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불편함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 '죽은 신들의 저주'

리뷰 | 정수형 기자 | 댓글: 7개 |



신의 미움을 받은 인간이 저주에 걸려 역경과 고난을 헤쳐가는 이야기는 옛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워낙 오랫동안 이어진 이야기라 신들이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방법도, 또 저주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한 편이죠.

3월 4일, 스팀 얼리 엑세스로 출시한 로그라이트 장르의 '죽은 신들의 저주' 또한 신들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돈과 영원한 생명, 신의 힘을 얻기 위해 저주받은 신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함정에 빠지면서 던전 속에 갇히게 되고 저주에 걸리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게임의 분위기는 흡사 다키스트 던전을 탑뷰 방식의 액션 게임으로 즐기는 느낌입니다. 횃불이 없다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칙칙한 던전의 분위기와 탐험을 계속할수록 쌓이는 저주가 이러한 느낌을 더해주죠. 게다가 로그라이트 장르인지라 죽었을 경우, 모든 아이템을 잃게 되니 난이도가 꽤 어려운 편에 속합니다.

다만, 모든 것이 랜덤으로 이뤄져 좋은 아이템이 나오길 기도해야 하는 같은 장르의 타 게임과 달리, 성장에 어느 정도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지도를 보고 다음 맵을 선택하거나 원하는 아이템을 고를 수 있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 게임에 적응만 한다면 해당 장르의 초심자라도 막연한 어려움에 굴복하기보단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짜여있습니다.

흔한 소재인 저주와 로그라이트 장르를 섞어 완성했지만, 저주와 미지의 던전에 대한 탐험을 강조하면서 본인만의 매력을 빼놓지 않았기에 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임입니다. 현재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유저 평가를 받는 '죽은 신들의 저주', 무엇이 이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던전, 어둠과 함정의 조화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던전부터 한 번 보도록 하죠. 던전은 저주받는 신전이란 느낌을 살리기 위해 굉장히 음침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하 깊숙이 위치해 햇빛 하나 내리쬐지 않기 때문에 기본으로 주어지는 횃불이 없다면 지형의 윤곽만 흐릿하게 보일 뿐, 나머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시야를 보여줍니다.

이런 극단적인 시야는 던전 곳곳에 숨어있는 함정이나 아이템을 발견할 때, 전투 중에서도 매우 큰 걸림돌이 돼버립니다. 암흑 속에서는 함정이 보이지 않아, 방심하는 순간 가시 꼬챙이에 찔릴 수 있고 어둠 속에 숨어있는 몬스터에게 급습을 당할 수도 있죠.

생각해보면 굉장히 불편한 시스템입니다. 게임인데 굳이 이런 식으로 시야를 제어해야 했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러한 점이 부조리하다기보단 신선함과 재미로 다가옵니다. 주변이 어둡다면 횃불을 들면 되고 횃불을 들 수 없는 전투 중이라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싸우면 됩니다.



▲ 어두운 환경은 게임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실제 플레이에도 영향을 줍니다

게다가 극단적인 시야는 적에게도 해당합니다. 횃불을 들면 멀리서도 적이 유저를 인식할 수 있지만, 어두운 곳에선 쉽게 인식하지 못하죠. 이를 잘 이용한다면 강력한 한 방을 먼저 때리면서 전투에 우위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던전 속의 함정도 대처할 수 없는 재앙이라기보단 미리 알고 대응할 수 있는 데다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쓸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함정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거든요. 내가 가시에 찔려서 아픈 만큼 적도 아픕니다. 적을 의도적으로 유인해 함정으로 죽인다거나 혹은 거미줄 위에 불을 지르면서 시야도 확보함과 동시에 피해를 줄 수도 있죠. 혹은 숨겨진 길을 발견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유저를 괴롭힐 목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만든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러한 불편함은 짜증보단 재미로 다가옵니다. 개발사도 이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캐릭터 능력 중 적에게 함정의 데미지가 증가하는 변태(?)적인 요소도 넣었더군요.



▲ 칙칙한 던전에서 빠질 수 없는 함정 요소



▲ 던전의 요소를 잘 활용하면 적을 쉽게 공략할 수도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전투 방식, 그래서 재미있다

어두운 던전과 함정 시스템. 불편함을 전략으로 승화한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게임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전투가 흥미롭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의 전투는 굉장히 재미있는 편입니다.

전투 자체만 놓고 본다면 다른 탑뷰 스타일의 게임들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진 않습니다. 약공격과 강공격을 적절하게 섞어 적을 공격하고 구르기와 패링으로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면 끝인 방식이죠. 화려한 스킬로 적을 때려잡기보단 한 번의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다크소울과 비슷한 전투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다크소울 스타일의 전투 방식이 그러하듯 이 게임도 스태미나 시스템이 있습니다. 총 다섯 칸이 제공되며, 강공격을 하거나 구를 때마다 한 칸씩 사라지게 되죠. 전투는 기본적으로 일 대 다수의 싸움이기 때문에 난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은 근거리뿐만 아니라 원거리도 적절하게 섞여 있으며, 대부분 공격 범위가 넓기 때문에 살기 위해선 이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게임만의 특별한 전투 스타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공격하고 피하는 등 전투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하게 따를 뿐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전투가 아닌 익숙한 방식을 강조하면서 싸우는 맛을 살렸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쉽게 싸울 수 있습니다. 적을 공격하고 피하는데 약간의 동체 시력과 센스만 있으면 충분하죠. 적은 공격하기 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도록 동작을 취하며, 시스템에서 적이 공격한다는 표시를 띄워줍니다. 플레이어는 그걸 보고 공격을 피할지, 혹은 패링으로 받아칠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니 생각보다 쉬울 것 같죠?

굉장히 단순한 구조지만, 하는 건 쉬워도 잘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일 대 일 상황이라면 모를까,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 공격을 피하고 때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태미나는 이런 상황에서 유저의 행동에 제약을 걸고 더욱 신중한 전투를 펼치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르고 때리다 보면 어느 순간 스태미나가 바닥이 나서 눈먼 공격에 맞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 초보자와 고수를 가르는 컨트롤, '패링'

이 게임은 한 번의 전투가 모든 것의 승패를 결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유저는 하나의 던전을 끝까지 탐험해야 하며, 체력을 회복할 수단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피해가 누적되면 결국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을 죽이기는 쉽지만, 피해 없이 잘 싸우는 것은 어려운 전투 방식. 이 게임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유저의 컨트롤에 따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각종 장치를 마련했고, 전투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가령,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패링으로 튕겨내면 스태미나 소모 없이 피해를 보지 않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몇 초동 안 적의 방어력을 깎아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뿐이죠.

혹은 스킬 시스템을 활용해서 전투를 보다 유리하게 끌어가도 됩니다. 적을 죽이고 얻을 수 있는 토큰으로 주인공의 스킬을 해금할 수 있으며, 전투 중 넉백 저지, 피해를 볼 시 데미지 증가 등 전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능력이 있어 나만의 전투 스타일을 펼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 모은 토큰을 활용해 캐릭터의 능력을 해금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저주

앞서 말한 시스템이 유저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였다면,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유저가 게임 내내 감내해야 할 시련과도 같죠. 바로 '저주'입니다. 게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게임은 던전을 탐험하는 내내 온갖 저주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행인 점은 저주가 바로 걸리는 것이 아니라 저주 게이지를 통해 차근차근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게이지의 총량은 100으로 수치가 모두 차면 저주에 걸리는 방식이며, 총 5개의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저주가 모두 차버리면 체력이 1 남을 때까지 지속해서 깎이는 아주 극악한 저주에 빠지게 되니 유저는 게임 내내 저주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죠.

자, 그렇다면 저주를 피할 수는 없는 걸까요? 옛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아쉽게도 저주는 절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20의 저주 게이지가 무조건 차오르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스테이지만 넘어간다고 해도 게임 중 최소 한 번 이상의 저주에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게이지가 100이 차면, 다음 스테이지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걸리게 됩니다

저주의 형태는 다양하며,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바닥에 떨어진 돈을 5초 안에 집지 않으면 사라진다거나 함정이 제멋대로 작동하고 어두운 곳에 있는 적이 보이지 않는 것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나쁜 저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이야기 중에 그런 거 있잖아요.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게 금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리는 이야기요. 이 게임 역시 뭔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는 혜택을 주는 저주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저주가 걸리면 그나마 행운인 셈이죠.

저주를 푸는 방법은 딱 하나, 보스를 죽이는 것입니다. 보스를 죽일 때마다 원하는 저주를 한 개 제거할 수 있죠. 어떤 저주에 걸리냐에 따라 같은 스테이지, 같은 세팅이어도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페널티로서 주어지는 시련이지만, 저주로 인해 게임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또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다양한 저주가 끊임없이 유저를 괴롭힙니다



▲ 가장 악랄했던 저주 중 하나로, 적에게 피해를 입으면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들면서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더군요

앞서 말한 대로 저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점은 이 게임만의 특별한 시스템에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게임에서 저주는 일종의 화폐의 개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스테이지는 골드방, 무기방, 능력치방, 토템방 등으로 구분되는데, 자원을 수급할 수 있는 골드방을 제외하면 나머지 방에서는 재화를 소모해 특정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다면 그에 맞는 재화를 소모해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지만, 만약 수중에 재화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무기의 가치에 걸맞은 저주 게이지를 몸에 받아들임으로써 해당 아이템을 습득할 수가 있는 것이죠. 얼핏 봐선 무모한 행동처럼 보이겠지만, 무기의 성능과 능력에 따라 전투력의 차이가 확 달라지기 때문에 게임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저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쌓인 저주의 개수에 따라 공격력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이른바 '저주받은 무기'의 존재로 상황에 따라선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무기는 일반 무기보다 압도적으로 공격력이 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저주를 쌓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아까 저주 5개 쌓아서 체력이 깎이는 저주가 저런 무기를 쓰겠다고 욕심부리다가 알게 된 겁니다.



▲ 금화 or 저주?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


앞으로가 기대되는 게임

게임을 하면서 느낀 점은 사소한 시스템도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정은 적과 아군 모두에게 적용돼서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요소를 남겨뒀으며, 전투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구르기와 패링으로 난이도를 조절한 점 등 성취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꽤 많은 편입니다.

로그라이트 장르에 걸맞게 캐릭터의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게임의 밸런스에 극적인 변화를 주진 않죠. 특히, 페널티와 혜택을 동시에 제공하는 저주 시스템은 양날의 칼과 같은 방식으로 쉽게 제어할 수 없지만, 잘 쓰면 큰 효과를 주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직은 얼리 엑세스로 출시한 게임이라 몬스터의 종류와 스테이지의 구성, 아이템 등이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만 오천 원이 안되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못해도 10시간 이상은 즐길 수 있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게임입니다.



  • 전투 본능 일깨우는 묵직한 타격감
  • 컨트롤에 따른 전투 피드백이 확실함
  •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난이도
  • 호불호가 갈리는 그래픽 디자인
  • 느린 템포와 기본기를 강조하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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