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무엇이 문제인가?

기획기사 | 윤홍만 기자 | 댓글: 94개 |



블리즈컨 2018 당시를 되돌아보자. 당시 행사에서는 두 개의 게임이 메인을 장식했다. 하나는 '디아블로 이모탈'이었고 다른 하나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이하 리포지드)'였다. 그러나 두 게임을 보는 대중의 반응은 상반됐다.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이랄 수 있었던 '디아블로 이모탈'은 나와선 안 될 게임, '리포지드'는 유일한 희망. 이것이 당시의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도중에 '리포지드'의 출시일이 연기돼도 유저들은 이해했다. 게임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연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저들의 믿음은 '리포지드'가 정식으로 출시되자 박살이 났다. 리메이크에 가까운 퀄리티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단순한 리마스터만도 못한 게임이 나왔기 때문이다.

개량을 거듭한 '워크래프트3' 엔진을 이용해 재련(再鍊)된 '리포지드'다. 유일한 희망에서 최악의 게임으로까지 추락한 이유는 뭘까? '리포지드' 혹평의 원인은 뭘지 한 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새롭게 벼려진 모델링

혹평이 이어지고 있는 '리포지드'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최악인 건 아니다. 눈에 띄게 개선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새롭게 벼려진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리마스터라고 하면 고해상도를 지원하거나 새로운 텍스쳐를 적용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리포지드'는 달랐다. 새로운 모델링과 애니메이션만 떼어놓고 보면 리메이크라고 해도 될 정도다.



▲ 거진 20년 된 엔진으로 이렇게 만든 것 하나만큼은 그래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여기에 더해 단순히 과거 '워크래프트3'의 모델링을 조금 다듬는 정도가 아닌 최신 스타일로 디자인한 점 역시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클론 영웅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도록 외모부터 갑옷, 무기 등이 새롭게 디자인됐고 아서스나 실바나스, 킬제덴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긴 유저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바뀌었다. '워크래프트3'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프리퀄에 가까운 만큼, 단순히 리마스터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결고리를 강화한 셈이다.

블리즈컨 2018에서 최초로 공개될 때 유저들이 기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툰풍 그래픽이었던 게 실사풍으로 바뀌어서 어색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인 리마스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럼에도 '리포지드'가 혹평받는 이유는?
원인 1. 너무 높아진 유저들의 기대치


그렇다면 도대체 새로워진 모델링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리포지드'에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블리즈컨 2018에서 보여준 트레일러로 인해 유저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음을 들 수 있다. 사실 블리즈컨 개최 전부터 '워크래프트3' 리마스터가 나올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리포지드'는 이런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물이었다. 리메이크에 가까운 퀄리티였기 때문이다.

특히, 정화 캠페인은 앞으로 보여줄 '리포지드'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줘 유저들의 기대를 더욱 부채질했다. 한층 어두워진 색감은 이야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어 실사풍 그래픽에 힘을 실어줬고 새롭게 추가된 컷씬들은 과거 '워크래프트3'를 즐긴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 모두의 시선을 휘어잡을 정도였다. 블리자드의 별명 중 하나인 시네마틱 장인으로서의 노하우가 집약됐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 이런 퀄리티를 보여줬는데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단순히 보기만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당시 시연 버전을 체험해본 유저들 역시 대부분 좋게 평가했다.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리포지드'만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블리자드는 정화 캠페인에서 보여준 컷씬을 예로 들며, 4시간 분량의 새로운 컷씬을 추가할 것이라고 밝혀 유저들의 기대감을 키웠다.


모델링만 바꿨다고 그래픽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원인 2. 사라진 컷씬, 그리고 퇴보한 퀄리티

그러나 이러한 유저들의 믿음은 배신당했다. 짤막한 컷씬이 새롭게 추가되거나 연출이나 구도 등이 바뀌는 등 변화가 있긴 했지만 아주 작은 변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첫 공개 당시 보여준 컷씬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한 모습. 블리자드가 약속한, 그리고 유저들의 가슴을 뛰게 한 새로운 컷씬들이 정작 정식 출시 버전에선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기대감을 배신한 건 컷씬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선된 모델링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퇴보한 퀄리티가 연이어 '리포지드'의 발을 붙잡았다.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리포지드'의 핵심은 결국 대전 등의 멀티플레이였기 때문이다.

RTS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그래픽이나 조작체계 등 다양한 요소가 있을 테지만 핵심은 가시성이다. 한 번의 다수의 유닛을 조작해야 하는 만큼, 피아구분이 명확해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한다. 그렇기에 RTS에서 그래픽 퀄리티라는 건 단순히 캐릭터 모델링 각각이 좋고 나쁘고는 무의미하다. 어차피 확대해서 보지도 않고 하나씩 조작하는 게 아니기에 모여있어도 한눈에 잘 보여야 한다.

그러나 '리포지드'는 이 가장 중요한 가시성을 간과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유닛들이 모여있으면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렵고 스킬 이펙트는 어딘지 조잡하게 변했거나 시야를 가릴 정도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래도 괜찮았던 것들을 하나로 모아 완성하니 오히려 조잡하게만 보이는 셈이다.





▲ 이펙트 말고도 유닛들이 한눈에 안 들어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다


단순히 못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원인 3. 과거 블리자드였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완성도

단순히 기대치가 높았던 것과 전체적인 퀄리티의 저하 외에도 유저들이 '리포지드'에 분노하는 이유는 더 있다. 예전의 블리자드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물로 인한 실망감이 그 기저에 깔린 것이다. 과거 블리자드는 그 어느 게임사보다 유저 친화적인 게임사였다.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만든 게 아니라 개발자인 자신들부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유저들은 몰라도 블리자드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만큼은 120% 만족시키는 게임사였다. 그렇기에 블리자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유독 충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리포지드'는 그런 유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그 블리자드의 게임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모델링을 제외한 그래픽 퀄리티는 조잡하게 퇴보했고 버그까지 있었다. 심각한 버그도 아니다. 4K 해상도에서 버그로 일부 글자가 겹치거나 다른 글자로 바뀌는 버그다. 하지만 이 버그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심각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4K 해상도를 지원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블리자드다. 그랬는데 4K 해상도에서 버그가 발생한다는 건 유저들에게 제대로 검수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 과거의 블리자드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버그

버그 말고 완성도와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그래픽 등 외적인 변화 외에는 큰 개선이 없다는 점이다. 모델링이 바뀌면서 '리포지드'의 캐릭터들은 전체적으로 더 커졌다. 앞서 언급한 가시성에 대한 부분으로 모델링이 바뀐 만큼, 더 넓은 시야각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등의 해결책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원작과의 호환성을 추구한 나머지 이를 간과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이미 베타 테스트에서 몇 번이나 거론됐다는 점 역시 블리자드를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블리자드가 원래부터 유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게임사는 아니라지만, 몇 개월간의 베타에서 계속 지적했다는 건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블리자드는 그대로 방치하고 출시했다.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 편의성 측면에서는 전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리포지드'의 실질적인 개발을 담당한 외주 개발사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있다. 블리자드 내부에서 개발한 게 아니니 이런 퀄리티의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논지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한 면책성 의견에 불과하다. 해당 개발사는 전에도 수많은 게임의 외주 작업에 참여했을뿐더러, 블리자드로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외주 작업을 맡은 바 있다. 즉, 단순히 외주 개발사라서 개발 실력이 못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결과적으로 외주 개발사가 수준 낮은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검수하는 건 블리자드의 재량에 달렸다. 외주 개발사가 수준 낮은 결과물을 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약 만족스럽지 않은 퀄리티라면 검수와 재작업을 해야 했다는 의미다. 즉, 완성된 '리포지드'에 대한 모든 책임은 블리자드에 있는 셈이다.





▲ 결과적으로 말해 이러한 약속들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가격이 저렴했더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리마스터라고 하면 큰 변화가 없기에 2만 원 정도로 저렴하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포지드'는 다른 리마스터보다 다소 비싼 가격인 36,000원(일반판)에 책정됐다. 문제가 없었더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문제가 산적한 이상 비싸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추억 재련에 실패한 '리포지드'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다시 재련(Reforged)하길...

'리포지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추억 재련의 실패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은 있다. 앞선 문제점들의 상당수는 업데이트를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아예 새롭게 만들거나 컷씬을 추가하는 건 힘들지 모르겠지만 부족한 이펙트나 연출은 속도를 조절한다거나 이펙트를 추가하면 된다. 가시성이 최악인 것도 시야를 더 키우던가 광원 옵션을 좀 더 매만지면 될 뿐이다.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으나 시간을 들이면 해결하지 못할 그런 치명적인 문제도 아니란 의미다.

결국, 지금 '리포지드'에게 필요한 건 또 한 번의 재련이다. 오래도록 '워크래프트3'를 사랑해온, '리포지드'를 기다려온 팬 대부분이 눈을 돌렸지만, 그럼에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비난이 칭찬으로 돌아설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느냐고 또 욕을 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래도록 기다려온 팬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험한 길을 블리자드가 걸어가길 바란다.



▲ '리포지드', 또 한 번의 재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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