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의법칙]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다 - '마이티 넘버 나인'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12개 |



어느새 그에게 '하루'란 그저 또 한 번의 순환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이면 그가 일하는 병원에 들러 진료를 하고, 주에 한 번은 응급실에서 간혹 오곤 하는 긴급한 환자들을 본다. 하수상한 시절이다 보니 응급 환자들은 꽤 되는 편이었다. 매 번 오는 이유는 서버 문제나 자잘한 버그였지만.

금요일은 조금 다르다. 금요일은 제 4병동의 회진이 있는 날이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이들. 다가올 서비스 종료의 순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가쁜 숨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 죽음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그는 또 한 명의 환자를 만났다.


"선생님. 오늘 보실 차트 준비됐습니다."

"이 병원은 한 달 내내 환자가 끊이질 않는군. 오늘은 누구지?"

"오늘 환자는 외국 환자입니다."

"외국인이라고 뭐 다른가? 그래 어디가 안좋은데?"

"상태가 좀 심각해요. 눈에 초점이 없어요 옆에서 소리를 질러도 반응도 없고요."

"마치 영혼이 없는 것처럼?"

"네 딱 그런 상태네요."

"그런 환자 자주 봤네. 주제의식을 상실하면 보통 그러는데 다른 이유로 그런 경우도 있지. 환자 이름이 뭔가?"

"마이티 넘버 나인이요."

"아! 알고 있네. 그 친구 돈 좀 만진거로 아는데 왜 그리 됐는지 모르겠군. 가지."


조금 남은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미처 타지 않은 담뱃잎들이 부산히 날렸다. 마치 앞으로 보게 될 환자의 영혼처럼. 그러다 결국은 빗물에 젖은 바닥에 닿아 똑같이 젖어들었다. 그리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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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1주일 만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 거룩하고도 고귀한 플랫포머계의 전설오브전설, `록맨` 시리즈의 영혼을 계승했다고 자처한 작품입니다. 무려 자처입니다. 누가 그렇다고 안 해줬어요. 지가 스스로 그 영혼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원래 영혼이란 거 말만 하면 다 이을 수 있는 거였나요? 그렇다면 저도 잘생긴 영혼을 잇고 싶은데 역시 얼굴은 마음보단 육체의 문제인가 봐요.




바로 이 녀석입니다. 앞서 조롱하듯 말하긴 했지만, 개발 단계에서는 정말로 수많은 사람이 `진짜 영혼을 이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던 녀석이지요. 일단 개발사인 `콤셉트`가 록맨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나후네 케이지`의 회사입니다. 개발자는 일단 정통이라는 뜻이죠. 비록 록맨의 판권은 캡콤에 있어 이름은 그대로 쓸 수 없지만, 영혼에는 판권이 없으니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환자 차트부터 보고 가시죠.

환자 차트


사진(규격 사이즈에 맞춰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마이티 넘버 나인(Mighty No.9)

출생: 2016년 6월 21일

가족관계: 부(이나후네 케이지), 모(콤셉트), 먼 조상님(록맨 시리즈)

확진 시기: 2016년 5월 25일

병명: 심한 겉늙음, 과식

원인: 과도한 조상 영혼 강제주입 + 개발력 부족

완치 가능성: 없음

사망일: 미정


보시다시피 확진 시기가 좀 특이합니다. 출시일보다 더 전이에요.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잘못된 건 아닙니다. 마이티 넘버 나인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잊지 못할 충격과 공포의 3차 트레일러 공개일이 바로 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출시 바로 다음 날 바로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물리적 사망은 아니라 정신적 사망이지만요. 록맨의 정신적 후계작이지만 출시 다음 날 정신적 사망 판정을 받아버렸습니다. 록맨의 정신은 미처 정착도 하기 전에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귀신이 육체 없이 오래 떠돌면 망령이 되었다가 소멸한다는데 이때가 아마 록맨 영혼에겐 최고의 위기였을 겁니다. 최고의 육체가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웬 듣도 보도 못한 게 와버린 거니까요.

마이티 넘버 나인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 망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망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우리가 알아볼 건 이 게임이 왜 망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한 지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금 깊이 있게 살펴보지요. 마이티 넘버 나인이 왜 망했는지를 말입니다.


플랫포머계의 니트로 박사
제게 시간과 예산을 조금 더 주신다면...!


뭐 모든 게임이 다 그렇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도 시작은 좋았습니다. 개발자인 이나후네 케이지는 록맨 시리즈를 개발해달라는 세계 팬들의 호응에 화답하듯 킥스타터를 시작했고, 하루 만에 첫 목표 금액이었던 90만 달러의 반이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개발자들은 원래 록맨 시리즈를 만들던 이들인데 이나후네 케이지가 부르니까 그냥 왔습니다. 지금이야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짜 그냥 왔어요.



▲ 이때만 해도 모두가 해피 위아더월드였습니다.

이렇게 게임업계의 전설이 하나 나오나 싶었습니다. 전설적인 개발자가 킥스타터를 진행했고, 개발자들은 마치 히어로 무비에서 조연들 모이듯이 씩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팬들의 기대감 넘치는 모금까지 이어졌죠. 여기까지 보신 분들은 한 가지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예전에 다뤘던 `매스 이펙트 안드로메다`보다 훨씬 큰 위험 속에서 만들어질 게임이었습니다. 매스 이펙트 안드로메다는 망해 봐야 팬심과 바이오웨어의 이미지, 그리고 자금 손실뿐이었죠. 마이티 넘버 나인은 그야말로 망하는 순간 끝장인 상황이었습니다. 팬, 핵심 개발자의 명성, 로망을 따라온 개발자들, 그리고 주구장창 본인들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록맨 시리즈의 영혼까지 말이죠.

하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 했는데 망하면 말이 안 되죠. 첫 목표 금액보다 모금액도 훨씬 많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첫 목표액의 4~5배나 되는 400만 달러가 모였어요. 개발자들도 특급, 총 지휘자는 록맨의 아버지. 예산은 당초 목표 금액의 4.5배. 모자란 게 대체 뭐가 있습니까. 이제 팬들은 기다리는 일 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 모두의 심장을 뛰게 했던 이미지

그런데 그때부터 뭔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처음 말했던 게임의 출시 목표 시기는 2015년 4월이었습니다. 뭐 물론 출시 시기야 개발자들도 정확히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또한 확정은 아니었어요. 출시 연기가 된 것은 좋은데 그걸 4월 말이 되어서야 알려줬어요. 당연히 팬들은 눈이 빠지라고 게임을 기다릴 수밖에 없죠. 마치 새 컴퓨터를 시켜서 오늘 온다고 하길래 들뜬 마음으로 연차까지 내고 기다렸더니 오밤중이 되어서야 내일 온다고 하는 격입니다.

그래요. 확정은 아니었으니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미루면서 2015년 9월 출시라고 말을 해놓고는 거기서 또 연기를 해버렸습니다. 이때 후원자들에게 죄송하니 베타 버전을 미리 주겠다고 해놓고 이 베타 버전 출시도 연기되었어요. 그러면서 약속한 2015년 9월이 다가오자 2016년 초로 또 발매 연기를 했고, 2016년 초가 되자 2016년 2분기로 또 발매 연기를 했습니다. 이 정도면 연기의 화신입니다. 마치 어떻게든 넘쳐나는 개발비를 다 쓰고야 말 것 같은 기세였어요.

동시에 계속 추가 펀딩을 모금하면서 돈을 더 달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개발비를 다 쓴 것 같았죠. 이쯤부터 팬들은 불안해하면서 동시에 불평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뭘 할 때마다 돈을 달라고 하니까 팬들도 점점 학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선 또 발매는 연기되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은데 모금액만 이상하게 높은 크라우드 펀딩이 이어졌습니다.



▲ 시간과 예산을 또 줬습니다. 줬다고요.

결국, 게임은 첫 목표에서 1년 2개월이나 지난 2016년 6월에나 나와버렸어요. 게임업계에서 발매 연기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유저 기만 수준입니다. 이 게임은 유저들의 후원을 통해 만들어진 게임이잖아요. 그럼 유저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게다가 이 게임은 초기 모집금액의 4배가 넘는 돈을 모았어요. 출시를 연기할만한 어떤 그럴싸한 이유조차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마이티 넘버 나인은 출시 전부터 팬들과 게이머들의 기대를 배신하며 개발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믿고 또 믿었어요. 출시도 안 된 게임에 투자를 한다는 건, 그만큼 개발진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출시가 계속 늦어진다 해도 게임이 나온다면 확실히 좋은 작품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개발자와 팬이 모여 원기옥을 만들었으니 쏴보기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대망의 2016년 5월 25일, 게임 출시를 앞두고 3차 트레일러가 공개되기에 이릅니다.


구식, 절대적 구식.
도대체 뭘 잇고 싶은 건지 모를 것이 나왔어...



3차 트레일러가 공개되던 날은 게임 출시를 단지 1달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수차례 연기 끝에 도달한 시점이었어요. 다른 말로는 팬들의 기대가 끝까지 올라가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저 또한 저 날 영상이 뜬 걸 보고 `오? 떴네?` 하면서 눌러봤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30초 후, 눈을 비볐습니다. "내가 지금 보는 게 뭐여…."

세상에. 전 제가 영상을 보다가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줄 알았습니다. 김치워리어에 감명받은 콤셉트가 단무지 워리어라도 만든 줄 알았어요. 3년의 개발 기간, 400만 달러의 개발비가 들어간 결과물을 보고 말이죠. 텍스처는 완전히 싸구려 우려먹기라 보는 내내 `이게 2016년 게임이 맞나….` 하는 생각만 들고, 이펙트는 모바일 게임 수준이었어요. 록맨의 정신을 잇는다더니 진보되기 전 옛날 록맨을 가져왔습니다. 그것도 전부 다 가져온 것도 아니에요. 제대로 가져왔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말이죠.



▲ 님 뒤에 치즈김치볶음밥

플랫포머 액션이라고 이정도면 됐다 싶은 거였을까요? 마이티 넘버 나인이 첫 발매일이라고 발표했던 2015년 4월보다 한 달 앞서 나온 `오리 앤 더 블라인드 포레스트`는 개발비가 4천만 달러 정도 되었던 걸까요? 그 작품은 게임성과 비주얼, 음악까지 다 잡아냈는데 말이에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영상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날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내가 록맨의 고고하고 고급진 게임성을 미처 이해하지 못해서 여기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 이 시대 플랫포머 게임은 이런데 말이죠.

나름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 모를 배경은 그냥 어셋 끼워 맞춤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영상 내에서 주인공 벡(Beck)이 내세우는 건 대쉬 기능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보여줄 게 없었는지 1분 30초가량 되는 영상 중 30초는 대쉬만 하고 있어요. 이럴 거면 장르를 플랫포머 대쉬 액션으로 하지 그랬어요. 게임 이름도 대쉬 넘버 나인으로 하고요. 몬스터 디자인도 물리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충 건설용 중장비에 눈알만 두 개 달아주면 적이에요. 디셉티콘입니까?



▲ 사이코 크래쉬

이쯤 되면 하나밖에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달 후 발매될 본 게임이 미칠 듯 신선한 레벨 디자인과 참신함을 가지고 왔어야 해요. 플랫포머 게임 중엔 아예 그것만으로 승부를 보는 게임들도 있습니다. 전설 오브 전설인 마리오 시리즈가 그렇죠. 출시가 한 달 후로 확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완성본 디스크가 유통사인 딥 실버에 넘어가 골드행이 이뤄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제 진짜 유저들이 기댈 것은 본 게임이 입이 쩍 벌어질 참신함과 함께 오는 것밖에 없었어요. 이미 이쯤에서 많은 이들은 `돈 버렸네` 하고 포기한 상태였지만요.

그리고 한 달 후 발매된 본편은 역시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트레일러 영상과 다를 바 하나 없이 나와버렸어요. 레벨 디자인도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혹시나 했던 건 역시나 없었어요. 2016년입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게임 내적 재미 요소들이 등장했을 때였다고요. 참신할 자신이 없으면 검증된 요소들을 조합했어도 됐을 건데, 그냥 옛날 록맨 감성으로 슈팅 앤 이베이드 플랫포머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과거 록맨 시리즈가 성공했던 이유는 그 당시로써는 록맨 시리즈가 독보적인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록맨이 그런 게임인가요? 아니에요.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엄청나게 발전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콤셉트는 그냥 또 다른 록맨을 만들어 버렸어요. 그마저도 발전한 형태가 아니라 옛 감성 그대로요.



▲ 트론?

게임은 영화나 책이 아닙니다. 영화나 책과 같은 미디어는 일종의 불멸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명작으로서의 가치는 남아요. 왜 시민 케인이 지금까지 최고의 영화고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이 지금까지 읽히겠습니까. 하지만 게임은 아니에요. 낡은 게임은 그냥 기념비적 의미만 있을 뿐 낡은 게임입니다.

지금 와서 누가 `퐁`을 재미있게 플레이하겠어요. 후속작이 전작의 장점을 흡수하지 못한 경우에나 옛 게임이 계속 플레이 되는 거지, 옛날 게임은 지금 하면 일반적으론 심각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가끔 추억 보정으로 옛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여전히 재밌다 해도 그때만큼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근데 마이티 넘버 나인은 그걸 그대로 가져왔어요.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그대로 가져오지도 못했어요. 오히려 이단 점프나 벽 짚기 액션도 다 빠져버려서 더 구린 물건을 가져왔죠.



▲ 너가 그 표정이면 어떡해...



근거 없는 자신감의 결과
돈을 시궁창에 버린 셈이다.


전체적으로 마이티 넘버 나인의 개발 과정과 그 결과물을 바라보면 이나후네 케이지와 콤셉트의 근본 없는 자신감이 보입니다. 마치 `내가 하면 다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만큼 개발 내내 정신 나간 짓을 많이 했고, 유저들을 기만하는듯한 행보를 이어왔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출시 연기를 하면서도 그 사실을 늦게 알렸고, 유저들의 피드백을 듣고 개발 과정을 공유하겠다고 말해놓고는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만심이 드러나요. PR 슬로건과 영상 나레이션에서도 자화자찬의 내용과 애니메이션 팬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아 억지로 멋져 보이려는 노력만 했죠.



▲ 이것도 망겜인데 솔직히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물론 이 모든 게 전혀 문제가 안 됐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만 잘 나왔다면요. 하지만 이 난리를 쳐 놓고 단무지 워리어를 가져다 놨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해 보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제가 콤셉트의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서 추론해 보았죠.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을 못 만든 겁니다. 하지만 이건 뭐 여러 번 말했으니 다른 것들을 살펴볼게요. 일단 이나후네 케이지의 과도한 자신감은 확실히 보입니다. 남들이 록맨의 아버지 아버지 하니까 아직도 양육권이 있는 거로 착각했던 것 같아요. 정작 록맨 시리즈의 판권은 캡콤에 있는데 말이죠. `남들은 다 망해도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자기 확신이 있었을 거에요. 그러니 킥스타터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서 계속 돈을 더 달라 했을 겁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 같으면 목표 금액을 몇 배 넘어서면 미안해서라도 더 달란 말 못하거든요.



▲ 옛 IP로 이렇게 잘 끌어올 수도 있는데...

이 자신감이 많은 불안 요소를 만들어냈어요. 그냥 초기 금액이 모인 후, 조용히 개발을 이어가면서 개발 노트나 공유하고 했으면 그리 욕을 안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나온 게임이 좀 별로였어도 "그래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정도에서 마무리됐을 수도 있어요. 근데 뭔 자신감으로 돈을 계속 달라고 생떼를 쓰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만든다고 400만 달러 모인 것 중 40%를 씁니까?

콤셉트의 행보에서도 이게 잘 나타납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으면 일단 그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하는데 온갖 곳에 다 기웃거렸어요. 차기작인 `레드 애쉬`를 만들겠다고 또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는데 솔직히 누가 돈을 주겠습니까. 차기작이 문제가 아니라 본작도 나오지 않은 마당인데. 그 와중 MS랑 어떻게 계약을 해서 아머처 스튜디오와 함께 `리코어`를 개발하긴 했는데 이 또한 그냥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보는 처지에선 기가 막힙니다. 게이머들 돈을 끌어다 모은 프로젝트는 계속 연기되고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르는데 차기작이라뇨.



▲ 그와중에 이걸 또 만듬ㅋㅋㅋ 그리고 전 이걸 또 삼 ㅋㅋㅋ

거기다 팬들의 마음도 잘못 판단했습니다. 유저층의 니즈를 분석하는 건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정입니다. 앞서 기사로 소개해 드렸던 서든어택2 또한 주된 실패 원인은 유저층의 니즈 파악이 잘못되었다는 점이었어요. 록맨 팬들의 바람은 록맨이라는 IP, 혹은 그런 감성을 지닌 IP로 2016년이라는 현실에 걸맞은 게임성을 갖춘 플랫포머 액션 게임이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디아블로1`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유저들이 진짜 바라는 게임은 디아블로1의 음침삭막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액션 RPG를 원하는 거지 디아블로1을 스킨만 바꿔서 내놓는 것이 아니에요. 디아블로3가 처음 등장했을 때 주로 비판받은 부분은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너무 밝아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마이티 넘버 나인`은 그냥 과거의 록맨을 그대로 살리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임성도 그 당시 수준에 머무르고, 참신한 부분도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요. 저 만들다 만 그래픽도 제 생각엔 `그때 록맨보단 나으니 뭐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한 결과물 같아 보입니다. 차라리 끝내주는 2D로 만들었으면 더 나았을걸요. 해외 매체에서는 콤셉트가 개발 기간과 퀄리티 업 사이에서 고민했을 거라 말하지만, 제 생각에 콤셉트는 그 그래픽이 구리다는 자각도 없었을 거에요. 안 그러고서는 저렇게 대책도 없는 물건을 가져오진 않았겠죠.



▲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본 이미지 출처: NerfNow.com)

퍼블리셔도 문제입니다. 마이티 넘버 나인이 망하고 나서 `인티 크리에이츠`는 이 게임의 실패가 유통사인 딥 실버 탓이라고 엄청난 불평을 퍼부었어요. 인티 크리에이츠는 마이티 넘버 나인의 개발을 함께 진행했고, 그에 앞서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또 다른 록맨의 정신적 후속작이라 자처하는 `푸른 뇌정 건볼트` 시리즈를 개발한 회사입니다. 아니, 퍼블리셔를 탓하는 게 말이 됩니까? 개발 기간하고 예산 둘 다 충분했는데도요? 물론 딥 실버가 좀 맛이 간 퍼블리셔인 건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그 퍼블리셔도 결국 이분들이 도장을 찍었으니 계약이 된 것 아닙니까?

그리고서는 약속했던 패키지 배송도 늦어지고, 소송 이야기까지 오가는 와중에 겨우 받은 패키지는 성의 없는 종이상자에 매뉴얼이 다였습니다. 최소한의 QA도 하지 않은 것인지 이 패키지가 너무 작아서 매뉴얼이 들어가지도 않아요. 이 정도면 그냥 돈 받고 날아버린 수준입니다.



▲ 이게 전부입니다. 빈 상자, 상자보다 더 큰 매뉴얼...(출처: 트위터 ID 'wintercute')



망함, 그 이후
그래서 이모양 이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완전 박살이 났습니다. 진짜 완벽하게 박살 났어요. 왕년에 카와타 마사치카에게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라고 일갈하던 이나후네 케이지는 본인이 직접 돈을 어떻게 시궁창에 버리는 건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혼났던 카와타 PD는 어떻게 됐을까요? `바이오 하자드7`으로 거물 PD가 되었습니다. 반면 이나후네 케이지는 귀무자, 데드 라이징, 록맨으로 쌓아 왔던 본인의 경력에 거하게 똥을 처발랐죠.



▲ 봐라. 돈은 이렇게 버리는 거다.

개발사인 콤셉트는 아예 넘어가 버렸습니다. 요괴워치로 끗발 날리던 레벨 파이브에 인수되어서 `레벨 파이브 콤셉트`가 되어 버렸죠. 이나후네 케이지는 여기서도 어떻게 한자리를 얻어내 CCO가 되었습니다. 록맨의 원산지인 캡콤은 더 기가 막힙니다. 마이티 넘버 나인을 보고 `우리가 그냥 만들어도 저거보단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새로운 록맨 시리즈의 개발에 들어갔고, 얼마 후면 출시합니다. 록맨 팬으로서는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를 기묘한 상황입니다. 어쨌든 마이티 넘버 나인 덕분에 제대로 된 넘버링 타이틀이 나오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큰 피해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입었습니다. 킥스타터를 준비하던 소규모 인디 개발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죠. 이번 사건 때문에 게이머들은 킥스타터라는 크라우드 펀딩 수단에 굉장한 불신을 품게 되었어요. 60달러를 후원하고 3년을 기다렸는데 막상 도착한 게임은 보는 즉시 눈이 타버릴 것 같은 비주얼 테러의 집합인 데다, 후원에 감사하겠다며 준 패키지는 분리수거도 겨우 될 것 같은 작은 크기의 쓰레기였어요. 이후, 게이머들은 킥스타터를 통해 후원하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되어버렸습니다.



▲ 욕먹던 캡콤은 낄낄거리다가 록맨 11편을 만든다고 나섰습니다.

이쯤 되면 안 망하는 게 신기합니다. 가끔 이 기사를 쓰면서 느끼는 건데,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 망하는 게 당연한 게임이 그 당시에는 잘 안 보이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예요. 그렇게 마이티 넘버 나인은 바람 빠진 원기옥처럼 망한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의 이름값과 감성에만 매달리는 게임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 수 있죠.

록맨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참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원조 개발자가 만든 게임은 똥 덩어리였고, 그걸 보고 용기를 내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캡콤은 영 미덥지가 않아요. 아무리 욕을 해도 원조 맛이 안 날까 봐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오늘도 이렇게 하나의 망한 게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멘트가 잘 생각이 안나고 뭔가 뒷맛이 찝찝한게 계속 저 게임 스샷을 봤더니 마음이 어지러운가 봐요. 여튼 저는 다음 주에, 또 다른 게임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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