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내 게임 구매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11개 |



인터넷 결제를 이용할 때 우리는 항상 많은 보안 프로그램, 공인인증서와 씨름을 해야만 한다. 너무도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관련 법안 때문에 많은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폐지될 예정이었던 공인인증서는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아 아직도 유지되는 상태다.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인터넷 결제는 해외와 비교해서 여전히 답답하고 복잡하게 진행된다.

이렇듯 불편하고 복잡한. 쓸데없이 많은 단계는 인터넷 쇼핑뿐만 아니라 게임 구매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가코드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여러 나라의 스토어를 옮겨 다니는 요즘 더더욱 그렇다. 해외 원화 결제로 이루어지는 게임 구매, 표기 금액보다 더 청구되는 수수료 문제. 콘솔에서 다른 나라와는 다른 번거로운 방식으로 결제가 진행되는 등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그간의 게임 결제는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 왜 내 계정 지갑에는 10원짜리가 남을 수밖에 없는가.

문제는 결국, 국내법에 따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국내에 결제 서비스 주체가 있을 경우가 특히 그렇다.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려면 국내 기준에 맞춰서 결제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 자회사도 만들어야 하고 전자결제를 진행하기 위한 자격도 획득해야 한다. 다만, 결제 주체가 해외에 있을 때는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정보 유출이나 전산사고가 나면 행정 기관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법을 따르지 않는 해외 플랫폼에서의 게임 구매는 법적으로는 해외쇼핑에 해당한다. iOS에서 게임을 구매했을 때. 해외 ESD 등에서 국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을 때가 대표적이다. 해외승인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별도로 부가되고, 환율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거나 수수료가 추가되는 이중 환전과 같은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 스팀으로 게임을 구매했던 유저라면, 자주 봤던 문자이지 않을까 싶다.

게임 구매 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카드 정보의 저장'과 '활용'에 있다. 국내 전자 결제와 관련하여 법안까지 마련되어 있는 액티브X 문제와 더불어, 신용 카드 정보의 저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간편 결제가 활성화되면서 문턱이 낮아지기는 했으나, 개인 정보라고도 볼 수 있는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하는 문제는 깐깐한 편이다.

2014년, 간편결제가 등장하면서 논의되었던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에서도 카드 정보와 본인확인을 위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4년 9월부터 약관을 개정하면서 보안성, 재무적 능력 등 정보보호시스템을 갖춘 PG사에 한해서 카드정보 저장을 허용할 수 있게 변경됐다. 이는 신용카드 번호 외에도 카드 뒷면의 CVC, 유효 기간 등을 저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구매할 때, 계정에 카드를 등록하는 과정 또는 결제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카드 정보는 플랫폼에 저장되며, 저장된 정보를 그대로 이용해 결제를 진행하게 된다. 단계가 줄어든 일종의 간편 결제라고 할 수 있는 셈인데, 국내에서는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전자상거래 결제를 진행하기 위해서 많은 자격 요건들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정보를 저장한다는 부분은 기기 또는 자체 서비스용 ID에 카드 정보를 저장하는 콘솔에서 특히 큰 문제가 됐다. 기기 내에 마련된 스토어를 이용하지 못하고 전자 지갑을 충전하는 방식이라거나, 코드를 별도로 받아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자사의 기기에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다.



▲ 번거로웠던 지갑 충전 방식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되었던 셈.

정말 만약 카드 정보를 기기 또는 계정에 저장하는 형태를 국내에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간편 결제의 영역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보안 및 재무적인 기준, 적격PG가 되기 위한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신용카드사의 결제처럼 정보를 저장하고 간편 결제를 하기 위함이다. 적격PG사가 되기 위한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롭게 구성되어 있다. 개인 정보와 신용 정보를 다루는 영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결제카드산업 데이터보안표준(Payment Card Industry Data Security Standard, PCI DSS) 보안 인증이 요구되며, PG사 자체로 부정사용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 유출 시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재해복구센터(Disaster Recovery Center, DR) 또한 요구된다.

이외에도 재무 기준도 있다. 자기 자본 400억 원 이상, 순부채 비율 200% 이하의 기업이 적격 PG 사로 선정되어 간편 결제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국내 기준으로는 콘솔 기기 또는 계정에 개인의 신용카드 정보를 쉽게 저장할 수 없다.

다만, PC에서 구동되는 ESD라면 적어도 결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국내법에 맞춰 브라우저를 별도로 띄우고 웹페이지에서 결제를 진행하거나, 프로그램 내부적으로 웹 페이지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PG사를 통해서 결제를 진행하면 끝이다.



▲ 대략 구조는 이렇다. PC 기준으로는 쇼핑몰처럼 웹페이지를 띄우면 해결되는 셈.

보안 프로그램이야 PC에서 작동되는 것이므로 웹페이지와 연동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된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콘솔 기기는 그렇지 못하다. 기술적으로야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기기에만 OS를 별도로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내 콘솔 결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기형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유지 중인 PS4의 지갑 충전 방식, 닌텐도 스위치의 코드 입력 방식이다.


■ 콘솔 기기의 경우 - PS4, Xbox, 닌텐도 스위치

PS4는 온라인을 통한 구매, 서비스를 소니엔터테인먼트 코리아(SIEK)가 진행하던 시기와 운영 주체가 SIE로 넘어간 시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는 5월 7일부터 서비스 주체가 변경되며, 그동안 불가능했던 기기 내부에서의 카드 결제가 가능해진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PS 카드를 구매하여 잔액을 충전하는 방식도 유지된다. 카드 판매 주체는 SIEK가 아닌, ATGame이 된다.

서비스 주체가 변경되면서 카드 결제가 가능해지긴 했으나, 법적으로는 해외구매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승인을 지원하는 카드(비자, 마스터, JCB, AMEX)만 결제를 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플랫폼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원화결제로 구매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편의성이 늘기는 했으나 국내법상 불가능하던 카드 정보 저장이 제공될 예정이다.




Xbox 스토어는 현재 해외 결제를 통한 게임 구매를 지원하고 있는 상태다. 2017년 12월부터 결제 주체가 바뀐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국내 게이머들은 환전 수수료를 고려하고 콘텐츠를 구매해야만 한다. Xbox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관련된 모든 스토어가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Xbox와 윈도 스토어 간에 경계가 흐릿해진 플레이 애니웨어 이후 게임 구매에서는 기프트 카드를 제외한 결제 수단은 신용/직불카드가 대표적이다. 해당 결제 방법으로는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 비자,AMEX, 마스터 카드를 등록할 수 있다.




닌텐도 스위치는 지역 코드가 사라지면서 국내에서는 '웹페이지 구매 - 코드 수령 - 기기에서 입력 및 다운로드'라는 기형적인 형태가 됐다. 별도의 기프트 카드가 없어 계정에 금액을 등록할 수 없는 점. 그리고 기기에 카드 정보를 저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을 수 있다. 국가 코드가 사라져 기기에 카드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구매 시마다 확인하는 형태로 e샵이 구성된 상태다.

지사인 닌텐도 코리아가 존재하므로 국내 e샵은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형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보안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웹페이지를 구축한 뒤, 여기서 게임을 구매하고 홈페이지 또는 메일로 발송된 코드를 수령한다. 그리고 국내 e샵에 접속하여 게임 코드를 입력하고 다운로드를 받는다. 국내 결제는 LG유플러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 PC ESD의 경우 - 스팀, 유플레이, 오리진, 에픽스토어

가장 많은 결제 수단을 가지고 있는 스팀은 엄밀히 따지자면, 국내 정식 서비스를 진행하지 않는 상태다. 따라서 국내 신용카드, 문화상품권, 토스, 모바일 결제 등을 진행하는 것도 해외 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늘리기는 했으나 이를 밸브가 직접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밸브는 일본의 전자상거래 솔루션 업체인 '데지카(Degica)'를 통해 전자결제를 진행 중이다. 데지카는 일본 내, 세븐일레븐에서 스팀 월렛 카드를 판매 중이기도 하다. 스팀의 전자결제를 대행하며, 국내에서는 관련 지불 수단을 가진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2016년 12월에는 문화상품권 결제를 시작했으며, 2017년 10월에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2018년 12월에는 토스와 해피머니 상품권, 국내 신용카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결제 주체인 데지카가 일본 도쿄에 있으므로 이를 통한 결제도 엄밀히 따지면 해외 결제가 되는 셈이다. 불법이라기보다는 해외직구, 구매의 영역이 된다.



▲ 여러 결제 수단을 지원하기는 하나, 엄밀히 따지면 해외 직구에 가깝다.

유비소프트가 운영하는 ESD, 유플레이는 기존 해외 결제에서 국내 결제로 전환됐다. 올해 1월 초부터 국내 결제로 바뀌었고 유로에서 원화로 게임 가격을 표기하고 국내 카드 결제, 문화 상품권 등도 지원한다. 기존 해외 직구 형태에서 한국 내 구매로 변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법을 적용하여 결제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중 환전 처리가 되던 과거와는 달리 표기된 금액만큼만 결제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유플레이에서의 결제 솔루션은 엑솔라(Xsolla)가 담당한다. 그리고 신용카드 등 지불수단에서 실제 결제를 진행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사업은 나이스페이먼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해당 사항들은 유플레이의 이메일 영수증 및 신용카드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4월 12일 국내 정식 런칭한 에픽게임즈 스토어 또한 국내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직 다양한 결제 수단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유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신용카드 결제를 지원한다. 이중 환전이 없이 원화로만 가격이 표기되며, 표기된 만큼만 결제되는 상태다.

에픽게임즈 스토어 또한 유비소프트처럼 국내 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정식 서비스까지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게임 서비스에 필요한 등급분류도 직접 받고 있는 모습이다. 유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결제 솔루션은 엑솔라를 사용(결제 시 엑솔라 모듈이 뜬다)하고 있으며, 결제 대행은 페이레터에서 진행한다.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EA의 오리진 또한 국내 결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오리진 런처 내에서 신용카드 와 페이코를 선택할 수 있으며, 신용카드는 국내와 국제로 나뉜다. 국내 신용카드는 브라우저로 옮겨 결제가 진행된다. 즉, 국내법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별도의 보안 프로그램 설치가 필수적이다. 반대로 국제 카드는 런처 내에서 즉시 구매를 할 수 있다.

오리진은 방법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상태다. 국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원화 구매, 비자 등 국제 카드로 진행되는 해외 구매가 그것이다. 국제 카드를 사용할 때는 가격이 원화로 표기되어 있더라도 해외 구매가 된다. 당연히 해외원화 결제 승인 문자가 날아온다.



▲ 웹페이지+보안프로그램 띄우는 국내 카드 vs 해외결제 수수료 붙는 해외카드.

즉, 게임 구매 시에 지금과 같은 이중환전 문제 등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국내법을 따른다는 것에 기인한다. 개정안이 대기 중이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본인 인증을 거친다는 본질적인 부분이 남아있다. 본인확인을 위한 전자서명법에서 인증서를 강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와 같은 법체계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 결제자 본인의 책임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존이나 페이팔처럼 서버가 인증하는 방식은 국내법상으로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불편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고자 콘솔 및 플랫폼 회사들이 선택한 방법이 지금 우리 게이머들이 겪는 불편으로 이어진 셈이다.

결국, 프로그램이나 OS를 별도로 손보기 어려운 콘솔 기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본인 인증을 위한 보안 프로그램이 딸려오는 국내 결제를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해외로 결제 주체를 옮기고 게이머에게 이중환전과 같은 불편함을 감내하게 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본인인증을 강제로 진행하고 책임이 소비자에게 넘어가는 현재의 법체계. 바로 이 전반이 바뀌어야 다른 나라와 같은 편리한 게임 구매가 이루어질 것이다.



▲ 편한 게임 구매는 법 개정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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