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를 찾아서#7] 국산 연애 시뮬레이션의 고조할아버지, '캠퍼스 러브 스토리'

기획기사 | 양영석 기자 | 댓글: 12개 |



게임은 때로는 현실에서 직접 해보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거나, 경험해 본 일들을 다시 한 번 다른 시점에서 경험해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동화속 판타지와 같은 남녀간의 연애를 다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연애'를 다루는 장르는 연애 시뮬레이션이라고도 하며, 게임의 장르중에서도 상당히 오랜 역사를 차지하고 있죠. 매력적인 이상형들을 만나는 소재로 다듬어진 연애 시뮬레이션은 여러가지 세부 장르로 나뉘거저 발전했고,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면서 계속해서 독실한 유저층을 만들며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국내에도 예외는 아니죠.

오늘 IP를 찾아서 코너에서 소개할 게임은, 국내 시장에서의 '연애 시뮬레이션'의 시초, 말 그대로 고조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명작 연애 시뮬레이션입니다. 로망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연인들과의 이야기를 그린 게임, '캠퍼스 러브 스토리'입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어떤 게임인가?
제대로 된 국산 연애 시뮬레이션의 시초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1997년 '남일소프트'에서 발매한 MS-DOS 기반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게임에서는 96학번 새내기인 주인공이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히로인들을 만나고, 데이트와 이벤트를 통해서 졸업하면서 결혼에 골인하는 게 목표죠.

단순히 대화형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나름대로 당시 연애 시뮬레이션의 최신 트렌드를 잘 반영했습니다. 단순한 텍스트 선택지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능력치에 따라서 할 수 있는 행동과 할 수 없는 행동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화술과 체력, 감수성, 패션 등등 다양한 능력치가 존재하고 HP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있어서 이를 잘 관리해줘야 해요. 물론, 제일 중요한 소지금도 관리해줘야 하고요.

그리고 플레이어는 맵을 보면서 자신의 동선을 짜고, 아르바이트나 스케줄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 스케줄도 학기 시즌과 방학 시즌으로 나뉘어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다르죠. 학기 중에 스케줄을 관리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 자금을 모으거나, 공부나 운동으로 능력치를 올리면서 차근차근 진행하시면 됩니다.



상당히 여러가지 파라미터가 존재합니다. 잘 관리해줘야 히로인들도 만날 수 있죠.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한 선택지로만 진행되던 연애 시뮬레이션들과는 달리 능력치와 상황, 이벤트에 따라서 공략 요소가 갈리는 시스템 덕분이기도 합니다. 특정 히로인의 경우는 능력치가 낮을 경우 등장도 하지 않고, 같은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주인공의 능력치에 따라서 이벤트 전개가 다르죠.

지금에야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 중 하나지만,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시초격으로 도입 이후에도 이런 능력치나 파라미터를 적용하는 게임은 드문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들도 매우 적었는데,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상당히 세밀하게 짜여있는 시놉시스와 이벤트와 대화 키워드 등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죠.

당시 크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소재들을 그대로 담는 등, 정말 '현실적인 모습'을 게임으로 그려낸 것도 몰입감을 더했습니다. 실제로 게임내 배경들의 몇몇곳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과거 세대가 어떤 모습으로 대학 생활을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튼, 초반에는 주인공의 자아도취 멘트와 생각보다 좀 뻔한 느낌의 스토리, 답답한 주변 인물과 주인공의 허풍에 좀 질릴 수 있습니다만, 1학기만 지나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게임이 전개가 되는 편이기에 스토리의 몰입도도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로인들의 개성도 나름대로 잘 잡았어요. '공대 여신'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한 캐릭터부터 과 후배, 타 학교에 잘 나가는 '퀸카', 채팅으로 만나는 히로인이 있는가 하면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상경한 직장인 컨셉의 히로인도 있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어릴 적 '소꿉친구'도 있고요. 전반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라면 약간의 판타지를 담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는 듯한 컨셉들로 잡혀있습니다. 히로인들의 성격들도 제각각이라서 개성은 충분했다고 봅니다.

아무튼 이렇게 주인공으로 플레이어는 여러 히로인들을 만나면서,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에 골인하면 해피 엔딩입니다. 아무와도 결혼하지 못하는 배드엔딩도 있고, 중간에 자금이 -100만 원이 되면 파산해서 게임오버가 되기도 하죠. 몇몇 히로인들은 아주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는 반면에, 처음부터 능력치를 매우 잘 조절해야 공략할 수 있는 히로인들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연애 시뮬레이션의 시츄에이션도 마련되어있고요.

또한 캐릭터의 시작 컨셉에 따라서 정해지는 능력치와 자금이 다르기 때문에, 이 또한 엔딩을 보는 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주인공의 능력치와 히로인의 호감도를 모두 잘 조절하면... 모든 히로인들과 이벤트를 겪고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점이 다른 연애 시뮬레이션들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모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주인공의 파라미터를 관리하면서 히로인들을 만나고, 이벤트 분기점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엔딩을 보는 구조. 이렇게 잘 짜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매력적인 히로인들을 보여줬던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게임이 연소자 관람 불가(18세 미만 이용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플레이해보려고 했던 학생들도 꽤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잡지 부록으로 전연령판이 출시되기도 했고요.

UI가 조금 불편하다던가, 맵에 친절하게 안내가 잘 안되어있는 부분과 버그 등등 지적받은 점도 적지는 않지만, MS-DOS 기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입니다. 그래서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고조할아버지, 시조격 즈음 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산 연애 시뮬레이션 중에는 '제대로 된' 게임이 등장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로인들의 다양한 이벤트 장면도 준비되어 있고...



배드 엔딩도 준비되어 있는 철저함. 우유부단하면 이렇게 됩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의 IP홀더는?
잦은 인수합병...IP홀더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부분의 게임사가 그렇듯,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제작한 '남일소프트'의 역사도 조금은 복잡합니다. 1995년에 설립된 남일소프트는 '개미맨'이라는 게임을 제작했고, 이후 1997년에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만들면서 꽤 괜찮은 수익을 내고 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내놓은 후속작이자 야심작인 '나의 신부'가 처참한 실패를 맛보면서, 회사의 명운이 갈라지죠. 결국 남일소프트는 부도 처리되었고, '위자드소프트'에 흡수됩니다. 위자드소프트는 SKC에서 분사된 회사로 1999년에 설립된 회사에요.

전신 SKC 소프트 랜드 시절의 위자드소프트는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블리자드의 게임 및 유비소프트의 게임도 한국에 유통하기도 했습니다. 위자드소프트는 이후 많은 게임의 유통을 담당하는데,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 쥬라기원시전2 유통을 담당하기도 했죠.

위자드소프트는 어느 정도 잘 유지되긴 했지만, 대주주 변경 및 경영권도 변경되면서 상당히 파란만장한 여정을 걷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 경영에 크게 영향을 주는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2005년에는 유선 통신장비 제조업이 주 사업이었던 '레텍커뮤니케이션'에 흡수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죠.

이후로도 파란만장합니다. 레텍커뮤니케이션은 이후로 SNH에 인수 합병되고, SNH는 상호가 휴림스로 변경되었다가 '넥스트바이오홀딩스'로 또 사명을 변경해요. 여기서 좀 여러 가지 사업으로 확장되는데, 통신사업부와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유통업 등의 사업영역 다각화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이 넥스트바이오홀딩스는 중앙리빙테크를 합병하면서 현재는 '센트럴바이오'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센트럴바이오에는 위자드소프트 관련 인력도 없고, 관련 소프트 사업도 전혀 진행되지 않으며 IP의 관리도 따로 없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캠퍼스 러브 스토리', '나의 신부'등 남일소프트가 제작한 게임들의 IP는 소실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행방이 묘연합니다. 소실이라면 프리웨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섣불리 판단하기 힘듭니다. 아마 인수합병, 사업변경 과정에서 IP의 홀더 권리가 다른 '개인'에게 양도되었을 수 있으니, 프리웨어라고는 할 수 없고 어밴던웨어(abandonware)의 포지션과 비슷합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IP의 매력 자체는 다소 떨어지지만...혹시?





기본적으로 게임의 장르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다른 장르와 합쳐져서 더 높은 고유의 '특징'을 갖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장르의 장점을 살리며 깊게 파고들어가는 형태도 있죠. 또 다른 형태로는 거대한 하나의 장르 속에서 새로운 요소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꼽히는 경향의 게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주얼노벨'의 성향을 띤 연애 어드벤처 장르로 분류되면서 소설의 형태로 깊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일본의 다른 장르들을 결합해서 개성을 찾은 케이스도 있기도 합니다.

혹은 정말 '연애'만 주야장천 연구해서 수많은 남성들의 첫 키스를 액정필름 맛으로 만든 게임도 있죠. 혹은 MMORPG 등 거대 게임에서 '호감도'의 요소로 연애 시뮬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죠. 이쯤되면 그냥 '소재'의 하나로 보는 게 맞을 정도입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가지는 추억은 대단할지 몰라도, IP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는 않을 겁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가지는 "의미"는 국내에서 정말 괜찮은 완성도와 시스템을 가진 '제대로 된 연애 시뮬레이션'이 등장했다는 정도로 볼 수 있죠. 연애 시뮬레이션의 대선배 격이랄까요.

특히나 이 장르는, '캐릭터'의 힘이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브랜드 IP보다 캐릭터의 IP가 중요할 정도죠. 국내에서도 이런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 나름대로 발전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다시 만들어진다...? 글쎄요, 저도 살짝 고개가 갸웃하네요. 왜냐하면 이런 시리즈에는 캐릭터와 더불어서 명맥을 이어가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연애 시뮬레이션은 정말 대단하게 명맥을 이어갑니다. 대표적으로 1994년에 발매된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있고, 1998년 출시된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용두사미를 보여줬지만... 그래도 여러 미디어 믹스를 통해 명맥을 이어갔죠. 최근에는 무려 성우들이 직접 주도하는 열정을 보이며 2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코나미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플러스는 스마트폰으로 플랫폼을 바꾸며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이런 게임들은 확실히 무엇인가 대단한 '개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은 혁신적인 시스템과 강렬하고 공략이 정말 힘들었던 대마왕 히로인 '시오리'가 있고,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미칠듯한 고퀄리티의 일러스트를 보여줬습니다. 러브플러스는 혁신적인 시스템과 놀라운 연출, 대단한 수준의 AI가 장점이자 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도 나름의 개성은 있었습니다만, 이는 국내 한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름 참신한 시스템과 게임 속에서 보는 미래의 예측, 그리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난이도와 개성 있는 히로인들. 하지만 캠퍼스 러브 스토리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했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쳤다는 게 아쉽습니다.

IP홀더도 행방이 묘연해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등장한다면 의외로 추억에 잠겨서 반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위자드소프트에서 과거에 발매했던 모바일(스마트폰이 아닌 휴대전화) 버전의 캠퍼스 러브 스토리도 꽤나 수요가 높았던 전적이 있습니다. 저도 만약 게임이 다시 '현대적'으로 맞춰서 나온다면 플레이해보고 싶네요.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