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산 인디 '래트로폴리스'가 메타 84점 받은 비결은?

기획기사 | 정수형 기자 | 댓글: 14개 |

메타크리틱 84점. 명작의 반열까진 아니지만, 충분히 잘 만든 게임에 붙는 점수대다. 쉽게 말해 제값 주고 사도 후회는 안 할 게임이란 소리다. 국내 인디 팀 카셀 게임즈는 작년 12월, '래트로폴리스'를 출시하며, 위와 같은 점수를 받았다.

국내 개발사, 그것도 인디 팀에서 만든 게임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드문 일이다. 현재 등록된 게임의 평가는 4개로 많다곤 할 수 없지만, 미국 유명 비디오 게임 잡지인 게임 인포머에서 85점이란 후한 점수를 받았다는 건 상기할 만 하다.

'래트로폴리스'는 어떻게 해서 이토록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까? 19년 얼리엑세스부터 정식 출시까지, 약 1년간의 빠르다면 빠르고 멀다면 먼 여정 속에서 이 게임이 추구한 목표와 변화를 통해 성공 비결을 알아보고자 한다.



▲ 점수가 무려 84점


익숙함 속에서 독창성을 찾다
익숙한 맛에 마법 소스를 첨가한 느낌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움보단 익숙함에 좀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익숙함에 질려 새로움을 찾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나도 결국 한식집을 찾아 돌아다니고 김치와 고추장을 못 잊는 것처럼 말이다. 파격적인 변화보단 기존의 익숙함에 약간의 참신함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익숙함 7, 참신함 3 정도랄까.

'래트로폴리스'는 과거,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 '킹덤' 등의 인디 게임 명작들을 해본 게이머라면 알만한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덱 빌딩, '킹덤'의 타워 디펜스와 같은 익숙함이 느껴지며, 여기에 로그라이트, 실시간 전략을 추가해 '래트로폴리스'만의 독창성을 느낄 수 있다.



▲ 좌우에서 밀려오는 적을 막아내는 것이 주요 목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킹덤'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좌우에서 끊임없이 적이 몰려오며, 이들을 막기 위해 마을을 증축하고 병사를 소환해야 한다. 일종의 타워 디펜스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덱 빌딩과 실시간 전략 요소를 넣어 건물을 짓고 병사를 뽑을 때마다 카드를 소모하게 하고 적들이 실시간으로 계속 쳐들어온다.

처음 봤을 땐, 단순히 '킹덤'의 아류작이라 생각했다. 이 게임을 얼리엑세스 시절부터 봐왔기에 당시 초반에 보여줬던 콘텐츠의 부족과 그로 인해 별다른 독창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장르의 결합을 선보이긴 했지만 완벽하게 짜인 퍼즐의 모습이 아닌 얇은 실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듯한 기분을 받았다.

1년간의 개발 끝에 정식 출시한 '래트로폴리스'는 얼리엑세스 초기에 느꼈던 아쉬운 부분을 모두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각 장르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을 서로의 장점으로 보완,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내는 게임 플레이를 선보였다.



▲ 건물 설치와 병사를 소환하는 것은 모두 카드를 필요로 한다

타워 디펜스에서 아쉽게 느껴진 중후반의 루즈함과 깊이감의 부족을 로그라이트의 랜덤 요소와 덱 빌딩의 수집하는 재미로 보완하고 반대로 덱 빌딩에서 부족한 전투 템포, 랜덤에 의존하는 플레이 방식을 타워 디펜스와 실시간 전략 전투로 채워 장르의 결합이 끈끈하게 다가온다.

물론, 과거부터 인디 시장에선 다양한 장르가 결합한 게임들을 볼 수 있었다. '래트로폴리스'가 독창적이라 생각된 이유는 게임의 완성도에 있다. 단순하게 여러 장르를 섞었다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킹덤'의 2D 타워 디펜스 형식을 따왔지만 구역마다 설치 가능 건물의 개수를 제한하고 여기에 실시간 전략과 같이 인구수와 재화를 생산하는 건물, 특수한 기능을 갖춘 건물을 추가해 전략에 깊이를 더했다. 단순하게 강력한 타워만 설치한다고 해서 적을 막을 수 있는 일반적인 타워 디펜스와 달리 인구를 조절하고 돈, 특수 능력을 생산하는 건물을 효과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플레이어에게 있다

또한,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덱 빌딩 형식을 따왔지만 지도자 캐릭터마다 차별화된 능력과 레벨업마다 주어지는 특별 직업 카드로 덱의 단조로움을 최대한 덜었다. 또한, 한 턴에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카드와 일회성 카드, 특별한 능력을 갖춘 임무 카드를 더해 로그라이트의 랜덤 요소도 적절하게 살려냈다.

기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래트로폴리스'만의 색을 입힌 것. 익숙한 방식 덕분에 게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으며, 참신한 시스템 덕분에 오랫동안 게임을 붙잡고 즐길 수 있었다. 메타크리틱에 등록된 다른 리뷰를 살펴보면 장르의 결합, 이 게임만의 참신함을 추가 점수로 준 것을 보아 대부분 비슷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절제된 난이도 조절
엄청 매콤한데 맛있으니 자꾸 땡긴다

혀가 뒤집힐 듯 매콤한 요리를 "아, 죽겠다!" 하면서도 계속 먹는 이유가 뭘까? 맵찔이인 기자는 깊게 공감할 수 없지만, 가끔 가뭄에 콩 나듯 매콤한데 이상하게 땅기는 요리들이 있다. 단순히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풍미를 담고 있는 매콤함, 게임에서도 이 같은 매콤한 맛이 존재한다.

게임의 난이도는 게임의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너무 어려운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게 만들며, 유저에게 진입 장벽을 세우는 단점이 된다. 반대로 너무 쉬운 게임은 게임의 시스템이 아무리 잘 짜였다고 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요점은 적당히 어렵지만, 플레이어가 점차 숙련도를 쌓아서 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력에 의한 성취감을 얻을 때, 게이머는 그 무엇보다 짜릿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다.



▲ 보스 몬스터 체력바를 보라, 잘못하면 본진 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래트로폴리스'의 난이도는 매콤하다. 이쪽 장르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게임 첫판부터 리타이어될 만큼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구토를 유발하는 역병 쥐와 깡패 족제비, 야만 도마뱀을 상대하기엔 우리의 쥐들은 너무 가련해서 걸핏하면 쓰러지고 애써 세운 방벽은 몇 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총 30 스테이지로 구성된 레벨 디자인은 갈수록 정예 몬스터와 10 스테이지 단위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며, 매판이 끝날 때마다 특별한 보상이 담긴 상자를 제공한다. 스테이지를 얼마나 갔는지에 따라 그에 맞는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이렇게 쌓인 경험치는 신규 카드와 조언가를 해금하는 데 사용된다.



▲ 6종 지도자, 내 맘대로 골라 쓰자

새로운 카드와 조언가가 무조건 기본 카드보다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덱 전략의 폭이 넓어져 매판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엔 충분하다. 또한, 게임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도자를 해금할 수 있는데, 지도자마다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달라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게임 내에서 각종 이벤트를 통해 게이머의 플레이를 도와주는 장치도 존재한다. 무조건 랜덤으로 등장하는 이벤트인지라 언제나 장점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이후 등장하는 이벤트에 영향을 줘 변수를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운에 기대는 플레이 방향을 넘어 게이머에게 게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게임 플레이가 제대로 성공했을 때, 게이머는 큰 즐거움을 받고 이는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정식 출시 전까지 많은 부분을 채웠다지만 여전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후반부에 급격하게 강력해지는 난이도에 이 때문에 검증된 성능의 카드만 쓰게 된다는 점은 아직도 이 게임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돈값하는 게임 플레이
생각보다 할게 많다



▲ 직업별 전용 카드도 많아졌고

돈 주고 게임을 구매하는 입장에서 오랫동안 플레이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3 리메이크'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비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짧은 플레이 타임 때문이었다. 감질만 느껴지는 짧은 게임 플레이에도 풀프라이스 정도의 가격을 받으니 많은 기대를 했던 팬들이 분노하기엔 충분했다.

로그라이트 장르는 특성상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에 정말 쉬운 장르다. 랜덤이란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몇 안 되는 장비와 스킬, 몬스터 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할 수 있다. 저예산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인디 개발사 입장에선 로그라이트만큼 매력적인 장르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양산형 로그라이트 게임 덕분에 게이머들의 눈이 높아졌고 이제 로그라이트하면 반감부터 가지는 경우도 생겼다. 대충 짜 맞춘 시스템으론 게임 몇 판 해보면 금방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랜덤이란 장점을 잃어버린 로그라이트는 스토리형 게임만도 못한 재미를 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라 볼 수 있다.



▲ 3가지의 맵에서는 지역별 특징을 갖춘 몬스터가 등장한다

'래트로폴리스'는 얼리엑세스 당시 참신한 시스템과 별개로 부족한 콘텐츠 때문에 이러한 비평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앞서 말했던 덱 빌딩과 타워 디펜스의 핵심은 전략의 폭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2~3개 밖에 없는 전략으로 무엇을 논할 수 있을까? 이름만 다를 뿐 성능이 비슷한 지도자와 직업 카드를 공유하는 시스템, 반복적인 몬스터의 등장은 게임의 흥미마저 빼앗아 버렸다.

카셀 게임즈는 얼리엑세스 초반에 받았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1년 동안 콘텐츠의 양을 채우는 데 주력했다. 텀블벅 펀딩에서 달성 금액이 부족해 추가되지 않았던 정예 몬스터와 특별한 보스도 정식 출시를 위한 개발 기간에 콘텐츠로 포함되었으며, 해안가를 배경으로 둔 지도자와 신규 맵 등도 선보였다.

단점으로 지목된 지도자 간의 차별성도 지도자마다 전용 특성과 스킬을 부여하고 지도자의 특징에 맞는 특수 카드와 조언가를 추가하면서 차차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는 6종의 지도자가 준비되어 있으며, 상인 지도자는 돈을 불리고 소모하는데 특화되고 건축 지도자는 건설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등 지도자마다 특징이 뚜렷하게 살아있다.



▲ 무한으로 즐기는 악몽 모드에선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30 스테이지로 이뤄진 게임은 평균 30~35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지만, 이후 악몽 모드로 넘어가면 게임에서 패배할 때까지 계속 즐길 수 있다, 게임의 목표도 6마리 지도자의 레벨 해금과 3개의 맵 클리어, 오염 난이도를 높여 강제로 페널티를 부여할 수 있는 하드 모드까지. 수십 종의 카드와 계단식으로 해금되는 난이도, 콘텐츠는 게임을 여러 번 플레이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18,500원이란 가격에 10시간 이상을 즐길 수 있다면, 시간당 1,850원을 쓴 꼴이니 혜자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10시간 했는데도 아직 해금할 콘텐츠가 많이 남아있다.


인디에 기대선 발전할 수 없다
게임의 완성을 위한 책임감

오랜 개발 경력을 가진 개발자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게임 출시를 서강대학교 게임&평생교육원 학생들로 이뤄진 카셀 게임즈는 무사히 정식 출시까지 이뤄냈다. 텀블벅 펀딩과 얼리 엑세스의 시작, 이후 1년간의 개발 끝에 정식 출시까지.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첫 출시작을 기대 이상으로 잘 마무리했다.

소규모로 이뤄진 인디 개발팀은 경제적인 기반이 부족한 편인지라 자금 확보를 위해 펀딩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도 텀블벅과 인디고고 등의 펀딩 사이트에서 수많은 펀딩 글이 올라오고 있으며, 정식 출시를 위해 자금을 모으는 인디 개발팀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초창기에는 인디 개발팀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러한 펀딩이 꽤 활발하게 이뤄졌다. 준비한 게임 포트폴리오가 다소 부족해 보여도 인디라는 이름 아래 어느 정도 감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개발 자금만 받아먹고 약속보다 미흡한 퀄리티를 선보이는 소위 먹튀 사건이 늘어나면서 점차 펀딩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늘어만 갔다.



▲ 상세한 개편 소식은 기다리는 게이머에게 한 줄기의 빛과 같다

카셀 게임즈의 '래트로폴리스'는 펀딩을 통해 얼리 엑세스까지 출시했지만, 처음의 평가는 앞서 언급한 대로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콘텐츠를 개발해 정식 출시 기준으로 스팀에서 3,049개의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게임을 평가한 유저들 중 88%가 게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지표다. 현재는 정식 출시 이후 모바일 버전의 출시도 염두에 두는 행보를 보인다.

펀딩을 통해 후원해준 게이머를 위해 끝까지 약속을 지킨 카셀 게임즈. 단순히 인기작의 장르를 모방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래트로폴리스'만의 덱 빌딩 + 타워 디펜스 + 실시간 전략을 완성한 독창성이 이 게임이 인기를 끌 수 있던 비결이 아닐까 한다.

학생들로 시작된 카셀 게임즈는 '래트로폴리스'를 통해 성공적으로 경력 개발자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 이들이 또 어떤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 내가 바로 래트로폴리스 건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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