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낯선 알파고에서 익숙한 게임 향기가? '블랙앤화이트'로 보는 알파고의 미래

칼럼 | 장인성 기자 | 댓글: 31개 |


 

알파고가 연일 화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펼쳐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세돌 9단이 연달아 3전을 내주면서, 솔직하게 말해 전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3패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끝내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알파고가 돌을 던지게 만든 이세돌 9단의 실력에, 그래서 한번 더 감탄을 하게 된다.

 

이세돌 9단의 승리에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덕분에 주말이 정말 즐거웠다. 최소한 같은 지구에 살면서 말까지 통하는 한국 사람이기는 하니까. 드립력 충만한 한국의 누리꾼들도 이 때를 놓칠세라 물만난 물고기들처럼 수많은 드립과 짤방을 연성해내고 있다. 그야말로 인터넷의 축제라 할 만하다.

 

언론들도 오늘 치러질 마지막 대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전기의 승부는 이미 앞서 3승을 거둔 알파고의 우세로 결론났지만, 남은 1전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대미를 장식할 최고의 승부가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기록될 1승을 거둔 이세돌 9단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는 않을 터이다.  

 

 



▲ 어쨌건 컴퓨터인 알파고 쪽보다는 이세돌 9단과 가까우니까...

 



▲ 가성비 최고인 이세돌 9단?  출처: (트위터 @samim)

 

한편 알파고의 승리 후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 속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머지않아 기자나 회계사, 약사 등 상당수의 직업들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심지어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며 디스토피아 영화나 소설을 예로 드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인류 최고의 지적 유희, 바둑에서 인공지능에게 패배한 것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보다.

 

개인적으로는 기우(杞憂)라고 생각한다. 지하철이 탈선할까 두려워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출근들 잘 하셨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모든 발명품들은 낯선 문물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견디며 수많은 보완을 거쳤고, 결국 편리함을 무기로 불안을 해소하며 사회에 자리잡는 과정을 거쳐왔다.

 

칙칙폭폭~ 정겨운 기차의 경적 소리는 한 때 동물과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의 고함소리였다. 거대한 쇳덩이가 철로를 달리면서 울부짖는 광경은 경악 그 자체였으리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비행기, 자동차, 컴퓨터가 등장할 때도 비슷했다. 그냥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면서 자연스럽게 거쳐왔던, 또 앞으로도 꾸준히 거쳐야할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걱정들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때로는 미래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데, 미래 예측은 언제나 희망 편과 절망 편이 있다. 수십년 전 SF 소설 속에서 등장했던 기묘하고 기발한 물건들이 대부분 현실이 되고 있으니 알파고와 그의 친구들이 반드시 희망 편으로만 발전한다는 보장이 없다.

 

때로는 소설이라해도 믿기 힘든 일이 현실로 벌어진다. 알파고의 후손이 특이점을 돌파하고 인간의 한계를 지나칠 정도로 급격하게 진화한다면? 우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나 핵전쟁 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사람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나 학자들조차 이런 우려를 표하고 있으니 아예 근거조차 없는 상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 모든 것은 양면이 있으니까.

 

알파고, 그리고 이로 인해 촉발될 다른 인공지능 알파 친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진짜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처럼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종결자가 될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알파고에게 잘 봐달라고 WD-40을 챙겨놔야 할텐데.

 

솔직하게 내가 인공지능 전문가도 아닌데, 일개 비루한 게이머의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온갖 종말론과 세카이 계를 섭렵하고 수많은 게임들을 즐겨온 아재 게이머의 입장에서, 알파고의 활약을 지켜보면 꼭 떠오르는 게임이 하나 있다. 실제로 연관성도 있다.

 

높으신 한국의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게임 따위가?" 그러나 인공 지능 분야를 제외하면, 현재 알파고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산업이 바로 게임 업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 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가 게임 개발자였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어릴때 불프로그라는 게임 회사에 들어가 명작 게임 '신디케이트' 및 '테마 파크'의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갓 게임(God game) 장르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터 몰리뉴'와 함께 라이온헤드 스튜디오에서 '블랙 앤 화이트'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독립해서 세운 게임 개발사 '엘릭서 스튜디오'에서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과 '이블 지니어스'라는 게임을 출시하는데, 모두 게임 속에 등장하는 NPC들의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유명하다. 처음 게임 개발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 17세부터라고 하니 게임의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될성 부른 떡잎이었던 것이다.

 

 



▲ 게임을 돕는 천사와 악마 (사진은 B&W 2)

 

 

"완벽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신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완벽한 세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언제인가 사람들이 곤경을 겪거나 절망에 빠지게 되면 결국 하늘에 기도를 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블랙 앤 화이트의 시작이다."

 

 

알파고의 주변 상황을 떠올려 봤을때 하사비스가 개발에 참여했던 여러 게임 중에서 특히나 주목해 볼만한 게임이 바로 이 블랙 앤 화이트라고 생각한다. 

 

잠언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블랙 앤 화이트는 게이머가 신이 되어 섬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상대 마을을 점령해 승리하는 게임이다. 갓 게임의 선구자 피터 몰리뉴가 참여한 만큼 전쟁 뿐 아니라 포교나 문명의 발전 등 시뮬레이션 게임에 어울리는 다양한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당시에는 돈이 좀 아까웠던 것 같은데, 일단 게임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자.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는 블랙 앤 화이트의 개발에서 리드 AI 디자이너로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블랙 앤 화이트에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평가받는 획기적인 시스템이 있다. 바로 알파고와 일맥상통하는 게임 속의 인공지능, 크리처 육성이다. 

 

블랙 앤 화이트에 등장하는 크리처는 게임 속의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동물로 신을 따라 기적을 행사하거나 마을을 보호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게이머를 돕는다. 설명만으로는 알파고를 떠올릴만한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획기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이유가 있다. 게이머는 크리처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단지 목줄을 걸어서 잠깐 시선을 끌거나 쓰다듬어 칭찬을 하고 따귀를 때려 잘못을 가르칠 뿐이다. 크리처는 게임 속의 인공지능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고 신도들과 교류하며, 게이머는 명령이 아닌 교육으로 인공지능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가르쳐야 한다. 

 

크리처는 강력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마음대로 섬을 활보하고 심지어 배가 고프면 보호해야할 인간들을 잡아먹거나 실수로 마을을 파괴하기도 한다. 게이머는 시시때때로 크리처를 혼내거나 칭찬하면서 잘한 일과 잘못을 구분해 주어야 한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요소.

 

즉 블랙 앤 화이트의 크리처는 게이머의 교육을 통해 학습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서 행동으로 옮긴다. 알파고와 비교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단순하지만 과정 자체는 인공지능이 초기에 여러 종류의 학습을 반복해 판단력을 키워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  크리처는 게이머의 행동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  (사진은 B&W 2) 

 

크리처가 직접 게이머를 보고 배우는 경우도 있다. 게이머는 직접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기적(마법)을 사용하는데, - 예를 들어 마우스로 화면에 W를 그리면 작은 비가 내린다. - 크리처가 이걸 여러번 보면 기적을 배워서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급한 순간에 딱 맞춰 기적을 쓰는 크리처의 활약을 보면 걸음마를 뗀 내 아이를 보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기쁘다.

 

물론 과정이 쉽지 않다. 강인한 호랑이는 배가 고프면 호시탐탐 인간을 먹이로 노리고 온순하지만 머리가 나쁜 암소는 사람들이 굶고 있는 와중에 비를 내리기는 커녕 식량이나 훔쳐먹고 있다. 자연 재해와 상대 신의 견제를 버티면서 신도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태평하게 돌아다니며 사고나 치는 크리처를 보면 열불이 터진다. 당장 달려가 크리처의 따귀를 한대 올려 붙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다.

 

감수성 높은 게이머라면 이 시점에서 절실하게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아, 부모님! 말이 통하는데도 안 들어먹는 못난 저를 도대체 어떻게 키우셨나요?" 그러면서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겠지. 크리처를 적의 진영에 풀어놓으면 아무리 사고를 쳐도 이득이 되니까.

 

어쨌든 결과는 오로지  게이머의 몫이다. 말도 못 알아먹는 강력한 크리처를 단순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키워 공포스러운 전쟁의 도구로 써먹을 것인지, 아니면 온갖 고난과 함께 기적을 가르치고 주민들의 숭배를 받는 수호자로 키워나갈 것인지.

  



 



▲ 크리처는 게이머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게 된다. (사진은 B&W 2)

 

하사비스가 크리처의 AI 제작까지 직접 참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블랙 앤 화이트를 제작할 당시 리드 AI 디자이너였으니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 알파고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딱 블랙 앤 화이트를 즐기던 시절과 같다. "똑똑하지만 스스로 뭘 해야할 지는 모르는 어린 아이."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부모가 대신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 알파고의 진화는 학습에 의한 것이니, 결국 인간을 투영할 뿐이다. 인간이 걸어온 역사와 문명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게 된다면? 결국 그 길은 부모인 인간이 발전하면서 언젠가는 치러야할 빚이라는 뜻이다.

 

살육과 파괴에 미친 전쟁광, 혹은 자연 재해를 막고 문명의 발전을 돕는 수호자. 블랙 앤 화이트의 크리처는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천사로도 악마로도 성장할 수 있다.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결국 진정한 인공지능으로 성장하기까지 인간에게 수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두려워하거나 꺼릴 필요도 없다.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이 가득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가능성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인공지능이 잘못 성장하지 않도록 또는 너무 웃자라지 않도록 도와주면, 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면 당장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결론이 뭐냐고? 당장 시끄럽게 떠들어봐야 정해진 것은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걱정과 논의를 하건 간에 이미 강 인공지능을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했다. 만약 알파고가 어떻게 성장할지 두려워 미리 내칠 셈이라면, 알파고로부터 비롯될 찬란한 미래를 지켜볼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고의 끊임없는 발전이 정말로 인류에 위협이 된다면, 뭐... 그때는 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인류는 그렇게 싸우면서 발전했다. 유독 전쟁에 특화되어 있는 인간들의 끈질긴 투쟁심을 믿어 보자. 티핑 포인트니 특이점이니 솔직히 이제는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조차 없으니까. 그냥 팝콘이나 가져와서 인류의 역사에 기록될 게임이 펼쳐지는 마지막 대국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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