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전액션 장르의 환경 변화... 그들은 어째서 여전히 '오프라인'에 모이는가

기획기사 | 안슬기 기자 | 댓글: 17개 |
대전 액션 게임, 일명 '격투게임'은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던 장르다. 한국도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아 학교 앞 문방구 미니 오락기에서부터 큰 규모의 오락실까지 격투게임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시기는 다르지만 스트리트파이터와 KOF, 철권 주변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 언제나 떠들썩했다. 우연히라도 오락실 고수끼리 붙는 날이면 대회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금은 밈이 된 "게임 X 같이 하네"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플랫폼에 다양한 게임이 등장했다. 장르의 인기도 변해갔다. 스타크래프트의 출시와 함께 대세는 PC방이 되었다. 많은 게이머는 오락실 대신 PC방을 찾았다. '오락실은 불량한 곳'이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지우개에 연필을 꽂고 커맨드를 연습하던 아이들은 저글링 컨트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PC방에서 즐길 만한 게임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오락실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그 결과 최근에는 오락실에 격투게임이나 고난이도 리듬게임 같은 매니악한 장르보다는 간단한 캐주얼 게임이나 인형뽑기, 코인 노래방 기계 등을 비치한 곳이 많다. 오락실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다.

게다가 요즘은 격투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져 콘솔 기기나 스팀 등으로 타인과 대전을 할 수 있다. 가깝고 편한 장소에서 똑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먼 오락실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을까. 안타깝지만 최근 철권의 성지로 불리던 그린 오락실이 문을 닫은 것도 시대의 흐름에 따른 순리가 아닐까 싶다.

격투게임 장르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진행됐다. 이에 맞춰 격투게임을 즐기는 오프라인 공간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왔다. 격투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콘솔 기기를 들고 오프라인에 모여 대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다. Zone IST, 카페이드 등 콘솔 기기를 놓고 격투게임을 즐기는 장소는 지속적으로 생겼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그중 CONG은 2013년 6월부터 시작해 격투게임 마니아들에게 모여서 게임을 즐길 공간을 대관하는 곳이다. 이곳에 방문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에는 접할 수 없었던 격투게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케이드 기기 대신 콘솔 기기로 격투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가 만들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아케이드 시장이 축소되고, 이로 인해 격투게임을 만드는 게임 회사들이 오락실보다 콘솔 기기를 우선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최신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게이머들은 자연스레 콘솔 기기로 격투 게임을 즐기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최신 게임을 즐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계속해서 아케이드 시장 규모가 작아지고 있습니다. 아케이드 시장의 원조 격인 일본조차 오락실이 하나둘 사라지고 콘솔 게임을 즐길 장소를 대관하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요즘은 오락실 대신 콘솔 기기나 PC를 이용하는 쪽이 더 빠르게 최신 게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최신 게임을 접하기 위해 오락실에 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반대가 되어버린 거죠. 가장 단적인 예로 2018년 9월 초에 콘솔 기기로 업데이트된 '철권 7'의 신규 캐릭터가 오락실에는 2019년 2월부터 추가 예정(일본 기준)이라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 아케이드보다 콘솔판의 업데이트가 빨라진 철권 7


현재 격투게임 위주로 활성화된 오프라인 공간은 드물다. 그 때문에 남아있는 '격겜' 유저들은 CONG 같은 장소에서 콘솔로 발매된 각종 격투게임의 대회를 진행하곤 한다.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면 원하는 게임과 관련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됐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당 게임의 고수가 원하는 정보를 올린다는 보장도 없다. CONG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은 방문 목적이 모두 '격투게임 플레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같은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끼리 의견을 나누거나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 됐다.

"CONG이 유럽의 살롱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단순히 게임을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이,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격투게임과 관련된 주제로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하면서 정보를 얻어가는 것이죠.

CONG 운영을 시작하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개인적으로는 원하는 방향에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곳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의 영상이나 알고 있는 정보 등을 공유하는 모습이 꽤 자주 보이는데요. 업체라기보다는 동아리에 가깝다고 할까요? 국내에 격투게임을 플레이하는 분들이 끈끈하게 뭉쳐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취재 당일은 블레이블루 시리즈를 즐기는 유저들이 모여 8:8 팀전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학생이거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을 사람들이 같은 취미를 즐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CONG에서 블레이블루 시리즈 대회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45번째다. 그래서인지 팀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 중 일부는 꽤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최근 화제가 되는 게임이나 유명한 해외 유저의 근황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대회 시작 전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요즘 격투게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흐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유저들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들이 CONG에 방문한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집에 콘솔 기기나 PC가 없어서, 또다른 누군가는 집에서 조이스틱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소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마음 놓고 게임할 장소가 필요해서다.

집에서 CONG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30분 이내로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유저가 있는 반면 이곳까지 오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유저도 있었다. 하지만 유저들이 이곳에 방문하는 이유는 모두 같았다. "격투게임이 좋으니까요."

"격투게임을 오프라인에서 플레이하길 바라는 유저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 PC방 등 놀 거리가 많아져서 선택 사항이 늘어났을 뿐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눈보다는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야구 경기나 게임 대회 등을 중계하는 일이 잦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경기를 지켜볼 수 있지요.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표를 사서 경기장이나 대회 장소까지 가는 관중들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랜선 너머 작은 화면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현장의 뜨거운 분위기, 현장감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대회가 끝난 후 참여 인원 대부분은 CONG을 떠났다.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 함께 게임을 즐긴 유저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실력을 늘리고자 하는 유저는 CONG에 남아 다른 유저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프리게임을 하기도 했다.

"다른 게임 장르처럼 격투게임에서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개최된다면 게이머들에게 격투게임을 플레이할 동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미국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격투게임 대회인 EVO만 봐도 많은 나라에서 유저들이 참여하고 있잖아요.

이 정도 규모의 대회가 지속해서 열리려면 게임사의 노력이 동반돼야 합니다. 단순히 상금을 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충실한 튜토리얼 같은 게임 내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뜨겁게 달궈졌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된 뒤, 김병철 대표는 격투게임 장르의 부흥을 위한 의견을 말했다.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다시 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 덧붙였지만. 오랜 시간 CONG을 운영하며 격투게임 유저들에게 모일 공간을 제공한 김병철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다.



▲ CONG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철 대표


"사실 격투게임이 주인공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FPS나 AOS 장르가 주류인 시대니까요. 그래서인지 격투게임 유저들이 직접 개최하는 대회 공지 이외에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곳까지 찾아오는 유저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뿐입니다. 실제 콘솔 기기나 모니터 등은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직접 가져다 놓은 것들도 꽤 됩니다. 결국 CONG은 저 혼자만의 사업 공간이 아닌 격투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함께 일궈낸 공간인 셈이죠.

CONG이라는 작은 장소를 운영하는 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왔는데, 격투게임 판을 유지하거나 키우는 일은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건 정말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격투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직접 게임을 구매해서 즐기는 유저 모두가 관심을 두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격투게임이 다시 조명받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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