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든어택2 에 없었던 '요리의 맛'

칼럼 | 이명규 기자 | 댓글: 171개 |



'서든어택2'가 지난 29일 서비스 종료를 고지했습니다. 예정된 종료 일자는 9월 29일입니다. 서비스 시작일인 7월 6일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3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을 끝으로 퇴장하게 되는 셈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최근 기자는 '키친 나이트메어' 라는 해외 유명 TV 프로그램을 즐겨 봤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경영 위기에 빠진 식당들을 구하기 위해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출동해 체질 개선을 해나가는 프로그램이죠. 이런 식당들이 망해가는 이유는 꽤 다양합니다.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 경영자의 능력/의식 부족과 고집, 비위생적인 환경, 실력 없는 셰프, 직원 간의 소통 부재, 해괴한 인테리어... 대부분의 식당에서 여러 부분이 동시에 문제가 되죠. 오직 한가지 요인으로 전체가 잘못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식당들의 공통점은 초창기, 혹은 오래전에는 분명 잘 나가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이 방식이 먹혔는데, 왜 지금은 안되는 겁니까?" 라는 질문을 고든 램지는 매 화마다 받습니다. 그리고 이때마다 공통되게 등장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경영자의 변화 의지 부족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리 고든 램지가 수없이 많은 조언을 퍼붓고, 인테리어를 직접 고쳐주고, 메뉴를 일신해도, 식당의 문제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가 자신의 고집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사진 출처 : QTV)

그리고 저는 그 식당들에게서 요즈음의 한국 게임업계를 발견합니다. 또한 '서든어택2' 도 말이죠.

서론이 길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기자에게 '서든어택2'가 어째서 실패했으며, 왜 서비스 종료라는 선택을 해야 했는가를 묻는다면 저는 서너 시간 이상 강연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저라는 개인이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서든어택2' 자체가 너무나 많은 빈틈을 내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라도 '서든어택2'의 문제점에 대해 두 시간은 거뜬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너무나 많은 단점이 뻔히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뻔하리만치 문제가 많은 게임이 그대로 출시될 수 있었냐고 한다면, 회사 내에서 그런 문제들을 무시하고 덮어놓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저는 절대로 이 게임이 개발자가 만족해서 "이제 완성되었으니 출시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대중에 선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든어택2'의 지향점은 명확합니다. '서든어택'이 가지고 있던 사업적인 장점들을 그대로 물려받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거든요. '서든어택'은 FPS 장르로서는 이례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게임입니다. 유명 연예인의 외형과 특별한 성능을 가진 캐릭터 판매가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또 '서든어택'을 플랫폼 삼아 계속해서 추가되는 미니 게임들이나 별개의 모드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초창기에는 아니었겠지만, 더 이상 '서든어택' 은 FPS 로서 기본기가 뛰어나거나 FPS라는 특성 때문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게 아니란 겁니다. 결국 퍼즐이 맞아들어가는 건 이 지점입니다. '서든어택2'가 전작으로부터 본받거나 또는 개선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회사와 유저의 생각이 완벽하게 달랐던 겁니다.




회사는 그동안 성공적이었던 수익 모델을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 공식을 유지함과 동시에 '서든어택' 유저들을 그대로 '서든어택2'로 흡수하면서 또 신규 유저들의 유입도 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달라진 것은 오직 그래픽뿐' 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거죠. 지나치게 1편과 모든 것이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이 독이 됐습니다. '서든어택' 유저들은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 게임을 옮겨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신규 유저들은 '서든어택'을 플레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서든어택2'를 판단하고 선을 그었습니다.

결과는 참혹스럽습니다. 한가지 더 '서든어택2'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그 실패에 대해 변명조차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모든 소재와 조건들을 똑같이 갖추고서도 비평적인 성공과 어마어마한 상업적 이득을 함께 거둔 게임이 동시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어느 게임이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는 꽤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더 이상 '유저들의 구매력이 게임의 수나 질을 따라가지 못한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거니와, 그만큼 게이머층이 더욱 다채롭고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주소비 게이머들의 변화도 발견할 수 있지요.

이제 더 이상 게임은 초창기 부분유료화 게임들이 그랬듯, 아주 좁은 폭, 작은 층위의 고객만을 대하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유저들의 취향은 넓고 복잡해졌고, 각각의 층위의 고객들이 모두 일정 이상 구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간단히 말해, 더 이상 게임은 '몇몇 골수 팬에게서 높은 1인당 결제 비용을 토대로 수익을 뽑아내는' 것이 전부인 산업이 아니란 겁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넥슨 측에서 '서든어택2'의 이례적으로 빠른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서든어택2'의 개발비용을 거의 회수하지 못한 채 매몰비용으로 버리는 것은 그 어디의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닐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비스를 계속하는 것이 당연히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는 방법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애초부터 소를 잃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서든어택2'을 만들어 출시한 넥슨과 넥슨지티,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서든어택2' 같은 사례를 양산해낸 한국 게임업계는 '고든 램지' 같은 대수술이 필요한 걸까요?

시장 감각도, 게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채 전권을 휘두르는 경영자,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파악과 개인의 발전 없이 한가지 프로젝트에 10년씩 매달려 게임 론칭 하나 못해보는 개발자, 그런 이들 사이에서 서로를 조율하기는커녕 자신의 고집만을 관철시키는 프로듀서, 각 제품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와 특화 전략 없이 기존 방식을 담습 하는 사업팀 등. 물론 서로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단 한 명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들 중 그 누구나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으며 타인이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서든어택2'의 실패에서부터, 기자는 넥슨, 넥슨지티 뿐만 아니라 한국 게임계에 변화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몇몇 이들은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겠지만, 세상은 꾸준히 변화합니다. 그런 변화하는 트렌드를 한순간 캐치해내어 성공을 이루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그 이후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자신도 변화해 가면서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힘듭니다. 때문에 거진 백 년씩 이어오고 있는 몇몇 기업들이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한때 불법복제와 와레즈로 인해 괴사 위기에 내몰렸던 한국 게임계가 온라인 게임으로 활로를 틀어 거대한 성공을 거머쥔 이후, 업계는 거기에 너무나 안주했습니다. 모바일 시장의 개척은 늦었고, 온라인 시장에서의 유리한 고지는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게임에 접근하는 사업 마인드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의 고민들은 너무나 1차원적이고 직설적입니다. 사업 모델에 게임을 맞추고, 안정된 수익 모델을 갖춘 롤모델이 있어야만 제작을 시작하는 지금의 체계는 최소한 온라인 시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게 증명이 됐습니다. 모바일 시장의 성공들도 기자는 게임 자체의 대단함보다는 자금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헤비 게이머들의 여유 자금을 모두 흡수하는 수익 모델의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게이머는 이 게임의 개발비가 얼마인지, 몇 명이 개발했는지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할 게임이 재미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또 자신이 쓰는 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에 따라 돈을 지불할 뿐입니다. '돈만 벌고 싶다' 면, 지금의 방식을 유지해도 됩니다. 물론 그게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의 방식이 십수 년 더 먹힐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주도해나갈지, 변화를 따라가며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할지는 선택입니다. 비단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철저히 후자였습니다.

'키친 나이트메어'에서, 고든 램지의 조언대로 개선된 식당들은 이후 재방문을 통해 변화의 성공 여부를 평가받습니다. 사실 변화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동안 쌓여온 악재들로 인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꾸준히 개선하고, 변화를 유지해나가야 하는 숙제를 부여받습니다. 다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거나 타협을 한 곳들은 모두 예외 없이 폐점의 수순을 밟는다는 겁니다.



(사진 출처 : Gordon Ramsay's Bread Street Kitchen)

그래서 결국 제가 주문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거죠. 식당으로 치자면 '요리의 맛'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요리는 셰프가 책임져야 하고, 재료 구입에서부터 마지막 플레이팅 까지 모두 셰프의 주도 하에 직접 이루어져야 보기에도 멋지고 맛도 좋은 음식이 나옵니다. 장사는 그다음입니다. 식당 오너의 역할은 능력 있는 셰프를 고르는 안목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제값에 팔고, 온당한 평가를 받도록 하는 수완입니다. 그러한 조건이 갖춰져야 비소로 변화를 따라가고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됩니다. 음식이 맛이 있어야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팔 수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 게임업계는 점점 떨어져가는 '요리의 맛'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왔습니다. 하지만 왜 그 '맛' 만큼은 고치지 못하는 걸까요?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지금까지 유저들은 수없이 질문해 왔습니다. 이제 게임사가 그 답을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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