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를 찾아서#13] 오버클럭의 음모를 막아라! 본격 CPU 액션, '일렉트로닉퍼플'

기획기사 | 양영석 기자 | 댓글: 14개 |



직선으로 나아가며 적들을 만나고, 스테이지에서 캐릭터를 조작해 다수의 적을 물리치는 게임. 이런 게임들을 대표적으로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이라고 합니다. 일단 이 용어 자체가 좀 복잡하긴 한데, 대부분 '파이널파이트'로 대표되는 캡콤의 액션 게임들을 횡스크롤 액션 게임, 혹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많은 적들을 때려눕히는 게임이라서 'Beat'em Up'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런 게임들은 80~90년대에 황금기를 맞아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적인 개발사는 캡콤이 있고, 많은 벨트스크롤형 게임들이 등장했죠. 국내에서도 이런 게임들이 꽤 있었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기억하는 긴 이름의 게임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이 대표적인 벨트스크롤 게임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 'IP를 찾아서'에서 소개할 게임은 '일렉트로닉퍼플'이라는 게임입니다. 독특한 컨셉과 높은 완성도로 지금도 추억하는 분들이 많은 게임이죠. 국산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으로서는 고전 명작중에 앞서 언급한 '어쩐지저녁'과 같이 양대산맥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정말 잘만든 게임이기도 합니다.





'일렉트로닉퍼플'은 어떤 게임인가?
오버 클럭 킹을 저지하려는 순정(?) CPU들의 액션




'일렉트로닉퍼플(Electronic Popple)'은 1997년 '바이트쇼크(BYTE SHOCK!)에서 제작한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컨셉 자체는 '컴퓨터 부품'으로 잡혀있습니다. 주인공인 MIN과 MAX는 서로 CPU이고, 등장하는 적들도 디스켓, 다이오드, CD, 자판, 콘덴서 등등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전자 부품들이 많죠.

민과 맥스가 살던 평화롭던 컴퓨터 세상은 '오버 클럭 킹'이 등장하면서 암운이 드리웁니다. 오버 클럭 킹은 '퍼플'을 통해 많은 부품들을 감염시키고 세상을 지배할 야욕을 드러내죠. 이 퍼플에 감염되면 부품들을 세뇌하는 동시에 힘이 강해집니다. 네, 오버클럭이에요. 이 '퍼플'은 다른 부품은 무리없이 세뇌가 되는데, 하필 CPU는 세뇌가 잘 안되고 강화되기 때문에 오버 클럭 킹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불안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버 클럭 킹은 이를 계속해서 개량해서 CPU까지 지배하려고 하죠.

민과 맥스는 이런 오버클럭 킹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감염된 부품들을 물리치고, 보스들을 쓰러뜨립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동료나 인물... 아니, 부품들을 만날 수 있고 꽤 재미있는 이야기도 진행되죠. 진행에 따라서 최종 보스를 쓰러뜨려도 배드 엔딩이 나기도 합니다. 즉, 확실한 공략 루트가 있는 게임이기도 해요.



주인공인 '민'과 '맥스', CPU입니다.

주인공인 민은 소켓형 CPU고, 맥스는 팬이 장착된 소켓형 CPU입니다. 덩치가 그래서 민이 좀 더 작고 날렵한 스피드 타입의 캐릭터고 맥스는 파워 타입이죠. 플레이어는 민과 맥스를 조종해서 여러 가지 적 부품들을 물리치는데, 이 과정에서 '퍼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퍼플을 통해서 민과 맥스가 점차 강해지고 레벨업을 할 수 있죠. 민의 경우는 레벨업을 하면서 방열판이 추가되고, 맥스는 쿨러가 업그레이드됩니다. 물론 파워도 강해지고 이펙트가 추가되기도 해요.

일렉트로닉퍼플이 많은 유저들에게 기억 받는 건, 이런 독특한 컨셉과 함께 액션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공격과 대시 공격, 점프, 잡기, 점프 대시, 밟기, 차지 공격과 탈출용 필살기(메가 크래시)까지 기본적인 기술들은 다 있고, 조작도 간단하죠.



도움말로 조작법을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아이템을 이용해서 점프력을 상승시키거나 잠시 무적이 되는 등, 여러 가지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폭탄이나 지뢰같은 아이템도 있고요. 게임의 저장도 세이브 디스켓을 전화박스에서 사용해야 해요. 참 '일렉트로닉'이라는 컨셉도 잘 살려놓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단순하게 전진하면서 적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맵을 탐험하면서 열쇠나 우호적인 부품들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진시켜 나가면서 '전설의 힘'을 얻어야 진정한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전설의 조각들을 모두 찾아내면 민과 맥스의 레벨이 6으로 상승하면서 최종 보스와의 결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맵 또한 과거의 맵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놓친 게 있다면 돌아가서 다시 하고 와도 될 정도죠.



레지스탕스들도 있어요. 부품들이 다양한게 눈에 띕니다.

시스템과 컨셉도 확실한데 액션의 완성도도 훌륭합니다. 그리고 그래픽과 사운드까지 컨셉에 잘 살린 벨트 스크롤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트로 베니아처럼 숨겨진 요소를 찾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벨트 스크롤 게임이자 액션 플랫포머로서는 상당히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에 유저들이 흥미로워할 소소한 스토리, 그리고 성장 요소도 담겨있죠. 그러면서도 일렉트로닉퍼플은 참 쉽지 않은 게임이었습니다. 판정 또한 매우 까다로운 경우도 많았어요. 특히 맥스를 플레이할 때는 후반부에도 기본 콤보를 연타하다가 자판에게 얻어맞기 일쑤였죠. 아마 "ep모조리"라는 단어에 의존하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영문 버전의 플레이 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말 아쉬운 건, 이 게임은 출시 당시에 제대로 된 유통 루트를 확보하지 못해서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으로 오랜 시간 재야에 숨어있었다는 점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알고, 숨겨진 보석 같은 게임이었죠. 당연히 그만큼 힘들게 찾아서 플레이해본 유저들은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렉트로닉퍼플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게임피아의 부록으로 제공된 이후에 조명되면서 명작으로 많은 유저들이 기억하게 됩니다. 독특하면서 확실한 컨셉, 그리고 이에 잘 어울리는 시스템과 육성 요소가 어우러진 가운데 기본적인 액션도 훌륭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게임의 난이도가 다소 어렵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많은 유저들이 아마 기억하고 있는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렉트로닉퍼플'의 권리자는?
순식간에 사라진 바이트쇼크, 저작권은 오리무중....




일렉트로닉퍼플을 제작한 '바이트쇼크'는 1994년 설립된 개발사입니다. 일곱명의 개발자들이 모여서 동고동락하며 제작한 게임이 일렉트로닉퍼플이죠. 바이트쇼크는 처음에는 이호철 대표를 비롯해 네 명의 서울고 선후배 및 동기생들이 모여서 게임을 제작했고, 차후에 합류한 세 명도 게임 동아리를 통해 만난 인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처음에는 해외 게임들을 주로 연구하면서 습작으로 여러 가지 게임들을 만들었습니다. 출시는 안하고 만들면서 R&D를 진행했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조금씩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아서 만든 상업용 게임이 '일렉트로닉퍼플'이었습니다. 꾸준한 제작을 통해 쌓인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게임이 일렉트로닉퍼플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성도가 훌륭했다고 추측할 수 있죠.

일렉트로닉퍼플은 출시 직후에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대만과 일본에 수출 계약을 체결하고 수출되기도 한 게임입니다. 또한 1997년에 영국 페어소프트와 아시아를 제외한 판권 계약을 체결해서 유럽/미국 등지에도 수출됐죠. 그만큼 인정을 받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렉트로닉퍼플을 제작한 이후 바이트쇼크는 리얼 타임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 어드벤처 등이 도입된 새로운 게임 개발에 전념하지만 결국 이는 출시되지 못합니다. 풍운아처럼 등장했던 젊은 개발사인 바이트쇼크는 명맥이 끊기고 말죠. 정말, 진짜 순식간에 바이트쇼크는 해체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거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쉽게도 일렉트로닉퍼플의 저작권자, 권리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게임 시장의 태동기와 같았던 당시에는 상표권 등록이나 IP와 관련된 저작권의 개념도 게임부문에서는 상당히 희미했으니까요. 아쉽지만, 일렉트로닉퍼플의 저작권은 현재 오리무중입니다. 아주 독특한 컨셉부터 시스템까지 잘 어우러진 좋은 게임이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일렉트로닉퍼플'이 부활한다면?
시대가 달라진만큼 오히려 소재가 늘어난 게 아닐지...?



딱봐도 HDD...이젠 SSD 시대라구!

'일렉트로닉퍼플'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컴퓨터'를 소재로 한 세계관, 그리고 두 번째는 잘 다듬어진 플레이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키워드인 컴퓨터 소재의 세계관이 가장 흥미로운 세계관이 아닐까 합니다.

진공관에서 시작했던 컴퓨터는 시대를 거치며 나노 공정이 다듬어지고 고도화됐습니다. n코어, n스레드 등등 이제는 CPU, 그래픽, 저장 장치, 입력장치 및 출력장치에서도 고도화되어 많은 체계가 잡혀있죠. 이를 세계관으로 풀어내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면, 나름 체계잡히고 재미있는 세계관이 나오지 않을까요?

주인공이 CPU라고 가정하면 레벨업을 하면서 코어 클럭이 늘어나고, 스레드가 늘어나면서 점점 강해집니다. GPU 역시 마찬가지겠죠. 여기에 막 부가적으로 RAM이나 SSD와 같은 동료들이 함께 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더욱 강한 캐릭터들이 탄생할 수도 있겠죠 그만큼 적들도 다양해질 수 있을 거고 재미있는 공격이나 액션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강력하지만 빨리 과열되니까 냉각팬이 필수라던가... 가볍고 빠르지만 위력 자체는 높지 않다던가... 뭐 CPU도 요새는 모바일용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으니 재미있는 설정들이 가능하겠네요.

혹시 압니까? A모 CPU가 i라는 세력이 통일하려는 세계를 저지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을 거고, 반대로 n모 세력이 A모 세력을 제압하려다가 진실을 알고 저항하는 뭐 그런 재미있는 스토리들도 만들어질 수 있겠죠. 물론 가정이고 픽션이니 대충 들어주세요. 저는 부품이나 제조사를 가리지 않는 참 게이머입니다. 아무튼, 컴퓨터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재미있는 소재로 풀어낼 수 있는 게 많다고 봅니다.




이런 세계관은 일렉트로닉퍼플이 가지고 있던 액션과 시스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라고 봅니다. 주인공인 MIN과 MAX뿐 아니라 이게는 GPU나 다른 부품들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기획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코어와 스레드가 올라가면서 공격력이 올라가고, 콤보도 다양해지고. 그래도 역시 기본적인 액션은 잘 다듬는 게 우선이겠죠.

일렉트로닉퍼플은 기본적인 플레이와 진행 외에도, 맵에 숨겨진 '전설의 힘'을 찾는 등 약간의 탐험 요소도 첨가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아마 메인 스토리는 CPU의 여정으로 삼고, 숨겨진 서브 스토리로 GPU나 RAM, SSD, 혹은 외부 저장 장치나 입력 장치 등의 요소들도 추가해서 직접 알아보게 하면 꽤 괜찮은 스토리와 진행, 플레이 요소가 담겨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겠네요.




아니면 반대로,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알려줄 수 있는 교육용 게임의 가능성도 보입니다. 컴퓨터의 역사를 소재로 삼는다던가, 최근 기술 동향이나 발전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어차피 컴퓨터를 소재로 한 게임이니 PC 게임으로 나오는 게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이 매력적인 컨셉은 충분히 게임으로서 가능성 자체가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IP 권리자에 대한 향방이 오리무중이고, 뒤늦게 빛을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기에 가능성이 낮아 좀 아쉽죠. 그래도 오늘 또 이렇게 하나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언젠가 좋은 게임으로서 다시 등장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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