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학과 졸업, 그 후 1주일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13개 |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몇 달 전. 지금은 국내외 게임 산업 한파 소식이 꽤 쉽게 들리지만, 그 때만 해도 알음알음 관계자들 사이에 퍼지던 시점이었을 거다. 업계가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느니, 한동안은 좀 어려울 것 같다느니.

IMF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대형 재앙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침체가 이뤄질 거란 예상은 다들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현업에 있다 보면 굳이 말로 옮기지 않아도 피부로 느껴지는 게 있는 거니까. 도약을 위한 성장통일 거란 의견도 있고,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란 의견도 있었다. 어느 때나 그렇듯, 같은 상황도 관측자에 따라 풀이가 달랐다.




그 날도 어김없이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그러던 중 생각해 보았다. 게임 산업이 전반적인 침체기에 들어서면, 누가 가장 난감한 상황에 처할까? 재무재표를 바라보는 개발사의 CFO? 확정적 레이오프가 예정된 스튜디오의 일원? 신작이 안 나와 지루함에 빠진 게이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곤란한 건 이제 시작해야 할 사람들 아닐까?' 시련의 경중을 따지는 건 아니다. CFO도, 개발자도, 게이머도 곤란한 건 매한가지다. 다만, 비슷한 경험을 쌓았거나 케이스를 보아온 이들, 혹은 소비자라는 다소 다른 시선에서 상황을 볼 그룹과 달리 게임 산업에 들어오려는 이들에게 산업의 침체는 또 다른 의미지 않을까 싶었다.

화두가 던져진 후,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기준으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 경력이 갈리는 현업 종사자들, 게임 산업 종사를 지향하다 노선을 바꾼 이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주제도 살짝 바뀌었다. '산업의 침체'는 분명 난감한 일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침체 그 자체보다 이로 인한 고용 시장의 경색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작업 과정에서 초점을 '침체'가 아닌 '취업'으로 맞췄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수집한 에피소드와 감상들은 다소 번잡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다. 그리고 이 인물의 1주일을 통해 게임 산업에 입문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과 이미 취업한 사람들, 그리고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춰 보았다.

※ 대한민국 게임 산업 종사자는 10년 넘게 8만 ~ 9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 개발사와 퍼블리셔 종사자가 4만~5만 명에 달하며, 나머지는 PC방 및 아케이드 산업 종사자, 기타 게임 관련 산업 종사자다.(대한민국 게임백서 참조)



▲ 2022년 기준 게임산업 종사자 수 통계

※ 해당 기사는 게임 산업 입문을 꿈꾸는 취업준비생과 취업 과정을 겪은 업계 종사자 등의 이야기를 묶어 편집한 가상의 수기입니다.

[월] 졸업식 후
'학생'이란 이름을 떼고 처음 맞이한 1주일

수업이 없는 날 늘 해온 것처럼 강아지와 산책을 마치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생각보다 조용히 끝난 졸업식 이후, 딱히 달라진 건 없다. 마지막 수업 이후 이미 3개월이 지난 후이며, SNS의 프로필이 '재학 중'에서 '졸업'으로 바뀐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였다.

마음은 반반이다. 조급함 반, 그리고 설렘 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대학에 진학했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상상했던 것들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다는 설렘이 반,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나 싶었던 걱정이 반이다. 실질적인 졸업이라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수업 이후, 늘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이보단 조금 더 복잡하다. 별 생각 없던 1,2학년 때만 해도,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게임사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거고, 어쩌면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일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게 내가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졸업이 대체 뭐라고 좀 더 복잡해져 버렸다. 수평을 유지하던 걱정과 낙관의 저울에서 저울추가 하나 빠진 것 같다.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생각보다 소속감이 꽤 크게 마음 속을 채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난 이제 백수다. 취업하고 나면 제대로 놀 시간도 없겠는데, 언제 또 이런 시절이 오겠어. 밀린 게임부터 좀 해야겠다.

※ 2023년 기준으로 대학 졸업자, 졸업 예정자, 중 '적극적 구직자'는 전체의 21.1%에 불과하며, 의례적 구직활동이 최대인 '소극적 구직자'가 무려 57.6%에 달한다(한경련 리서치 참고)


[화] 술자리
힘든 거 저도 알아요

"아니 아직 모를걸?"

사회인 기념으로 한잔 하자는 말에 나간 술자리에서, 이전에 조별 과제 같은 조를 했던 2년 선배가 말했다. 웃기는 말이다. 저 선배는 이제 고작 3개월 차고, 난 사회에 발끝도 들여 보지 못했다. 무슨 놈의 사회인 기념이야.

지금도 저거 봐라. 1년도 안 다닌 회사가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다고 복학생 모임에서 떠드는 군대 썰 마냥 본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주절주절 읊고 있다. 그러다 나온 말이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 안하고 노는 게 더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였다.

개념으로는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무력감과 자괴감은 이미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이대로 년 단위로 일자리를 못 구하면 직접 겪겠지만, 꼭 직접 겪지 않아도 아는 건 아는 거다. 하지만 선배는 딱 단정했다. 넌 절대 모를 거라고.

석 달 까지는 괜찮단다. 청년 실업이 하루 이틀이 아닌 시대에 3개월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럴 수 있다 싶더랬다. 그러다 반 년이 되자, 조금씩 조급해지고, 1년이 넘어가자 전공이고 뭐고 지방 공장 문이라도 두들겨야 하나 싶었단다.

선배가 말했다. "몇 년 동안 일자리 못 구하는 사람들 정신적으로 내몰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더라. 이러다 인터넷에서 본 사람들처럼 나이 들어서도 용돈 타 먹고 경력도 못 쌓다 인생 망하는 거 아닌가 싶고 막 그렇다니까. 괜히 집에서 눈치 보게 되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닐 거다. 불콰하게 취한 표정만 봐도 다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잔을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내일은 포트폴리오라도 다시 봐야겠다'

※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졸업 후 취업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평균 취업 준비 기간은 약 10.4개월이다. 또한, 첫 직장의 평균 근속 년수는 1년 6.6개월이다.



▲ 다행히 COVID-19가 한창이던 2020년 이후 취업률은 점점 회복세다


[수] 재점검
내 지난 4년은 가치있었을까?

뭔가 많이 했었는데, 정리해 놓고 보니 쓸만한 게 없다.

지난 4년 간 쌓아둔 포트폴리오를 보는 내 기분이 그렇다. 분명 뭔가 더 한 것 같은데, 여기 있는 내용을 채워 넣을 때만 해도 '이 정도면 포트폴리오에 넣어도 어디서 안 꿀리겠군'하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내가 봐도 꿀린다.

이런 거로 취업이 되긴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졸업하고 취업한 선배들도 다 이런 포트폴리오로 취업했을 테니 별 문제 없는 걸까? 내 포트폴리오 정도면 상위 몇% 정도 되는 걸까? 취직하고 나면 대학에서 배운 거 다 쓸모없다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의미가 있나?

이런 저런 의문을 이어가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이거 진짜 망한 거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모호했던 위기감이 갑작스럽게 솟아났다. 이래서 동기들이 다들 졸업하고 나면 포폴 작업을 할 거라 말했던 건가 싶다. 그들이라고 본인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뭐라도 더 더하고 붙이려 하겠지.

잠깐의 공황이 지나간 후 뭐라도 덧댈 내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해서는 안 될 테니 공부도 해야겠지. 졸업하고 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인터넷 글들이 갑자기 이해가 됐다.

이 날은 유독 게임이 재미없었다.

※ 게임 산업에서 잘 만든 포트폴리오는 '치트키'로 통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특정 엔진의 숙련 여부나, 실제 작업 결과물 등에 따라 조건 상 맞지 않는 지원자도 합격할 여지가 충분하다.



▲ 포트폴리오 예시(이미지 출처: SBS아카데미)


[목] 취업 페이지
다 경력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게임 탭을 클릭했다. 허들이 궁금했다. 아니 그보다도, 안심하고 싶었다. 모든 관계에는 갑을이 있다. 잘난 사람은 갑이 되어 회사를 선택할 수 있고, 못난 사람은 을이 되어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절대 갑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을 중에서도 눈길 한 번 정도는 받을 만한 을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전엔 나 혼자만의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장담하건대, 졸업생 중 이 생각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혼자 뚝딱뚝딱 만들어 부와 명예를 쓸어 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만 터지면 로또 정도는 '따위'로 만들 만한 성공이 뒤따르니 한 번 쯤은 눈이 돌아간다. 굳이 성공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배운 사람에게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건 당연한 욕구일 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도 안다. 물론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도 봤다. 혼자 만든 게임이 몇백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개발자가 돈방석에 앉았다는 썰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들려온다. 우리같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영웅담 같은 거다. 누구나 한 번쯤 영웅의 꿈을 꾸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너무나 잘 안다.

그렇게 구인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보니, 생각보다 허들이 높지 않아 보였다. 이쪽 업계는 대부분 '학력 무관', '경력 무관'이다. 물론, 눌러 보면 좀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 최소 요건은 학력 무관에 경력 무관, '즐겁게 일할 수 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분'이지만 우대 요건은 '~~엔진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분', '~~빌드를 구축해 본 분', '~~시스템을 다뤄보신 분'이 더해져 있다.



▲ 게임 산업은 일단 '경력, 학력 무관'이 많다. 물론 우대 사항은 다르다.

지원자가 나 혼자면 모를까 당연히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겠지. 나보다 훨씬 먼저 졸업해서 포트폴리오를 가다듬었을 선배들이나, 다른 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해본 사람이나, 하다 못해 동기 중 나보다 성적 좋은 이도 넘치고 흐른다.

최약체가 된 기분과 함께 자존감이 쭉쭉 떨어졌다. '말만 저렇고 생각보다 쉬운 것 아닐까? 분명 나 같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 사람들도 다 취업하잖아'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고, 너무 이른 걱정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잠깐의 안도감 뿐이었다.

문득, 요 며칠 게임 산업 뉴스들이 떠올랐다. 경영 효율화니, 인력 감축이니, 하필 내가 졸업하는 2024년은 연초부터 뉴스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두 달 전만 해도 크게 와 닿지 않던 뉴스였는데, 갑자기 심각하게 느껴졌다. 게임 산업 이대로 괜찮은 거 맞을까? 지금이라도 IT쪽 공부를 해봐야 하나?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가 있다. 작년 기준으로 졸업 후 취업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이 10개월 조금 더 된단다. 앞으로 10개월은 안심해도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10개월짜리 타임어택이 시작된다는 걸까? 나는 안심해도 되는걸까? 아님 조급할 상황일까?

뭔가 더 알아보려 할수록 점점 더 모르는 것만 느는 것 같았다.



▲ 분명 경력 무관을 보고 눌렀는데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 의외로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구직 사이트의 구조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구직사와 이름이 다른 헤드헌터사가 올린 공고에 혼동을 겪거나, 세부 항목 설명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 2024년 상반기 게임 산업은 국내 뿐만 전 세계에 걸친 한파를 겪고 있으며,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에서 천 단위에 이르는 임직원을 해고한 개발사가 적지 않다.



[금] 조금 늦어도 괜찮아
정답은 없다

게임을 켰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저녁 즈음 되면 늘 그 시간에 출몰하는 게임 친구들이 있다. 어느 게임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게임 하다 만나게 되서 같이 이 게임 저 게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같이 하게 된,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얇은 인연임에도, 우린 서로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히려 서로가 누군지 모르기에 더 쉬웠다. 아는 건 게임 닉네임 뿐이지만,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 주기엔 충분했으니까. 여느때와 다름없이 모였음에도, 금요일은 게임이 조금 늘어졌다. 취업에 대한 내 푸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멈추고 오픈채팅방을 열게 만들었다.

"이제 졸업했는데 좀 놀아도 상관 없지 않나?"
"취업 그리 급하게 안 해도 되요~ 지금 아니면 놀 시간도 없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준비해도 안 늦어요"

조언인 듯 자랑 같은 잡담들을 듣다 보니 나만 심각했다. 본인들은 이미 다 취업했으니 남 일이긴 하겠지만 뭔가 진지해지기도 이상한 분위기라 일단 듣기만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자 티가 났나 보다.

"다 그래요"

그 중 한 명이 말했다. 나보다 꽤 나이가 많아 가끔은 말을 편하게 하는, 게임상에서는 본인 의견을 별로 내세우지 않고 늘 하자는 대로 따라오던 분이 오늘은 유독 말을 길게 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직장인들이고 돈 벌고 있으니까 걱정 없어 보이겠지만 그 시절 안 겪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똑같이 힘들었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하루하루 피 말라가는 느낌이었지. 그러다 어찌저찌 취업은 해서 내가 되게 운 좋다고 생각했는데 얘기 하다보니까 다들 그렇더라고. 다들 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확신이 없었다는 거지.

졸업 하자마자 포트폴리오 딱딱 정리해서 번듯한 직장 바로 취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 하면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된 거죠. 아까 10개월? 남았다 그랬죠? 난 2년 반 걸렸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남들보다 1년 반 늦었나? 생각하면 안 그래요. 나보다 더 늦은 사람들도 많아.

그러고 돌아보니까, 그렇게 2년 반이 너무 아쉬운 거야. 그 때 조금 더 행복해도 되지 않았나? 어떻게든 될 테니 놀기만 하라는 건 아니고, 당연히 목표를 위한 노력은 해야 하겠지만 그간 못 해본 것들 한 번씩 해 보는 정도로는 늦지 않아. 언제가 되든 나보다 빠른 사람도 있고, 늦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게 이것저것 하다 아예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보통 취업한 후에 대학 때 배운 거 하나도 쓸모없다고 하더라. 근데 나도 그래 공대 나왔는데 졸업하고 사진 취미로 찍다가 지금은 사진 일 하잖아"



▲ 실제로 면접을 이렇게 보면 당연히 안 된다.

꽤 진지한 조언에 추임새가 덧대지면서, 대화는 꽤 길어졌다. 각자의 경험과 어려웠던 점 등을 말하다 보니 원래 같으면 게임을 마치고 끌 시간을 훌쩍 넘어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난잡하게 뻗어나가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 결론은 "정답은 없다"였다.

난 게임 만드는 일 외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다. '아직'일지 '영원히'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없다. 유명한 게임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완성되지도 않았고,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을 걸 알지만, 포트폴리오에 놓인 습작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 행복했다. 그 행복감이 내가 게임 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뭘 해야 한다'라고 딱 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무엇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를 테지만, 뭘 해야할 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에 휩싸여 있는 건 분명 정답이 아닐 터였다.

생각해 보면, 마지막 수업 이후 실질적인 백수 생활이 3개월 넘게 이어져 오고 있었음에도, 1주일 전까지는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졸업이 대체 뭐라고 사람 마음이 이렇게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관점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게 이런 걸까?

일단 방향은 잡았다. 하나씩 천천히 해 보기로. 업데이트된 엔진도 만져 보고, 그간 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펼치지 못한 개발론 서적도 보고, 가끔은 구인구직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공고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뭔가 하면 달라질 테니까.

이 시간이 길어진다 해도 꺾이지 않기로 했다. 빠르면 좋지만, 늦더라도 결국 닿는 건 똑같다. 선배가 그렇게 말했고, 게임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으며, 유튜브의 스님과 방송의 강연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경험이 충분하고 내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그 말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5년 후의 나,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혼자 게임을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회사에 다니고 있을까? 게임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연애는 하고 있을까? 잠자리에 누우며 상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좋은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이 모두 모이는 GDC, 언젠가 이 사이에 있지 않을까?

※ 2022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원 중 게임 관련 정규/공공/민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인원은 27.5%이며, 게임 관련 학과의 전공 분류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기에 낮은 수치일 뿐, 전년(2021년) 수치인 24.3%에 비하면 3%가량 상승한 수치이다.

※ 같은 조사에서 대학교 전공 교육 경험이 취업 경력에 주는 도움은 100점 만점에 평균 67.8점,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정도는 57.9점으로 나타났으며, 분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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