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슈'콕!'] 우리가 '루프물'에 끌리는 이유

기획기사 | 박광석 기자 |



최근 다소 생소한 소재인 '루프(Loop)'를 주제로 하는 모바일 게임 '영원한 7일의 도시'가 국내 유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모바일 매출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온라인 네트워크로 진행되는 게임임에도 멀티 엔딩과 미연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 게임은 최근 소녀전선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얻고 있는 서브 컬처(2차원) 장르에 '루프' 요소를 더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같은 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루프 요소가 영화나 만화, 게임 속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간을 돌린다는, 일상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비일상적인 요소가 이야기에 포함되며 유저는 상정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는 같은 배경 속에 반복되는 플레이에 지루함 대신 신선함을 부여하는 획기적인 요소로 자주 사용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루프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루프물이 영화와 만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와 그 매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게임 작품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번주 '게임이슈 콕!'에서 정리해봤다.


'루프물'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되는 '무한반복' 속 이야기

'루프물(Loop物)'은 동일한 사건이나 시간이 ‘Loop’, 즉 고리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묘사한 작품으로, 대부분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특정 시간대에 갇혀서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반복해서 겪는 형태의 작품들을 뜻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이나 장소, 사건을 그저 계속해서 반복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그 작품은 이야기를 접하는 3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길 수 없다. 극장에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를 100번 봤다는 영국의 어떤 소년처럼 반복 자체에서 매번 새로운 재미를 얻는 경지에 이르지 않는 이상,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은 복습과 심화하기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서 성립하는 루프물들은 일정한 반복 속에 어떠한 변칙 요소를 추가하곤 한다. 반복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똑같은 일상에 사소한 변화를 주는 순간, 같은 장소와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도 완전히 다른 전개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타임슬립'이나, 자신의 세계와 평행선상에 위치한 별개의 차원인 '평행우주'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에도 자주 등장한다.




반복되는 시간이나 사건을 다루는 루프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더라도 그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은 제각각인데, 이해하기 쉽게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개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루프하는 경우

초자연적인 힘이나 절대자에 의해 세계가 통째로 반복되는 경우. 시간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작중의 주인공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분류를 따르는 대부분의 루프물은 주인공이 세계의 반복을 인지한 후, 루프를 끊기 위한 어떤 특정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는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대표적이며, 모바일 게임 '영원한 7일의 도시' 속 루프도 이에 해당한다.


◇ 개인의 의지로 루프하는 경우

순전히 작중의 인물이 자신의 의사로 시간을 반복하는 경우로, 평행우주나 타임슬립과 같은 시간여행 요소가 함께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의지로 언제든 루프를 마무리할 수 있지만, 보통 소중한 동료의 죽음 등 비극적인 사건을 피하고자 반강제적으로 루프를 반복한다.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SF 어드벤처 게임 '슈타인즈 게이트' 등이 해당된다.





◇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개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루프하는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를 섞어놓은 듯한 특별한 케이스로, 대부분 주인공의 죽음을 기점으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형태가 많다. '죽음' 등과 같은 특수한 조건이 달성된 순간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루프가 진행되지만, 주인공 스스로 루프를 발생시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나 애니메이션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호러 게임 '쓰르라미 울 적에' 등이 이와 같은 루프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루프물'에 끌리는 이유
긴 루프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직접 만드는 '완벽한 미래'를 꿈꾸다

'완벽한 날을 살기 위해 수많은 완벽하지 않은 날'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느새 하나의 매력적인 소재로 자리 잡았고, 영화와 만화,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계속해서 그려져 왔다. 루프 요소를 사용하면 복선을 만들거나 회수하기도 용이하므로,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큰 모순 없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스토리를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야기를 즐기는 관찰자에게도 '루프물'은 다른 장르와는 다른 독특한 재미를 제공한다. 똑같은 상황의 반복 속에 작중의 주인공이 루프를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이를 관찰하는 '나'는 사소한 계기로 미묘하게 변화하는 루프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완벽한 미래'를 설계해볼 수 있다.



▲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타이쿤류 게임처럼,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분위기에 취해서 경거망동하게 위험한 발언을 내뱉으려는 나를 진정시키고,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한 나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루프물'에 끌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실에서는 결코 바랄 수 없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과 후회만 남는 선택들을 모두 되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불과하다고 여길수도 있지만, 계속되는 반복을 통해 조금씩 실수를 줄이고 더 개선된 미래에 가까워지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극이다.

바로 이러한 매력이, 마치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많이 본 흐름이라고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루프물에 손을 뻗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루프를 선택한다


게임 속에서 찾는 '루프'
시간은 물론, 공간까지 자유자재로!

혹자는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싱글 플레이 게임들이 모두 '루프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게임 내에서 세이브와 로드 기능을 활용하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마주하기 위해 얼마든지 같은 시간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스토리의 주요 컨셉을 '루프'로 설정하고 개발된 게임들도 존재한다. 시간의 반복이 게임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 소재로 작용하는 게임부터, 루프물이 아니었지만, 필연적으로 루프물이 되어버린 '비운의 게임'까지, 루프 요소가 포함된 게임들을 모아봤다.


◆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Life is Strange)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 '맥스'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마을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고, 절친 클로이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맥스의 능력은 위험에 처한 인물의 운명을 바꾸는 거창한 일들 이외에도, 자잘한 실수를 만회하거나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여 상대의 호감을 얻는 등 여러 방식으로 활용된다.

루프를 통해 계속 달라지는 결과와 이에 동반하는 책임 등, 시간 여행의 재미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 괜히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게임이기도 하다. 개발사 돈노드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후속작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2'의 출시 예정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 네버엔딩 나이트메어 (Neverending Nightmares)

※일부 자극적인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니 시청에 유의바랍니다.


루프 요소가 포함된 게임 중에는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공포 게임도 있다. '네버엔딩 나이트메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끝나지 않는 악몽'이 주는 공포감을 극대화한 호러 어드벤처 게임이다. 주인공이 침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시작해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루프하는 요소가 적용됐다.

물론 게임 속 죽음은 '다시 시작' 이외에 다양한 의미로 작용한다. 매번 깨어나는 침대와 방의 형태가 변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전개를 불러오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엔딩이 존재하며 한국어를 지원하므로, 서늘한 공포로 더위를 잊고자 하는 공포 게임 팬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길 바란다.


◆ 스탠리 패러블 (The Stanley Parable)


"다시 시작해 봅시다"

시간의 반복, 공간의 반복, 그리고 또 반복. '스탠리 패러블'은 루프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인디 어드벤처 게임이다. 유저는 어느 회사에 고용된 회사원 '스탠리'가 되어 나레이터의 지시를 들으며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특별히 사전 지식을 얻을 필요도 없다. 모든 플레이 형식은 유저의 선택에 달려있다.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재미가 반감되는 게임이니, 루프물에 흥미가 있는 유저라면 다른 정보를 멀리하고 먼저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것이 좋다. 메타스코어 88점을 기록한 명작 중 하나인데다가 한국어 패치도 지원한다.


◆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 (The Legend of Zelda: Majora's Mask)


젤다의 전설 시리즈 중 가장 기괴한 명작으로 평가받는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이하 무쥬라의 가면)'의 주요 테마도 바로 '루프'다. 주인공 링크는 3일 후에 멸망하는 세상을 구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언제든 첫째 날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기 아이템 '시간의 오카리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떻게든 용사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몇 가지 제약이 존재한다. 시간을 원점으로 돌리게 되면 몇몇 주요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소모성 아이템, 골드, 이벤트 등이 초기화되므로, '시간의 오카리나'의 사기적 능력을 최대한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무쥬라의 가면 이후의 젤다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시간제한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그 독특한 루프 설정과 긴장감을 이어받은 게임들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초스피드 RPG를 표방하는 '용사 30'이 있다. 이 작품의 용사는 30초 만에 마왕을 무찌르고 세계멸망을 막아야 한다. 물론 마을의 여신상에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언제든 시간을 '리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화면 상단에서 계속 줄어드는 타이머를 보고 있자면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외에도 요양 기분으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용사 300', 단 3초만에 마왕을 격파하는 '용사 3' 모드도 함께 지원한다.


◆ 엑스컴(XCOM) 시리즈


'엑스컴' 시리즈는 엄밀히 말하면 루프물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유저의 '저장질'에 승리 없는 싸움을 반복해야만 하는 불우한 처지의 외계인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루프'에 잘 어울리는 게임이 또 없을 정도라고 여겨 목록에 포함하게 됐다.

'엑스컴' 시리즈에서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극악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정예 엑스컴 요원들의 사격 실력과 무작위성에 기인한다. '0%와 100% 사이의 모든 확률은 50%다'라는 명언이 탄생할 정도로 극악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그들의 사격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수십 번의 루프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엑스컴에는 루프 없이 오직 실력과 운으로 승부를 겨루는 모드도 존재하니,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은 하드코어 유저라면 저장질 없는 깨끗한 방식의 '철인모드'로 외계인을 상대해보길 바란다.



▲ 사격에 소질이 없는 요원들도, 루프와 함께라면 모두 '톰 크루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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