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금, 대형 게임사는 '인디'를 본다

기획기사 | 박광석 기자 | 댓글: 33개 |



네오위즈는 지난 19일, 인디 개발사 사우스포게임즈가 개발한 2D 플랫포머 액션 게임 '스컬' 얼리억세스 버전을 스팀에 출시했다. 이렇게 출시된 스컬은 스팀 출시 하루 만에 '전 세계 최고 판매 제품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현재도 매우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스컬과 메탈유닛 등, 2020년을 맞은 네오위즈의 첫 행보가 인디 게임 퍼블리싱에 집중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대형 게임사와 인디 개발사의 협력 사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지금, 이러한 협업을 통해 양측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행보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어디인지 정리해보았다.


국내 게임 업계에 불어온 인디 게임 퍼블리싱의 바람
모바일에 지친 유저들, '스팀'으로 몰리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은 국내 게임 업계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주류가 되었고, 게임사들은 앞다투어 모바일 게임 개발에만 열을 올리게 되었다. 모바일 게임은 개발 기간도 짧고 비용도 저렴하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이보다 반가운 수단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장르와 과금 구조에 지친 유저들은 모바일 게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결국 몇몇 게임들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은 빠르게 '레드오션'화되었다.

여기에 비약적인 속도로 기술력을 키운 중국발 게임들이 하나둘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치고 들어오자, 대형 게임사들은 더욱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그리고 유저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플랫폼 다변화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했다. 이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스팀을 기반으로 하는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부분의 중견 개발사들은 어떠한 보장된 부분이나 교과서적인 메뉴얼도 없는 PC 패키지 게임 개발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국내에서 PC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고, 괜찮은 퀄리티를 가진 신규 PC 게임을 찾던 대형 게임사들은 자연스레 독창적인 게임 개발에 매진하는 인디 개발자들과 접촉하게 된다.

최근 스팀에서 메탈유닛과 스컬을 출시한 네오위즈는 퍼블리싱을 할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서비스하는 본인들도 재미있다고 느끼는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뿐, 인디게임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퍼블리셔의 동기 부여, 그리고 성과에도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곳 중 상당수가 인디 개발사라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 꼭 인디 게임일 필요는 없었지만, 인디 게임밖에 없었다


인디 개발자들이 자체 퍼블리싱 대신 대형 게임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모든 에너지를 개발에 집중 → 작품의 퀄리티 향상에 직결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고 서비스하기 위해선 다양한 방식을 고려해야만 한다. 부족한 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해 텀블벅 등 여러 사이트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기도 하고, 완성된 게임을 자체적으로 서비스하거나 대형 퍼블리셔와 손을 잡기도 한다. 현재 자신들이 놓여있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과 추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모두 따져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디 액션 게임 '던그리드'를 개발한 팀 호레이가 그랬듯, 퍼블리셔의 도움 없이 스팀 플랫폼을 통해 자체적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시 후 마케팅이 성패를 가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모바일 게임 시장과 달리, 스팀은 상대적으로 마케팅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마케팅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독창적인 매력과 게임의 완성도로 전세계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디 게임들의 성공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듯이 말이다.




퍼블리셔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면 매출액 전부를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팀 플랫폼에 자신들의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대형 퍼블리셔와의 협력을 선택하는 인디 개발자들이 적지 않다. 부족한 인력이나 개발비 확보를 위해서라는 1차적인 문제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개발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스컬'을 만든 사우스포게임즈의 박상우 대표는 지난 KGC 2019 강연을 통해 "인디게임 퀄리티 상승을 위해 정부, 혹은 게임 대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굳이 퍼블리셔를 끼지 않고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을지라도, 게임의 퀄리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다양한 게임 서비스 노하우를 지닌 대형 퍼블리셔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 사우스포게임즈 박상우 대표

실제로 스팀에 게임을 출시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개발 외적인 부분에서 추가로 들어가는 절차가 상당수 존재한다. 예를 들면 게임 서비스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법률문제, 심의, 관련 서류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부분까지 전부 신경 쓰다 보면 개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게임의 퀄리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대형 퍼블리셔와 함께한다는 것은 금전적인 부분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단기간에 게임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개발자라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의 개발 과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도록 사전에 협의하는 등, 대기업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대형 게임사와 손을 잡은 인디 개발사의 작품은?
넷마블, 라인게임즈,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까지, '대기업 참여 늘어나고 있다'

최근 네오위즈가 출시한 메탈유닛과 스컬 이외에도 대형게임사와 손을 잡고 출시를 앞둔 인디 게임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인게임즈에서 상표권을 출원한 'HP 소드', 그리고 넷마블의 지분 투자가 이루어진 '리틀 데빌 인사이드'다.

청강대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인디 게임 개발팀 'Team Global Bubble'의 첫 작품인 'HP 소드'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체력이 증가하면 이에 비례해서 검의 길이도 함께 늘어나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액션 게임이다. 지난 2017년에 개최된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인디 게임 최우수상을 받고 BIC 2017 그랑프리에 지명되는 등 호평을 받았지만, 내부 문제 탓에 한차례 개발 중단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후 라인게임즈가 HP 소드의 상표권을 출원하면서 멈춰있던 게임 개발이 재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HP 소드의 정식 출시를 기다리던 인디 게임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퍼블리셔의 지원이 없었다면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인디 게임이 빛을 보게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넷마블은 지난 2018년 2월, 국내 인디 게임 개발사 니오스트림 인터렉티브에 약 30%의 지분투자 소식을 알리며 플랫폼 확장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넷마블 방준혁 의장은 이날 모바일 시장에 집중했던 방향에 경쟁력을 더하기 위해 콘솔 및 스팀 게임 개발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니오스트림에 대한 지분 투자 역시 플랫폼 확장 계획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니오스트림 인터렉티브에서 개발 중인 '리틀 데빌 인사이드'는 RPG의 성장 요소와 생존 시뮬레이션를 결합한 작품으로, 존 오픈월드 시스템을 채용한 자유도 높은 게임플레이가 특징이다. 가상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플레이어는 괴물과 미스테리를 연구하는 대학부서의 박사에게 고용된 몰락 귀족이 되어 모험을 떠나게 된다.

니오스트림 인터렉티브의 이재준 이사는 넷마블의 지분투자 소식 이후에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개발 자유도 100%를 지키기 위해 외부 투자를 신중히 고려했으며, 개발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확답이 있었기에 넷마블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꾸준히 인디 개발자들과의 협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이다. 영세 개발사 및 가망성 있는 인디 개발사를 지원하기 위해 '오렌지팜'을 설립하여 운영해온 것은 물론, 지난 2019년 9월엔 자사의 소셜 플랫폼인 스토브를 통해 4종의 패키지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현재 스토브의 패키지게임 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4종의 패키지 게임은 모두 인디 개발사들의 작품이다. 그중에는 스마일게이트가 직접 운영하는 대학생 창작지원 프로그램인 '스마일게이트 멤버십' 출신 개발자들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스토브는 현재 한국의 유수한 개발사뿐 아니라 해외 인디 개발사 및 퍼블리셔들과도 패키지상점 내 입점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보다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나갈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 스마일게이트의 패키지 게임 라인업은 스토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형 게임사들이 선택한 인디 게임들의 특징은?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로그라이트 액션, '인디' 색깔 드러나는 도트 기반의 그래픽

그렇다면 대형 게임사들의 간택을 받은 인디 개발자들의 작품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퍼블리셔의 선택으로 게임 업계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분모'를 찾아보았다. 물론 게임사가 퍼블리싱할 게임을 선택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게임이 재미있는가'이기에, 특정한 공통분모를 찾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1. 많은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플랫포머 액션

플랫포머 액션만큼 취향을 타지 않는 장르가 또 있을까? 플랫폼 게임은 보통 점프 버튼과 방향키, 여기에 가끔 공격과 상호작용 버튼이 더해질 뿐, 비교적 간단한 조작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로 규칙을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시뮬레이션이나 퍼즐, 공포, 전략, 카드 게임처럼 타겟 유저층이 한정적인 장르 대신 플랫포머 액션 게임이 주를 이루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2. 인디 느낌 물씬 풍기는 도트 그래픽

두 번째 특징은 픽셀이 큰 도트 그래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도트 그래픽은 얼핏 보기에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개발자가 한땀 한땀 찍어냈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게임에 개발자의 노력과 정성이 가득 담겼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잘 찍은 도트 그래픽은 게임의 내용과는 별개로 유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3. 반복해서 플레이해도 쉽게 질리지 않는 '로그라이트' 장르

앞서 언급한 특징들보다도 더 자주,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이 바로 '로그라이트(Rogue-lite)' 장르다. 대부분의 로그라이트 게임은 매번 바뀌는 맵과 한 번 죽으면 플레이 기록이 일정 부분 초기화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저로 하여금 한정된 콘텐츠를 오랫동안 플레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요소가 된다. 보통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여건상 게임의 볼륨을 AAA급 게임처럼 크게 키울 수 없으므로, 이런 부분에서 이점을 갖는 로그라이트 장르를 특히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 게임사와 인디 개발자의 협력, 그 미래는?
선순환 이끄는 상생 구조가 더 확대될 수 있기를




획일화된 게임들만 주구장창 쏟아져나오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디게임이라는 풀뿌리가 굳건히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어야만 한다. 최근 계속해서 들려오는 대형 게임사와 인디 개발사의 협력 소식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퍼블리셔와 인디 개발사 모두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저마다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퍼블리셔는 인디 개발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게임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저마다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인디 게임 퍼블리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네오위즈의 경우, 기본적으로 '게임에 관한 결정은 모두 개발사의 생각대로 한다'는 것을 기본 골자로 내세우고 있다. 퍼블리셔는 개발자가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개발 이외의 모든 부분을 지원한다. 인디 개발자는 대형 게임사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와 다국어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홍보/커뮤니티 관리/QA/로컬라이징/성우녹음/심의 등 전반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 상점 페이지에서 라이브 영상을 제공하는 것도 퍼블리셔를 통한 홍보의 일환이다

대형 게임사들은 인디 개발자들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더 좋은 게임을 발굴해내는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고, 인디 개발자들 역시 단시간의 수익 창출을 위한 비슷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만드는 대신 더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게임 업계 전반에 형성된다면, 머지않아 스팀에서도 전세계 게이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국산 인디 게임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게이머로서, 국산 스팀 게임들의 흥행 소식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네오위즈의 '스컬'이 보여준 선례를 시작으로, 게임 업계 전체에 선순환을 이끄는 대형 게임사와 인디 개발자의 상생구조를 앞으로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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