어야 했지만, 계획이 연기되면서 올해 2월,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WECG의 주요 파트너들이 중국 게임사였던만큼 한국에서의 그랜드파이널은 이들의 입장과 동떨어진 일이라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우려를 표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WECG측은 그랜드파이널 진행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면서 최근까지도 업무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었고, 곧 경기장 계약 절차까지 완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알려진 노력과는 달리 결국 WECG측은 선수들에게 대회가 취소되었다는 공지를 발송하면서 첫 그랜드파이널 진행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에 대한 이유로 WECG는 "스폰서와 일정 문제 때문에 부득이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팬들과 선수들의 양해를 구했다. 결국은 금전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 종목사 주도로 각기 열리고 있는 세계대회, 종합 e스포츠 행사는 무의미할까?



▲ 종합 e스포츠 국가대항전을 시장의 논리로만 따질 수 있을까


국가대항전은 e스포츠 시장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콘텐츠다. 각기 사정이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몰려 실력을 겨루는 상황은 어느누구에게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평소에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국제 대회에서의 승전보를 들었을 때 열광했던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국가대항전 프레임은 다른나라의 e스포츠 팬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e스포츠 행사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당장 그랜드파이널을 위해 입국하는 선수들의 항공료, 숙식비 등만 해도 상당한 지출이 필요하며, 경기장의 규모도 국제기준을 충족하는 컨벤션 센터급은 되어야 하므로 무대 설치, 경기장 세팅 등의 부수적인 비용도 많이 발생한다. 일부 운영비를 입장료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현지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WCG도 이 문제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대회 말미에 범국가적으로 e스포츠 산업을 육성하던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쿤산에서 두 번의 대회를 진행했지만, 메인 스폰서인 삼성전자가 손을 떼자 더 이상 대회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이를 중국 게임회사들의 투자를 바탕으로 한 WECG로 해법을 풀어내고자 했으나, 결국 첫 그랜드파이널이 무산되면서 일단 실패한 모양새다.

결국 e스포츠의 범국가대항전은 '시장성이 없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 최근 국가대항전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블리자드의 WCS체제, 도타2의 디 인터내셔널(이하 TI) 등 종목마다 별개의 세계대회를 진행하는 것으로 굳혀지는 추세다. 각 종목사들도 이를 위해 리그 구조를 집중형으로 개편하고, 선수들도 이쪽에 집중하는 등 과거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WCG나 WECG와 같은 대회는 현재 추세와 어울리지 않는 대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e스포츠 종합 국가대항전의 메리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에게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고양하기에는 이만한 행사가 없다. 롤드컵이나 TI, WCS의 경우 자신의 팀과 개인의 명예를 걸고 참가하지만, 여기에 국가대항전의 개념이 얹어지면 '조국'이 추가된다. 아무래도 내 유니폼에 태극기가 달려있다면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이에 기초해 선수들은 명예를 중요시하게 되고 나아가 스포츠맨십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즉, e스포츠는 국가대항전 포맷을 거치면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의 의미와 비슷해진다.

결국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로 편입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국가라면 국가대항전은 결코 포기하기 어려운 기치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도 보듯 하나의 회사가 이를 모두 관할하고 주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싸움인 것 같다. 이 일을 계기로 국가대항전을 시장의 논리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각국의 e스포츠 주관 부서들의 협력을 통해 진짜 'e스포츠의 올림픽'을 만들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시점이다. WECG 그랜드파이널 무산사태는 e스포츠의 향후 10년 발전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를 우리에게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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